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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핸드메이드 전통 고수, 고급 테일러링 혁명[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브리오니① 세계 3대 명품 슈트를 고르라면 브리오니(Brioni), 체사레 아톨리니, 키톤을 손꼽을 수 있다. 물론 로로피아나의 비스포크, 스테파노 리치도 최고의 명품 슈트로 인정받고 있다. 브리오니 슈트는 영화 007시리즈의 5대 제임스 본드 역할을 한 피어스 브로스넌이 입어 더 유명해졌다. ‘골든 아이’, ‘007 네버다이’ 등 007시리즈 영화 4편에서 브리오니 슈트를 입었고, 이 슈트의 깔끔한 옷매는 그 어떤 무기보다도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할리우드의 스타 존 웨인, 클라크 게이블, 게리 쿠퍼도 브리오니 슈트를 즐겨 입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저서 ‘트럼프의 백만장자처럼 생각하라’에서 “내가 좋아하는 최고의 양복은 브리오니이며 그중에서도 기성품을 구입한다”고 썼다. 국내에서는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이 브리오니 슈트의 고객이었으며 LG, CJ 등 국내 유수의 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이 브리오니 슈트를 즐겨 입는다고 한다.얼마 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한 포럼에서 팔을 들어 올렸고, 재킷의 안쪽 라벨이 카메라에 잡혔는데 브리오니 제품이었다. 이렇듯 브리오니 슈트는 할리우드의 스타에서부터 국가 원수에 이르기까지 사회에서 권위 있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브랜드이다. 슈트 220 단계 거쳐 제작, 걸작 만들어내왜 그들은 이 브랜드를 좋아할까. 그들은 장인의 노하우가 깃든 고급 테일러링의 진수를 맛보았기 때문이다. 브리오니의 모든 슈트는 220단계를 거친다. 7000개의 꼼꼼한 수제 히든 스티치, 24시간 이상의 솜씨가 필요한 독특한 브리오니 방식을 통해 제작된다. 매장에서 아틀리에에

    2024.03.11 14:05:37

    핸드메이드 전통 고수, 고급 테일러링 혁명[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로로피아나 입고 ‘블레임 룩’ 공분 산 푸틴[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로로피아나③‘블레임 룩’이란 ‘비난하다’라는 뜻의 블레임(blame)과 ‘스타일’을 의미하는 룩(look)의 합성어다. 사회적으로 비난받으면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의 패션이 주목받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다. 2014년 세모그룹 회장인 유병언이 전라남도에서 사망 당시 로로피아나 점퍼를 입고 있어 화제가 됐다.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쟁 전범으로 공분을 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로로피아나의 후드가 달린 패딩 재킷을 입어 블레임 룩으로 유명해졌다. 그해 3월 18일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 루즈니키 경기장에서 열린 크림반도 합병 8주년 기념식에 약 1600만원 상당의 로로피아나 남색 후드가 달린 재킷을 입고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연설을 해 공분을 샀다(사진①).전장에서 군인들이 쓰러지고 다치는 상황에서 이를 지켜보는 군인들의 가족과 러시아 국민들의 속내는 편치 않았을 것이다. 이날 푸틴이 로로피아나 패딩 재킷 안에 입은 흰색 터틀넥 스웨터는 명품 브랜드 키톤 제품이었다. 푸틴은 영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 양복으로 유명한 ‘브리오니’를 2022년 10월 우크라이나 점령지 병합 조약을 기념하는 행사에서 입었다. 또한 그는 이탈리아 명품 신발 ‘살바토레 페레가모’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푸틴의 로로피아나 제품의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2015년 8월 러시아 소치의 국영 체육관에서 멜란지 그레이와 다크 그레이 컬러가 배색된 트랙슈트(약 394만원)를 입었고, 2019년 7월 그리스 메테오라의 발람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는 로로피아나의 남색 운동화를 신었다. 로로피아나 화이트 솔(신발 바

    2024.02.28 12:36:42

    로로피아나 입고 ‘블레임 룩’ 공분 산 푸틴[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타협하지 않는 품질·완벽한 우아함’ 전통 고수[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로로피아나②이탈리아에서 소재를 만드는 회사로 시작한 럭셔리 브랜드는 아뇨냐, 제냐, 로로피아나가 있다. 1953년에 설립된 아뇨냐는 초창기 피에르 가르뎅, 샤넬, 발렌시아가 등 전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들에게 울 원단을 공급하는 제조업체로 시작했다. 기성복 사업은 1970년대부터 시작해 럭셔리 패션 브랜드로 성장했으며 1999년 제냐 그룹이 인수했다.제냐와 로로피아나는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좋은 소재를 찾아다녔다. 호주산 메리노 울, 네이멍구산 캐시미어, 아프리카산 모헤어, 인도산 파시미나 캐시미어, 페루산 비쿠나 등 원사의 종류도 여러가지였다. 제냐의 중심이 되는 것은 양모다. 제냐는 직접 그해 최고의 양모 생산자를 선정하고 황금 양털과 트로피를 수여한 후 우승자와 독점으로 계약을 맺어 최고의 재료로 만든 최고의 슈트를 선보였다. 이것이 바로 벨루스 오레움 컬렉션이고 이 컬렉션은 한 해에 고작 50여 벌밖에 생산하지 않는다.반면 로로피아나는 매년 호주와 뉴질랜드의 최고급 메리노 울 목장을 대상으로 로로피아나 소재의 탁월함을 알리는 로로피아나 레코드 베일(Lolo Piana Record Bale) 행사를 열고, 최고의 울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로로피아나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4가지 소재가 있다. 캐시미어 소재, 더 기프트 오브 킹스®( The Gift of Kings®) 울 소재, 비쿠냐 소재, 베이비 캐시미어 소재 등이다. ‘타협하지 않는 품질과 완벽한 우아함’이라는 로로피아나 브랜드의 명확한 특성을 바탕으로 브랜드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동맹 강화 위해 메리노 양 한 쌍 선물 관습로로피아나의 더 기프트 오브 킹스®( The Gift of Kings®) 울(사진①)은

    2024.02.09 14:39:02

    ‘타협하지 않는 품질·완벽한 우아함’ 전통 고수[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오직 품질로만! 세계 최고 캐시미어 고집[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로로피아나①최근 ‘조용한 럭셔리’가 유행하면서 눈에 띄는 현란한 디자인보다 센스와 안목이 돋보이는 하이퀄리티의 소재를 사용하는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특히 캐시미어 제품을 입었을 때 포근함과 몸을 휘감는 부드러운 감촉, 보온성은 입어 본 사람만이 안다. 캐시미어는 공기를 가두어 추위로부터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일정한 체온을 유지시켜주는 효과가 있다.최근 전 세계에서 캐시미어 소비가 날로 증가하고 있다. 10만원대의 SPA 브랜드(자사의 기획브랜드 상품을 직접 제조 유통하는 소매전문)에서부터 수백만원의 가격대를 호가하는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에 이르기까지 퀄리티 또한 천차만별이다. 캐시미어 소비가 늘어나자 오직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무자비한 동물 사육 방식이 논란이 되기도 한다.  3~5월 염소 솜털에서만 얻을 수 있어캐시미어는 카프라 히르쿠스 또는 캐시미어 염소의 솜털에서만 얻을 수 있는 희귀하고 귀한 섬유다. 이 염소들은 아시아의 산악지역, 특히 몽골과 네이멍구가 원산지다. 여름은 혹독하게 가물고, 겨울은 매서운 추위로 먹이와 물이 거의 없는 척박한 사막이 대부분인 곳에서 자란다. 작고 겁이 없는 동물인 캐시미어 염소는 이처럼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거친 겉털과 피부 사이에 매우 섬세한 섬유로 구성된 또 다른 솜털 층을 발달시켜 공기를 가두어 추위로부터 효과적으로 몸을 보호하고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한다.이 부드러운 한 층의 솜털이 캐시미어 소재가 된다. 염소를 키우는 농가에서는 지역 동물상을 온전히 존중하면서 자연적 주기와 조화를 이루도록 3월과 5월 사이에 솜

    2024.01.20 07:43:02

    오직 품질로만! 세계 최고 캐시미어 고집[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가방·의류에 정교한 인타르시아 기법 활용[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로에베③ 인타르시아 기법은 나무나 도자기 등 상감 장식 패널을 새길 때 가장 많이 활용되는 전문 공예 기법이다. 상감이란 무늬를 넣는 방법을 말하는데, 상감기법은 나타내고자 하는 문양이나 글자를 파낸 뒤 그 파인 홈에 장식하는 기법의 일종이다.로에베의 인타르시아 기법은 특수 레이저로 가죽을 자르고 각 조각을 모자이크처럼 손으로 하나하나 붙이는 정밀한 다단계 공정을 통해 만들어진다. 가방이나 가죽의류 상품에 정교한 디자인을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다. 로에베의 마스터 장인들은 전통 기법과 새로운 기술을 조합해 형태와 소재 사이의 관계를 끊임없이 재평가하며 오랫동안 아름다움이 유지될 수 있는 제품들을 개발하고 있다. 일본 에니메이션 하우스인 스튜디오 지브리(Ghibli)와 협업에서는 만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이웃집 토토로’의 캐릭터를 인타르시아 기법을 이용해 가죽 가방을 만들었다(사진①).  1846년 설립 가죽공예 학교, 최고 장인 노하우 계승스페인 마드리드에 위치한 로에베 가죽공예 학교는 고급 가죽 제작 및 공예 기술을 교육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최고 장인들의 노하우가 여러 세대에 계승되도록 하고 있다. 1846년 설립 이래 하우스를 이끌어온 혁신에 대한 견고한 신념을 이어가는 이 학교는 로에베 비즈니스 중추에 대한 핵심적인 투자라고 할 수 있다.직육면체의 디자인 퍼즐 백부터 다양한 기능을 갖춘 해먹 백에 이르기까지 로에베의 백에는 오랜 역사를 지닌 가죽 전문 기술이 담겨 있다. 장인 공방으로 그 첫걸음을 시작한 이래 로에베 하우스는 가죽의 미적, 소재적, 기능적 가능성을 끊임없이

    2024.01.09 10:11:56

    가방·의류에 정교한 인타르시아 기법 활용[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장인 정신 치열한 로에베, 가죽 전문성 타의 추종 불허[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로에베① 2023년 3분기 패션 트렌드를 분석하는 플랫폼 리스트가 상승 명품 브랜드와 하락 명품 브랜드를 발표했다. 매 시즌 분기별로 가장 인기 있는 명품 브랜드와 제품을 선별하는 리스트 인덱스(LYST INDEX)는 매년 2억 명이 넘은 소비자들이 사용하고 있다. 리스트는 플랫폼 이외에도 SNS와 각종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소비자들의 알고리즘을 3개월 동안 통계를 내 상승 브랜드와 하락 브랜드, 가장 인기 있는 아이템을 발표한다. 이번 3분기 결과 상승 명품브랜드 1위는 미우미우, 2위는 로에베, 3위는 프라다, 4위는 보테가베네타, 5위는 베르사체, 6위는 생 로랑, 7위는 몽클레르였다. 로에베는 우리나라에서는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였으나 1996년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 그룹에 합류하면서 명품브랜드 대열에 확고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최근 국내에서도 매출이 크게 늘고 있는 추세다. 1846년 스페인에서 가죽공예에 헌신하는 집단 공방으로 시작된 로에베는 디자인 및 제작 접근 방법에 있어 장인 기술에 높은 가치를 부여해 왔다. 이후 30년 가까이 지난 1872년 독일 출신의 엔리케 로에베 로에스베르그가 공방에 참여하면서 하나의 이름 아래 모이게 되었다. 그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이름에서 오늘날의 로에베가 탄생한 것이다. 로에베는 용감하거나 위풍당당한 사람에게 별명으로 칭하던 ‘사자’를 뜻하는 중세 시대 독일어 ‘lewe’에 그 기원이 있다. 이 시점부터 로에베는 전례 없는 찬사를 받았으나 동시에 혼란도 시작되었다. 독일 이름을 가진 스페인 브랜드가 되었기 때문이다. 3분기 상승 명품브랜드 2위에 올라 1905년 스페인 국왕이 로에베 가문을 스페인

    2023.12.12 11:59:08

    장인 정신 치열한 로에베, 가죽 전문성 타의 추종 불허[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 끌로에, 1952년 첫 럭셔리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선봬[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끌로에① 프랑스가 유럽 패션의 중심으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루이 16세 때 부터다. 그의 아내 마리 앙투아네트는 당시 현대판 슈퍼모델 수준이었다. 그녀는 궁정 전속 디자이너 로즈 베르탱을 두고 화려한 패션을 완성했다. 18세기 로코코 양식이 화려하게 꽃피면서 파리는 유럽 귀부인들이 동경하는 패션의 도시가 되었다. 로즈 베르탱은 프랑스 오트 쿠튀르(하이 패션, 맞춤복)의 새로운 문을 열었다. 프랑스 오트 쿠튀르 패션은 귀족들과 돈 많은 상류층을 대상으로 했다. 오트 쿠튀르의 명맥은 1920년대 샤넬, 장 파투, 뤼시앵 를롱, 1940년대 피에르 발망과 뉴룩을 발표한 크리스찬 디올, 오트 쿠튀르의 황태자라 불리는 이브 생 로랑까지 이어졌다. 샤넬의 슈트 한 벌을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200시간, 웨딩 드레스는 800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비쌀 수밖에 없었다. 오트 쿠튀르의 옷은 너무 비쌌으므로 사기 힘들고, 그 수준의 기성복을 원하는 수요층이 늘게 되자 생겨난 것이 프레타 포르테(바로 입을 수 있는 옷, 영어로는 레디 투 웨어)이다. 1952년 최초의 럭셔리 레디 투 웨어 끌로에가 첫 번째 컬렉션을 발표했다. 끌로에의 창업자 가브리에라 아노카는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지식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940년 어린 시절부터 친구로 지낸 레이몬드 아기옹과 결혼한 뒤 젊은 부부는 1945년 파리로 이주했다. 결혼 후 남편의 성을 따라 가비 아기옹(사진①)이 되었다. 파리지앵 가비 아기옹은 1952년 끌로에를 설립했다. 그녀는 첫 번째 컬렉션에서 형식적인 오트 쿠튀르 작품 대신 고품질의 패브릭과 섬세한 디테일이 조화를 이룬 편안한 실루엣의 우아하고 현대적인 작품을

    2023.11.28 14:10:42

    끌로에, 1952년 첫 럭셔리 ‘프레타 포르테(기성복)’ 선봬[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 오아시 제냐 프로젝트, 인간·환경 조화 도모[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제냐② 좋은 원단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물은 필수 요소 중 하나다. 샤넬의 연인 웨스트민스턴 2대 공작(당시 영국 최고의 부자)이 샤넬을 위해 영국 트위드 강가에 있는 섬유공장을 사들였다. 이 공장은 샤넬의 시그니처와도 같은 트위드라는 질 좋은 원단을 생산했다. 물론 트위드 강의 좋은 수질이 좋은 원단을 생산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제냐 또한 마찬가지다. 창업자 제냐의 고향은 알프스 해발 700m 산맥으로 둘러싸인 이탈리아 비엘라 근처의 트리베로다. 이 지역의 좋은 물이 제냐의 좋은 원단을 생산하는 데 한몫했다. 제냐는 ‘좋은 제품은 그 제품의 생산 과정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행복과 주변 환경의 아름다움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의 웰빙이 사업 성공에 필수 요소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지역사회를 위한 기부와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산골의 트리베로에는 1933년부터 마을회관, 도서관, 체육관, 영화관, 공공 수영장, 병원, 고아원이 세워졌다. 두 차례의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고아원에서 보살펴 주기도 했다. 50만 그루 넘는 ‘파노라미카 제냐’ 도로 탄생 제냐는 환경보호에도 적극적이다. 숲이 형성될 만큼 나무를 많이 심어 이탈리아에 오아시 제냐(사진①)라는 국립공원을 운영 중이다. 그 시초는 19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냐는 울 공장 인근 지역에 첫 번째 나무를 심었으며 이를 계기로 지속가능한 정신 및 숲 복원 프로젝트를 비롯해 현재까지 50만 그루 넘는 나무를 심었다. 이뿐만 아니라 트리베로와 해발 1500m에 위치한 관광리조트인 비엘몬테를 연결하는 14km 길이의 ‘파노라미카 제

    2023.11.14 10:41:49

    오아시 제냐 프로젝트, 인간·환경 조화 도모[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벨루스 오레움 컬렉션, 수트 1년 50벌만 생산[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제냐① 좋은 재료가 요리의 맛을 결정하듯 패션도 마찬가지다. 젊어서는 디자인과 디테일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면 나이 들어서는 좋은 소재를 우선시한다. 최근 패션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올드머니룩(대대로 부를 축척해온 부자들의 옷장을 열어보면 있을 법한 옷의 스타일)’ 또한 좋은 소재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남성복에 있어 올드머니룩의 대표적인 브랜드를 꼽으라면 제냐가 아닐까 한다. 창립자 에르메네질도 제냐가 18세가 되던 1910년. 이탈리아 북부 트리로베에서 그의 아버지가 경영하던 프랑스식 직조공장을 영국식 기계로 바꾸고, 품질 좋은 원자재를 직수입해 최고급 원단을 만들면서 제냐의 사업은 시작됐다. 1930년 품질을 보증하기 위해 원단 가장자리에 ‘Ermenegildo Zegna’를 새겨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원단에 대한 품질보증뿐만 아니라 그의 자부심이기도 했다. 1933년 제냐는 원료 수급뿐만 아니라 방적(단섬유 등의 짧은 섬유를 조작하여 적당한 굵기의 기다란 실을 만드는 일)과 방직(원단을 직조하는 것), 염색과 마무리 공정까지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당시 원료부터 직조까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기업은 그리 많지 않았다. 1910년에 설립된 원단 공장인 라니피시오(양모 공장이라는 의미) 제냐는 브랜드의 심장이자 세계적인 원단회사의 중심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울 원료 1g에서 원사 180m 만들어 이곳에서 생산되는 원단은 제냐에 사용되는 것은 물론,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들도 이 원단을 앞다투어 사용했다. 제냐의 원단은 더 가볍고, 더 부드럽고, 더 기능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라니피시오 제냐에서는 1g의 울 원료에서 1

    2023.10.31 14:06:26

    벨루스 오레움 컬렉션, 수트 1년 50벌만 생산[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사라 문 등 사진작가 막스마라 이념 잘 살려[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막스마라③ 패션 역사학자 아델하이드 라쉬(Adelheid Rasche)는 “막스마라의 광고에서는 하나의 상품을 넘어선 진정한 여성성을 발견할 수 있다”며 “막스마라는 강한 설득력을 가진 광고를 통해 여성들의 마음을 이끌어 냈으며, 여성들을 패션업계의 최종 소비자이자 충성고객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막스마라는 1958년 유명 광고 포스터를 시작으로 1970년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사진작가 사라 문과 작업을 했고, 1980년대에는 미국의 대표적 사진작가이자 영화제작자인 아서 엘고트와, 1990년대엔 미국의 사진작가 스티븐 마이젤과 광고사진 작업을 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사진작가 사라 문은 모델 출신으로 까사렐(프랑스 유명 의류 브랜드)의 광고사진을 촬영해 유명작가 반열에 올랐다. 그녀는 스토리가 있는 시선과 차별화된 느낌으로 사진을 찍는 것으로 유명하고, 초기의 사진은 부드러운 초점으로 아주 몽환적이면서 신비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후 그녀는 크리스챤디올, 꼼데가르송, 이세이 미야케와 작업했다. 섬세하고 몽환적, 기존 패션사진 편견 깨 그녀는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사용하고 후보정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사진이 그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2009년 사라 문의 사진 전시회가 서울에서 열렸다. 이 전시회에서 ‘이미지의 마술사’로도 평가받는 그녀의 작품들은 기존의 패션사진의 편견을 부수기에 충분히 섬세하고 몽환적이었다. 사라 문은 1976년엔 막스마라의 광고사진을 촬영했다(사진①). 막스마라의 광고사진을 촬영한 아서 엘고트는 패션잡지 보그와의 작업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2023.10.17 14:11:49

    사라 문 등 사진작가 막스마라 이념 잘 살려[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루드밀라 코트, 전 세계 여성들 사랑 받아[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막스마라② 미국의 사진작가 윌리엄 웨그먼은 반려견을 의인화해 사진을 찍어 1970년대 미국 서부의 개념 미술을 이끈 인물이다. 그의 반려견 만 레이는 독일에서 개량된 와이머라너 개의 한 품종이고 회색의 짧고 매끈한 털이 전신을 덮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만 레이라는 강아지 이름은 웨그먼이 가장 존경하는 사진작가 만 레이의 이름을 따 지었다고 한다. 웨그먼은 반려견 만 레이에게 인간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교감 훈련을 오랫동안 했다. 그 결과 반려견 만 레이는 사람처럼 슬픔·기쁨·우울함 등 많은 표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됐다. 반려견 만 레이는 인간처럼 표정을 짓고 몸은 인간이 옷을 입은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필자가 사진 공부를 할 때 본 웨그먼의 사진에서 만 레이는 사람처럼 공허한 눈빛을 표현하는 것을 보고 웨그먼의 작품 세계에 감동한 적이 있다. 웨그먼은 아크네·샤넬·이브생로랑 등 많은 패션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했다. 그중에서도 2001년 막스막라의 코트를 입은 만 레이 사진이 인상적이다(사진①). 깔끔한 스타일에 고급스러운 소재를 사용한 막스마라의 코트는 현대적 감성을 완벽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커리어 우먼에게 잘 어울린다. 막스마라 코트는 크게 4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101801 코트는 프랑스 출신의 디자이너 앤 마리 베레타가 1981년 트렌치코트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고 출시 직후부터 전 세계 많은 여성들에게 사랑 받았다. 101801 코트(사진②)는 일명 마담 코트라고도 하며 허리를 죄는 벨트가 없는 오버사이즈 핏, 톱니바퀴의 라펠로 다소 남성적인 느낌이 나는 더블 버튼 여밈의 코트다. 기모노 스타일의 소매에 막스

    2023.09.26 12:14:14

    루드밀라 코트, 전 세계 여성들 사랑 받아[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 슬로건, ‘도시 여성의 지적 삶의 표현’ 내걸어[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막스마라① 최근 콰이어트 럭셔리(quiet luxury)라는 조용한 럭셔리, 즉 가치를 대놓고 드러내지 않는 럭셔리가 인기다. 올드머니룩(old money look)도 같은 맥락이다. 올드 머니는 집안 대대로 상속으로 물려받은 재산을 뜻한다. 고급스러운 소재와 심플한 디자인으로 부를 과시하지 않으면서 상류층의 럭셔리한 스타일을 표현하는 것을 ‘올드머니룩’이라고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유행) 시절 패션 리더들은 과감한 노출 패션, 로고와 모노그램으로 장식된 옷과 가방으로 과시형 소비 형태를 보였다면 팬데믹 이후 패션 리더들은 조용한 럭셔리 스타일을 표방하고 있다. 그들은 로고를 최소화하고 고급스러운 소재와 무채색에 가까운 모노톤의 색상을 사용해 럭셔리한 패션을 선보이고 있다. 고급스러운 캐시미어·캐멀·알파카 소재의 막스마라 코트는 올드머니룩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제품 중 하나다. 막스마라는 1951년 아킬레 마라모티가 ‘도시 여성의 지적인 삶의 표현’이라는 슬로건으로 창업했다. 아킬레 마라모티는 이탈리아에서 대대로 옷을 만드는 가정에서 1927년 1월 태어났다. 그의 증조모는 1850년 레지오 에밀리아 시내 중심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했고 어머니는 패턴 제작을 가르치는 양재학원을 운영했으며 ‘재단의 기술’이라는 책을 편찬하기도 했다. 고급 소재·편안한 재단, 이탈리아 감성 표현 의류 제작 과정을 보면서 자란 그는 로마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고 파르마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스위스에 있는 레인코트를 만드는 회사에 취업했지만 어려서부터의 꿈인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다. 24세가 되던 1951년 공식적으로 ‘마라모티 콘

    2023.09.13 12:27:59

    슬로건, ‘도시 여성의 지적 삶의 표현’ 내걸어[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장인정신, 펜디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펜디② 1925년 창업한 펜디는 올해로 98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이 역사에서 칼 라거펠트는 펜디와 54년을 함께했다. 펜디는 라거펠트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1965년 펜디의 다섯 자매가 라거펠트를 모피 디자이너로 임명하면서부터 펜디의 모피 제품은 기존의 고정 관념을 바꿨고 가볍고 패셔너블한 제품으로 독특한 차별성을 가지게 됐다. 글로벌 럭셔리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헤리티지로 소비자의 사랑을 꾸준히 받아 오고 있다. 20세기 중반 기성복 패션이 활성화되면서 ‘오트 쿠튀르(상류층인 귀족이나 왕족을 위한 고급 옷을 만드는 의상실)’ 중심의 기존 패션 하우스들의 활동이 주춤해지고 디자이너들의 세대교체가 이뤄졌다. 창업자가 아닌 디자이너가 패션 하우스를 책임지게 되면서 외부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시도가 이뤄진 것이다. 패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산업의 규모가 커지고 브랜드와 디자이너 수도 증가하고 다양화되고 있다. 수많은 브랜드와 디자이너들은 선의의 경쟁을 하며 현대인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그들의 이목을 사로잡을 수 있고 만족감을 높일 수 있는지 고민하고 있다. 이러한 핵심 고민을 하는 주체로서 패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역량이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칼 라거펠트, 가장 성공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민감한 소비자의 감성이 패션 시장의 변화를 가져오면서 오래된 전통성을 가지고 명성을 유지해 오던 하이엔드 럭셔리 브랜드들은 그들만의 헤리티지를 발전시켜 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찾게 됐다. 이러한 패션 시장의 변화의 움직임 속에서 오랜 세월 동안 최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

    2023.09.01 14:11:49

    장인정신, 펜디 지탱하는 또 하나의 힘[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칼 라거펠트 합류, 눈부신 발전·성공 거둬[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펜디① 역사와 전통을 가진 명품 패션 브랜드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고 불리는 후임 디자이너를 발탁해 각 브랜드만의 독특한 차별성과 역사를 이어 오고 있다. 패션 하우스는 창업 디자이너의 활동 마감 이후 새로운 디자이너를 영입하게 되는데 이는 ‘수석 디자이너’, ‘헤드 디자이너’, ‘아트 디렉터’로 불리다가 20세기 후반 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됐다. 디자이너 샤넬 사망 후 칼 라거펠트가 오랫동안 샤넬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했고 크리스찬 디올 타계 이후 디올 하우스를 21세의 젊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펜디 또한 라거펠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하고 나서 눈부신 발전과 성공을 거뒀다. 1925년 핸드백·모피로 창업, 날로 번창 1925년 에르아르도 펜디와 아델 펜디 부부가 로마에서 핸드백과 모피로 펜디를 창업했다. 아델 펜디 부인은 결혼 전 모피와 가죽을 전문으로 하는 가게를 운영했었다. 펜디 부부는 시대의 흐름을 잘 읽기도 했고 행운도 함께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탈리아는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신흥 중산층이 크게 늘어났다. 이들은 핸드 메이드의 고급 제품들을 원하기 시작했다.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인 아델 펜디는 마구의 최고 용품을 만드는 장인을 찾아가 펜디를 위해 일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백이 셀러리아백이다. 1925년에 탄생한 셀러리아백은 이탈리아어로 말안장을 제작하는 워크숍을 의미한다. 펜디 부부의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펜디의 명성은 1930년대와 1940년대를 거치면서 로마 지역뿐만 아니라 밖으로 점

    2023.08.17 15:29:15

    칼 라거펠트 합류, 눈부신 발전·성공 거둬[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경제학 전공한 배우 지망생 톰 브라운, 디자이너가 되다[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톰 브라운①패션의 아이콘(패션으로 관심을 끌고 숭배의 대상이 되는 사람)인 지드래곤(권지용 빅뱅의 멤버 가수)이 한때 톰브라운의 거의 모든 제품을 입어 화제가 됐다. 아마도 패션에 관심이 있는 젊은 남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톰브라운의 회색 4줄 카디건과 엉덩이를 가리지 않는 짧은 길의의 재킷에 짧은 소매, 복사뼈가 보이면서 7cm 정도 접어 올린 짧은 바지의 톰브라운식 슈트 코디네이트 방법을 선호할 것이다. 드라마 ‘펜트 하우스’에서 철없는 부잣집 아들 역의 배우 봉태규 또한 톰브라운 제품을 대거 입고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톰 브라운은 1965년 9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엘렌타운에서 태어났다. 인디애나 주 노터데임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배우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1988년 배우가 되기 위해 영화의 본고장인 로스앤젤레스로 이주했지만 결국 배우의 길을 포기하고 1997년 뉴욕으로 이주해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룸에서 판매원으로 일하게 됐다. 패션 전공하지 않고 디자인 교육도 안 받아정치학을 전공한 미우치아 프라다, 의대를 중태한 조르지오 아르마니처럼 톰 브라운 역시 패션을 전공하지 않고 정식으로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디자이너로서의 정식 경력은 조르지오 아르마니에서 나와 클럽 모나코로 직장을 옮겨 보조 디자이너로 일한 것이 톰브라운 브랜드를 론칭하기 전의 경력의 전부다. 2003년 톰 브라운은 뉴욕시 웨스트빌리지에서 메이드 투 메저(맞춤복)로 운영되는 매장에서 회색 슈트 5벌을 제작하며 사업을 시작했다. 각 재킷과 바지와 함께 회색 카디건과 흰색 옥스퍼드셔츠(약간 도톰하게 짜여진 면

    2023.08.01 09:37:00

    경제학 전공한 배우 지망생 톰 브라운, 디자이너가 되다[류서영의 명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