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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tif in Art] 덫(trap): 누구를 잡는 함정인가

    덫은 미끼의 유혹이며, 속임수를 쓴 함정이다. 덫을 놓아 범인을 잡고 진실을 밝힐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이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악마를 잡는 쥐덫쥐덫은 말 그대로 쥐를 유인해 잡거나 죽이는 도구다. 중세의 상징에 따르면 쥐는 해로운 동물이므로 도덕과 종교에서 쥐덫은 악마를 물리치는 상징으로 흔히 사용됐다. 미술 작품 중에 쥐덫 모티브로 크게 주목받은 그림이 있다. 북유럽 르네상스 초기의 작품 <메로드 제단화>가 그것이다. 작가는 ‘플레말레의 화가’로 불리는데, 네덜란드의 로베르 캉팽(Robert Campin·1375~1444년경)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세 폭으로 구성된 이 제단화는 ‘수태고지’를 중심으로 왼쪽 패널에는 후원자가, 오른쪽 패널에는 목수 요셉이 그려져 있다. 문제의 쥐덫은 요셉의 작업장에서 발견된다. 요셉은 각종 연장을 늘어놓고 나무판에 구멍을 뚫고 있다. 작업대에 방금 완성한 듯 나무로 만든 쥐덫이 놓여 있다. 비슷한 물건이 뒤쪽 창가에도 하나 더 있다. 밖에서 잘 보이도록 창밖으로 내밀어 요셉의 작품을 광고하는 것 같다. 이 2가지 물건은 같은 종류일까. 논란이 있었지만, 대체로 둘 다 쥐덫이라고 본다.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는 이 그림에서 처음으로 쥐덫을 지적하고, 하느님이 마귀를 잡으려고 설치한 덫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교부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쥐덫에 비유한 예를 들었다. 십자가는 마귀를 잡기 위한 덫이고, 그 미끼가 바로 그리스도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한 것은 사탄이 미끼를 물어 패배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요셉이 만드는 쥐덫은 곧 십자가라고 할 수 있다. 톱, 칼, 못,

    2023.02.28 16:52:38

    [Motif in Art] 덫(trap): 누구를 잡는 함정인가
  • [Motif in Art] 초콜릿(chocolate): 달콤 쌉쌀한 맛의 품격

    초콜릿은 특별한 날이나 여행의 기념품으로 빠지지 않는 선물이다. 달콤 쌉쌀한 초콜릿의 오묘한 맛에는 지극한 정성과 기술을 결합한 치열한 노력이 깃들어져 있다.젊은 여성이 쟁반에 음료를 받쳐 들고 누군가에게 가져가는 그림이 있다. 아무것도 없는 엷은 회색 배경에 소녀의 수수한 옆모습만이 꽉 차게 들어섰다. 차림새가 하녀인데, 복숭앗빛 뺨을 가진 앳된 얼굴에 흰 레이스가 달린 분홍색 캡으로 단정하게 머리카락을 감췄다. 황토색 꼭 끼는 웃옷이 허리에서 뒤로 퍼져 프릴처럼 벌어지고, 폭 넓은 긴 회색 치마가 발목까지 내려온다. 그 위에 새하얀 앞치마를 길게 덧입었는데 살짝 구겨진 주름들이 있어 방금 꺼내 입은 것처럼 신선하다.소녀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들고 있는 작은 쟁반에는 갈색 음료가 가득 담긴 도자기 잔과 맑은 물이 든 유리컵이 놓여 있다. 갈색 음료는 잔을 고정하는 밑받침이 있으니 초콜릿이 분명하다. 걸쭉한 초콜릿을 저을 때 잔이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소녀는 정갈하고 단아한 모습으로 정성껏 준비한 음료를 나르고 있다. 그 쟁반을 받게 될 사람은 누구일까.이 그림은 18세기 스위스 화가 장 에티엔 료타르(Jean-Étienne Liotard, 1702~ 1789년)의 대표작이다. 료타르는 프랑스에서 공부하면서 유화로 역사적 주제를 주로 그렸지만 그다지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가 파스텔화를 접하고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붓자국이 강한 유화보다 부드럽게 퍼지는 파스텔이 더 자연스러웠고, 색채가 선명해서 생기 있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그는 주로 양피지 위에 파스텔을 여러 겹 덧칠해 차분한 색조와 부드러운 광택 효과를 얻었다. 파스텔은 가볍고

    2021.12.29 11:02:29

    [Motif in Art] 초콜릿(chocolate): 달콤 쌉쌀한 맛의 품격
  • [Motif in Art] 전등(electric light): 인공의 빛을 찬미

    도시에서 전등이 없는 밤을 상상할 수 있을까. 전등은 화재 위험이 적고 균일하게 밝은 조명이 가능한 획기적 발명품이었다. 전등이 일상에 확산하면서 생활양식이 변하고 야간 문화가 급속히 발달했다. 밤의 신세계가 열린 것이다.벨 에포크의 전기 조명1881년 프랑스 파리의 ‘산업궁전’에서는 세계 최초로 국제전기박람회가 열렸다. 미국과 유럽 각국이 참여해 전기 발명품을 전시하고, 전기의 단위와 기준들을 결정했다. 행사장은 수많은 전구가 빛을 밝히고, 전시된 발명품 중에서도 백열등을 사용한 전기 조명이 관심을 끌었다.박람회가 성공하자 파리는 세계 전기의 중심지로 알려지게 된다. 파리의 가로등이 가스등에서 전등으로 교체되고 상점들도 새 전등을 달기 시작했다. 도시의 밤이 밝아지면서 야간에도 일하고 늦게까지 만남이나 쇼핑을 즐기게 됐다. 전깃불로 장식한 휘황찬란한 백화점이나 점포들이 즐비한 밤거리는 프랑스에서 이른바 ‘좋은 시절’로 회고되는 이 시기, 즉 ‘벨 에포크(Bell Époque)’의 표상과도 같았다.1880년대 들어 파리에는 ‘르 샤 누아르(검은 고양이)’, ‘물랭루주(빨간 풍차)’ 같은 카바레들이 속속 개업했다. 이들 유흥업소에서는 음료와 식사뿐 아니라 음악, 춤, 연극 등 오락거리를 제공했다. 밤이면 전등을 밝혀 불야성을 이루고 업소마다 특색 있는 공연을 펼쳤다.화가 앙리 드 툴루즈로트레크(Henri de Toulouse-Lautrec, 1864~1901년)는 물랭루주에 살다시피 하면서 그곳의 인물과 일상을 화폭에 옮겼다. 그림 <물랭루주에서>는 공연이 있기 전 카바레의 평상시 모습을 그린 것이다. 주인공도 없고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평

    2021.12.07 12:56:30

    [Motif in Art] 전등(electric light): 인공의 빛을 찬미
  • [Motif in Art] 카페(cafe): 문화와 예술의 아지트

    ‘카페(café)’는 커피를 비롯한 음료를 판매하는 상점으로, 가벼운 식사를 제공하기도 한다. ‘커피하우스’라는 영어보다 ‘카페’라는 프랑스어로 전 세계에서 더 많이 통용된다. 유럽 문화예술의 중심지 프랑스에서 카페는 어떤 역할을 했을까.프랑스 파리에는 유서 깊은 카페들이 여럿 있다. 1686년 개업한 ‘카페 프로코프’는 프랑스 최초의 카페이자 현존하는 카페 중 가장 오래된 곳으로 유명하다. 개업 당시 귀족이 즐기던 커피와 음료, 아이스크림 등 수입한 신제품을 대중에게 직접 판매해 인기를 얻었다. 그곳은 지식인의 만남의 장소로서 계몽사상가인 볼테르, 루소, 디드로 등이 백과전서의 기초를 마련했고, 대혁명 시기에는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 혁명가들이 드나들었다. 이후 나폴레옹이 방문했고 위고, 발레리, 발자크 같은 문학가들도 즐겨 찾았다.이처럼 오래된 카페들은 프랑스 역사와 함께하면서 문화와 예술의 산실이 되고 카페 문화를 선도했다. 프랑스에서 카페 문화가 발달하게 된 데는 기존의 살롱 문화가 한몫했다. 귀족의 살롱 문화에서 대중적인 카페 문화로 자연스럽게 이행한 것이다. 카페는 술, 음료, 식사, 공연 등을 즐기면서 만남과 토론을 벌이는 문화적 공간이었다. 인상파의 아지트, 파리의 카페19세기에 파리에 들어선 수많은 카페 중에 ‘카페 게르부아’는 인상주의 미술을 탄생시킨 장소로 유명하다. 이 카페는 에두아르 마네의 집 근처에 있어서 그를 따르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다. 주요 인물은 마네, 모네, 르누아르, 드가 등의 미술가들, 그리고 졸라, 뒤랑티 같은 문인들이었다. 이들은 지역 이름을 따 ‘바

    2021.11.01 12:24:47

    [Motif in Art] 카페(cafe): 문화와 예술의 아지트
  • [Motif in Art] 기차역(railway station): 다양한 군중과 현대식 플랫폼

    근대화를 선도한 유럽의 두 도시 런던과 파리에는 19세기에 지은 큰 기차역들이 있다. 위대한 발명품인 기차가 머물고 다양한 사람들이 군중을 이루는 곳, 기차역 플랫폼은 당시 예술가들에겐 창작의 영감을 얻는 생생한 체험의 장소였다.1830년 리버풀 역 개통을 시작으로 영국과 유럽 대륙의 대도시에는 대규모 기차역이 속속 세워졌다. 도시들을 연결하는 철도의 기점이자 종착역인 그 역들은 이동의 신속함과 편리함이라는 기능뿐 아니라 여행의 낭만에 대한 꿈과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그래서 역 건물은 성당 건축처럼 웅장하게 설계해 전통적 미감을 주고, 장거리 여행객을 위한 호텔의 기능까지 겸하도록 했다. 반면에 열차를 타고 내리는 플랫폼 공간은 첨단 건축재인 철골과 유리를 사용해 넓고 밝게 실용적으로 지었다. 그곳은 교차하는 철도, 기관차가 뿜어내는 증기와 소음, 몰려드는 군중으로 활기가 넘쳐났다.런던 패딩턴 역의 플랫폼빅토리아 시대인 19세기 중엽, 발전하는 영국 런던의 기차역을 가장 잘 묘사한 그림으로 윌리엄 파웰 프리스(William Powell Frith, 1819~1909년)의 <기차역>이 있다. 런던 북서부에 위치한 패딩턴 역을 그린 그림이다. 프리스는 기차가 출발하기 전 사람들로 붐비는 플랫폼을 묘사했다. 열차의 형태처럼 가로로 긴 화면에서 위쪽 절반은 건축물이 차지한다. 철골 구조가 아치형으로 반복되며 지붕을 이루고 가느다란 기둥들이 경쾌하게 받치고 있다. 넓은 지붕에는 유리가 덮여 비바람을 막고 햇빛은 투과한다. 그림에서 건축 구조가 압도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마치 최신 건축술을 자랑하고 기차의 발명을 찬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편 그림 아래쪽 절

    2021.09.30 14:57:48

    [Motif in Art] 기차역(railway station): 다양한 군중과 현대식 플랫폼
  • [Motif in Art] 엉겅퀴(thistle): 결혼의 운명과 노동의 미덕

    엉겅퀴는 가시를 가진 국화과 식물로 여러 품종이 있다. 연보랏빛 아담한 꽃과 달리 억센 잎과 날카로운 가시가 반전의 매력이다.나라를 구한 행운의 꽃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국화다. 수백 년 전 전쟁 때 엉겅퀴가 나라를 구해줬다는 전설에서 유래했다. 적군 병사들이 들판에 잠복해 맨발로 조용히 쳐들어오고 있었는데, 긴장된 순간 갑자기 한 병사가 비명을 질렀다. 모르고 엉겅퀴 가시를 밟은 것이다. 그 바람에 매복이 들통나 스코틀랜드는 위기를 모면하고 승리하게 된다.나라를 구한 엉겅퀴는 스코틀랜드의 중요한 상징 이미지로 발전한다. 왕실의 문장이나 동전 등 국가의 주요 디자인에 엉겅퀴가 반드시 들어간다. 엉겅퀴꽃은 품위 있는 둥근 왕관 모양이고, 가시 달린 잎은 뾰족뾰족 굴곡지며 거침없이 자라난다. 가을에 잎이 죽어도 뿌리는 땅속 깊이 살아남아 다시 싹을 틔운다. 부드러움과 강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반전의 형태로 디자인의 변형이 무궁무진하다. 국가의 이미지뿐 아니라 벽지, 타일, 가구, 삽화, 장신구 등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활용되고 있다.스코틀랜드에서는 엉겅퀴가 행운과 고귀함을 뜻한다. 그런데 엉겅퀴가 가진 상반된 속성은 정반대의 해석도 가능케 한다. 미술 작품에 나오는 엉겅퀴를 살펴보며 작품 해석에 미치는 상징의 다양성을 알아본다. 결혼과 운명의 상징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년)는 인생의 주요 시기에 의미심장한 자화상들을 그렸다. 그중 22세 때 그린 <엉겅퀴를 든 자화상>이 있다. 뒤러가 도제 수업을 마치고 독일 서부와 스위스 지역을 여행할 때 제작했다. 그림 속에서 뒤러는 4분의 3 측면 자세로 관람자를 바라본다. 이탈

    2021.05.31 11:43:35

    [Motif in Art] 엉겅퀴(thistle): 결혼의 운명과 노동의 미덕
  • [MOTIF IN ART] 피라미드(pyramid): 변하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

    피라미드라 하면 보통 이집트에 있는 고대 유적을 떠올린다. 완벽한 형태에 거대한 규모, 오랜 역사와 신비한 상징이 더해져 그 형태는 오늘날에도 문화와 예술에서 계속 차용된다. 영혼의 집, 승천의 장소 이집트에는 피라미드로 분류된 석조 건축물이 100여 개 남아 있다. 대부분 왕이나 왕비의 무덤인데, 가장 유명한 것은 카이로 외곽 기자의 세 피라미드다. 세 명의 왕을 각각 모신 장소로 기원전 2600년에서 2500년 사이에 세워졌다. 모두 밑면...

    2021.05.17 13:12:43

    [MOTIF IN ART] 피라미드(pyramid): 변하지 않는 불가침의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