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WTO 사무총장도 방문한 네이버 제 2사옥의 매력

    네이버의 첨단 기술이 대거 집약된 미래형 공간, 제2사옥 1784에 대한 전세계적인 관심이 올해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23일 응고지 오콘조-이웰라 WTO(World Trade Organization, 세계무역기구) 사무총장은 방한 일정 가운데, 네이버 1784를 방문했다. 응고지 사무총장은 WTO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이자, 첫 여성 사무총장이다. WTO 사무총장의 방한은 지난 2014년 이후 약 10년 만으로, WTO 사무총장이 한국의 인터넷 플랫폼 기업을 직접 방문한 것 역시 처음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응고지 사무총장 일행은 1784를 방문해 한국을 대표하는 IT기업인 네이버가 보유한 AI, 로봇, 디지털트윈 등의 첨단 기술을 직접 체험하고, 무역 분야에서 디지털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번 방문에는 네이버 채선주 대외·ESG 정책 대표와 네이버랩스 석상옥 대표 등이 참석했다.응고지 오콘조-이웰라 WTO 사무총장은 1784에 적용된 다양한 기술들을 직접 체험한 뒤 “디지털 기술이 무역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며, 디지털 전환은 업계와 각국 정부에 도전과 기회를 불러올 것”이라며 “오늘 한국의 젊은 디지털 기업인들과의 고무적인 토론을 통해 한국이 디지털 전환의 선두에 서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WTO도 디지털 무역 촉진을 위해 국제 협력과 국내 정책 틀 마련에 기여할 것”라고 말했다.네이버의 제2사옥 1784는 세계 최초의 로봇 친화형 빌딩으로, 첨단기술과 공간의 융합을 통해 지속적으로 진화해 나가는 테크 컨버전스 공간이기도 하다. AI·로봇·디지털트윈·자율주행·클라우드·5G 등 수많은 기술들이 사옥 공간 자체와 융합되어, 네이버 임직원들의 업무를 돕는 동시에 새로운 혁신 서비스를 탄생시키는 원동력이 되

    2023.05.23 11:32:31

    WTO 사무총장도 방문한 네이버 제 2사옥의 매력
  • 한계 재확인한 WTO 각료회의와 한국의 고민[정인교의 경제 돋보기]

    [경제 돋보기]5년 만에 세계무역기구(WTO) 제12차 각료회의(MC12)가 개최됐다. 각료회의는 WTO 회원국 통상장관이 모두 참석하는 WTO 최고 의사 결정 기구로, 2년마다 개최돼 왔지만 WTO를 이끌어 왔던 미국의 관심 약화와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으로 올해 6월 5년 만에 열리게 됐다. 당초 4일짜리 회의로 예정됐지만 회원국 간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이틀 더 협의해 겨우 각료회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2017년 제11차 회의(MC11)에서는 각료회의 선언문조차 채택하지 못했고 심지어 임기를 1년 남겨둔 WTO 사무총장이 돌연 사표를 낼 정도로 WTO 위기론이 심화됐다. WTO 회원국들은 2013년 무난한 내용으로 구성된 무역원활화협정을 도출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실적이 없었다.   MC12는 WTO 위기론을 극복하고 다자 무역 체제 복원 동력 확충에 매우 중요한 회의였지만 성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사실상 선언문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없었고 ‘빈손’으로 끝난 회의였다.  국내외 언론은 전자적 전송물 모라토리엄 연장 결정, 코로나19 백신 특허 사용 허용, 식량 위기 대응 조치, 수산 보조금 금지 등에서 성과를 냈고 다자 무역 체제 재건을 모색할 수 있게 됐다고 보도하고 있다.   전자적 전송물 모라토리엄 연장은 회의마다 해 오던 관행적인 것이어서 성과로 보기 어렵다. 코로나19 백신에 대한 특허 면제 승인 역시 기존 WTO 규범인 강제실시권을 인용한 것에 불과하다. 식량과 에너지 등에 대한 보호 무역 조치 중단 및 원상 복귀는 선언적 의미 외에 실행을 담보하는 내용이 없다.  다만 수산 보조금에 대해서는 합의가 있었다. 2013년 이후 처음으로 WTO가 새로

    2022.06.27 06:00:02

    한계 재확인한 WTO 각료회의와 한국의 고민[정인교의 경제 돋보기]
  • 중국 WTO 가입 20년의 회고 [정인교의 경제 돋보기]

    [경제 돋보기]20년 전인 2001년 12월 11일 세계무역기구(WTO)는 중국을 정회원국으로 승인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얼마 안 돼 구소련이 해체되고 냉전이 종식됐지만 덩샤오핑 중국 국가주석 재임 당시 중국은 사회주의 계획 경제 체제를 유지하면서 시장 경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1978년 개혁·개방 정책 추진을 밝힌 후 점진적으로 시장을 개방했고 1995년 WTO가 출범하자 가입 노력을 기울였지만 국제 사회의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WTO 체제의 대주주인 미국의 반대가 특히 심했다. 부분적으로 민영화와 사유 재산을 허용했지만 계획 경제 체제하에서 국유 기업의 비율이 높아 시장 경제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점이 거론됐다. 다만 당시 민주당 소속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중국과의 경제 교류와 중국의 WTO 가입에 적극적이었다. 이미 1년 전 중국과의 WTO 가입 협상을 종료했지만 의회 내 민주당 의원 절대 다수가 대통령의 구상에 반대했다. WTO 회원국으로 승인하기 위해서는 중국에 ‘항구적인 정상 무역국 대우(PNTR)’ 지위를 부여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 의원들은 PNTR을 부여하게 되면 중국의 인권 유린과 열악한 노동 환경을 문제삼을 수 없다는 점을 제기했고 민주당의 정치 후원자인 노동 단체들은 중국의 저가 수입품으로 노동자들이 실직할 것을 우려했다. PNTR 법안이 부결될 위기에 처하자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단합해 민주당의 클린턴 전 대통령을 지지했고 대통령도 반대하는 여당 의원들을 일일이 전화하거나 백악관으로 초청해 설득함으로써 절반을 넘겨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이에 따라 중국은 13년 만에 국제 무역 질서에 편입됐다.&nb

    2022.01.05 17:30:03

    중국 WTO 가입 20년의 회고 [정인교의 경제 돋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