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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올 매출 4배 키운 ‘패션의 혁명가’ 존 갈리아노[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크리스찬 디올 ⑤크리스찬 디올이 세상을 떠난 뒤 21세의 젊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수석 자리를 물려받아 트라페즈 라인을 발표했다. 그는 “이브 생 로랑이 파리를 구했다”는 칭송을 받았고 1960년 봄여름 컬렉션은 디올 하우스의 컬렉션 중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1960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거리의 청소년들에게서 영감을 받은 대담한 비트룩은 우아한 디올 라인을 선호하는 고객들에게 외면당했다. 결국 디올의 경영진은 로랑을 해고했다.이후 로랑은 평생의 파트너인 피에르 베르제와 함께 자신의 브랜드인 이브 생 로랑을 론칭했다. 로랑에 이어 마크 보앙이 28년간 수석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남성 향수, 아동복, 남성복 라인을 발표해 최장수 디올의 수석 자리를 지켰다. 이어 이탈리아 출신의 지안프랑코 페레는 디올이 LVMH그룹에 인수된 후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직접 선정한 수석 디자이너다.지방시 이어 디올 수석 디자이너로 발탁페레는 슈트의 건축학적 우아함과 웅장한 이브닝 드레스의 화려함을 통해 오트 쿠튀르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고 ‘남성 모티브’를 디올 여성 옷에 재도입했다. 페레는 “과장된 칼라, 소매 및 리본은 단순한 의상을 완전하고 독특하며 뛰어난 앙상블로 탈바꿈시킬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페레에 이어 디올의 수석 디자이너 자리는 영국 출신의 ‘패션계의 악동’, ‘로맨틱의 영웅’, ‘패션계의 천재’라는 수식어로 유명한 존 갈리아노가 차지했다. 1984년 갈리아노는 런던의 패션스쿨 세인트 마틴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그는 졸업 패션쇼에서 8벌의 유니섹스 룩으

    2022.06.04 06:00:03

    디올 매출 4배 키운 ‘패션의 혁명가’ 존 갈리아노[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 기계식 시계 덕후의 오리스 예찬

    최순(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기계식 시계를 좋아하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정확한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 전자시계의 그러한 면을 존중해왔다. 어쩌면 전자시계 이외의 대안에 대해 고민해보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시계는 시간을 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고, 그렇다면 전자시계를 차면 될 일이며, 하물며 내겐 스마트폰까지 있지 않은가.그랬던 내가 우연히 접하게 된 기계식 시계의 세계는 일종의 ‘낭만’이었다. 호캉스와 캠핑의 차이라고나 할까? 편리함과 익숙함을 뒤로 한 채 존재의 근원에 다가간 느낌, 불편함을 감수해도 좋을 만큼 감성을 자극하는 그 무엇. 나는 그것을 ‘기계식 시계의 낭만’이라 칭하며 나의 삶 속으로 기꺼이 초대했다.기계식 시계를 차면 일단 늘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는 점이 좋다. 진료를 하거나 연구할 때도 손목을 누르는 그 묵직한 존재감은 늘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기분 좋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 ‘누군가’는 비록 홀로 서랍에 며칠 놔두면 멈춰버리기도 하는 예민한 성정을 지녔지만, 그것마저 생명이 있는 존재인 양 느껴져 좋았다. 특유의 시계 소리도 좋고, 내가 열심히 움직이며 일하는 동안 이 친구도 보다 완벽한 시계로서의 역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긴긴 밤 연구에 몰두할 때마다 위안이 되기도 한다.기계식 시계의 낭만에 젖어 들며 ‘오리스’라는 브랜드를 알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다.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지인은 나의 첫 기계식 시계를 오리스에서 골라보라 조언했고, 나 역시 기계식 시계만 생산하는 독립 브랜드인 데다 입문용으로 적당한 가격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가 가

    2021.07.30 17:03:57

    기계식 시계 덕후의 오리스 예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