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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발제한구역 해제의 의미[권대중의 경제돋보기]

    윤석열 정부는 개발제한구역과 농지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지난 3월 21일 윤석열 대통령은 울산광역시에서 민생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개발제한구역 해제의 결정적 장애였던 획일적인 해제 기준을 20년 만에 전면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고도가 높거나 경사가 급하기만 해도 무조건 개발할 수 없게 막았던 획일적 규제를 없애겠다”며 “철도역이나 기존 시가지 주변 인프라가 우수한 땅은 보전 등급이 아무리 높아도 활용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내리겠다”고 말했다.아주 합리적이고 획기적인 생각이다. 그렇다. 이용가치가 높은 토지는 국민 편의와 도시기반시설의 설치 등 필요한 경우 해제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고 합리적일 수 있다. 그런데 윤 대통령이 울산에서 개발제한구역 규제완화를 이야기한 이유가 있다. 개발제한구역은 개념상 도시 주변을 둘러싸는 게 보통인데 울산광역시에선 도시를 가로질러 공간을 쪼개는 기형적인 형태를 띤다. 울산시와 울주군이 1995년 통합되면서 두 지자체 경계의 개발제한구역이 도시 중심부가 돼버렸다. 낡은 규제의 폐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개발제한구역 해제는 그동안 국토교통부의 광역도시계획수립 지침에 따라 국가 주도 사업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됐다. 뿐만 아니라 환경평가 상위 1, 2등급인 개발제한구역은 아예 해제 대상에서 제외된 상태였다. 이렇다 보니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기업투자 유치 등에 애를 먹었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특화산업 육성 등을 위해 비수도권 지역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지역 전략사업도 국가 주도 사업처럼 개발제한구역 해제 총량에서

    2024.04.01 06:00:02

    개발제한구역 해제의 의미[권대중의 경제돋보기]
  • 온라인 쇼핑 플랫폼 성장의 명암[차은영의 경제 돋보기]

    2010년 출발한 쿠팡이 2023년 첫 연간 흑자를 달성했다. 2021년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은 지난해 6174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고 매출이 약 31조8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19.7% 상승했다. 국내 최대 유통업체인 이마트의 29조4000억원을 넘어서 유통사 최초로 매출 30조원을 돌파했다.쿠팡은 2021년 1조8000억원 영업손실을 내는 등 매년 적자 폭이 늘면서 2022년까지 누적 적자 규모가 약 6조2000억원에 달했다. 과연 쿠팡을 비롯한 주요 온라인쇼핑 플랫폼의 수익모델이 성공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지배적이었지만 14년 만에 흑자전환을 만들어냄으로써 성공 신화를 쓰게 되었다.반신반의해 왔던 쿠팡의 흑자전환은 지속적인 사업 영역을 확대함으로써 성장동력을 계속 창출한 덕이다. 쿠팡은 특정 품목을 하루 동안만 파격적으로 낮은 가격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최소 구매 물량을 넘기기 위해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인터넷을 통해 판매 정보를 확산시키는 소셜커머스에서 출발했다. 그러다 생활용품, 식품, 배달 그리고 온라인동영상(OTT)까지 진출하면서 ‘규모의 경제’가 실현된 것이다.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오프라인 판매 채널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고 있다. 대형 백화점의 영업이익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대형마트의 앞날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들은 아직도 대형마트 영업 규제만이 살길인 것처럼 완화를 반대하고 있지만, 정말로 걱정스러운 것은 오프라인 쇼핑 자체가 조만간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작년 1월부터 11월까지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전년 동기 대비 8.4% 증가해 200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반면 지난해 국내 취업자 중 판매 종사자는 전년 대비 6만 명이

    2024.03.25 06:00:01

    온라인 쇼핑 플랫폼 성장의 명암[차은영의 경제 돋보기]
  • 홍콩ELS 배상이 ‘일회성 이벤트’일까?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역대 금융감독원장 중 이복현 원장만큼 존재감이 뚜렷한 사람은 없다. 검사 출신답게 직선적이다. 일을 미루는 법이 없다. 두리뭉실 넘어가지도 않는다. ‘맞다, 틀리다’를 분명히 한다. 최근만 해도 그렇다. NH투자증권 최고경영자(CEO) 선임을 둘러싸고 말이 많을 때인 3월 초 NH농협금융지주와 NH농협은행, NH투자증권 등에 대한 검사에 전격 착수했다. 강호동 신임 농협중앙회장에 대해 ‘마음대로 CEO 인사를 하지 말라’는 경고였다. 2023년 말 KB금융 회장 선임을 앞두고는 “후보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는 등 합리적으로 이뤄졌으면 한다”는 말로 가르마를 타기도 했다. 이런 이 원장이 고개를 숙였다. 이 원장은 3월 13일 “홍콩H지수 연계 ELS(주가연계증권) 등 고난도 상품 판매와 관련해 당국이 면밀한 감독 행정을 하지 못했다”며 “감독 당국의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송구하다”고 말했다. 극히 이례적이다. ‘소신’ 또는 ‘윽박지르기’가 먼저 떠오로는 그의 평소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금감원은 3월 11일 은행 등 판매사가 홍콩ELS 손실액의 23~50%를 배상토록 하는 분쟁조정기준안을 발표했다. 금융사의 과실 여부, 개별 투자자의 특성을 따져 차등적으로 배상 비율을 정하도록 했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총 배상 규모는 KB국민은행 1조원 등 2조원 안팎이 될 전망이다. 이 원장은 배상 규모가 커 은행들의 건전성이 우려된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일회성 이벤트에 그칠 것”이라고 일축했다.  시장에서도 인정했다. 배상 규모가 가장 큰 KB금융을 비롯한 금융주는 증시에서 연일 신고가를 경신하고 있다. 배상 이슈가 주가에 선

    2024.03.18 07:40:05

    홍콩ELS 배상이 ‘일회성 이벤트’일까?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 공급망 전략, 경제안보와 비용의 균형 확보가 과제[이지평의 경제돋보기]

    미·중 마찰 심화와 함께 지정학적 리스크가 더 부각 되면서 글로벌 산업의 효율성뿐 아니라 경제안보의 중요성이 강조돼왔다. 공급망을 다변화해 각종 리스크에 대응할 필요성이 인식된 것이다. 그러나 공급망을 재편성하기 위해 드는 비용의 부담이 크기 때문에 이를 경계하는 일도 중요해지고 있다. 공급망 안정화를 위해 동지국으로부터 조달을 받는 일명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의 확대는 일본이나 한국에서도 적지 않는 비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미쓰비시종합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2.6%, 한국은 4.5% 조달 비용 상승효과가 발생하며 특히 한국, 일본, 대만 전자산업의 평균 조달 비용 상승률은 15%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지속 가능한 경제안보를 위해서는 안정성과 경제성의 균형을 통해 비용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적 효율화가 요구된다. 경제안보와 비용의 균형이 깨지면 고물가 및 고금리 현상이 발생한다. 거시경제 여건을 악화시키는 고물가, 고금리 압력을 어느 정도 완화시킬 필요가 있다. 기업으로서는 경제 및 지정학적 리스크의 변화를 선행적으로 예측하면서 복수의 조달 및 생산거점 확보와 수송망의 유연성 제고 등을 통해 공급망의 안정성과 비용의 균형을 사전적으로 준비하는 자세가 더욱 중요해진다.최근에는 하마스-이슬라엘 전쟁으로 홍해 수송 경로가 막히자 해상 물류비용 부담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그대로 실행될 것인지는 불확실하지만 트럼프 미국 대선후보는 중국에 대해 60%, 각국에 10% 관세율을 부과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그의 정책이 실현되면 각종 물가와 금리 상승, 세계경제 성장률 하강 압력 등의 문제가 심각

    2024.03.18 06:00:04

    공급망 전략, 경제안보와 비용의 균형 확보가 과제[이지평의 경제돋보기]
  • 회빙환과 먼치킨의 유행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EDITOR's LETTER]

    [EDITOR's LETTER]2007년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에 빠져 있었습니다. 백악관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드라마입니다. 시대의 스토리텔러 아론 소킨이 쓴 각본은 탄탄했고, 모든 캐릭터는 매력적이었습니다. 순식간에 시즌7까지 몰아 봤습니다. 마지막 시즌에서 히스패닉계 매슈 산토스가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하이라이트이자 종결이었습니다.여운이 남아 있던 2008년 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가 미국 최초로 흑인 대통령이 됐습니다. 흥분해서 블로그에 ‘웨스트윙이 현실이 됐다’란 제목으로 글을 쓰기도 했습니다. 그때의 깨달음은 ‘문화 콘텐츠에는 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갈망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예언의 조각들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넷플릭스도 돌아볼까요? ‘판데믹: 인플루엔자와의 전쟁’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에는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신종 바이러스가 갑자기 나타나 세계에 퍼질 것이다. 중국은 주의해야 할 곳 중 하나다.” 이 다큐멘터리 제작연도는 2019년.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전 해였습니다. 이 밖에 ‘스타워즈’는 과학 분야의 예언서가 됐다는 점을 더 말할 필요도 없을 듯합니다.시대의 결핍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거나 결핍을 채우고 싶은 욕망, 그에 대한 상상이 적절한 비율로 혼합되면 히트작도 되고, 예언서도 되는 게 콘텐츠 시장의 속성입니다.한국에서 이 요소들 가운데 상상의 영역을 무한대로 확장시켜준 공간은 웹툰과 웹소설일 것입니다. 요즘 이 영역에서는 먼치킨과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안티히어로가 대세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물론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좀

    2024.03.11 07:03:37

    회빙환과 먼치킨의 유행이 한국사회에 던지는 질문[EDITOR's LETTER]
  • 삼성전자와 한국 주식시장, 전략상실의 대가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올해 봄으로 가는 길은 유독 거칠게 느껴집니다. 2월과 3월 초 눈과 비도 많이 왔고, 흐리고 추운 날도 많았습니다. 좋은 소식이 별로 없어 사회를 둘러싼 공기도 무겁고 어둡게 느껴집니다.이런 2월에 상하이로부터 날아든 낭보는 통쾌했습니다. 농심 신라면배 바둑대회에서 2000년생 신진서 9단이 우승했습니다. 과정은 극적이었습니다.중국 4명, 일본 1명 남은 상황에서 홀로 상하이로 날아가 모든 상대를 제압했습니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온 이창호의 ‘상하이 대첩’을 재연했습니다. 중국에서는 “14억 명 중에 뽑힌 5명이 5000만 명 중에 뽑힌 한 명을 못 이기냐”라는 탄식이 나왔습니다. 철저한 준비와 위기에 흔들리지 않는 냉정함, 이를 기반으로 판을 흔들고, 작은 것을 내주고 큰 것을 취하는 전략이 승리 요인이었습니다.신진서를 보며 한국이 갖고 있는 자산을 떠올렸습니다. 사람. 식민지와 전쟁을 거친 폐허 속에서 국가도 산업도 스포츠도 일으켜 세운 원동력이었습니다.좋은 얘기는 여기까지만. 현실을 생각하면 막막해집니다. 22년 전인 2002년 4월로 가보시죠. 이건희 삼성 회장은 한 회의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삼성이 이대로 커 간다면 전 세계 경쟁 기업이 다 덤벼들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 무슨 힘으로, 어떤 전략으로 이를 막아야 하는가. 또 우리는 이를 뿌리치고 어떻게 전진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이 기막힌 예언 두 가지는 모두 적중했습니다. 2000년대 이후 삼성은 질주했고, 강력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됐습니다. “경쟁 기업들이 다 덤벼들 것”이라는 것은 현재 체감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반도체 랠리에서 대표기업 삼성전자

    2024.03.04 07:24:58

    삼성전자와 한국 주식시장, 전략상실의 대가 [EDITOR's LETTER]
  • '일자리 증가' 집 값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아기곰의 부동산산책]

    매해 연초가 되면 통계청에서 아주 중요한 통계 발표를 한다. 전국 사업체 조사 결과인데, 올해 초에도 어김없이 2022년 사업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일자리는 어느 지역에 많이 늘어났고 어느 지역에 적게 늘어났는지를 알 수 있는 주요한 지표이다. 어느 지역에 일자리가 많이 늘어난다는 것은 그 일자리를 보고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그 지역에 임대 수요든 매매 수요든 주택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흔히 사람들은 투자자들이 많이 모여드는 곳의 집값이 오르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이런 투자처를 좋은 투자처라 할 수 없다. 투기든 어떤 이유로 투자자가 단기에 몰리면 집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입소문이 나거나 심지어는 언론 보도가 되면서 후발 매수자들이 몰리며 진짜로 집값이 오르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지역에 집을 사는 사람은 투자자이라는 점이다. 투자자는 그 지역에서 실거주를 하기보다는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본인이 만족하는 수준의 시세차익만 보면 팔고 나가는 것이다.결국 어떤 지역에 투자자가 100명이 몰려들어 그 지역 주택을 매수했다고 하면 언젠가는 이 100명이 모두 매도자가 되어 그 집들을 팔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매수자가 미래에는 고스란히 매도자가 된다는 것이다.  투기 수요 몰렸는데 집값 떨어지는 이유그런데 이들 투자자는 단기간에 수익이 나는 것을 원하기 때문에 10년 이상 가지고 있는 것보다는 매수한 후 (2년이 지나면 양도세 일반과세가 되니까) 2년이 지난 시점에 파는 것을 원한다.현행 세법에 따르면 과표가 1억원이라고 가정하면 1년 미만 보유 시 지방소득세까지

    2024.01.27 09:01:13

    '일자리 증가' 집 값에는 어떤 영향 미칠까?[아기곰의 부동산산책]
  • ‘만의 하나’를 무시한 홍콩ELS와 태영건설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홍콩H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한 주가연계증권(ELS)의 손실, 태영건설 사태로 불거진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증권사의 일임형 랩어카운트와 신탁을 이용한 돌려막기. 요즘 금융시장, 나아가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드리우는 세 가지 문제다. 공통점은 많다. 자칫하면 경제 전체에 영향을 미칠 시한폭탄 같은 사안이다. 관련 금융사와 건설사는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하다. 기업은 물론 개인투자자까지 얽혀 있어 사회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비슷하다. 무엇보다 가장 큰 닮은 점은 ‘만의 하나’를 무시했다는 점이다. 점잖은 말로 리스크관리를 안 했다. 1월 12일까지 확정 손실액이 1000억원(손실률 50% 안팎)을 넘은 홍콩 ELS는 2019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의 데자뷔다.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2021년부터 만기 3년의 홍콩 ELS를 팔았다. 19조3000억원이나 된다. 이 중 10조2000억원이 상반기 만기다. 손실률을 50%로 잡으면 5조원가량의 원금손실이 불가피하다. 50% 손실이라니? 은행 등 금융회사들은 홍콩H지수를 맹신했다. 홍콩H지수는 2021년 이전 10여 년 동안 1만 안팎을 오르내렸다. 그해 2월엔 1만2229까지 올랐다. 금융회사들은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주가가 급락하지 않을 것”이라며 가입을 권유했다.   그런데 웬걸. 정반대였다. 홍콩H지수는 2021년부터 내리막을 타더니 급기야 반토막(1월 17일 5130) 나고 말았다. “미·중 관계가 이렇게 악화될 줄 누가 알았겠느냐”는 게 금융회사들의 하소연이다. ‘만의 하나’ 가능성을 외면했다는 고백에 다름 아니다. “독일 국채금리가 -0.2%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고 판매를 독려했다가 최대 98%의 원금

    2024.01.22 10:36:21

    ‘만의 하나’를 무시한 홍콩ELS와 태영건설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 좋은 빚과 나쁜 빚, 악순환 고리 끊기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지난 11일 초저녁. 오랜만에 홍대 앞을 걸었습니다. 길거리는 일부 핫플레이스를 제외하면 이상하리만치 조용했습니다. 문 닫은 가게가 많았고, 음식점에도 손님이 별로 없었습니다. 같이 걷던 동료에게 “혹시 오늘 월요일이냐”고 물었습니다. 목요일이라고 했습니다.약속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편의점에 들렀습니다. 늦은 시간인데 두 명의 젊은이가 멀찍이 떨어져 앉아 도시락을 먹고 있었습니다. 술 때문인가, 왠지 안쓰러워 보였습니다.집에 돌아와 책상에 앉으니 한 젊은 후배의 말이 생각났습니다. “우리 세대는 빚과 함께 살아요. 학자금 대출을 갚고 나면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다 갚고 집이라도 사면 또 빚을 내야하구요. 학자금이라도 부모가 갚아주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면 삼겹살도 사치인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친구들이 ‘영끌’까지 했다면 더더욱 말할 필요가 없다고도 했습니다.다음 날 편의점 도시락 판매량을 알아봤습니다. 순대국밥 한 그릇에 1만원을 하는 세상, 쪼들리는 사람들의 선택지가 그곳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예상대로 한 편의점에서 작년 한 달에 평균 230만 개가 넘는 도시락이 팔렸습니다. 2022년보다 한 달에 20만 개가 더 나갔습니다.‘악순환’이란 단어가 스쳤습니다. 금리가 올라 이자부담은 늘고, 대출 많은 사람들이 지출을 줄이고, 그 결과 내수 위축으로 음식점 등 자영업자는 더 어려워지고, 고용시장은 더 차가워지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 발단은 부채였다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빚의 무서움을 몰랐던 것은 젊은 세대뿐 아니었습니다. 2000년대초 카드사태로 신용불량자가 400만

    2024.01.22 07:00:08

    좋은 빚과 나쁜 빚, 악순환 고리 끊기 [EDITOR's LETTER]
  • 로레알과 존 디어의 닮은 점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로레알(L’Oreal)과 존 디어(John Deere). 얼핏 보면 닮은 점이 거의 없다. 굳이 찾자면 100년 이상 된 기업이자 업계 최고 기업이라는 점이다. 로레알은 1909년 설립됐다. ‘랑콤’ 등 37개의 브랜드를 보유한 세계 최대 화장품 기업이다. 존 디어의 역사는 더 오래됐다. 1837년 설립된 세계 최대 농기계 회사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닮은 점이 많다.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최고의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회사의 혁신 노력은 ‘지구 최대의 전자·정보기술(IT) 쇼’라 불리는 ‘CES’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1월 12일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4’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기업 중 하나는 로레알이었다. 니콜라 이에로니무스 로레알 최고경영자(CEO)는 화장품 회사로는 처음으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생성형 AI(인공지능)’가 주제인 이번 전시회에서 화장품회사가 기조연설을 맡다니 좀 생뚱맞은 듯했다. 아니었다. 이에로니무스는 ‘뷰티 지니어스’라는 챗봇을 들고 나왔다. 챗봇은 이에로니무스에게 “오랜 비행으로 피부가 건조해졌다”며 수분크림을 추천했다. 사용자의 피부 톤을 분석해 가장 적합한 화장품과 화장 방법까지 제안한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이에로니무스는 “2018년부터 37개국에서 쌓아온 10페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베이스를 기반으로 생성형 AI에 도전하고 있다”며 “뷰티 지니어스는 개인에게 맞는 최고의 뷰티 루틴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존 디어는 2023년 CES의 주인공이었다. 농기계 업체로는 처음으로 CES 기조연설을 맡았다. 존 메이 CEO는 로봇 기반 자율주행 비료살포기인 ‘이그잭

    2024.01.15 07:52:08

    로레알과 존 디어의 닮은 점 [하영춘의 경제 이슈 솎아보기]
  • ‘좋아요’의 노예가 됐다 그리고 서사를 잃었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농업혁명이 인류를 번성시켰다는 상식에 대한 도발이었습니다. 신선했습니다.그는 “수렵채집인보다 농부들이 훨씬 더 힘들게 일했고, 잘 먹지도 못했고, (가축화로 인해) 질병도 더 많이 얻었다”고 했습니다. 혁명의 역습이었습니다.요즘 직장인들의 삶을 돌아보면 새삼 그의 통찰이 대단했음을 느낍니다. 인류는 IT혁명에 흥분했습니다. 우리를 편한 길로 안내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인터넷과 각종 소프트웨어, 스마트폰 앱, 인공지능(AI)까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닌 것 같습니다.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의미 있는 일을 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업무 효율에 1도 보탬이 안 되는 파워포인트는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짧은 쉬는 시간,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 짧은 영상을 봅니다. 아니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남의 삶을 엿보다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잠자리도 핸드폰과 함께합니다. 농업혁명이 인류에게 사기였다면, IT혁명은 직장인들에게 무엇일까요.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수많은 미디어 채널이 생겼지만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아이러니한 현실.기술의 진보가 우리로부터 앗아간 것은 또 있습니다. 생각과 서사입니다. 과거에는 출근길에 가사 없는 음악(클래식)을 들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담배를 피울 때도 생각이란 걸 했지요. 잠들기 전에도 상상이란 걸 머리맡에 있는 수첩에 뭔가를 끄적이기도 했습니다

    2024.01.15 06:32:01

    ‘좋아요’의 노예가 됐다 그리고 서사를 잃었다 [EDITOR's LETTER]
  • '노인 빈곤율' 압도적 1위? 소득불평등 심하다는 뜻 [아기곰의 부동산산책]

    2023년 11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흥미로운 자료를 발표했다. ‘대략적인 연금 2023(Pensions at a glance 2023)’이라는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은 40.4%로 OECD 38개 국가 중에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미국은 22.8%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이어 5위 국가인데,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밖에 안 된다. 38개 국가 중 5위 국가가 우리나라의 절반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우리나라 노인 빈곤율이 얼마나 높은 수준인지 알 수 있다. OECD, 가난 아니라 ‘상대적 빈곤’ 판단우리나라 노인 다섯 명 중 두 명이 빈곤한 사람이라는데, 현실 세계에서 과연 리어카를 끌고 폐지를 주으러 다니는 노인이 그렇게도 많을까?  하지만 이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OECD 통계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정부에서 제공한 자료를 분석한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료 자체가 거짓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인식하는 빈곤의 기준과 OECD 국가에서 말하는 빈곤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OECD에서 말하는 빈곤율의 정의는 ‘중위 가구의 처분가능소득보다 50% 미만인 비율’이다. 다시 말해 모든 가구를 소득 기준으로 일렬로 세워놓았을 때 가장 중간에 있는 가구의 처분가능소득보다 절반 미만인 가구는 빈곤으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처분가능소득이란 본인이 번 돈에서 세금, 국민연금, 건강보험, 대출이자 등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적으로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지출을 뺀 나머지, 그러니까 본인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을 말한다.이런 정의를 정확히 알고 나면,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빈곤과는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 OECD에서 말하는 빈곤이란 상

    2024.01.10 14:37:15

    '노인 빈곤율' 압도적 1위? 소득불평등 심하다는 뜻 [아기곰의 부동산산책]
  • CEO는 메시지 전달이며, 메시지 그 자체다 [EDITOR's LETTER]

    재앙 같은 해였습니다. 물가는 폭등하고 경제는 추락했습니다. 무역 적자로 외환보유고는 급감했습니다. 정치사회적으로는 민주세력에 대한 강경한 탄압이 시작됐지요.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0년 가까이 지속된 고성장의 시대, 황금자본주의가 막을 내립니다. 미국, 영국, 일본, 독일, 프랑스 선거에서 여당이 일제히 패배했습니다.오일쇼크가 시작된 1974년 벌어진 일들입니다. 기시감과 미시감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이후 50년은 대한민국이 만든 기적의 시간이었습니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가난 등 현대사에서 겪을 수 있는 고난은 모두 이겨냈지요. 그리고 산업 강국, 문화 강국으로 올라섰습니다.기적의 시간, 경제는 리더십과 팔로십이 어우려졌습니다. 1세대 창업자(파운더)들이 시작한 모험에 근로자들은 인생 대부분을 공장에서 보내며 헌신했습니다. 그들은 폐허에서 제조업에 도전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자원도 없었습니다. 때로는 미국, 일본 등에 기술을 구걸하고, 때로는 밤을 새우며 무언가를 개발했습니다. 국산화에 성공하자 이내 눈을 해외로 돌렸습니다. 무역 강국의 시작이었습니다. 파운더의 시대에 조선업은 세계 1위에 올랐고 현대 정주영 회장은 신화가 됐습니다.이어받은 2세대들은 차원이 다른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주요 무대를 한국에서 글로벌로 옮겼습니다. “한국에서 1위를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습니다. 이들의 손에 의해 한국의 기업들은 글로벌 플레이어로 자리 잡았습니다. 일본의 경쟁자들은 줄줄이 파도에 쓸려 나갔습니다. 빅체인지를 통해 창업자보다 큰 성장을 일궈낸 이들을 ‘한국의 리파운더’라고 부릅니다.이건희 삼성 회

    2024.01.02 07:00:03

    CEO는 메시지 전달이며, 메시지 그 자체다 [EDITOR's LETTER]
  • 0.9% 부자가 자산 60% 소유한 한국, 서울에 제일 많아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돈이 얼마나 있어야 부자일까”라는 질문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질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아주 오래전이라면 “재산이 1억원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월급이 한 달에 100만원씩만 나오면 너무 좋겠다”라는 사람이 많았겠지만 지금 이 기준이라면 부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 축에 속할 것이다. 1억원의 자산으로는 아파트 전세도 얻기 어려우며 월급 100만원으로는 생활도 힘들기 때문이다.결국 부자라는 기준은 절대적인 기준이라기보다는 상대적인 개념에 가깝다고 하겠다. 어떤 시대이든 부자라면 최소 상위 1% 이내에 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에서 ‘한국 부자 보고서’라는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부동산 등 실물자산을 제외하고도 금융자산이 10억원이 넘는 사람을 부자라고 정의하였는데, 다른 나라의 ‘백만장자’와 비슷한 개념이라 하겠다.이런 부자가 2022년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45만6000명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인구수를 감안하면 상위 0.89%에 해당하는 자산가라 하겠다. 우리나라 인구의 0.89%밖에 되지 않는 부자들이 우리나라 총 금융자산의 59.0%를 보유하고 있다. 99%가 넘는 나머지 국민이 총 금융자산의 41.0%밖에 보유하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면 부의 편중이 심각하다 하겠다. 그런데 8년 전인 2014년 조사 때에는 같은 기준을 적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부자의 수는 18만2000명에 그쳤고, 인구 대비 부자의 비율이 0.35%에 불과했다. 결국 8년의 기간 동안 부자의 수는 2.5배가 되었으며, 인구 대비 부자의 비율은 0.54%포인트나 늘어

    2023.12.27 07:40:01

    0.9% 부자가 자산 60% 소유한 한국, 서울에 제일 많아 [아기곰의 부동산 산책]
  • ‘세계 최상의 디지털 휴머니티 대학’ 도전…장윤금 숙명여대 총장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숙명여대에서 청소 일을 하다가 퇴직금의 절반을 장학금으로 전달한 따뜻한 기부자 스토리를 전하는 숙명여대 장윤금 총장의 인터뷰를 최근에 본 적이 있다. 한파에 얼어붙었던 필자의 마음을 녹여준 이야기가 더 따뜻하게 느껴진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하는 장 총장의 표정과 태도 그리고 말씨 때문이었다.장 총장은 1906년 대한제국 황실이 설립한 한국 최초의 민족여성사학인 숙명여대에서 교수, 직원, 학생, 동문이 직접 선출한 최초의 직선제 총장이다. LINC3.0, SW중심대학사업 등 대학교육체계 혁신동력이 되는 주요 정부재정지원사업 선정에서 연이어 성과를 내고 있다.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장으로서 사립대 자율성 확보와 위상 제고에 힘쓰고 총장으로서는 학생이 행복한 ‘세계 최상의 디지털 휴머니티 대학’이라는 숙명 2030비전을 제시한 장윤금 총장을 이미지 브랜딩 차원에서 분석해보고자 한다.  Appearance 숙명 로얄블루와 기품 있는 외유내강 스타일여성의 지혜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장 총장의 복장에는 숙명다운 공식이 있다. 숙명여대 공식 홈페이지 사진 및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숙명여대의 심벌 색상인 숙명 로얄블루가 포함된 스커트 또는 바지 정장 스타일을 기본으로 한다.네이비 색상이나 기타 다른 색상의 재킷을 입었을 경우에는 쿨톤 피부에 어울리는 로얄블루 컬러의 블라우스나 셔츠 또는 스카프를 통해 숙명 이미지 브랜딩을 강화하고자 노력한다고 분석된다.‘고결한 마음’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숙명의 교화인 매화처럼 기품 있는 헤어스타일과 입술에 포인트를 준 자연스러운 메이크업, 늘 부착된 숙명 배지 그리고 외유내

    2023.12.24 06:03:01

    ‘세계 최상의 디지털 휴머니티 대학’ 도전…장윤금 숙명여대 총장 [박영실의 이미지 브랜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