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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이름이 ‘조이(JOY)’인 이유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한경잡앤조이=심민경 그립컴퍼니 매니저] 회사에서 나의 이름은 조이(Joy), 회사에 합류하는 시점에 즉흥적으로 나 자신에게 부여한 이름이다. 내 이름이 ‘기쁨’인 데는 이유가 있다. 이전 회사 동료들이 나를 긍정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 여겨 지어준 소중한 별명을 감사히 계승하고 싶었다. 또 다른 이유는 바로 새 회사를 향한 나의 마음가짐을 나 자신에게 상기시켜주고 싶어서다.  기쁜 마음으로 일을 하고 싶었고, 동료들에게 기쁨이 되고 싶었다. 그런 소망을 담아 지었다. 소위 이름값 하고 싶었던 거다. 그래서 이름값 하고 있냐고 묻는다면, 아직은 멋쩍게 웃을 수밖에 없다. 사실, 이름이라는 게 현상, 상태를 일컫기보단 하나의 소망 혹은 지향하는 태도에 가까운 것 아닐까 싶다. 이름에 대한 사족이 길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일하는 나’의 감정이다. 자신을 기쁨이 가득한 사람이라 포장했지만 나라고 매일 마냥 기쁘고 긍정적이진 않다. 하루하루가 기쁘다면 그건 미친 거겠지. 일을 하다 보면 사실 답답하고, 울화통 터지고, 속상한 일이 불쑥 나타난다. 그게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 일 수도 있고, 내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방일 수도 있고, 어떻게 손 쓰지 못할 상황일 수도 있다. 정말 어떤 날은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세상을 원망할 때도 있고, 온갖 감정을 끌어 모아 동네방네 투정 부리고 싶을 때도 있다. 그래서 진짜로 투정 부린 경험도 있었고, 말실수를 한 날도 부지기수다. 그런데 정말이지 신기하게도 다음 날이면 그런 사사로운 감정은 대부분 사라지고 나 답지 못하게 행동한 민망함만 남았다. 이런 사이클을 무한 반

    2022.01.17 09:01:55

    내 이름이 ‘조이(JOY)’인 이유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 2021년은 나에게 어떤 한 해였을까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한경잡앤조이=심민경 그립컴퍼니 매니저] 2021년을 돌아본다. 나의 2021년을 대표하는 세 가지 키워드가 딱 떠오른다. 가장 중요한 키워드를 꼽으려고 한다면 바로 그건 '이직’이다.이직은 준비 과정만큼이나 적응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훌륭한 팀과 문화 덕에 무사히 적응했다. 회사에 가는 게 즐겁고, 한 해를 돌아보며 회고할 수 있는 여유까지 생겼으니 말이다.누구나 이직을 하지만, 누구나 한다고 해서 이직이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다. 내가 했던 일을 정리하는 일부터 인터뷰에 올라가는 과정, 조직과의 작별, 새로운 조직에서 새 옷을 맞춰 입는 과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요구했다. 나를 끊임없이 어필하고, 증명해야 하는 과정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 그 자체이니까.“정말 이게 너야?”, “진짜 이 일을 하고 싶은 게 맞아?”,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그 어떤 회고보다, 나 자신을 각성하게 만드는 계기가 바로 이직이었다. 어쨌든 내게는 대단한 도전이었다. 두번째 키워드는  '성장’이다. 조직의 성장과 개인의 성장이 비례할 순 없다는 슬픈 사실을 알기에 조직이 거듭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홀로 조바심이 났다.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질까 고민했던 순간도 있었다. 그렇지만 새로운 다짐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성장하자고, 그리고 적극적으로 나누고 이야기하자고.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실행과 결과에 대한 나눔. 나의 시도가 다른 동료에겐 (길은 아니더라도) 실마리가 될 수 있도록 흔적을 남기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동료에게 도움이 된다면 공유하는 것은 일도 말하고 싶지만, 흑역

    2021.12.30 09:53:09

    2021년은 나에게 어떤 한 해였을까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 과정, 결과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면…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한경잡앤조이=심민경 그립컴퍼니 매니저] 나는 어릴 적부터 모래놀이를 좋아했다. 두 손과 모래만 있으면 뭐든 만들 수 있었으니까. 거창한 도구와 재료가 없어도, 내가 상상하는 집을 만들 수 있었고, 모래를 캔버스 삼아 자유롭게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모래놀이가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공들여 만든 모래 작품은 다음날 놀이터에 가면 늘 사라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래놀이가 좋았던 이유는 다시 만들 수 있어서였다. 모래놀이를 하면 내 손으로 무언가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희열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모래의 자유분방한 속성만큼이나 나의 마음도 단순하고, 자유로웠던 시절이었다. 놀이터에서, 운동장에서, 해변에서 어린 시절 나는, 또 우리는 각자가 소망하는 무언가를 매번 만들고, 그리고, 쌓아 올렸다.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더 행복한 순간들이었다.직장인이 되고, 가끔은 내가 과정보다 결과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모래성이 뭐야, 콘크리트로 단단하게 쌓아 올린 튼튼한 건물이 내게 더 중요하지. 그리고 사회에서도 이걸 더 쳐주니까, 안 그래? 비가 오면 허물어질 그런 모래성 말고, 콘크리트와 같은 튼튼한 자재로 세워진 건물이 더 중요하지. 그렇지만 튼튼한 건물은 그냥 지을 수 없다, 일단 부지가 있어야 하고, 관련된 법도 알아봐야 하고, 꼼꼼히 설계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충분한 인력, 예산, 시간이 확보되어야 하니 건물을 세우기 전부터 계산해야 할 것이 참 많다. 선뜻 집을 짓자고 말하기도 어렵다. 중간에 수정도 힘들다, 설계한 대로 계획한 대로 가지 않으면 무너져버릴 테니까. 투자한 시간과 돈은 어쩌고? 많은 것을 잃어버릴 각오를

    2021.12.15 09:35:39

    과정, 결과 둘 다 포기할 수 없다면…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 스타트업엔 월급루팡이 없다?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한경잡앤조이=심민경 그립컴퍼니 매니저] 흔히 회사에서 하는 일 없이 무임승차자처럼 월급만 축내는 직원을 ‘월급루팡’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당백을 해야 하는 스타트업에서는 월급루팡을 찾기가 사실 힘들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리소스가 소중한 곳에서는 오롯이 정직하게 나를 노출하며 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한 사람이 없다고, 조직이 안 굴러가는 것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여러 업무를 도맡아 하는 경우 그 사람의 공백이 여실히 드러나기에 그만큼 구성원 한 명 한 명 채용하는 데 큰 공을 들인다. 이슈를 해결하고, 성과를 내기 위해 뭉친 조직에서는 늘 주도적으로 문제를 찾아내고, 정의하고, 해결하는 사람을 찾는 것에 목말라 있다. 프로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 프로처럼 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돈을 받고 일하는 직장인은 결국 모두 프로고, 프로처럼 일하는 것 아닌가. 프로 자체가 영어단어 ‘professional’의 축약어, ‘어떤 일을 전문으로 하거나 그런 지식이나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가끔 내게 ‘프로’라는 단어는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장 가까이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부터 프로의식을 느낄 때가 많고, 미팅을 통해 만나는 파트너사의 담당자를 통해 진한 프로의 향기를 느낄 때도 있다. 단지 지식과 기술로만 정의하기는 어렵고, 더 나아가 태도와 가치관을 포함한 확장된 개념의 직업의식을 가진 사람이 프로라고 생각한다. 미국 제33대 대통령 해리 S. 트루먼의 백악관 집무실 책상 위에는 이런 명패가 있었다. “The buck stops here.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라는 글귀

    2021.11.29 10:29:47

    스타트업엔 월급루팡이 없다?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 ‘도대체 왜’ 나는 또 스타트업을 선택했을까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

    [한경잡앤조이=심민경 그립컴퍼니 매니저] 눈 뜨고 일어나보니 스타트업에 다니고 있다. 이게 무슨 일일까. 분명 국제기구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영국 유학길에 오른 나였는데 스타트업의 형용할 수 없는 매력에 빠져 첫 커리어를 스타트업에서 시작하게 되다니.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취업하려고 하니, 남들이 하나씩은 보유한 인턴 경험, 자격증, 어학 점수가 단 하나도 없었다. 구직 시장에서 나의 가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느껴져 속이 쓰렸다. 게다가 입학보다 졸업 난이도가 높은 영국 대학교를 졸업하려고 하니, 취업과 학업 사이의 저글링으로 나는 지쳐가고 있었고, 졸업 이전에 반드시 취업해야겠다는 강박도 나를 덮쳤다. 그래서 방학 때마다 한국에 들어가 기업이 주최한 설명회에 참석하며 구직을 얼른 끝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말 오랜만에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 그러니까 6년 전 이력서, 자기소개서를 읽어봤다. 뭘 하겠다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간절함도 없는 진부한 표현의 변주에 왜 서류부터 탈락했는지 잘 알 것 같았다. 냉정하게 돌이켜보면 가고 싶은 마음 자체가 없었으니 결과가 좋을 리가 없었다. 취업이라는 큰 태스크를 빠르게 끝내고 싶었던 것뿐이지, 특정한 업무를 정말 미친 듯이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으니까. 그래도 학부 생활을 하며 경험한 프로젝트, 강연 기획의 기회가 이후 직무 선택에 큰 영향을 줬기 때문에 내가 주체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는 직무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안타깝게도 규모가 있는 기업의 채용 공고에서는 내가 원하는 직무는 찾아보기 힘들었다.그냥 주어진 일보다 내 마음이 움직여 내 손으로 만들어가는 일을 하고 싶은

    2021.11.11 12:52:50

    ‘도대체 왜’ 나는 또 스타트업을 선택했을까 [스타트업 5년차의 생존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