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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尹의 ‘담대한 구상’, 조급증 내면 北 살라미 전술에 당해[홍영식의 정치판]

    홍영식의 정치판역대 대통령들은 임기 초 ‘획기적’, ‘패러다임 전환’ 등 요란한 수식어를 붙인 대북 정책 청사진을 밝혔다. 어떻게든 임기 5년 내 대북 정책에서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싶은 의욕은 좌우 정부를 가리지 않았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등이 이어져 나왔다. 각 정책마다 강조점은 다소 달랐지만 큰 틀에서는 당근책을 제시해 한반도 평화 또는 북한 비핵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경제 지원 내용을 보면 우파 정부가 더 파격적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10년 내에 1인당 소득을 3000달러가 되도록 지원하겠다는 ‘비핵 개방 3000’ 정책 아래 △북한 내 5대 자유무역지대 설치 △북한 지원용 국제 협력 자금 400억 달러 조성 △신경의고속도로 건설 △북한 지역 연간 300만 달러 이상 수출 가능한 200개 기업 육성 등을 제시했다.한강 하구지역에 여의도 면적의 10배 크기로 인공섬을 건설, 남북 경협 단지를 만드는 ‘나들섬 구상’도 내놓았다. ‘이명박판 마셜플랜’이라고도 불렸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북한이 핵의 장막을 거두고 개혁·개방으로 나온다면 북한 경제 회복과 성장을 위한 지원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했다.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엔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건설, 남북한 경의선·동해선 도로 및 철도 연결 등

    2022.09.05 13:39:56

    尹의 ‘담대한 구상’, 조급증 내면 北 살라미 전술에 당해[홍영식의 정치판]
  • 1913년 밀라노에 가죽 매장 내면서 역사 시작[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프라다①프라다의 역사는 1913년으로 거슬로 올라간다. 마리오 프라다가 동생 마티노 프라다와 함께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쇼핑센터 갤러리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 아케이드에 가죽 제품 전문 매장인 ‘프라텔리 프라다(프라다의 형제라는 의미)’를 열면서 시작됐다.그는 부유한 공무원 집안의 아들로 태어나 유럽과 미국 전역을 여행했다. 패션 디자이너였던 마리오 프라다는 여행을 통해 패션과 세상에 대한 안목을 넓혔고 여행 중 상류 사회의 화려한 생활을 누린 경험을 바탕으로 고급 가죽 가방 브랜드를 론칭하고 판매를 시작했다.그는 거북 껍데기와 바다 동물의 껍질 등 희귀한 소재를 들여와 고급스러운 가죽 상품을 만들었고 프라다는 곧 유명해졌다. 프라다는 1919년 이탈리아 사보이 왕실에 가방을 납품하는 공식 업체로 지정돼 왕가의 로고를 받았다. 이때 받은 왕가의 로고는 프라다 역삼각형의 로고 안에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대공황·2차 세계대전으로 쇠퇴기 맞아갤러리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에 있는 프라다 매장 입구에는 창업 당시의 간판이 남아 있는데 거기에는 ‘오제티디 루소(명품)’라고 쓰여 있다. 하지만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프라다는 쇠퇴하기 시작했다. 마리오 프라다는 아들인 알베르토 프라다에게 가업을 물려주고 싶어 했지만 아들은 관심이 없었고 1958년 마리오 프라다는 사망했다.결국 가업은 마리오 프라다의 딸인 루이자 프라다가 물려받았다. 1977년 창업자의 손녀이자 루이자 프라다의 딸인 미우치아 프라다가 업을 3대째 이어받았고 쓰러져 가는 회사를 위해 고군분투했다. 1949년에 태어난

    2022.03.01 17:30:18

    1913년 밀라노에 가죽 매장 내면서 역사 시작[명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