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33세 다니엘 리, ‘뉴 보테가 베네타’ 시대 열어[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보테가 베네타 ③현재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를 이끄는 맨 앞에 두 그룹이 있다. 첫째는 베르나르 아르노가 이끄는 루이비통모에헤네시(LVMH)그룹이다. 2020년 매출이 440억 유로(약 61조8200억원)에 달한다. 둘째는 프랑수아 앙리 피노가 이끄는 케링그룹으로, 2020년 매출은 131억 유로(약 18조4000억원)였다. LVMH 그룹이 소유한 명품 브랜드는 루이비통·크리스찬 디올·펜디·에밀리오 푸치·지방시·겐조·마크 제이콥스·셀린느·태그 호이어·쇼메·불가리·로로피아나·티파니 등이다. 케링그룹은 구찌·보테가 베네타·생 로랑·알렉산더 맥퀸·발렌시아가·부쉐론·브리오니·스텔라 매카트니 등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케링그룹은 2001년 보테가 베네타 브랜드를 인수한 뒤 토머스 마이어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했다. 그 뒤 보테가 베네타는 명품 브랜드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지켜 나갔다. 마이어는 위기의 보테가 베네타를 살리기 위해 미니멀한 콘셉트의 디자인 위주로 콘셉트를 바꿨다. 기존 액세서리 브랜드에서 여성복·남성복·향수 등으로 영역을 넓혀 나가면서 토털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그의 베스트셀러 아이템은 ‘까바백(사각형의 양가죽으로 만든 조금 큰 사이즈의 토트백)’과 ‘놋백(어깨끈이나 손잡이가 없는 여자들이 손에 드는 작은 형태의 가방으로 다양한 잠금장치를 장식으로 사용)’을 손꼽을 수 있다.그는 또 라 스쿠올라 델라 펠레테리아라는 가죽 제품 장인 양성 학교를 세우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17년간 보테가 베네타에서 일한 마이어는 몇 년 동안

    2022.11.15 15:57:44

    33세 다니엘 리, ‘뉴 보테가 베네타’ 시대 열어[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신예 디자이너 톰 포드, 구찌 패션 명가로 만들다

    [류서영의 명품이야기] 구찌⑦구찌 창업자의 손자인 마우리치오 구치는 다시 한번 구찌의 영광스러운 과거를 회복하기 위해 에르메스나 샤넬과 같은 고가의 명품 브랜드로 포지셔닝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구찌는 적자를 면하지 못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투자은행 인베스트코프는 1987년 이후 구찌에 수억 달러를 투자했지만 투자자들에게 수익을 돌려주지 못해 매각을 고민하기도 했다. 마우리치오는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하버드 법대 출신의 전문 경영인 도메니코 드 솔레와 버그도프 굿맨(미국의 고급 백화점) 출신의 던 멜로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고용했다.미국 뉴욕 파슨스 스쿨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톰 포드는 패션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했다. 그는 패션업계에 몸담기 위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일했고 열정적으로 도전을 시작했다. 그는 뉴욕에서 활동하던 유명 디자이너 캐시 하드윅에게 한 달 동안 매일 전화를 걸어 인터뷰 약속을 받아냈다. 포드는 하드윅 아래에서 보조 디자이너로 2년간 일했다. 포드는 1988년 마크 제이콥스가 디자이너로 일하는 페리 엘리스에 취업해 2년간 근무했다.톰 포드, 1990년 구찌 여성복 디자이너로 근무 시작뉴욕에서 패션에 대한 자신의 재능에 눈뜨게 된 톰 포드는 유럽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포드는 자신의 패션 스타일이 유러피언 스타일이라고 믿고 있었고 이때 이탈리아에서 일할 미국 디자이너를 물색하던 던 멜로의 눈에 띄게 됐다. 멜로의 제안으로 1990년 포드는 구찌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근무하기 시작했고 그의 나이는 29세였다.포드를 채용한 멜로의 날카로운 안목은 적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구찌는 가방이나 신발 등 가죽 제품 브랜

    2021.10.03 06:00:10

    신예 디자이너 톰 포드, 구찌 패션 명가로 만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