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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걷지 못한 그녀는 왜 자국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왔을까 [이제는 K-의료 시대]

    [한경잡앤조이=조아라 하이메디 매니저] 저 멀리 타국에서 혼자 생활을 하던 중 하루아침에 갑자기 걸을 수 없게 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런데 지난 1월, 일본에 거주 중인 루마니아 국적의 환자에게 이러한 일이 일어났다.  그녀는 하이메디의 도움이 필요하다며 장문의 메일을 보내왔다. 미국, 독일과 함께 의료 선진국으로 손꼽히는 일본에서 어떤 이유로 우리의 도움이 필요했던 걸까.이 환자는 갑자기 심한 무릎 통증과 함께 무릎 관절이 과하게 뒤로 꺾이는 증상으로 걸을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다. 현지 병원의 검사 결과, 어린 시절 무릎에 발생한 골육종으로 인해 받은 인공관절 수술 부위의 부품이 파손됐고 무릎 주변에 심한 염증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무엇보다 골육종이 재발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현지 의사의 소견은 그녀에게 청천벽력이나 다름없었다. 당장 골육종의 재발 여부 확인과 함께 손상된 인공관절을 교체하는 수술이 필요했는데, 설상가상으로 일본에는 환자에게 맞는 부품을 수급할 수 없어 주치의로부터 한국에서 수술을 권유 받았다.하지만 혼자서는 걸을 수조차 없는 그녀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국에 와서 치료받는 것이 어디 말처럼 쉬운가. 다행히 근무 중인 회사에서 한국인 동료를 찾을 수 있었고, 그 동료가 직접 인터넷으로 외국인 환자를 위해 교통과 숙박 서비스를 제공하는 하이메디를 찾아 그녀에게 추천해 준 것이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메일을 받은 이후 당장 수술이 시급한 상황임을 인지하고 병원에 의뢰했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수술 불가능했던 케이스답게 한국 병원에서도 수술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게 서울과 경기도

    2022.04.01 08:49:54

    걷지 못한 그녀는 왜 자국 일본이 아닌 한국으로 왔을까 [이제는 K-의료 시대]
  • 내가 스타트업에서 교육앱을 만드는 이유 [배움의 씨앗을 심다]

    [한경잡앤조이=에누마 김은파 님] 지금까지 살면서 들었던 여러 수업 중에 가장 좋았던 것 하나를 꼽자면 대학에서 들었던 라틴어 강의다. 고전 라틴어는 생소한 데다 문법도 복잡하고 어려웠지만, 암호문을 해독하듯 문자에 담긴 의미에 조금씩 다가가는 과정이 흥미로웠고 수업에서 배운 라틴어 속담이나 경구 하나에 교양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 수업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은 결정적인 이유는, 한 학기의 수업 동안 어려움을 느껴서 흥미가 사그러들 만한 시기마다 교수님이 마치 학생들의 마음을 들여다본 듯 격려하고 도움을 주셨기 때문이었다. 복잡한 문법을 한 번에 제시하고 알아서 외우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단계별로 배우도록 하고,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는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는 식이었다. 덕분에 학기가 끝날 때까지 포기하는 일 없이, 조금씩 실력을 키워 가며 라틴어라는 새로운 세계를 즐겁게 탐험할 수 있었다.다들 이런 경험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운동이든 수학이든, 배우는 사람으로서 맞닥뜨린 어려움을 좀 더 쉽게 넘어갈 수 있도록 적절한 도움을 받은 경험 말이다. 울퉁불퉁하고 가팔랐을 ‘학습의 길’이 그런 도움으로 인해 완만하고 걷기 좋아져 적은 힘으로도 잘 배울 수 있고 다른 것을 더 배울 마음이 나기도 하는 선순환으로 들어선 경우 말이다. 나에게 어린이들을 위한 학습 앱을 만드는 일이란, 그렇게 ‘좀 더 배울 마음’이 나도록 정성 들여 학습 경험을 디자인하는 일이다.어떻게 하면 배울 마음이 생겨날까. 어른이라면 배우는 과정이 좀 지루해도 자신의 목적을 생각하며 학습을 지

    2022.03.28 09:12:52

    내가 스타트업에서 교육앱을 만드는 이유 [배움의 씨앗을 심다]
  • ‘코로나 시대 소개팅’, 셋, 둘, 하나 마스크를 벗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난다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한경잡앤조이=유복치] 막판 오르막길을 질주하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다. 마스크 안은 이미 습기로 가득 찼다. 약속 시간 1분 전, 아슬아슬하게 식당 앞에 도착했다. 바로 문 손잡이를 잡으려다 잠시 멈칫했다. 예전 같으면 별 생각 없이 덥석 잡았겠지만, 지금이 어느 시절인가. 역병이 창궐하는 때다. 사람들 손이 가장 많이 탄 것처럼 보이는 반들반들한 윗부분 대신 가장 손이 덜 닿았을 것만 같은 아래쪽을 주먹으로 밀고 식당에 들어섰다. 누가 봐도 이곳은 소개팅 성지. 꽃병과 식전 빵, 파스타가 놓인 테이블에 청춘 남녀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도 같은 이유다. 바로 소개팅. 솔로 탈출을 위한 근 1년 만의 발걸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알지 못한 상태로 한 공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으레 주선자가 서로의 사진을 전달하고 소개팅 성사 여부를 알려주곤 하지만, 이번에는 기본 신상 정도만 알고 만남을 수락했다. 주선자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코로나19가 막 확산하던 시기라 영업 제한이 생기고, 사람 간의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만남 자체가 귀했던 탓도 있다. 함께 모여 있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일명 ‘자만추’는 빠르게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럴 때 ‘사진을 요청한 후 소개팅 가부를 결정한다?’는 거의 지리산 주막에서 트러플 오일 관자 파스타를 주문하는 격이다. 시대와 처한 상황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블라인드 소개팅은 어쩐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소개팅 상대와 나는 그 흔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조차 없었다. 카카오톡에서 서로 주고받은

    2022.03.23 09:24:17

    ‘코로나 시대 소개팅’, 셋, 둘, 하나 마스크를 벗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난다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 #첫 출근 #2개월 간의 사회생활 #이제는 대학생 [열아홉, 떡잎부터 남다른 나는 ‘보리’]

    [한경잡앤조이=레드브릭 이치우 인턴사원] 두 달 간의 레드브릭 인턴 생활을 마치고 대학 새내기가 됐다. 방학이 사라진 기분이었지만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매일 출근하고, 회사 동료들과 회의하고,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 자체가 즐거웠다. 더욱이 게임 개발과 관련된 학과에 진학하는 나에겐 더없이 뜻 깊은 2개월이었다.첫 출근날이 떠오른다. 그날은 뻘쭘 했던 기억이 가장 또렷하다. 첫날 회사에 도착해 자리를 배정 받고 앉았는데 낯선 사람들 뿐이었다. 새 학기 때랑 다른 점은 책상 간격이 넓어서 말 걸기도 어렵고 다들 분주한 가운데 할일 없이 멀뚱멀뚱 있어야 했다. 점심시간에도 코로나19 때문에 포장 음식을 같이 먹는데 명절날 친척 어른들과 식사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콘텐츠 기획 파트다 보니 회사에서 내려온 지시가 ‘해보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었다. 음식 고를 때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고들 하던데... 그 덕에 학생 인턴이자 막내인 내 의견이 적용되는 기쁨도 있었다. 거기엔 동료들의 도움이 컸다. 어떠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면 단 한번도 무산되지 않고 많은 수정사항과 디벨롭을 통해 결과로 만들어졌다. 친구와 둘이서 콘텐츠를 기획할 때는 아이디어로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회사는 각자 할 일을 분배해주고 문서로 정리해 나가며 아이디어를 진화해 나갔다. 처음엔 문서 작업이 낯설었지만 얼마나 중요한 과정인지를 배우게 됐다. 레드브릭 인턴 ‘bori’가 아닌 22학번 신입생이 된지 일주일이 됐다. 아직 대부분의 강의가 오리엔테이션만 진행 한데다 비대면으로 듣고 있어서 실감이 나지 않지만 대학생이

    2022.03.22 09:45:03

    #첫 출근 #2개월 간의 사회생활 #이제는 대학생 [열아홉, 떡잎부터 남다른 나는 ‘보리’]
  •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 한국병원 찾은 외국인 환자들의 웃픈 순간들 [이제는 K-의료 시대]

    [한경잡앤조이=조아라 하이메디 매니저] 한국병원을 찾는 외국인 환자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웃지 못할 해프닝이 생기기도 한다. 상담 중 갑자기 의료진에게 셀카를 요청하거나 간호사를 ‘Sister’로 부르는 등 문화적 차이로 생기는 웃픈 현상이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한국 의료진은 모두 내 친구아랍권 남성 환자분들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언제 어디서나 금방 적응을 하는 편이다. 그들의 친화력은 한국 의료진에게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어느 날,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회사로 연락이 왔다. 환자가 담당 간호사를 “Sister”라고 부르며 아주 가까운 친구처럼 대했는데, 아무래도 환자의 지나친 친화력이 부담스러웠나 보다. 담당 간호사 선생님께는 아랍 문화에 대한 설명과 양해를 구했고, 환자에게도 한국의 병실 분위기 전반을 이야기하며 조심해 달라고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한 번은 아랍 환자에게 병원 진료 예약을 위해 현지에서 받은 검사 자료를 요청했는데, 파일을 열어 보니 활짝 웃고 있는 본인의 셀카와 함께 친구들과 찍은 사진들이 있었다. 환자에게 자료를 잘못 보낸 것 같다고 말하니 “이 사진들처럼 여전히 건강해요”라며 의료진에게 본인을 보여주고 싶었단다. 천진난만한 아랍 환자들을 만날 때면 조용했던 사무실이 즐거워진다.세상에서 가장 시끄러운 원격진료몽골에서 뇌종양으로 한국치료를 고민 중인 70대 할아버지의 원격진료를 진행하게 됐다. 환자가 귀가 잘 들리지 않아 아들과 통역사가 합심해 환자인 아버지에게 큰소리로 설명해야 했는데, 문제는 환자가 의료진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다. 현재 증상을 묻는 간단한 질문에도 20살

    2022.03.21 09:27:13

    ‘어서와~한국은 처음이지’ 한국병원 찾은 외국인 환자들의 웃픈 순간들 [이제는 K-의료 시대]
  • “백수인데 치킨 먹어도 되나요?” [2호선 수필집]

    [한경잡앤조이=백윤희 매니저] “백수인데 치킨 먹어도 되나요? 돈도 못 버는데.” 실제로 들었던 말이다. 이런 말은 들을 때마다 마른오징어 불에 오그라들듯이 가슴이 찌릿하다. 후다닥 달려가 “진짜 괜찮으니 걱정 그만하고 치킨 먹은 다음에 산책도 다녀오세요"라고 말하고 싶다. 우선 ‘괜찮다’라는 말을 생각해보자. 나는 백수 생활이 길어지면서 뭐든 다 안 괜찮다고 결론 내릴 때가 많았다. ‘교촌 허니콤보 먹고 싶은데 백수가 한 끼로 2만 원을? 머리 자르고 싶은데 백수가 감히 미용실을? 청바지를 사고 싶은데 백수가 옷을 사? 올리브영 갔더니 3CE 틴트 너무 예쁜데 백수가 무슨 화장품?’ 이런 흐름이었다. 평소 마인드가 ‘가는 데 순서 없다’ 인데도 3개월 이상 백수로 지내면서 저렇게 바뀌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합리화하고 타협하면서 살긴 했다. 가끔(집에 아무도 없을 때) 치킨도 시켜 먹고, (편의점 택배함으로 주문해 몰래 가져오는 식으로)야금야금 옷도 샀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자존감 깎아 내려가면서 타협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다 했어도 괜찮았을 것 같다. 장담컨대 가끔 한 끼로 2만 원 쓴다고 해도 될 게 안 되진 않았을 거란 말이다. “지금 내가 먹고 싶은 걸 먹으면 2만 원이나 쓰는 거네, 구직지원금으로 통신비랑 교통비 내야 하는데 식비로 2만 원을 쓴다니, 백수 주제에 사치 아닌가, 만약에 내가 한 달에 200만 원 벌면 월급의 1%나 쓰는 거네, 근데 난 월급 받을 회사도 없지, 진짜 무능력하다” 이렇게 걱정의 흐름을 계속 따라가지 말자. 걱정은 삶의 동반자다. 그러니 최대한 짧게 하고 그다음을 생각

    2022.03.18 09:40:42

    “백수인데 치킨 먹어도 되나요?” [2호선 수필집]
  • 주택살이 3년차, 밤낮없이 ‘서태지’와 만나다 [레드브릭 하우스 스토리]

    [한경잡앤조이=김민경 밀리의서재 매니저] 겨울이 끝났다. 한파가 계속 되어 수도관이 동파될까봐 겨울 내내 노심초사하던 것도 이제 끝이다. 꽤 다사다난했던 첫 번째 겨울에 비하면 셀프 칭찬을 해주고 싶을 정도다. 그동안 몇 차례 사건사고(?)를 겪으면서 이제 좀 주택 생활에 적응이 된 것 같다. 어느덧 주택살이 3년차, 주택에 오길 잘했다고 느낄 때는 언제일까.  첫 번째는 LP를 들을 때다. 결혼 전 본가에 부모님과 오빠가 모아둔 LP가 있었는데, 그땐 전혀 관심이 없었다. 내겐 구시대적 유물 그 자체였다. 그런데 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문득 LP 생각났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20년 된 레트로한 집에 레트로한 취미가 잘 어울리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제야 본가에 가서 먼지 쌓인 LP들을 뒤져보니, 이문세, 김추자, 서태지와 아이들 등등, 세월 속 명반들이 있었다.(힙하다 힙해!) 작동법도 모르는 내가 LP에 턴테이블, 스피커까지 한꺼번에 모셔와 듣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신세계가 펼쳐졌다. 아날로그 음질도 매력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늦은 시간 눈치 보지 않고 듣는 음악의 맛이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었다.(한 면을 다 듣고 판을 뒤집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참기로 했다.) 코로나19로 주말에 집콕할 때 버티게 해준 오할 정도는 LP 덕이라 하겠다. 층간소음 걱정을 덜게 된 건 정말 여러모로 만족스럽다. 아파트에 살 때는 늦은 시간, 청소기나 세탁기를 돌리기가 눈치 보였다. 퇴근하고 오면 집안일이 쌓여 있지만 소리가 크지 않은 것 위주로 처리해야 했다. 그땐 늦은 밤에 하는 샤워도 신경이 쓰였으니···. 지금은 확실히 삶의 질이 달라졌다. 1, 2층으로 공간 분

    2022.03.14 13:38:01

    주택살이 3년차, 밤낮없이 ‘서태지’와 만나다 [레드브릭 하우스 스토리]
  • 프로일잘러가 좋은 엄마가 되기 힘든 이유 [어쩌다 워킹맘]

    [한경잡앤조이=박소현 블랭크코퍼레이션 PRO]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와중에 아들이 다른 친구를 밀었던 모양이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누구보다 친구를 좋아하고 잘 지내던, 기관에 적응이 빠르고 과격하지 않아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리던 아들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일에 몰입하는 자들의 숙명그쯤이었다. 긴 휴일을 보내면 얼른 유치원에 가고 싶다던 아이, 유치원에서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 몰입하기도 하고 기관생활을 즐거워하던 아이가 등원 셔틀을 탈 때마다 엄마 등뒤로 숨어 가지 않으려고 했던 때 말이다. 나는 1남2녀의 막내였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막내에게 부모님이 기대하는 것은 언니, 오빠와 같은 수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사랑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막내의 운명에 유일한 결핍은 ‘뛰어남에 대한 인정’ 이었다. 이미 공부를 잘하는 언니, 오빠를 거쳐간 부모님에게 어지간한 학업성취나, 재능은 감흥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인지, 타고난 성향이었는지 나는 ‘스스로 일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어떤 집단에 속하든 목표를 정한 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또한 스스로 불안했다. 이러한 성향이 스타트업을 만나면 증폭이 되는데, 대개의 스타트업이 그러하듯 업무와 솔루션을 본인이 찾아서 해야 하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 회사는 판을 깔아주는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시기 회사는 중요한 신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전사회의를 다시 시작하며 내외부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외부적으로는

    2022.03.11 09:02:50

    프로일잘러가 좋은 엄마가 되기 힘든 이유 [어쩌다 워킹맘]
  •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서 내 삶의 방향을 찾다 [배움의 씨앗을 심다]

    [한경잡앤조이= 에누마 김은파] 나는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책장에 가득 꽂힌 책들 중 하나를 골라 펼치면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는 것이 재미있었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더 생생한 경험도 많이 했지만, 어릴 적 책을 통해 했던 그 ‘여행’에는 나름의 특별함이 있었던 것 같다. 상상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고 누구든 만날 수 있는 데다, 머릿속에 그려볼 때 실제보다 더 멋있거나 맛있는 것도 있는 법이니까. 이제는 언제 읽었는지도 모를 이야기들이 여전히 기억 속 어딘가 남아 있다가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이를테면 밤하늘의 별을 모두 훔친 도둑의 이야기라든가, 자신의 황금 깃털을 하나씩 뽑아 필요한 이들에게 나눠 준 새의 이야기 같은 것들이 말이다.이렇게 일찍부터 책과 친해졌고, 생활에서든 학업에서든 읽고 쓰는 일이 어렵거나 부담스러웠던 적은 없었기 때문에,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내가 깨달은 건 불과 10여 년 전의 일이다. 낮은 문해력으로 인해 생활에서 여러 불편함을 겪는 사람들의 마음을 처음으로 크게 느꼈던 것은 2012년 이집트에서였다.당시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코이카 해외봉사단원으로 이집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는 새로운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한창이었다. 그런데 선거 운동 벽보를 보면 후보의 이름 옆에 별, 사다리, 저울처럼 알아보기 쉬운 그림들이 있었다. 글을 읽지 못 하는 사람들이 후보를 구분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이집트의 문해율이 70%를 좀 넘는 것을 생각할 때, 인구의 약 4분의 1은 글을 읽고 이해하는

    2022.03.10 11:20:51

    문맹률이 높은 나라에서 내 삶의 방향을 찾다 [배움의 씨앗을 심다]
  • 서른 중반, 오늘도 I was a car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한경잡앤조이=유복치] “초식녀라고 들어봤어요? 건어물녀라고 하기도 한다는데 쉽게 말하면 연애에 적극적이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을 말해요. 딱 상담자분 본인이 그래요. 이성은 별로 관심 없죠?”어느 날 사주를 보러 간 자리였다. 사주야말로 동양 통계학 즉 오리엔탈 빅데이터의 총체이자 타고난 본성을 파악하는 하나의 도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삶은 자유의지로 선택해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주장해온 나였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참고하면 된다는 마음가짐이었지만, 초식녀, 그것도 이성에게 관심이 없다는 말은 쉽사리 동의할 수 없었다. 타고난 유리멘탈 개복치인 나는 대충 상황을 얼버무렸다. “아..ㄴ..네… 초..초식… 동물이 더 오래 살던가요? 하하…”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다시 생각해도 아리송했다. 취미는 입덕, 특기는 덕질인 내게 좋아하는 것은 세상천지에 널려 있었다. 사람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제나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바로 나였다. 설렘이 시작되면 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나와의 공통점을 음미하며, 차이점을 통해 반대가 끌린다는 이론에 무한 지지를 보내다가 “나랑 결혼해줄래”를 흥얼거리는 인간 군상의 자화상이 나란 말이었다. 그런 내가 초식녀라니…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한 증거들은 생활 곳곳에도 남아있었다. 매달 작고 소중한 월급이 아주 조금씩 빠져나가고 있는 주택청약통장도 그 중 하나다. 주택청약통장은 경제관념이 제로에 수렴하던 대학교 재학 시절 우연히, 아니지 운명처럼 내 손으로 들어왔다. 때는 내 생애 첫 풀메이크업을 하고 난생처음 제대로 된 옷을 차려입은 졸업

    2022.03.08 09:46:16

    서른 중반, 오늘도 I was a car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 세상에 없던 이론을 교육하는 방법, 스타트업에서 배우다 [찐 팀장의 굿 초이스]

    [한경잡앤조이=진태인 집토스 전략교육팀장] 누구도 가지 않았던 길을 걷는 스타트업. 그런 분야를 가르치는 스타트업 교육담당. 오늘은 스타트업 교육자의 희로애락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본래, 스타트업은 기존 답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장을 새로운 관점으로 도전한다. 당연히 비슷한 길을 걸은 사람이 적다. 만약 있다면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성공해서 레드오션이 되었거나, 이미 실패하여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거나.부동산 스타트업은 99% 이상이 개인사업자인 시장에서 빅데이터와 IT 솔루션을 바탕으로 태동했다. 내가 처음 접했던 2017년은 아직 프롭테크라는 개념이 생소하던 시기였다. 부동산 매물 수집과 고객 서비스 프로세스를 전산 솔루션화 한 선례가 없었다. 당연히 그 솔루션 활용법과 영업 교육을 진행하는 사람이 있을리 없었다. 내가 그런 교육을 하게 되었다.사실, 스타트업에서는 교육 담당이라고 따로 보직이 있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일반적으로 소규모인 스타트업 특성상 교육 담당은 따로 적혀 있지 않고 ‘할 줄 아는 누군가’가 알려주는 것이다. 혼자서 다 할 줄 아는 ‘능력집약형(?) 인재’의 특성상 한 명이 일당백으로 각종 업무를 해결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세상에 없었던 분야를 위한 프로그램이 개발됐다. 먼저 만든 사례가 없기에 어떤 것이 필요하고, 어떤 부분이 중요한 지 모르는 상태로 배워가며 개발이 되었다. 프로그램을 고쳐가며 쓰다 보니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런 프로그램의 사용법을 가르치는 교육 담당자는 교육 자료를 매주 수정해야 했다. 유인물을 다시 출력하고, 현장에서는 예전 버전을 배운 학습자들의 질문이 매주 이어졌다.

    2022.03.07 09:12:30

    세상에 없던 이론을 교육하는 방법, 스타트업에서 배우다 [찐 팀장의 굿 초이스]
  • 메타버스 게임 평균 연령대 14.5세, 03년생도 세대차이 느낀다 [열아홉, 떡잎부터 남다른 나는 ‘보리’]

    [한경잡앤조이=이치우 레드브릭 인턴사원] 요즘 메타버스가 대세다. 뉴스 기사에도 여러 기업들이 메타버스 공간으로 간다고 선언하고, 메타버스 관련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03년생인 나는 메타버스 기업인 ‘레드브릭’에서 게임 개발자 인턴으로 일하고 있다. 메타버스 게임 개발자라고 하면 다소 생소한 직종으로 느껴지지만 쉽게 말해 메타버스 공간에서 즐길 수 있는 게임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한다. 갓 성인이 된, ‘요즘 세대’의 내가 처음 바라본 메타버스는 새롭지 않았다. 가상 세계에서 이뤄지는 유저 간의 소통, 그리고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아바타 등 메타버스의 특징적인 요소들은 수많은 게임에서 이미 접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친숙에 가까웠다. 그래서인지 메타버스 스타트업에 입사하는 게 아니라 게임 회사에 들어간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레드브릭에 입사하고서 메타버스에 대한 개념을 조금 더 알 수 있었다.게임과 메타버스의 가장 큰 차이는 콘텐츠와 소통, 이 두가지 요소에 대한 우선순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게임 유저들은 콘텐츠를 즐기기 위한 부가적인 요소로 소통을 한다. 하지만 메타버스 유저들의 경우 소통을 위해 콘텐츠를 이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유저가 아닌 개발자인 나도 플랫폼 내에서 활발한 소통을 해야 했다. 실제로 유저들의 빠른 피드백 덕분에 도움을 받은 경우가 있었다. 서버를 이용한 게임을 만들어야 해서 멀티로 할 수 있는 오목을 만들었는데, 실수로 테스트를 끝 마치기 전에 공개해 버렸다. 버그 덩어리 게임이 출시된 꼴인데 오목 돌이 안 나오는 버그부터 서버 매칭 관련 버그 등 많은 버그를 유저들에게 제보 받아 빠르게 마무

    2022.03.03 10:20:19

    메타버스 게임 평균 연령대 14.5세, 03년생도 세대차이 느낀다 [열아홉, 떡잎부터 남다른 나는 ‘보리’]
  • 외국인 환자에게 동아줄이 된 K-의료 이야기 [이제는 K-의료 시대]

    [한경잡앤조이=조아라 하이메디 매니저] 코로나19로 발이 묶인 외국인 환자들에게 비대면 진료는 삶에 대한 희망을 주는 한줄기 동아줄과 같다. 지난해 8월, 뇌종양을 진단받고 시력을 잃어가던 카자흐스탄 출신 환자에게 우리는 한국에서 보내 준 동아줄이 되었다.이 환자는 갑자기 한쪽 눈이 보이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가 뇌 수막종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뇌 수막종은 뇌를 둘러싸고 있는 얇은 막인 뇌 수막에 생긴 종양인데, 다행히 악성인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이 환자의 경우 종양이 뇌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시신경을 누르고 있었고, 크기도 상당히 컸다. 치료를 위해 현지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이 어렵다는 얘기를 들었고 아랍에미리트, 이스라엘, 러시아의 유명한 신경외과 교수에게도 백방으로 문의했지만 모두 포기하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뇌종양을 제거할 때 주변의 신경이 손상되어 후유증을 겪을 위험성이 높았기 때문이다.그렇게 절망에 빠져 있었던 그녀는 의사인 지인을 통해 외국인 환자와 한국 병원을 연결해 주는 회사(하이메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하이메디와 연결됐다. 그 소식을 접한 우리는 뇌종양 수술로 유명한 병원에서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녀가 현지에서 받은 검사 영상과 소견서 등을 모두 전달받아 의료진에게 전달했고 병력을 최대한 자세히 확인해 20분간의 원격 진료가 헛되이 쓰이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했다.“한국에서는 수술 가능합니다”원격진료 전 환자의 검사 자료를 보고 온 의료진은 수술 가능 여부가 가장 궁금했을 그녀를 위해 이 문장으로 진료를 시작했다. 이 말을 들은 환자 본인만

    2022.03.02 09:43:45

    외국인 환자에게 동아줄이 된 K-의료 이야기 [이제는 K-의료 시대]
  • 1년에 1인턴 하면서 3년 간 반백수로 보낸 나 [2호선 수필집]

    [한경잡앤조이=백윤희 매니저] 말 그대로 1년에 한 회사에서만 인턴 하기를 거의 3년 동안 했다. 첫 인턴은 5개월 체험형 인턴이었다. 체험형은 계약한 기간이 지나면 무조건 회사를 나와야 하는 제도다. 하지만 대학교를 갓 졸업한 사회 초년생에게 어울리는 인턴이라는 신분으로 5개월이나 일한다는 점이 첫 번째, 인턴과 공부를 병행하고 정규직 자리도 틈틈이 지원하는 갓생(God(신)+生, 훌륭한 삶)을 살며 ‘정규직으로 취업할 수 있겠지’가 두 번째 생각이었다.이렇게 내 첫 사회생활, 커리어 패스 시발점이 생겼다. 이 체험형 인턴이 끝나고 이듬해 다른 분야에서도 일해보고 싶어 커머스에서 3개월 간 인턴으로 근무했다. 그리고 이어 인턴사원으로 들어 간 회사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했다.1년에 n개월씩만 일하며 3년간 반백수 혹은 그냥 장기 백수 생활을 했다. 백수 첫 해에는 2월에 졸업하고, 6월에 시작한 인턴이 11월에 끝났는데 ‘한 달이면 취업하겠지’, ‘졸업한 해에 취업하는 거면 나쁘지 않다’는 위안으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후 6개월을 쉬었다.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살지 않았다. 취업 준비생이라는 3년의 기간 동안 지원한 회사 42개, 서류합격 6개, 최종 합격 3곳이 끝이다. 최종 합격 중 정규직 채용은 한 번도 없다. 그 와중에 철칙은 또 있어서 정말 가고 싶은 회사나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지원하지 않았다.첫 인턴이 끝난 후 무료 취업 컨설팅을 받은 적 있는데 상담사가 하루에 몇 군데에 지원하느냐고 물었다. 난 그런 게 정해져 있어야 하냐고 답했다. 일주일에 최소 10개 공고에는 지원해야 한다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셔서 알았다고 했다. 가고 싶

    2022.02.28 09:25:59

    1년에 1인턴 하면서 3년 간 반백수로 보낸 나 [2호선 수필집]
  • 근본(根本)없는 BAR ‘무근본’을 차린 이유 [재욱이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

    [한경잡앤조이=이재욱 성수미술관 대표] 여러분에게 꿈 그리고 도전이란, 어떤 의미인가. 일반적으로 꿈에 가까워지기 위해선 도전을 해야한다. 번지점프나 롤러코스터 타기가 꿈이라면 다소 우스울 수 있지만, 누군가에겐 커다란 두려움 때문에 엄청난 도전을 해야만 이룰 수 있는 꿈일지도 모른다. 물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 계곡에서 다이빙하기, 합격하기 어려운 자격증 따기, 요리에 재주가 없는 사람이 맛있는 요리 만들기, 다룰 줄 모르는 악기 연주하기 등등 세상엔 수많은 도전거리들이 있고 그건 누군가에겐 어쩌면 꿈일지 모른다. 우리는 많은 것들을 도전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많은 꿈을 이루며 살아간다. 어린 아이가 첫 발을 내딛는 순간부터, 두발자전거를 처음 성공하는 순간도 모두 도전의 연속이다. 나는 여행 유튜버에서 뷰티 스타트업, 그리고 드로잉카페 '성수미술관', 그리고 후술할 위스키바 '무근본'까지. 여행 유튜브 채널이 구독자 수 100만명의 채널이 되지는 않았지만, 회사가 아직은 유니콘 기업이 되지는 않았지만, 위스키바 ‘무근본’이 대단히 유명해 지진 않았지만, 그건 모두 나의 소중한 꿈이었기에 도전했으며 나는 그 꿈들을 이뤄냈다. 그 중 오늘은 나의 작은 아지트, 위스키바 '무근본' 에 대하여 이야기 하려고 한다.어릴 적, 누구나 막연히 꿈꿔보는 것들이 있다. 톰 소여의 모험에 나올 것 같은 '나무 위에 통나무집 만들기', '80일간의 세계일주처럼 세계일주떠나기', '빌게이츠 같은 부자되기'. 하지만 어른이 되면서 '나무 위에 통나무집 만들기'는 통나무집의 무게를 버틸 만한 크기의 나무를 심을 수 있는 내 소유의

    2022.02.23 13:10:59

    근본(根本)없는 BAR ‘무근본’을 차린 이유 [재욱이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