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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안 샀다…나이키 시총 17조원 증발

    글로벌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가 미국 증시 상장 이후 최장기간 하락세를 기록했다. 주가는 43년 만에 9거래일 연속 하락했고 이 기간 시가총액은 130억달러 (약 17조 4005억원) 증발했다. 나이키 주요 시장인 중국의 소비 회복세가 둔화되고 있고 재고가 증가하면서 부진했다. 22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인베스팅닷컴 등에 따르면 이날 미국 뉴욕증시에서 나이키 주가는 전일 대비 1.4% 하락한 101.46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나이키 주가는 이날까지 9거래일 연속 하락하며 1980년 12월 기업공개(IPO) 이후 최장기간 연속 하락세를 기록했다. 최근 중국의 소비부진, 부동산 개발업체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기 등으로 중국 경기 둔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탓이다. 중국의 7월 소매판매 성장률은 전년 대비 2.5%로, 시장 전망치 4%를 크게 밑돌았다. 밀러 타박 플로스코의 매트 말리 수석 시장 전략가는 "(나이키) 투자자들은 중국의 성장이 둔화할 거란 사실을 깨닫고 있다. 또 중국(당국)이 경제 회복세를 올리고자 과거처럼 많은 일을 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나이키 주가 하락 배경을 설명했다. 최근 불거진 스포츠 의류 분야의 높은 재고 문제도 나이키 주가에 악재로 작용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나이키는 올 6월말 분기실적에서 시장전망치는 밑도는 주당이익을 발표하며 여전히 초과재고를 할인된 가격으로 팔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톰 니키크 웨드부시 애널리스트는 “최근 언더아머, 챔피언을 가진 하네스브랜드의 실적보고서에서 운동복 업체들이 지속적인 높은 재고수준과 프로모션은 마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될 것”이라며 "이는 투자자들의 우려를 한층 키웠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한편,

    2023.08.23 15:35:27

    중국이 안 샀다…나이키 시총 17조원 증발
  • 경영난 겪는 신발 브랜드들…무엇이 문제일까

    [case study, 실패에서 배운다]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신발 브랜드들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 미국 신발 회사 락포트와 영국 부츠 제조사 헌터부츠는 최근 한 달 새 연달아 파산 소식을 알렸다. 캐나다의 신발 회사 알도는 2020년 파산 보호 신청 이후 지난 2년간 구조 조정을 진행했다. 이들 브랜드는 신발 시장 내 어중간한 위치로 충성도 높은 고객들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뒤처지기 시작했다. 또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중심의 신규 고객을 유치하지 못한 것도 파산의 원인이 됐다. 여기에 포트폴리오 부족, 경영진의 잘못된 판단 등도 영향을 미쳤다. 경영난 겪는 신발 브랜드들‘편안한 착용감’을 내세우며 규모를 키운 미국 신발 회사 락포트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락포트는 지난 6월 미국 델라웨어 주 파산법원에 파산법 11조(챕터11)에 따른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락포트가 법원에 제출한 서류에 따르면 락포트의 부채는 1억 달러(약 1300억원) 수준이고 상위 5개 채권자에 4700만 달러(약 614억원)를 빚진 상태다. 전체 채무액 가운데 60%는 당장 오는 8월까지 납부해야 한다.미국 파산법 11조는 한국의 법정 관리와 유사한 프로그램으로, 부채 상환 여력이 없는 기업의 채무 이행을 한시적으로 중단하고 자산 매각을 통해 기업을 정상화하는 절차다.2018년 1월부터 락포트를 이끌어 온 그레그 리밧 최고경영자(CEO)는 사임했다. 다만 마르케세 최고수익책임자(CRO)의 회사 운영을 돕기 위한 자문에는 참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락포트의 파산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8년 5월에도 델라웨어 주 윌밍턴 파산법원에 파산 보호 신청을 냈다. 2015년 락포트의 모회사가 아디다스그

    2023.07.22 06:00:04

    경영난 겪는 신발 브랜드들…무엇이 문제일까
  • 페라가모, 신발 디자인에 인체 해부학 처음으로 접목[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살바토레 페라가모①“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 나폴리에서 동쪽으로 약 100km 정도 차를 몰고 가면 들어가는 길 말고는 나오는 길이 따로 없는 한 외딴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보니토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 내가 태어난 곳이다.”살바토레 페라가모의 자서전 ‘꿈을 꾸는 구두장이’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이다. 페라가모는 1898년 14남매 중 열한번째로 태어났다. 가난 때문에 학교는 아홉 살까지만 다닐 수 있었고 집 근처의 구두 가게는 그에게 늘 영감을 주는 장소였다.구두장이가 작업하는 모습을 즐겨 봤던 페라가모는 아홉 살이 되던 해 성찬식에서 신을 신발이 없는 여동생을 위해 처음으로 하얀 구두를 만들었다. 열한 살이 되던 1909년 페라가모는 나폴리의 한 구두 가게에서 견습생으로 일하게 됐다. 2년 후 열세 살이 되던 해 페라가모는 고향에 돌아와 자신의 집 한쪽에 여성용 맞춤 구두 가게를 열었다. 가난한 집안 일으키기 위해 형제들과 미국행그러던 어느 날 미국에서 일하던 형의 권유로 1914년 열여섯 살 때 페라가모는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형제들과 함께 미국 보스턴으로 가는 배를 탔다. 미국에 간 페라가모는 큰 신발 공장에 취업했고 거대한 기계들이 있는 미국 공장은 나폴리의 구두 공장과 많이 달랐다.하지만 그는 곧 기계로 생산하는 신발의 품질에 한계를 느꼈다. 페라가모는 형들과 함께 캘리포니아 산타모니카에 구두 제조 및 수선점을 열었다. 아메리칸필름컴퍼니라는 영화 스튜디오 바로 옆이었다. 페라가모는 아메리칸필름컴퍼니에 카우보이 부츠를 납품하게 된 것을 계기로 영화 소품으로 사용하는 독특한 구두를 제작해 납품하기 시작했다.

    2023.05.23 10:15:36

    페라가모, 신발 디자인에 인체 해부학 처음으로 접목[류서영의 명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