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완성된 ‘더불어재명당’…민주당에 독 될까 약 될까 [홍영식의 정치판]

    [홍영식의 정치판]“여러분이 미래 운명을 통째로 맡겼는데 충분히 받아들 이지 못했다. 저도 민주당이라는 큰 그릇 속에 점점 갇혔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으로 만들어 가겠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해 11월 20일 충남 논산 화지중앙시장 즉석 연설에서 한 말은 당 안팎에 많은 논란을 불렀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민주적 공당이 아닌 대통령 후보 개인의 사당의 길을 가겠다는 발상에서 청와대 독재가 싹트고 집권당이 청와대의 여의도 출장소로 전락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내 비명(비이재명)계에선 “질겁했다(이상민 의원)”고 직격탄을 날렸다.“새로운 민주당을 만들겠다는 뜻”이라는 친명계의 항변이 무색하게 지난 8·28 전당대회를 통해 ‘민주당=이재명당’이라는 그림이 완성됐다. 전당대회에서 뽑힌 최고위원을 보면 고민정 의원을 제외하고 모두 친명계가 당선됐다. ‘이재명의 민주당’이 되는 전략은 대선 패배 이후에도 치밀하게 작동됐다. 지난해 이 대표가 대선에 나섰을 때만 해도 그의 최대 약점은 당내 세력 기반 취약이었다. 그의 지지 세력은 숫적으로만 보면 친문재인에 비할 바가 못 됐다. 이 대표가 당을 장악해 나가는 과정을 보면 대중 정치인의 전형을 보는 것 같다. 외곽을 때려 당에 충격을 가하는 식이다. 주역은 ‘개딸(개혁의 딸)’과 ‘양아들(양심의 아들)’ 등 팬덤이다. 전체 당원 중 팬덤의 비율이 10%도 안 된다지만 양적으로만 볼 일이 아니다. 단순 지지를 넘어 이 대표와 일체화하면서 여론을 주도한 팬덤과 보통

    2022.09.02 10:41:15

    완성된 ‘더불어재명당’…민주당에 독 될까 약 될까 [홍영식의 정치판]
  • [홍영식의 정치판] 결국 여권 전체에 ‘핵폭탄’ 던진 ‘윤핵관’

    [홍영식의 정치판]그 어느 정권을 막론하고 1등 공신들은 있기 마련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박정희 정권의 2인자는 김종필 전 총리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권위를 위협할 만한 2인자를 용인하지 않는 스타일이어서 공신들끼리 견제시키며 충성 경쟁을 유도했다. 결국 공신 반란에 정권은 무너졌다. 전두환 정권에선 ‘3허(허삼수·허화평·허문도)’ 등이, 노태우 정권 때는 사조직 월계수회를 이끈 박철언 전 장관이 각각 실세 불렸다. 김영삼 정부 때는 ‘좌동영(김동영 전 정무 제1장관)-우형우(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가, 김대중 정부 때는 동교동계 중 권노갑 더불어민주당 상임고문이 실세 중 실세로 꼽혔다. 노무현 정권 탄생 1등 공신은 ‘좌희정(안희정 전 충남지사)-우광재(이광재 전 의원)’였던 것도 널리 알려져 있다. ‘핵관(핵심 관계자)’의 원조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이동관 청와대 홍보수석이다. 그는 민감한 현안 브리핑 때 익명을 요청하면서 그런 별칭을 얻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출마 전후부터 이른바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이 정치권 태풍의 눈으로 등장했다. ‘윤핵관’ 탄생의 발단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윤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993년 수원지검에서 마주쳤다. 당시 윤 대통령은 검사 시보로 수원지검에 연수를 왔고 사시 6기 선배인 권 원내대표는 검사로 재직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합창하듯 “어 강릉?”이라고 외쳤다. 윤 대통령은 어릴 때 방학만 되면 강릉 외갓집에 놀러갔고 외조모의 소개로 권 대행과 동갑내기 친구로 지낸 이후 이렇

    2022.08.10 16:21:55

    [홍영식의 정치판] 결국 여권 전체에 ‘핵폭탄’ 던진 ‘윤핵관’
  • “여소야대…尹대통령, 사자 용맹·여우 교활함 필요“ [홍영식의 정치판]

    홍영식의 정치판5월 10일 20대 대통령에 취임한 윤석열 대통령의 취임사는 역대 대통령과 뚜렷이 대비된다. 일단 분량이 적다. 전체 3303자로, 이명박 전 대통령(8969자), 박근혜 전 대통령(5558자)에 비해 매우 짧다. 5년 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급작스럽게 실시된 대선으로 선거 다음 날 약식으로 취임식을 진행한 문재인 전 대통령(3181자)과 비슷하다.  내용도 특이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취임사에서 경제·사회·외교·안보·교육 등 각 분야에 대한 청사진을 밝히는 게 보통인데 윤 대통령은 달랐다. 그런 형식에 탈피해 시종일관 ‘자유’를 강조하는 데 치중했다. 약 16분간의 연설에서 자유가 35번이나 등장했다. 분야별로는 대강의 성장 전략과 북한 문제를 언급하는 정도에 그쳤다. 향후 5년간 국정과 정치 철학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 정도만 뚜렷하게 보여주고 세세한 정책은 이런 자유의 가치에 기반해 펼쳐 나갈 것이라고 대통령실 관계자는 설명했다.  野 정면 겨냥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 위기 불러” 취임사 첫머리부터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로 재건해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가지고 이 자리에 섰다”고 한 게 눈에 띈다. 헌법의 골격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 경제라는 가치를 다시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는 문재인 정권이 부동산법·언론법·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박탈)법 등 반시장·반자유·위헌적 입법을 밀어붙인 것을 간접적으로 겨냥한 것이다.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2022.05.13 09:06:58

    “여소야대…尹대통령, 사자 용맹·여우 교활함 필요“ [홍영식의 정치판]
  • 吉地-치욕이 교차하는 용산… “풍수는 풍수일 뿐”[홍영식의 정치판]

    [홍영식의 정치판]청와대 터가 역사서에 등장한 것은 1426년 경복궁 후원(後園 : 집 뒤의 정원)으로 활용되면서다. 1868년 경복궁 복원 뒤 북원(北園)으로 불렸다. 일제는 1939년 이곳에 총독 관저를 지었다. 조선 왕실의 기를 누르고 ‘용맥(龍脈 : 산의 정기가 흐르는 산줄기)’을 자르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48년 정부 수립 후 총독 관저로 이사하면서 경무대라고 이름 지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은 4·19혁명 뒤 경무대를 청와대로 바꿨다. 경무대가 국민에게 좋지 않은 인식을 준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승만 지우기’의 일환이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89년 청와대를 신축(준공 1991년)했고 웅장한 궁궐같은 본관이 들어섰다.  청와대 터를 두고 오래전부터 길지(吉地)-흉지(凶地)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풍수지리학자 지종학 씨는 청와대와 경복궁은 뒷산인 북악에서 좌우로 뻗어 낙산을 청룡으로 하고 인왕산에서 사직단에 이르는 산줄기를 내백호로 삼고 있다고 했다. 지 씨는 ‘청와대 입지의 재조명’이란 책에서 앞에 남산이 있고 그 사이에 청계천이 흐르고 있어 ‘장풍득수(藏風得水 : 바람을 가두고 물을 구하기 쉬운 곳)’를 이루고 있다고 평가했다. 좋은 터라는 얘기다.반면 최창조 전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는 ‘땅의 눈물 땅의 희망’이란 책에서 청와대 앞길을 경계로 사람의 공간과 신의 강림지로 나뉜다고 했다. 청와대 터는 신의 강림지로 죽음의 공간이라는 얘기다. 최 전 교수는 청와대를 경기 성남시 세종연구소 터로 옮길 것을 주장하기도 했다. 김두규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는 ‘우리땅

    2022.04.04 06:00:13

    吉地-치욕이 교차하는 용산… “풍수는 풍수일 뿐”[홍영식의 정치판]
  • 윤석열 정부 좌표 틀어쥔 안철수 권영세 원희룡[홍영식의 정치판]

    [홍영식의 정치판]역대 정권마다 인사에 특징이 있었다. 과거 군사 정권에선 ‘육법당’이란 말이 회자됐다. 육군사관학교와 법대 출신이 청와대·정부·국회를 차지해 나라를 좌지우지한다는 뜻이다. 법대는 서울대 법대를 지칭한다. 고시에 합격해 판사와 검사를 거쳐 정·관계에 입문해 육사 졸업의 ‘별’들과 함께 권력의 양대 산맥을 이뤘다. 서울대 법대 동창회가 1994년 개교 100주년을 맞아 펴낸 수상록에서 한 동문은 “군사 독재를 뒷받침해 준 머리와 손발은 대부분 서울 법대 출신이었다. 반면 약자의 편에 서서 권력을 감시하고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구현한 법대인은 드물었다. 법대 출신들이 정통성 없는 권력과 야합해 역사를 어지럽혔다”고 평하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엔 별들의 힘이 약화됐다. 당시 김 대통령이 5~6공화국의 실세를 형성했던 하나회를 숙청하면서 육사의 시대가 저물게 됐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운동권이 권력의 주류를 형성했고 이들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또 정권에 관계 없이 ‘법당’ 세력도 마찬가지로 정·관계의 중추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사 정권 이후엔 정권의 주류는 이전보다 다양화됐다. 하지만 정권마다 특징은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엔 6·3세대가 주류를 형성하고 이른바 ‘386’들이 이들을 떠받치는 ‘행동대’ 역할을 했다. 이명박 ‘고소영’→박근혜 ‘성시경’→문재인 ‘캠코더’→ ?이명박 정부에선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이 전 대통령의 출

    2022.03.28 06:00:23

    윤석열 정부 좌표 틀어쥔 안철수 권영세 원희룡[홍영식의 정치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