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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막걸리 대서사의 시작 진주곡자공업

    [막걸리 열전]막걸리 양조장을 취재하는 동안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는 단연 ‘누룩’이다. 누룩은 쌀과 물 이외에 기본 막걸리를 만드는 데 유일하게 들어가는 재료이고 한국 전통주 발효의 원천이기도 하다. 특히 이곳 진주곡자공업은 3대가 대를 이어 운영하는 한국 최대 누룩 생산소로, 전국의 수많은 양조장과 함께 전통주의 흐름을 이어 가고 있다. 이진형 대표는 한국 전통주의 과거와 현재를 넘어 앞으로도 함께하고 싶다는 뜻을 비치는 한편 진주곡자공업의 누룩을 사용하는 양조장에도 감사를 전했다. 막걸리의 시작이자 이번 기행의 마지막 목적지인 진주곡자공업 이야기다.진주곡자공업은 1974년 한국곡자 진주영업소가 문을 닫으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한국곡자 당시에는 이진형 대표의 외조부가 운영했고 이후 이 대표의 아버지가 진주곡자로 이름을 바꿔 가업을 이었다. 이진형 대표가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뛰어놀며 자라서인지 곳곳에 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깃들어 있다.“제가 두 살 때부터 외할아버지를 이어 아버지가 이곳 일을 도맡아 하셨어요. 지금 직원들이 쓰는 휴식 공간이 예전엔 우리 살림집이었고요. 저건 제가 놀던 농구대 자국이에요.” 그는 어릴 때부터 형제들에게 크면 자신이 곡자를 이을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자주 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때는 누룩이 아닌 다른 것에 흥미를 가졌었다.“대학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회사에 오래 다녔어요. 그런데 시대가 점점 변하면서 아버지가 곡자 운영을 버거워하신다는 것을 알았죠. 정부 관련 부처에서 업무 환경을 개선할 것을 요구했고 모든 서류가 시스템화되면서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어요.”결국

    2022.01.16 06:00:18

    막걸리 대서사의 시작 진주곡자공업
  • 세 친구가 함께 꿈을 그리는 양조장 벗드림[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부산 북구 만덕동 주택가 상가 건물 2층에 벗드림 양조장이 있다. 도심 속 작은 양조장인 벗드림은 부산의 발효 문화학교 ‘연효재’에서 교육을 받던 학생들 중 ‘정직한 재료로 정직한 술을 빚어 누구나 다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가치관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2018년 만든 협동조합이다. ‘벗’과 ‘드림(dream)’의 합성어로 ‘친구들이 함께 전하는 꿈’이라는 마음을 담았다.술을 마시면 볼이 빨개지는 벗드림 김성욱 대표의 모습에서 영감을 받아 이름 붙인 ‘볼빨간막걸리’는 벗드림의 대표 탁주다. ‘볼빨간막걸리’의 초성을 따 잔으로 변환시켜 꽉 차 있던 막걸리 잔이 빌수록 볼이 빨개진다는 의미를 담은 로고가 돋보인다. 전통 누룩의 새콤달콤한 맛이 마치 두근두근 설레는 첫사랑의 맛을 닮았다. 정성을 다하는 마음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같은 꿈을 그려 나가고 있는 벗드림의 김 대표와 한형숙 팀장을 만났다.100% 찹쌀 막걸리‘볼빨간막걸리’는100% 찹쌀로 빚어 감칠맛이 뛰어나다. 찹쌀 고두밥을 지어 누룩과 열심히 치대 밑술을 만들고 3일 정도 발효한다. 이후 찹쌀 고두밥을 지어 덧술한 뒤 3주 이상 발효해 완성한다. 찹쌀로만 술을 빚으면 단맛이 도드라지기 때문에 보통은 멥쌀과 찹쌀을 섞거나 멥쌀만으로 빚는데 ‘볼빨간막걸리’는 찹쌀만 쓰는 데도 단맛이 그리 강하지 않다. 이는 누룩과 찹쌀의 합이 잘 맞기 때문이다. 벗드림 양조장에서 사용하는 누룩은 블렌딩 원두처럼 현재 시판되는 전통 누룩을 원하는 비율로 여럿 섞어 사용한다.“검증받은 시판 누룩 중 벗드림이 추구하는 맛에 가장 어울리는 누룩

    2022.01.09 06:00:39

    세 친구가 함께 꿈을 그리는 양조장 벗드림[막걸리 열전]
  • 3대의 정성을 담아 술 빚는 순진도가[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드넓은 모래 포구와 맑은 날 낙조가 황홀하기로 명성이 자자한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 50년 넘게 몰운대 입구 제일 안쪽에 자리한 ‘할매집’은 탁 트인 바다 전경과 푸짐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근처 주민들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그런 할매집을 찾아가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할머니·시어머니·며느리로 3대째 이어 온 막걸리를 맛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할매집 며느리인 박미화 씨는 가양주의 맥을 이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레시피로 한층 더 발전시킨 ‘순진도가’라는 막걸리 브랜드를 만들었다. ‘그 집 막걸리 참 잘해’라고 소문이 자자한 곳. 순진도가의 순진탁주를 마시며 그 명성을 확인해 봤다.순진도가라는 이름을 들으면 ‘순진하다’는 단어를 연상하기 쉽지만 사실 순진도가는 박미화 대표의 시할머니 ‘순이’, 시어머니 ‘순자’, 아들 ‘진만’의 머리글자를 따 지은 이름이다. 처음엔 박 대표와 남편이 함께 술을 빚었지만 지금은 남편이 다대포 몰운대에 있는 노포 ‘할매집’ 운영에 집중하고 박 대표가 순진도가에서 전적으로 술을 빚는다.“어릴 땐 제가 막걸리를 빚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결혼하고 처음 막걸리를 빚게 됐죠. 어머니가 쌀은 이만치, 누룩과 물은 이만치 이래 이래 넣으라고 하시면 그대로 했어요. 소질이 있는지 맛있게 되더라고요.”그렇게 막걸리를 빚은 지 어언 10년. 아이가 자라고 여유 시간이 생긴 박 대표는 본격적인 막걸리 공부를 위해 막걸리 학교에 들어갔다. “처음으로 이론 수업을 듣는 데 재미있었어요. 공부하니까 모르고 만들던 게 하나

    2022.01.02 06:00:09

    3대의 정성을 담아 술 빚는 순진도가[막걸리 열전]
  • 전통주를 향한 꿈이자 시작 문경주조[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경북 공덕산과 용문산 자락, 그 사이를 흐르는 가는 물줄기는 경천호에서 한데 모인다. 그리고 이 산세와 수세가 휘감아 도는 자리에 문경주조가 있다. 이곳의 대표 홍승희 씨는 양조장을 열기 전 전통주 유통업에 몸담았었다. 15년간 다양한 우리 술을 접하고 마시며 좋은 술에 대한 갈망이 커질 무렵, 그는 자신만의 양조장을 갖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리고 2007년, 마침내 홍 대표는 황무지였던 이곳에 여아(麗雅)한 문경주조를 세웠다. 홍 대표는 경북 문경 옆 예천 태생이다. 양조장을 운영하기 전까지 고향에 살며 우리 술을 유통하는 일을 했었다. 그는 무려 15년 이상 우리 술을 가까이하며 몸소 익힌 전통주의 베테랑이었다. 그런 만큼 사람들이 대체로 어떤 맛의 술을 좋아하는지, 전통주를 만드는 과정은 어떠한지, 어떤 양조장이 성심을 다해 술을 빚는지 자연스럽게 체득했다. 그렇게 십 수년을 전통주업계에서 일하며 그 분야의 동태와 생리가 훤히 눈에 익을 때쯤 그는 서서히 자신만의 술을 만들겠다는 꿈을 마음에 품기 시작했다. 그러다 점차 같은 시장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동종 업계 종사자가 하나둘 생길 무렵, 홍 대표는 미련 없이 사업을 접었다.“오랫동안 아주 많은 술을 마셔 봤어요. 여러 양조장도 숱하게 드나들었죠. 그중에는 좋은 술을 제대로 만드는 곳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허다했죠. 그러면서 언젠가는 내 마음에 꼭 드는 정직한 술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들더라고요. 심지어 ‘조만간 나는 이 재료로 이렇게 술을 만들어야지’ 하고 구체적으로 구상했을 정도예요. 그만큼 늘 하고 싶던 일이라 주저 없이 뛰어들었어요. 뭐든지 다 때가

    2021.12.26 06:00:39

    전통주를 향한 꿈이자 시작 문경주조[막걸리 열전]
  • 두술도가의 그림 같은 이야기[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경북 문경 희양산 자락에 자리 잡은 두술도가. 이곳의 주인장 김두수·이재희 부부는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살다가 15년 전 귀농을 결심하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이들 부부는 지금 마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마음과 뜻을 나누며 농사짓고 술을 빚고 있다. 두술도가 라벨에 그려진 동화처럼 어여쁜 두술도가의 이야기 첫 장을 열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미국살이를 동경하던 2000년대 초,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김두수·이재희 씨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렇게 부부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그런데 정작 부부는 좀 달랐다. 이들은 남들의 기준과 다른 삶의 방향을 지향하고 있었다. 이들은 왜 선진 사회, 이상적인 노동 환경 같은 미국에서의 보장된 안정적인 삶을 뒤로하고 한국행을 선택했을까. 의아하다는 생각이 들 때쯤 부부는 미국 생활이 모두의 예상처럼 평안하지만은 않았다며 과거를 회상했다.“미국에서 우연히 ‘녹색평론’이라는 잡지를 읽으며 생태주의, 지속 가능한 삶 등 자연에서 사는 삶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그런데 당시 미국의 상황은 정반대였죠. 정부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나라 안팎으로 떠들썩했고 집집마다 커다란 성조기를 내걸고…. 그야말로 어수선했죠. 경제적인 측면에선 분명 우리의 삶이 안정적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은 그렇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으니까요.”결국 부부는 미국 영주권도 포기한 채 한국에 돌아왔다. 그리고 1년여간의 고민 끝에 경북 문경으로 향했다. 부부가 연고 하나 없는 이곳을 택한 데는 그다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

    2021.12.19 06:00:23

    두술도가의 그림 같은 이야기[막걸리 열전]
  • 귀한 벗과 ‘지란지교’ 한 잔[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2016년, 전통주 시장에 파란이 일어났다. 술을 빚은 지 1년밖에 되지 않은 이가 ‘대한민국명주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한 것이다. 그 주인공은 ‘(유)친구들의 술’의 임숙주 대표다. 순창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가양주 비법과 전통 누룩을 이용해 그가 담근 술이 대상을 차지했다. 대상 수상 이후 한국전통주연구소장은 양조장이 있는 순창군 순창읍에 내려와 곳곳을 면밀히 둘러봤다. 임 대표는 “지금 생각해 보면 직접 술을 빚은 게 맞는지 확인하러 오신 거 같아요”라고 웃음 짓는다. 연구소장은 임 대표와 부인 김수산나 씨가 다정하게 술을 빚는 모습을 보고 부부가 친구처럼 격의 없고 아름답게 지내니 마치 지초와 난초의 향기로운 사귐과 같다며 사자성어 ‘지란지교(芝蘭之交)’를 상품명으로 추천했다. 그렇게 친구 같은 부부의 술, ‘지란지교’가 탄생했다.‘지란지교’, 200일간의 기다림‘지란지교’ 술은 순창 전통의 백일주 방식으로 술을 빚는다. 순창에서 나는 멥쌀과 찹쌀, 직접 만든 전통 누룩과 지하 791m에서 뽑아 올리는 천연 암반수를 사용하는데, 이때 100일 동안 발효하고 90일 동안 숙성 과정을 거친다. 술이 나오기까지 대략 6개월이 걸린다. 김수산나 씨는 “술을 빚는 것은 기다림과 기대감의 연속”이라며 긴 기다림 후 완성된 술을 마시면 모든 인고의 시간이 상쇄되는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전통 누룩을 쓴 ‘지란지교’는 단맛·신맛·쓴맛에 더해 떫은맛과 향까지 오감을 자극한다. 또한 충분한 숙성 덕분에 알코올 도수 13%라는 높은 도수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부드럽다. ‘지란지교’는

    2021.12.12 06:00:17

    귀한 벗과 ‘지란지교’ 한 잔[막걸리 열전]
  • 울산 유일의 양조장 겸 전통주 주점 ‘운곡도가’[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울산 태화강 국가정원 끝자락에 있는 울산 중구 다운동, 한적한 골목 어귀에 ‘운곡도가’가 있다. ‘구름이 끼는 골짜기’라는 의미를 지닌 다운동의 옛 지명 운곡마을에서 이름을 따왔다. 그리고 구름이 낀 골짜기 위에 앉아 있는 토끼 한 마리. 운곡도가의 탁주 ‘토끼구름’의 라벨 그림이다. 몽글몽글한 분홍빛 구름들과 새하얀 토끼, 반짝이는 펄을 덧입힌 어여쁜 토끼구름 라벨은 많은 전통주 사이에서 그 존재감을 뽐낸다. 운곡도가의 황정의 실장을 만나 사람들의 시선뿐만 아니라 입맛까지 사로잡은 토끼구름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가양주를 복원하다운곡도가는 가양주(家釀酒 : 집에서 담근 술)를 복원하려는 황 실장의 아버지 황광조 대표의 일념에서 시작됐다. 황 대표의 집안은 명절이나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대대로 집에서 직접 술을 빚어 마셨다고 한다. 집안의 전통 양조법을 복원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구한 끝에 2018년 원래 살던 주택 1층을 개조해 소규모 양조장 겸 전통주 주점인 운곡도가를 설립해 옛사람들의 주막처럼 술을 직접 빚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운곡도가는 울산 유일의 전통주 주점으로, 운곡도가에서 제조한 막걸리는 물론 지역 특산 막걸리와 프리미엄 막걸리·약주·소주 등 다양한 전통주를 만날 수 있다. 처음 만든 제품은 가양주 양조법을 기반으로 한 삼양주 ‘황감찰’로 도수가 높고 진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특징이다. 울산 울주군 고헌산 자락 차리 마을에서 재배한 햅쌀과 햇찹쌀로 정성껏 빚고 여기에 참당귀 뿌리, 생강, 곰솔 잎 등을 재료로 사용해 약재 특유의 감칠맛까지 느낄 수 있다. “주점의 장점은

    2021.11.28 06:00:58

    울산 유일의 양조장 겸 전통주 주점 ‘운곡도가’[막걸리 열전]
  • 반세기의 전통을 이어 온 ‘울산탁주·태화루’[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내도 30년 넘게 태화루만 마신다꼬. 을매나 맛있는지 안 마셔보면 몰라.”울산탁주·태화루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의 ‘태화루’ 예찬이 이어진다. 운전사뿐만 아니라 울산에서 만난 울산 시민들 모두가 하나같이 태화루에 대한 애정이 듬뿍하다. 어딜 가든 “막걸리 한 병 주세요”라면 당연한 듯 태화루가 나온다.태화루는 주로 울산에서만 유통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선 인기를 체감하지 못하다가 울산을 방문했을 때야 비로소 그 진가를 알게 된다. 대체 어떻게 만들기에 이토록 사랑받는지 궁금증을 안고 울산탁주·태화루의 이범형 연구실장을 만났다.옛날 막걸리 그대로1969년 울산에 있는 12개의 탁주 공장을 합친 ‘울산탁주공동제조장’이 지금의 울산탁주태화루가 됐다. 처음부터 막걸리에 태화루란 이름이 붙은 것은 아니다. 처음 만들 당시엔 울산을 대표하는 ‘태화강’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다가 1980년대 들어 ‘태화루’로 이름을 바꿨다. 태화루로 40년, 태화강까지 합하면 반세기가 넘게 명맥을 이어 오고 있는 것이다.“태화루 병을 보면 누군가는 예스럽다고 하고 누군가는 촌스럽다고 하기도 해요. 하지만 이게 바로 태화루입니다. 옛날에 먹던 맛 그대로를 고집스럽게 지켜 온 우리의 방식을 느낄 수 있죠.”가격 또한 막걸리는 부담없이 마실 수 있는 친근한 술이라는 신념을 그대로 반영했다. 750mL 한 병에 1600~1700원으로, 언제든 가벼운 마음으로 태화루를 마실 수 있다. 태화루의 울산 지역 내 시장점유율이 약 90%라고 하니 시민들도 이 마음을 알아주는 듯하다.맛은 그대로 제조는 최첨단으로태화루의 맛은

    2021.11.21 06:00:21

    반세기의 전통을 이어 온 ‘울산탁주·태화루’[막걸리 열전]
  • 시는 술이 되고, 술은 예술이 된다[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동몽(同夢)’, ‘만강에 비친 달’, ‘동짓달 기나긴 밤’, ‘배꽃 필 무렵’. 한 편의 시서와도 같은 이 어휘는 전통 주조 ‘예술’의 술 이름이다. 예술을 방문하기 전, 저 술의 이름을 두고 경우의 수를 예상했다. 양조장의 이름에 기반해 술의 이름 또한 예술로 지은 것이거나 술의 향미를 예술에 빗대었거나 그도 아니면 술을 빚는 이가 거룩한 낭만파이거나…. 그렇게 궁금증을 가득 품고 굽이진 산길을 지나 이윽고 홍천 백암산 자락에서 전통 주조 ‘예술’의 문을 열었다. ‘예술’이 첫 간판을 내걸었던 것은 2012년이지만 이곳의 주인장 정회철‧조인숙 부부가 이곳 내촌면에 터를 잡은 것은 2008년부터다. 당시에는 양조장을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로 도시살이를 접고 내려온 것이라고 한다. “쉬면서 목재도 만지고 술도 만지고 그랬어요. 취미로 슬며시 시작한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13년 전엔 몰랐죠.” 하고 많은 취미 가운데 왜 술에 손을 담갔느냐는 물음에 그는 어릴 적 양조장에 대한 좋은 기억 덕분이라고 대답했다. “친가였던 군산에 이따금씩 놀러 가면 할아버지 심부름으로 양조장에서 술을 받아 갔는데, 아직도 그 양조장 땅 밑에 묻어 뒀던 술 항아리와 술이 담긴 주전자, 동네 사람들과 술 한잔으로 즐거워하던 할아버지의 모습이 생생해요.” 그뿐만 아니라 부부는 양조장을 시작하기도 한참 전 한 신문에 게재된 전국 양조장 기사를 보고 무작정 투어를 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지금엔 그때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정 대표는 덧붙였지만 그것은 부부가 품은 전통주에 대한 애정이자

    2021.11.07 06:00:59

    시는 술이 되고, 술은 예술이 된다[막걸리 열전]
  • 마을과 함께 익어 가는 술 [막걸리 열전]

    [막걸리 열전]물건을 사고팔고 구경하는 사람들이 뒤섞인 시장 풍경 속에 양조장이 있다. 불그스름한 벽돌이 켜켜이 쌓인 예쁜 건물 위로 ‘술에 스미다’라는 간판이 견고히 자리 잡았다. 이곳에 술로 뭉친 두 사람이 있다. 만면에 포근한 미소를 띠고 또 다부진 목소리로 그들은 우리 삶 속에 은은히 스며들어 깊어지는 술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오색시장 길목에 자리 잡은 ‘오산양조’는 경기도 오산시에 딱 하나뿐인 양조장이다. 김유훈 대표와 오서윤 이사, 두 지역민을 필두로 마을 주민들이 의기투합해 설립했다. 오산양조는 행정안전부가 선정한 마을기업이다. 마을기업은 지역의 자원을 활용한 수익 사업을 통해 기업뿐만 아니라 지역 공동체의 이익을 실현하는 곳이다. 주민 주도형 기업으로 기업과 지역 사회 간 선순환을 만드는 데 앞장선다. 김 대표와 오 이사는 바로 전통술이 오산에 의미 있는 역할을 해줄 것이라고 확신했다.전통을 잇는 마을기업 시에서 환경 개선 사업을 진행하며 시장 일대를 정비할 때 김 대표는 잘 운영하고 있던 가업을 정리했다. 오로지 나고 자란 오산을 생각하며 새 사업을 모색하던 중 그는 문득 어린 시절 기억을 떠올렸다. 큰 은행나무 아래 평상에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마당에는 아이들이 뛰어놀던 활기차고 정겨운 동네 양조장을 말이다. 한편 오 이사는 취미로 양조를 접하고 전통주의 매력에 점점 빠져들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로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오산의 대표 전통주를 만들고 싶은 소망을 품게 됐다. 그런 두 사람이 만나 오산양조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양조장은 김 대표의 옛 사업체 자리에 새로 지어졌다. 공간을 둘로 나눠 한쪽

    2021.10.24 06:00:29

    마을과 함께 익어 가는 술 [막걸리 열전]
  • 오미(味)가 담긴 술을 내는 미담양조장

    [막걸리 열전]“효모들이 만들어 준 술맛은 참 멋있어요.”홍천 제곡리에 있는 미담양조장의 조미담 대표는 자신이 빚을 술을 이야기할 때 저런 표현을 썼다.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의 땀과 손으로 술을 만들고는 불현듯 효모가 술을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러고는 ‘나의 정성을 유일하게 알아차리는 이는 다름 아닌 술’이라며 술의 예찬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그의 술 사랑론은 해가 뉘엿뉘엿해질 때까지 이어졌다. 다음은 푸른 하늘을 품은 정겨운 양조장에서 조 대표와 나눈 그와 술과의 무용담이다.1600년대 말이나 1700년대 초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주방문(酒方文)’에는 28종의 술, 46가지 음식 등 모두 74가지 조리법과 가공법이 소개돼 있다. 그리고 여러 술 가운데 ‘석탄주(惜呑酒)’가 실려 있다. 이름조차 생소하지만 사실 이 석탄주에는 아름다운 향과 맛 때문에 사라짐이 애석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조 대표는 15여 년 전 전통주에 입문하며 석탄주를 재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오늘날 미담양조장의 대표 술은 이를 기반으로 한 석탄주와 미담생탁주다.전통주의 시작 과거 조 대표는 서울 시내 대학가에서 주점을 운영했었다. 그런데 젊은이들 대부분이 기분 좋은 날 막걸리에 거나하게 취하면 다들 다음날 숙취로 고생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리고 “외국 술과 달리 우리 막걸리는 마시고 난 후 왜 이렇게 숙취가 심할까요”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런 질문을 많이도 받았던 터라 본인도 그것에 대해 석연치 않은 의문을 품었고 훗날 우연한 계기로 전통주를 배우면서 그 원인이 미숙수와 인공 감미료 등 여러 가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그 후

    2021.10.17 06:00:25

    오미(味)가 담긴 술을 내는 미담양조장
  • [막걸리열전] 1000년 역사가 깃든 막걸리, 삼양춘

    [막걸리 열전]우리 선조들에게 술은 단지 맛과 흥을 위한 단순한 기호식품이 아니었다. 관혼상제에서 예를 갖출 때도, 일상의 기쁨과 슬픔을 나눌 때도 늘 함께하는 문화 그 자체였다. 그 덕분에 전국에는 각 지역의 전통과 문화를 담은 전통주가 전해져 내려온다.그중에서도 인천의 삼해주는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고려시대부터 궁과 사대부, 백성들의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랑받을 정도다. 그 흔적은 고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려시대 최고의 문장가인 이규보는 술을 마시지 않고서는 시를 지을 수 없을 정도로 애주가였다. 인천에 살던 그가 즐겨 마시던 술이 바로 삼해주다. 그는 ‘동국이상국집’에 삼해주의 맛이 뛰어나다고 감탄한 시를 남기기도 했다. 조선시대 어의 전순의가 1450년께 쓴 ‘산가요록’, 1670년대 쓰인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에도 삼해주 빚는 법이 실려 있다.‘전통주 1세대’ 양주장으로 꼽히는 송도향전통주조는 바로 이 삼해주에서부터 출발했다. 삼해주가 평생 술 빚는 일과는 인연이 없던 강학모 대표를 전통주 사업에 뛰어들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역 공기업을 퇴직한 뒤 제2의 인생을 계획하던 그에게 삼해주의 오랜 전통은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고향인 인천에 기여할 수 있고 지역의 문화를 담고 있으면서도 잠재력이 있는 사업을 찾아나서던 그에게 삼해주는 삼박자를 모두 만족시키는 아이템이었다.막걸리가 한 병에 만원이라니지금은 막걸리를 생산하는 것이 트렌디한 스타트업으로 여겨지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양조’를 경쟁력 있는 사업으로 인정하지 않던 때였다. “‘집에서 빚

    2021.10.10 06:00:09

    [막걸리열전] 1000년 역사가 깃든 막걸리, 삼양춘
  • [막걸리열전] 한 지붕 아래 두 양조장, ‘아리랑주조·두이술공방’

    충청남도 청양군 칠갑산 자락, 광활한 논밭을 지나 도착한 곳은 ‘아리랑주조’의 간판이 걸려 있는 양조장. “여기는 아리랑주조이면서 두이술공방이기도 합니다.” 이윤범 대표의 인사에 의문이 들었다. 알고 보니 ‘아리랑주조’와 ‘두이술공방’은 같은 부지, 같은 대표가 운영하는 양조장이었던 것. 한 지붕 아래 두 개의 이름이 붙은 재미난 사연을 만나봤다.같은 듯 다른 두 개의 양조장2009년 귀농을 꿈꾸던 부부가 충청도의 부지를 둘러볼 때였다. 별다른 소득 없이 서울로 돌아오려던 차에  눈에 들어온 곳이 바로 폐양조장이었다. 부부가 양조업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남편 이윤범 대표의 선친은 전남 함평에서, 부인 이윤미 대표의 외조부는 목포와 무안 경계에서 양조장을 운영했기에 두 사람에게 양조장은 낯설지 않은 장소였다. 부부는 과감하게 양조업에 뛰어들었다.연고가 없던 충남 청양군에 자리 잡고 ‘우리의 정서가 담긴 술을 만든다’는 의미를 담은 ‘아리랑주조’를 설립했다. 10년간 ‘겨울소주25’, ‘구기홍주’, ‘알밤막걸리’ 등 다양한 주류를 생산하며 입지를 다졌다. 그리고 2019년 부부는 지역 농산물을 활용한 지역 특산주 생산에 도전했다.현재 주세법상 지역 특산주를 보호하기 위해 지역 특산주가 아닌 술을 생산하는 곳에는 같은 주종으로 동시 제조 면허를 내주지 않아 새 양조장 면허가 필요했다. 결국 아리랑주조 공장 건물의 구역을 나눠 또 다른 술 공방을 차렸다. 부부의 성을 따 ‘두 이 씨(氏)가 술을 만드는 공방’이라는 의미의 ‘두이술공방’이다. 아리랑주조로 10년 동안 쌓은 노하

    2021.10.03 06:00:39

    [막걸리열전] 한 지붕 아래 두 양조장, ‘아리랑주조·두이술공방’
  • 상쾌함을 빚는 ‘동강주조’

    [막걸리 열전]‘개봉 시 절대 흔들지 말아 주세요.’ 막걸리를 마시기 전 으레 하는 행동이 있다. 병 윗부분의 맑은 술과 아래의 침전물을 고루 섞기 위해 막걸리 병을 흔드는 것. 하지만 이 행동을 금하는 막걸리가 있다. 풍부한 천연 탄산뿐만 아니라 깔끔한 맛으로 대중의 입맛을 사로잡은 막걸리, ‘얼떨결에’다. 2020년 가을 1인 양조장 ‘동강주조’를 설립해 운영한 지 아직 만 1년도 채 되지 않은 방용준 대표를 만났다.‘얼떨결에’ 막걸리를 빚다얼떨결에 막걸리를 빚었다는 홍보 문구 뒤엔 누구보다 성실하고 치밀하게 준비한 방 대표의 노력이 있다. 그의 시작은 엔지니어였다. 5년간 엔지니어로 일하면서도 발효 공학과 주조에 대한 관심은 더해만 갔고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7년간 여러 수제 맥주 회사를 거치며 모든 과정을 몸과 머리로 익혔다. 수제 맥주 브랜드들처럼 우리 전통주도 주류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을 것이란 욕심이 생겼고 고향인 강원도 영월에 돌아와 지금의 동강주조를 설립했다.스파클링 막걸리 ‘얼떨결에’는 동강주조의 첫 제품이다. 병 안팎으로 영월이 가득하다. 병 안쪽으로 영월에서 생산된 햅쌀에 국내산 누룩과 효모, 정제수를 배합해 만든 탄산 막걸리가 담겼고 밖으로는 영월의 동강을 상징하는 파란 물결과 톡톡 터지는 탄산의 형상을 로고에 넣었다.“얼떨결에란 제품명처럼 누구든 얼떨결에 이 막걸리를 선택하고, 편하게 마실 수 있었으면 해요.”타깃층은 확실하다. 막걸리에 거부감이 있거나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입문용 막걸리다. 출시된 지 반 년도 지나지 않아 입소문이 퍼졌다. 한 달 평균 600

    2021.09.26 06:00:20

    상쾌함을 빚는 ‘동강주조’
  • MZ세대가 빚는 전통주 ‘일곱쌀˙아홉쌀’

    [막걸리 열전]술이 달라지고 마시는 자리가 달라졌다. MZ세대(밀레니얼+Z세대)는 더이상 ‘부어라 마셔라’ 하지 않는다. 색다른 경험에 거리낌이 없어 주종이 다양해지고 개인의 취향과 시간을 존중받을 수 있는 ‘홈술’이 늘었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위한 ‘조금 더 좋은 것’을 기꺼이 찾는 행복을 누린다. 여기 그런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술이 있다. MZ세대 주인장이 운영하는 한아양조는 보기에 좋고 맛도 좋은 술을 정성껏 빚는다. 찾아 나서지 않을 이유가 없다. 조용한 동네 골목 틈에 새 가게가 들어섰다. 작은 입간판을 지나 쌀 모양 로고 하나로 단출하게 장식된 문을 열면 양조장이다. 조금 낯선 풍경이다. 양조장의 주인이자 모든 일을 책임지고 있는 유일한 노동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한아영 대표는 안정적인 직장을 다니던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난데없이 양조를 시작하게 된 데는 전통을 계승하려는 굳은 사명감이나 남다른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4년 가까운 회사 생활 동안 한 대표는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 행복한 일을 하며 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고 즐겨 마시던 술에서 답을 찾았다. 그리고 살던 곳과 가까운 익숙한 동네에 자리 잡았다. 동네 빵집처럼 막걸리를 팔고 싶다는 한아양조는 그렇게 서울 방배동에 문을 열었다. 두루두루 즐기는 전통주처음부터 막걸리를 만들겠다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오랜 시간 술을 경험하고 공부하다 보니 전통주 맛의 넓은 스펙트럼에 매료됐고 확장 가능성이 무한한 술이라고 판단했다. 한아양조는 ‘쉽고 재미있는 술’을 지향한다. 한정된 맛과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남녀노소 즐겁게 마실 수 있기를 바

    2021.09.12 06:00:14

    MZ세대가 빚는 전통주 ‘일곱쌀˙아홉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