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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주영이 쏘아올린 수출 신화 40년...한국 기업들의 도전은 계속된다[위클리 이슈]

    [위클리 이슈] 한국 기업이 처음으로 ‘세계 1등’을 차지한 분야는 조선업이다. 울산 미포만의 한적한 어촌마을에서 시작한 조선소가 회사 창립 10년 만에 조선업 세계 1위(수주 기준)을 꿰찼다. 정주영 현대그룹 선대회장이 쓴 경제 신화다. 현대중공업은 1972년 3월 23일 울산 미포만의 한적한 어촌마을 인근에서 울산현대조선소로 출발했다. 처음엔 조선소를 지을 자금도 없었다. 해외에서 차관을 들여와야 하는데, 일본과 미국에서는 찬밥 취급을 당했다. 정주영 선대회장은 굴하지 않고 영국 버클레이즈 은행에 찾아가 당시 500원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을 보여주며 ‘우리가 거북선을 만든 민족’이라고 설득해 차관을 얻었다. 맨손으로 시작한 한국 조선업의 신화, 수출의 신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창업 10년 만인 1983년 현대중공업이 조선업 세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던 힘은 도전정신과 역발상, 그리고 뚝심이었다. 현대중공업을 필두로 한국 조선업은 현재까지 세계 정상의 자리를 빼앗기지 않고 있다. 조선에 이어 한국은 반도체, 자동차, 석유화학, 철강 등을 차례대로 세계적 수준에 올려놓았다. 현대중공업이 세계 1위를 차지한 지 40년이 흘렀다. 아무것도 없던 백사장에서 세계 1위 조선 강국으로 도약한 조선업 신화는 한국 기업들이 걸어온 길을 잘 보여준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고 위기를 도약의 계기로 삼는 한국 기업들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2023.10.27 08:54:37

    정주영이 쏘아올린 수출 신화 40년...한국 기업들의 도전은 계속된다[위클리 이슈]
  • 현정은 회장의 인재 사랑…“모든 가치의 중심은 사람”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모든 가치의 중심은 사람”이라며 “인재경영을 적극적으로 펼쳐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회장은 7월 21일 현대엘리베이터 충주 스마트 캠퍼스에서 열린 ‘미래인재 아카데미’ 개관 기념 타운홀 미팅에서 한국교통대(충북 충주시), 한국승강기대(경남 거창군)와 인재 육성 및 상생 협력을 도모하고 장학금과 실습 교육용 승강기를 기부했다.이날 타운홀 미팅에는 현 회장과 현대엘리베이터, 자회사, 협력사, 한국교통대, 한국승강기대 관계자 등 20여명이 참석해 △승강기 산업 인재 육성을 위한 ‘미래인재 아카데미’의 책임 △직무(영업 등 7개 트랙)스쿨 인재 육성 및 조직문화 방향 △자회사 및 협력사(설치·서비스·구매) 인재 채용 및 육성 △기업-대학 상생 협력을 통한 인재 양성 계획 등에 대해 논의했다.현 회장은 이날 “현대엘리베이터는 ‘사람’을 모든 가치의 중심에 두고자 한다”며 “우리 제품을 만드는 직원, 우리 제품을 이용하는 고객, 우리 회사의 미래에 투자하는 주주와 함께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무리 훌륭한 인재를 영입하더라도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 조직은 시너지를 만들 수 없다”며 “미래인재 아카데미는 인재 영입이 아닌 ‘인재 경영’의 토대가 될 것”이라고 했다.현대엘리베이터는 승강기 미래시장 경쟁력 확보를 위해 최고 수준의 인재를 선발하고 육성하며, 선도적 조직문화 구축을 목표로 ‘미래인재 아카데미’를 개관해 한국교통대, 한국승강기대, 협력사 등과 상생 협력을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현대엘리베이터 ‘미래인재 아카데미’는 3개의 교육장과 2개의 부품 실습장,

    2023.07.24 09:36:28

    현정은 회장의 인재 사랑…“모든 가치의 중심은 사람”
  • 자동차 공장 한쪽에서 출발…현대건설의 ‘열고 짓고 이어 가는’ 75년 역사

    [비즈니스 포커스]현대건설은 그들 스스로 ‘열고 짓고 이어 가는 기업’이라고 말한다.현대건설은 공장 한쪽에서 출발했다. 1947년 5월 서울 중구의 현대자동차공업사 공장의 한구석에서 시작한 현대건설은 어느덧 창립 75주년을 맞이했다. 광복 직후 국가 전체가 혼란했던 시기였지만 현대건설은 전쟁의 폐허 위에 도로를 닦고 끊어진 다리를 연결하고 건물을 세웠다.빈곤하고 궁핍했던 시대에 오일 달러를 벌어들여 국가 재정에 보탰다. 또 국토 개발의 최선두에서 한국의 성장을 이끌었다. 성장 연대의 일등 주역에서 현재는 글로벌 건설 리더로 한국을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 중이다. 현대건설은 한국 건설사(史)의 ‘산증인’이자 주역이다. 신화의 시작, 정주영과 현대토건#장면 1. 1937년 스물셋의 청년, 정주영은 점원으로 일하던 ‘복홍상회’를 매입해 ‘경일상회’라는 미곡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1939년 일본의 갑작스러운 쌀 배급제 실시로 잘나가던 경일상회는 폐업했고 자동차 수리업을 시작했다.#장면 2. 청년 사업가 정주영은 1947년 5월 25일 서울 중구 현대자동차공업사 건물 입구에 ‘현대토건사’라는 사명이 새겨진 간판을 내걸었다. 은행에서 거액의 돈을 빌리는 이들 중 건설업자가 많은 모습을 보고 건설사를 세웠다.‘한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업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와 현대그룹, 현대건설의 시작을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장면들이다. 정주영 창업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길을 찾아낼 줄 아는 인물이었고 쌀로 시작해 자동차·건설로 이어지는 사업 구조를 만들었다. 자동차와 건설은 여전히 현대그룹의 핵심 사업이다

    2022.06.07 06:00:09

    자동차 공장 한쪽에서 출발…현대건설의 ‘열고 짓고 이어 가는’ 75년 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