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조언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책>은 ‘평소의 나’와 ‘완벽을 강요하는 나’를 분리시키고, 완벽주의 자아가 게임을 걸어오면 과감히 반박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이 부적응적 완벽주의를 치료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재미있게 읽은 웹툰 중에 <도박 중독자의 가족>이라는 작품이 있다. 작가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이야기로, 한 인간이 도박에 중독되면서(이 작품 주인공의 경우 선물 옵션, 코인을 비롯한 투자 중독) 자신뿐 아니라 가족들의 삶까지 모조리 파탄 내는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그중에서도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결과만 보면 세상 욕을 다 퍼부어도 모자랄 중독자가 실제로는 굉장히 선량한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한때 착하고 공부 잘하던 아들이었고, 좋은 금융계 직장에 다니며 얻은 노하우로 재테크를 도와주던 멋진 형제였다.그런 그가 위험한 투자에 손을 대고, 결국 그 증상이 중독으로까지 악화돼 집안을 흔들게 된 건, 역시나 선량하기 그지없는 단 한 줄의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투자해서 돈을 불리면 가족들이 행복해질 거야.’도박 중독은 도박을 ‘행복’과 연결시키는 태도에서 나온다고 한다. 돈을 따야만 행복해질 수 있고, 그렇지 못하면 불행할 거라는 강한 확신이 그들을 점점 강한 중독의 악순환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상인이라면 누구나 인지할 수 있듯, 이 전제는 시작부터 완전히 잘못됐다. 도박으로 돈을 따서 행복해지는 결말은 세상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도박은 항상 지는 게임이니까. 어쩌다 한 번 이길 수는 있어도, 수백 수천 번 슬롯머신을 당겨서(혹은 카드

    2024.03.28 07:00:24

    불안한 완벽주의자를 위한 조언
  • 새로운 나와 만나는 용기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처음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를 봤던 순간이 생생하다. 그때 나는 갓 상경한 새내기 대학생으로, 비슷하게 지방에서 올라온 동기들과 ‘서울 투어’를 한답시고 유명한 장소들을 쫓아다니고 있었다. 동대문과 홍대를 비롯해서 랜드마크로 통하는 동네를 이곳저곳 방문했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로 테헤란로였다. 엄청나게 높은 빌딩들이 끝없이 늘어선, 거대한 왕복 10차선 도로는 스무 살의 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압도감을 주었다. ‘이게 바로 서울이구나’라는 생각을, 입학한 지 몇 달이 지난 그날 처음 했던 기억이 난다.그로부터 약 10년 뒤, 나는 3번의 이직을 거친 끝에 테헤란로에서 직장 생활을 하게 됐다. 그것도 코엑스에 바로 연결된 도심공항타워 사무실에서. 당연한 얘기지만, 일개 직장인의 회사 생활은 겉으로 보이는 테헤란로처럼 멋지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다. 왕복으로 3시간 가까이 걸리는 출퇴근은 너무 고됐고, 대중없이 쏟아지는 일을 처리하느라 매일 정신이 없었다. 명함에 찍힌 직함은 ‘연구원’이었지만, 워낙 규모가 작은 회사라 닥치는 일은 뭐든 해야 했다. 계약서가 들어오면 번역도 하고, 손님이 오시면 커피도 타고, 회사 홈페이지가 필요하면 ‘지식IN’을 찾아가며 직접 만들어야 했다(참고로 나는 영문학을 전공한 순도 100% 문과인이다).일을 하다가 숨이 턱 막힐 때면 가끔 건물 비상계단을 찾았다. 내가 일한 사무실은 고층부에 있어서 계단을 이용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고, 덕분에 화재에 대비해 육중하게 만들어진 철문을 밀고 나가면 진공처럼 조용한 공간이 나타났다. 넓진 않았지만 벽 한쪽에 창

    2024.02.05 10:43:16

    새로운 나와 만나는 용기
  • AI 시대 대전환 시작됐다!…‘한경무크 CES 2024 디브리핑’ 성료

    ‘한경무크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세계가전전시회) 2024 디브리핑’이 지난 1일 성황리에 진행됐다. 한국경제신문과 더밀크가 협업한 한경무크 <CES 2024> 발간을 기념해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AI 대전환이 시작됐다’를주제로 강연을 맡았다. 이번 행사에는 스타트업 CEO, IT·반도체 업계 종사자 등이 찾아 강연장을 가득 채웠다.손재권 대표는 실리콘밸리 테크&경제 미디어 더밀크를 이끌며, 12년째 CES를 취재한 CES 전문가다. 이번 CES에서 가수 지드래곤(GD)을 비롯해 정부 관계자 등 VIP의 가이드를 맡아 주목받기도 했다.한경무크 CES 2024 디브리핑의 주제는 ‘AI 대전환 시작됐다’로, 로봇, 헬스케어, 가전 등 전 산업군에 녹아든 온디바이스 AI 기술을 전면에 내세운 기업 및 제품과 산업 트렌드 변화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또, 올해 100주년을 맞은 CTA(Consumer Technology Assosiation, 미국소비자기술협회)와 57주년을 맞은 CES의 의미 및 역사, 기조연설자 8명 키노트 요약, CES 2024 현장에서 볼만했던 기업 및 부스에 대한 의견도 제시했다.‘AI for All’, ‘모빌리티의 진화’, ‘디지털 헬스케어의 고도화’, ‘실현 가능한 지속가능성’ 등 CES 2024에서 주목해야 할 트렌드 TOP 10도 함께 소개했다. 손 대표가 CES를 취재하며 얻은 인사이트를 공유하자 참가자들의 열띤 질문이 이어졌다.손 대표는 “CES 2024는 코리안 다이나미즘의 무대였다”며 “전체 스타트업 중 42.6%가 한국 스타트업이고 한국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도 대거 참여해 12년 전 CES를 처음 취재했을 때 주요 대기업 몇몇만이 참여한 모습과는 다른 풍경이었다”고 전하기도 했다.손 대표가 강연

    2024.02.02 14:56:47

    AI 시대 대전환 시작됐다!…‘한경무크 CES 2024 디브리핑’ 성료
  • 손재권 더밀크 대표 한경무크 CES 2024 인사이트 북토크 진행

    매년 1월이면 라스베이거스에서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비즈니스의 장이자 축제가 열린다. CTA(Consumer Technology Association, 미국소비자기술협회)가 주관하는 ‘CES(Consumer Electronic Show)’다. 지난 3년간 코로나로 인해 다소 위축됐던 CES는 포스트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며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꾸려졌다. 전 세계 150개 국가에서 4300개 이상의 기업이 참가했으며 약 14만 명의 관람객이 CES 2024를 찾았다. 어마어마한 규모만큼이나 쏟아져 나오는 자료와 정보의 양도 방대하다. 무엇을 어떻게 선별해 활용할지가 관건이다.한국경제신문이 2021년부터 발간한 한경무크 CES 시리즈는 빠르고 정확한 이슈 분석과 일목요연한 편집을 인정받아 스테디셀러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이번 ‘한경무크 CES 2024’는 실리콘밸리 테크&경제 미디어 ‘더밀크’와 함께해 더 전문성을 높였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가 이끄는 취재팀과 테크 전문가들이 취재한 CES 2024 주요 이슈를 현장감 있게 전달한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의 CES 2024 리뷰손재권 대표는 오는 2월 1일 한경무크 CES 2024 출간을 기념하며북토크를 진행한다. 12년간 CES를 취재하며 얻은 노하우와 이번 CES에서 얻은 인사이트 등을 공유한다. 현장에서 가수 지드래곤(GD, 권지용)은 물론 주요 VIP의 가이드를 도맡을 정도로 CES를 가장 잘 아는 손 대표가 CES 2024에서 포착한 주요 트렌드와 이슈를 되짚어보는 자리가 될 전망이다. 북토크는 총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다. 첫 번째 북토크는 2월 1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마루 180 지하1층 이벤트홀에서 열린다. 두 번째 북토크는 2월 7일 수요일 오후 7시부터 광화문 교보빌딩 23

    2024.01.25 16:37:38

    손재권 더밀크 대표 한경무크 CES 2024 인사이트 북토크 진행
  • 도파민 중독 시대, 소소하게 행복하려면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요즘 인터넷 댓글창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단어 중 하나는 ‘도파민’이다. ‘도파민’은 뇌신경 세포의 흥분을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행복감과 즐거운 기분 등을 느끼게 한다. 시청률 대박을 기록한 인기 프로그램부터 마약 사기가 연루된 불미스러운 보도까지,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콘텐츠들을 도파민의 잣대로 평가하기 시작했다. 콘텐츠가 어떤 주제를 담고 있는지, 형태가 무엇인지, 내용이 유익하고 유해한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영상(혹은 글이나 그림)이 내 도파민을 얼마나 ‘터뜨리는지’가 중요하다. 대중의 도파민을 터뜨리는 데 성공한 콘텐츠는 순식간에 화제의 중심을 차지하며 트렌드를 선도한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영어와 한국어가 기괴하게 섞인 콩글리시 문장을 쓰도록 만들고, 버스 정류장에 선 사람마다 발을 들썩이며 공중부양 스텝을 흉내 내도록 만든다. 말할 필요도 없이, 돈 냄새에 민감한 산업계는 이러한 붐을 놓치지 않는다. 가까운 예로, 수십억 원대 사기극을 벌인 혐의로 체포된 전청조가 ‘I am 신뢰예요~’라는 문구를 유행시키자마자 인터넷 창은 ‘I am OO예요~’라는 카피를 단 온갖 광고들로 뒤덮였다.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여기까지지만, 기업들이 앞다투어 뛰어든 광고 전쟁의 뒤에는 분명 돈으로 환산된 이익이 쌓이고 있을 것이다. 역사학자 데이비드 코트라이트는 이러한 현상에 ‘대뇌 변연계 자본주의(Limbic Capitalism)’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가 정의한 대뇌 변연계 자본주의는 ‘산업계가 소비자들의 과도한 소비와 중독을 의도적으로 촉진시키는, 기술적으로는 발전했으나 사회적으로는

    2023.11.28 17:05:46

    도파민 중독 시대, 소소하게 행복하려면
  • 텀블러가 지구를 못 구할지라도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요리할 때 이거 넣으면 참 맛있는데 말이야.” 네모난 마가린 통을 가리키며 1960년대생인 아빠가 말했다. “요즘은 차마 못 사겠어. 하도 몸에 나쁘다고들 하니.” 아빠와 동갑인 엄마는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맞아. 우리 어릴 때는 오히려 건강에 좋은 거라고 배웠잖아. 동물성인 버터는 몸에 나쁘고, 식물성인 마가린을 먹어야 한다고.” 마트에서 오간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며 당시 십대였던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도 그럴 게, 내가 이 말을 들을 무렵 가장 핫한 건강 트렌드는 바로 ‘지방(특히 트랜스지방) 피하기’였기 때문이다. 고지방 식단이 비만, 당뇨, 암을 비롯해 온갖 질병을 유발한다는 주장이 툭하면 보도되던 시기였다. 뉴스와 신문으로부터 공격받던 다양한 식재료 중에서도, 마가린은 순수한 트랜스지방을 뭉쳐 놓은 최악의 불량식품으로 꼽혔다. 그런데 그런 물질이 ‘식물성 건강식품’으로 대접받던 시기가 있었다고? 웃으며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부모님을 보며, 나는 신기함과 동시에 약간의 안타까움을 느꼈다. 동물성은 무조건 나쁘고 식물성은 무작정 좋다니, 이 얼마나 편협하고 획일적인 건강관인가. 그런 무지가 판치던 시절에 유년기를 보낸 죄로 자기도 모르게 나쁜 음식을 먹고 자랐을 엄마 아빠가, 내 눈에는 마치 시대의 피해자처럼 보였다. 그날 우리 가족의 장바구니에는 저지방 우유, 무지방 요거트, 기름에 튀기지 않았다는 건강 시리얼 따위가 담겼다. 이게 벌써 20년 가까이 된 기억이다. 지금의 내게는 십대 자녀가 없지만, 만약 있다면 그 아이는 내 어릴 적 건강 상식을 듣고 분명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때 사람들은

    2023.09.27 16:31:09

    텀블러가 지구를 못 구할지라도
  • 귀해진 죽음, 더 귀한 삶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내게 처음으로 그런 경험을 안겨준 것은 동갑내기 단짝 친구였다. 밝고 귀엽고 착한 아이였는데, 갑작스러운 암 선고를 받더니 통통하던 볼이 홀쭉해져서는 눈 깜빡할 사이에 떠나 버렸다. 성장기에 생겨난 암세포는 환자의 키만큼이나 빨리 자란다는 사실을, 그때 나는 처음 알았다.두 번째로 겪은 죽음은 대학교 신입생 때 찾아온 친구네 할머니의 장례였다. 발이 워낙 넓던 친구였던 데다 마침 빈소가 학교에서 멀지도 않은 시내 대학병원이어서, 과 동기들이 우르르 몰려가 조문을 했다. 고인의 가족들은 그래도 편안히 가셨다며 담담한 모습을 보였는데, 오히려 함께 찾아간 아이들 몇 명이 슬퍼하며 눈물을 흘렸다. 친구의 상실을 동정해서였을 수도 있고, 어쩌면 앞으로 겪게 될 자신의 상실에 이입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울었는지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게 두 번째 경험이었다.이후로도 몇 번인가 죽음을 겪었다. 지인이 떠난 적도 있고, 친척 어른이 돌아가신 적도 있다. 규모가 큰 회사에 들어간 후로는 몇 주, 몇 달 주기로 누군가의 부고(訃告) 이메일을 받았다. 대부분은 얼굴도 모르는 다른 팀 직원의 가족상이었지만, 가끔은 나와 연결고리가 있는 사람의 이름도 보였다. 그런 날이면 회사 일을 마치고 탕비실에 비치된 부의금 봉투를 챙겨서 다른 동료들과 함께 조문을 하러 갔다.그렇게 갔던 모든 장례식을 나는 기억한다. 정확히 숫자를 댈 수 있다거나, 모든 장면이 생생히 떠오르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전부 기억한다고 말할 수 있다. 내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게 그토록 강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 말에는 아마도 많은

    2023.07.31 15:10:04

    귀해진 죽음, 더 귀한 삶
  •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은 안녕할까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얼마 전에 본 TV 토크쇼에서, 게스트로 출연한 현직 약사에게 진행자가 물었다. “약사로 일한다고 하면 꼭 듣는 말이 있다면서요?” 약사는 “조금 민감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라고 운을 떼며 이렇게 말했다. “AI에 쉽게 대체될 직업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다행히 뒤이어 나온 이야기는 별로 부정적이지 않았다. 전문가의 전문성은 책임감에서 나온다고 말하며, 그녀는 약에 대해 책임지고 환자를 상담하는 일을 AI가 완전히 대체하기 어려우리라고 내다보았다. 일의 방향성이 변할 수는 있어도, 인간 약사의 가치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으리라는 것이다.그 소신 있는 발언을 들으며, 나는 우리 아파트 상가에 있는 ‘지혜약국(가명)’을 떠올렸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붐비는 그곳의 영업 방침은 ‘신속 정확’과 거리가 멀다. 언제 가도 대기 줄이 있는데, 회전률 또한 한숨이 나올 정도로 느리다. 30대로 보이는 젊은 약사는 처방전대로 조제하면 그만인 알약 한 봉지도 대화를 나누며 천천히 짓는다. 약 한 알 한 알의 효능과 복용법, 부작용을 상세히 알려주고 손님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해준다. 단골손님의 특징을 기억하고, 특히 어린이 손님들은 이름까지 외워서 살갑게 대화를 건다.영양제 하나 사러 갔다가 5분도 넘게 기다리면서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지금은 기왕 왔으니 여기서 사겠지만, 앞으로는 반드시 옆 건물에 있는 약국에 가겠다고. 겨우 내 차례가 오고, 나는 “마그네슘 영양제 하나 주세요”라는 간단한 주문을 넣는다. 약사는 내게 묻는다. 마그네슘을 왜 찾는 거냐고. 피로해서인지, 두통이나 근육통이 있어서인지 혹은 눈가가 떨려

    2023.06.09 15:56:11

    AI 시대에 인간의 존엄은 안녕할까
  • 죽음의 땅, 그 경계에 서다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므레모사’는 김초엽 작가의 소설 <므레모사>에 등장하는 가상의 마을로, 일명 ‘죽음의 땅’으로 불리는 오염 지역이다. 므레모사가 오염된 것은 2003년에 일어난 화학무기 공장의 폭발사고 때문이었다. 공장이 폭발하면서 유출된 유독물질이 비에 달라붙어 수도원을 오염시키고 대규모 인명 피해를 낸 것이다. 결국 정부는 주민들을 대피시키고 지역을 접근금지구역으로 선포했다.소설은 폭발 사고의 비극으로부터 한참이 흐른 시점에서 출발한다. 그 사이 오염물질이 정화됐다고 판단한 정부는 므레모사에 살던 원주민들의 귀환을 허가했고, 의료 봉사자들에 이어 소수의 일반 관광객까지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외지인이자 일반인으로서 죽음의 땅에 입성한 첫 번째 관광 팀은 전 세계에서 추첨을 통해 선정된 6명의 남녀다.인재와 자연 재해가 합쳐서 탄생된 대규모 재난. 사람들을 통제해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정부와 결국은 상품으로 팔리고 마는 비극의 스토리. 현실의 여러 사건들이 겹쳐 떠오르는 므레모사의 비극을 확인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관광객들 역시 어디서 많이 본 인간 유형들이다.유튜버이자 영상 편집자인 주연은 므레모사 목격담을 콘텐츠로 만들기 위해 추첨에 응모했다. ‘썰’만 잘 풀어도 관심을 끌 수 있고, 몰래 촬영에라도 성공하면 대박이 날 거라며 기대에 부풀어 있는 그녀는 비극에 대한 대중의 관음증을 상징한다.관광학과 대학원생인 이시카와는 재난 현장이 관광지로 변화하는 과정을 연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는 말한다. “여행지란 그 매력을 점차 다듬어 가는 것이지, 날것 그대로의 여행지가

    2023.03.28 10:56:56

    죽음의 땅, 그 경계에 서다
  • 다정함은 생존 능력이다

    [한경 머니 기고=서메리 작가] 현재의 인류, 호모 사피엔스가 인간의 모습을 한 유일한 종이 아니었다는 학설은 이제 널리 받아들여진 개념이 됐다. 수만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외모와 습성이 비슷한 다른 종의 친척들과 지구를 공유하고 있었다.그 시절 우리 조상들은 별로 눈에 띄는 존재가 아니었다. 탐험심으로 무장한 호모 에렉투스는 대륙에 걸쳐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요즘으로 치면 부동산 재벌이었다. 네안데르탈인은 메머드를 때려눕히는 신체 능력에다 지능까지 높은 소위 ‘엄친아’였다. 이 우월한 친척들에 비하면 호모 사피엔스는 이렇다 할 강점이 없는 엑스트라에 불과했다. 만약 그 무렵에 21세기까지 살아남을 종을 두고 내기를 벌였다면 사피엔스에게 돈을 걸 바보는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우리는 이 역사 드라마에 반전이 일어났음을 안다. 2023년 현재 전 세계에 살고 있는 호모 사피엔스는 80억 명에 육박하지만, 호모 에렉투스와 네안데르탈인은 0명이다. 더 강하지도, 더 총명하지도 못했던 사피엔스는 어떻게 최후의 승자가 됐을까.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의 공동 저자, 브라이언 헤어와 버네사 우즈는 그 답을 ‘초강력 인지 능력’에서 찾고 있다. 우리 조상들은 압도적인 인지 능력을 통해 수백, 수천 명을 결집시키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기껏해야 10~15명 단위의 무리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척들을 제치고 살아남았던 것이다. 1대1로 붙으면 승산 없는 게임이라도 10대1, 100대1로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지니까.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협업하고 아이디어를 교류하며 탄생시킨 무기와 기술이 더해지면서 대세는 점차 사피엔스 쪽으로 기울어졌다.다시 말해서, 우

    2023.01.31 16:44:01

    다정함은 생존 능력이다
  • 대한민국 부동산, 서영동 이야기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82년생 김지영>으로 유명한 조남주 작가의 최근작 <서영동 이야기>는 가상의 공간 ‘서영동’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첫 단편 <봄날아빠(새싹멤버)>를 시작으로 7편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어 한 번쯤은 마주쳤을 법한 인물들이 자신이 속한 동네를 생각하는 방식을 보여준다.<서영동 이야기>는 동네 어디선가 한 번쯤은 일어났을 법한 내용으로 구성됐다. 현재 대한민국 ‘부동산’의 단면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나는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가도 ‘어쩔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서영동의 내밀함을 들여다보게 된다. 조남주 작가 역시 “이 소설들을 쓰는 내내 무척 어렵고 부끄러웠다”라고 밝힐 만큼 속단하기 어려운 에피소드가 나열돼 있다.“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일군 여러분의 소중한 자산 아닙니까? 왜 우리의 가치를 스스로 깎아 내립니까?”(9쪽)봄날아빠는 네이버 친목카페 ‘서영동 사는 사람들(서사사)’에서 주로 부동산에 관한 글을 올리는 사람이다. 그는 서영동 빼고 다 올랐다며 복덕방에서 아파트값 담합을 문제 삼는다. 이 덕분에 운영자의 경고까지 받지만, 서영동 사람들은 그의 글 덕분에 집값에 대한 불신을 키워 간다. 집이 있어 행복했던 사람들마저 ‘왜 내 집값만 그대로인지’를 고민하게 되는 순간이다.최근 뉴스는 2030세대 영끌족으로 점철돼 있다. 부동산에 문외한인 필자 역시도 기사를 챙겨 읽게 된다. ‘나는 끌어 모을 영혼도 없기에 안타깝다’는 것과 ‘재산세를 내는 게 부럽다’는 양쪽의 감정을 오간다.조 작가는 2030세대의

    2022.12.02 14:22:28

    대한민국 부동산, 서영동 이야기
  • 나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생을 마감한 것이다.”(7쪽) 정지아 작가의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말도 안 되는 부음으로 시작해 주인공 아리와 빨치산 출신 아버지의 상을 치르는 3일간의 이야기다.<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주인공 아리는 조문을 온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알고 있었던 아버지의 서사를 다시 쓰기 시작한다. 평생을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려고만 했던 아리는 그렇게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가, 아버지의 해방을 느낀다.정지아 작가가 30년 만에 장편소설을 냈다. 정 작가는 1990년 <빨치산의 딸>(3부작)을 시작으로 독자들과 만나, 현재는 소설의 배경이자 고향인 구례에 거주하며 중앙대 문예창작과 전임교수로 활동 중이다. 다양한 수상 경력이 있는 그녀의 이번 작품은 아버지에 대한 헌사이자 자신에 대한 반성문으로 읽히기도 한다. 그렇기에 아버지의 장례식장은 묵직하면서도 유머가 흐른다.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했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를 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25쪽) 시종일관 평등과 혁명을 외쳤던 아버지는 변해 가는 세월 앞에서 쓸쓸하게 패배했다. 백운산과 지리산을 소총을 들고 오갔던 아버지였다. 빨치산이 와해될 위기에 처하자 위장 자수를 하면서도 지키려 했지만, 결과는 20년 장기수라는 꼬리표에 집안이 몰락한다. 작은아버지의 출세 길도 막혔다. 딸은 빨치산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친다.이 소설은 아버지의 장례식장과 정정했던 아버지와의 일화를 통해 찬란했지

    2022.11.04 15:36:02

    나로부터의 해방을 꿈꾼다
  • 누구나 굳은살이 많아져야 한다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오늘부터 고독사를 시작하겠습니까?’ 심야 코인 세탁소로부터 도착한 쪽지는 나의 과거와 미래를 오가게 만든다. 어쩌다가 ‘고독사’까지 선택하게 된 걸까.박지영 작가는 요양원에 갈 때 가지고 갈 단 세 권의 책 중 이 책이 포함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2010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해 2013년에 장편소설 <지나치게 사적인 그의 월요일>로 조선일보 판타지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7년 만의 신작이다.옴니버스 형태로 진행되는 소설은 개인이 남에게 하지 못하는 내밀함을 보여주면서도 일상을 유지하는 이들의 모습을 그린다. 이에 대해 박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고독사 워크숍에 흥미를 가질 법한 타깃층은 경제적, 육체적으로 절대적인 고독사 위험군인 70~80대 독거노인이 아닙니다. 고독사에 대한 불안을 안은 채 구체적인 대안도 없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긍정 혹은 자기 부정의 상태에 있는 30~40대 남녀들입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고독사라면 일찌감치 자신의 고독에 안무를 묻고 친밀해지는 연습을 하며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대상인 거죠. 내 죽음이 누구에게도 슬픔이나 죄가 되지 않는, 얼룩 없는 클린한 고독사가 되도록 말입니다.”(25쪽)고독사에 참여하는 이들은 워크숍 동안 자신이 무언가가 돼야 한다고,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이기 때문에 타인의 고독사를 학습하고 모방하며 자신의 고독사를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고독사 앞에서도 모든 무용에 이르는 실수를 죄책감 없이 하루하루 해내도 된다는 안도감을 배우

    2022.10.08 08:00:03

    누구나 굳은살이 많아져야 한다
  • 일하는 여성들의 '보통 맛' 이야기

    [한경 머니 기고 = 윤서윤 독서활동가] 직장은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각자 주어진 일을 하면서 수많은 이벤트들이 수행된다. 작은 실수라도 있으면 시말서를 작성하거나 다음 이벤트에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한다. 그렇게 우리는 유연함과 책임을 배운다.직장 생활을 통해 스스로가 일에 욕심이 있는지, 그저 주어진 일만 지적 없이 마무리하고 싶어 하는지 자신을 알게 되는 과정을 겪는다. 이 과정에서 회사는 이윤을 남기고, 이윤은 작고 소중하게 분배된다. 이런 생각으로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이 없다.작가 최유안의 <백 오피스>는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만한 소설이다. 일에 최선을 다하는 세 여성이 주인공이다. 주목받고 싶진 않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일을 즐기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나는 어떤 태도로 일을 하는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직업을 바라보게 된다.이 책의 등장인물은 친환경 대기업 태형그룹의 대리 홍지영과 마이스 스타트업 기획사의 임강이, 퀸스턴 호텔의 호텔리어 강혜원이다. 이들은 태형그룹의 친환경 관련 국제 행사를 진행하기 위해 협업한다. 강혜원이 출산휴가 후 승진을 위해 여러 일을 벌이면서 남편으로부터 이혼 통보를 받으며 소설이 시작된다. 태형그룹의 비리가 뉴스에 보도되던 날, 위기라고는 생각했지만 태형그룹은 행사의 규모를 늘려 이미지 개선을 시도해야 할 때라고 판단한다.홍지영은 함께 일하는 선배 오 과장과 일을 진행하면서 사익을 추구하는 모습을 감사실에 보고하고, 오 과장은 좌천된다. 혼자 이벤트를 진행하게 된 홍지영은 오 과장이

    2022.09.02 14:03:26

    일하는 여성들의 '보통 맛' 이야기
  • ‘명품 스윙 에이미 조 이지 골프’ 북토크 성료

    43만 구독자를 보유한 파워 유튜버 에이미 조가 독자들과 만났다.8월 23일 오전 서울 쇼골프 여의도점에서 '명품 스윙 에이미 조 이지 골프' 북토크가 열렸다. 이번 행사는 한국경제신문과 엑스골프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사전 신청을 통해 선정된 독자들과 함께한 이번 북토크는 자연스러운 대화 형식으로 진행됐다. 에이미 조의 근황을 시작으로 티칭 프로로 전향한 일화, 허리 부상을 겪으면서 자신만의 훈련법을 만든 이야기 등을 나누며 독자들과 소통했다.에이미 조 프로는 “지난 봄에 짧게 한국 활동을 하고 오랜만에 한국에 왔는데 북토크를 통해 독자분들을 만나게 돼 기쁘다”며 반가움을 드러냈다. 그는 “프로들도 가장 집중하는 부분이 기본 자세다. 늘 셋업과 그립을 점검한다”며 “이 책은 골프에 입문하시는 분들이 쉽게 배우고 빠르게 익힐 수 있도록 기본기의 노하우를 담았다”고 출간 배경을 밝혔다.'명품 스윙 에이미 조 이지 골프'는 기본자세, 힘 비율, 시퀀스를 자세하게 풀어 써 혼자서도 연습할 수 있도록 했다. 챕터별로 유튜브 QR코드를 수록해 영상으로도 확인이 가능하다.에이미 조 프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어린 주니어 골퍼들에게 힘이 되어주고 싶어서 장학 사업을 하려고 한다. 자선회사를 설립 중인데 큰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내년부터는 방송 출연과 레슨 등 한국 활동도 활발하게 펼칠 예정이다. 골프에 대한 독자들의 고민을 들어보고 에이미 조 프로가 답변하는 질의응답 시간도 가졌다. 저자 사인회와 1:1 원 포인트 레슨도 이어졌다. 참석자들은 각자 타석에서 에이미 조 프로에게 코칭을 받으며 스윙 연습을

    2022.08.24 17:10:52

    ‘명품 스윙 에이미 조 이지 골프’ 북토크 성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