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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극의 시대에도 사랑은 있다

    [한경 머니 기고=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초빙교수] “사랑에 빠진 인간이 어디까지, 무슨 일까지 할 수 있는가.” 작가는 이런 화두를 던지기 위해 드라마를 썼다고 했다. 남녀칠세부동석의 엄격한 성별 윤리가 판을 치던 조선시대에 당당하게 비혼을 선언한 남자가 ‘내 남자는 내 손으로 쟁취한다’는 일생의 목표를 선언한 여인네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하지만 곧 예상치 못한 전란에 휘말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와중에 끈질긴 인연을 이어 간다. 마침내 오랜 기다림 끝에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찾는다는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연인>이다. ‘그리울 연(戀)’과 ‘사람 인(人)’이라는 두 글자로 이루어진 ‘연인’은 글자 그대로 서로 몹시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사람, 또는 서로 연애하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드라마 <연인>은 한때 성홍열같이 뜨거운 구설에 시달리기도 했다.서로에 대한 진심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한 남녀가 헤어졌는데, 서로 다른 이성과 함께 지내는 모습으로 시즌 1을 갈무리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 도대체 두 사람이 연애를 하고 있는 게 맞느냐, 아니면 서로를 마음에 품고 정말 그리워하기는 한 것이냐는 불만이 폭발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은 결국 ‘몹시 그리워하고 사랑한’이라는 홍보 문구의 초심을 지키며 2023년을 빛낸 멜로드라마 가운데 하나가 됐다.왜 멜로드라마인가멜로드라마는 원래 그리스어로 음악을 뜻하는 ‘노래(mélos)’와 ‘극(drama)’이 합쳐진 말이다. 이 용어는 주로 영화 장르를 가리키는 데

    2023.12.28 16:16:45

    비극의 시대에도 사랑은 있다
  • ‘아라문의 검’, 영웅이 꿈꾸는 세상

    [한경 머니 기고=문현선 세종대 공연·영상·애니메이션대학원 초빙교수] “네 놈의 이름을 딴 수많은 노래가 불릴 것이다. 이나이신기를 죽인 전사의 노래가! 놋산강 너머 아스달까지, 아스달에서 흰 산, 흰 산 너머 아뜨라드까지!” 포니테일을 곱게 묶은 남자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목에 칼을 들이댄 전사를 압박하며 다가선다. 그 기세에 칼자루를 쥔 전사는 주춤주춤 물러선다. 물러서는 순간 그 칼끝이 자신을 향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망설이는 순간 유리한 공세의 위치가 순식간에 치명적인 수세로 바뀐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언은 말한다. 칼, 방울, 거울이 나타나는 순간 이 세상은 끝난다. 칼이 목에 들어와도 물러서지 않는 이 재림한 신은 칼의 현신이다. 새로운 시대를 여는 영웅의 기세는 분명 남다르다. “어비 온다, 뚝!” “호랑이 온다, 뚝!” 세상 가장 무서운 것으로 우는 아이를 어르던 ‘주문(spell)’들을 기억해보자. 그래서 이 드라마에도 그런 주문이 등장한다. “이나이신기가 온다!” 영웅을 꿈꾸는, 영웅이 꿈꾸는 세상 신은 죽었다. 신의 피를 받고 인간의 세상에 살았던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들도 죽었다. 신이나 영웅이 대접받는 세상이 아니다. 루카치가 말한 것처럼, 신에 의해 선포되고 영웅에 의해 증명된 세계의 원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찬미되던 서사시의 시대는 끝났다. 현대인들은 갈기갈기 찢기고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 파편화되고 분열적인 소설의 시대를 산다. 이 시대의 관객과 독자는 인간의 세상을 떠나 저 신들의 세계로 떠난 영웅을 더 이상 칭송하지 않는다. 신들과 함께 떠나지 못한 영웅은 오히려 종종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2023.11.02 14:49:22

    ‘아라문의 검’, 영웅이 꿈꾸는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