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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날 ‘정지돈’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덕통사고”라는 말이 있다. 좋아하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갑자기 우상처럼 좋아하고 찾아보게 되는 현상을 이 단어만큼 강렬하게 표현한 말도 찾기 어렵다. 덕통사고는 팬으로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덕질’과 ‘교통사고’가 합쳐진 합성어다. 불시에 교통사고를 당하듯 누군가에게 빠져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마치 번개처럼. 왜 하필 교통사고를 이미지로 사용했을지는 의문이다. 덕질이라는 말은 일본어 ‘오타쿠’에서 시작했다. 누군가 오타쿠를 오덕후로 발음하기 시작했고 수많은 파생어를 남기며 미화되고 일상어로 자리 잡았다. 내게는 어느 날 ‘정지돈’이라는 이름이 인생에 들어왔다. 정지돈은 소설가로, 2013년 등단해 도시, 인간, 산책, 미래 등 다양한 담론에 대해 찾고 그걸 이야기로 만들어 다양한 연재와 책을 내고 있다. 내가 그의 작품을 처음 알게 된 건 다른 책을 샀다가 사은품으로 함께 온 한 장짜리 단편이었다. 그때는 ‘신기하다, 이렇게 깨알 같은 글씨로 한 장짜리 소설을 낼 생각을 했다니!’라고 생각할 뿐 읽지 않았다. 나중에서야 그게 그의 등단작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묘하게도 시간이 흘러 알파 세대들은 글이 아닌 영상으로 정보를 습득한다더라, 하는 괴담이 돌던 시기 정지돈 작가를 유튜브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는 그 즉시 그의 덕후가 되었다. 자신의 소지품을 소개하는 영상에서 그는 끊임없이 ‘그럴 수도 있고, 물론 아닐 수도 있고’의 늪에 빠진다. 영상 매체는 처음인 탓에 긴장했을 것으로 추정되고 그도 영상 말미에 이런 자신의 모습은 다 잊어달라고 하지만 나는 확신이 없는 그의 모습이 정말 멋졌다. 그의 글은 굉장히 많은 담

    2023.11.03 12:03:30

    어느 날 ‘정지돈’이 내 인생으로 들어왔다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 지금, 화성 탐사보다 더 중요한 것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아무래도 X됐다. 그것이 내가 심사숙고 끝에 내린 결론이다. 소설 의 첫 문장으로 유명한 표현이다. 은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주인공이 화성 탐사를 나간 내용을 주축으로 이룬다. 앤디 위어는 주인공이 발화하는 시간의 상태를 간단히 표현하는 문장을 작품 앞에 배치함으로써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었다. 소설을 완독하지 않은 나조차도 기억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서울예술인지원센터의 재개관 행사를 다녀왔다. 이라는 제목으로 열린 토크 프로그램에서 두 개의 강의를 연달아 들었다. 첫 강의는 ‘슬로우 파마씨’ 이구름 대표의 ‘도시에 사는 우리에게 자연이 필요하다’였다. 강의 내용 중 가장 기억에 남은 것은 바로 ‘스페이스 O’라는 프로젝트였다. 이 프로젝트에서 제작한 단편 영화는 주인공이 식물학자이면서 화성 탐사 프로젝트의 유일한 선발대라는 설정이었다. 화성에서 연구를 하던 주인공은 그곳이 식물이 살 수 없는 환경임이 틀림 없고, 그러므로 인간도 살 수 없다는 결과를 상부에 보고하지만, 상사는 “이미 가기로 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내렸다. 아마 그 세계관에서는 어찌 됐든 화성엔 사람이 가게 될 것이다. 이구름 대표는 영화 시나리오를 구상하게 된 계기 중 하나로 파타고니아의 ‘NOT MARS’ 콘텐츠를 꼽았다. 한국어로는 ‘화성은 됐고’로 번역된 이 콘텐츠는 화성에 인류를 보내겠다는 모 회사의 프로젝트에서 영감을 받아 떠날 생각 말고 지금 사는 지구를 살릴 생각을 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다수의 학자가 지구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는 담론을 내고 있다. 크게 두 갈래인데, ‘이미 늦었다’와 ‘이번이 마지막이다’로 나뉜다. 어찌 됐든

    2023.09.13 15:16:33

    지금, 화성 탐사보다 더 중요한 것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 장그래의 마음이 이해되는 요즘...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

    [한경잡앤조이=황태린 NPR 매니저] 2010년대, 드라마 ‘미생’이 큰 관심을 얻었다. 누구나 초년생이었던 시절이 있었기에 극 중 장그래에게 공감했을까. 현재의 고됨이 어떤 성공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는 것이란 설명은 대부분의 이들에게 위로를 준 것 같다. ‘미생’은 완성되지 않은 삶을 의미한다. 완성되지 못했다는 건 어딘가 궁극적으로 도착할 곳이 있다는 걸 의미한다. 2020년대의 사회초년생들은 그대로 ‘미생’을 살고 있을까.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우리들은 현재의 삶이 미생이라며 더 나아갈 곳을 찾기보단 나의 하루하루를 잘 완수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갓생’을 살자는 다짐도 먼 미래에 성공한 나보다는 현재의 하루를 잘 이겨내는 나를 위한 마음이다.3월 1일부터 홍대입구역 근처 ‘오브젝트’라는 소품샵에서 ‘건강이 최고심’ 팝업스토어가 열렸다. 최고심 캐릭터가 마음의 위안을 주기 위해 행복의 약을 처방한다는 콘셉트였다. 팝업스토어는 평일 낮에도 대기줄이 길게 늘어질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이렇듯 현재 Z세대 직장인에게 가장 인기를 끌고 있는 캐릭터가 무엇인지 묻는다면 감히 최고심이라고 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심의 인기 비결을 나름 분석해보자면, 정성스럽게 대충 한다는 것이다. 그림체는 삐뚤삐뚤 엉성해 보이지만 그가 주는 메시지와 일러스트 완성도는 결코 낮지 않다. 보는 이에게 다가오는 허들은 낮지만, 메시지의 울림은 분명하다. 최고심이 꾸준히 제공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 변주의 반복이다. ‘오늘부터 갓생 산다!’, ‘갓생 살이도 내일

    2023.03.29 10:31:07

    장그래의 마음이 이해되는 요즘... [인생 1회차, 낯설게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