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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8년 프랑스 혁명으로 쏟아져 나온 귀족들의 보석을 사들인 그는?[류서영의 명품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티파니①1961년 상영된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신분 상승을 꿈꾸는 여인 홀리 고라이틀리(오드리 헵번 분)가 선글라스를 끼고 샌드위치와 커피를 든 채 뉴욕 5번가 티파니 쇼윈도를 바라보는 모습은 지금도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이를 통해 티파니는 모든 여성이 꿈꾸는 행복과 부의 상징적인 장소가 됐고 인지도가 더 높아지게 됐다. 이 영화 포스터에서 지방시의 블랙 드레스와 티파니의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는 오리드 헵번은 많은 이들에게 매력적인 모습으로 오랫동안 기억되고 있다.영화가 상영된 이후 티파니는 많은 여성들의 선망의 브랜드가 됐고 티파니라는 브랜드는 영화 제목에 브랜드 이름을 넣은 최초의 PPL(Product Placement Advertisment : 특정 기업의 협찬을 대가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브랜드 이름을 소도구로 끼워 넣어 광고하는 기법)이 됐다. 영화 속에서 티파니는 상류 사회를 대표하는 브랜드이고 부의 상징이기도 했지만 가난한 소설가 폴 바젝에게 티파니에서 구매하지도 않은 반지에 이니셜을 새겨 주는 서비스를 제공해 티파니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한층 업그레이드해 줬다.    유럽과 차별되는 모던한 디자인으로 인기1812년 2월 15일 티파니의 설립자 찰스 루이스 티파니(사진①)는 미국 코네티컷 킬링리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면직 공장을 운영했다. 티파니는 15세부터 아버지의 면직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고 1837년 9월 아버지에게 1000달러를 투자받아 독립했다. 그는 그 돈으로 뉴욕 맨해튼 259 브로드웨이에 문구류와 팬시 용품을 판매하는 작은 매장을 열었다. 또 일본과 중국에서

    2023.03.01 09:36:05

    1848년 프랑스 혁명으로 쏟아져 나온 귀족들의 보석을 사들인 그는?[류서영의 명품이야기]
  • 프랑스식 우아함·순수함·심플함으로 명성 얻어[류서영의 명품 이야기]

    류서영의 명품이야기/지방시 ②지방시는 1952년 첫 컬렉션의 성공으로 세계 최고의 명품 브랜드인 샤넬·에르메스·루이뷔통 등과 같은 반열에 오르며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954년 패션계의 최대 뉴스는 샤넬의 컴백이었다. 하지만 샤넬은 크리스찬 디올의 명성에 가려져 디올이 사망(1957년)하고서야 정상에 오르게 된다. 샤넬의 패션 철학이 편안함과 실용성에 바탕을 둔 기능주의를 표현하고 있었다면 지방시의 스타일은 깨끗한 라인으로 표현되는 최고급 원단을 사용해 지극히 매혹적인 프랑스식 우아함과 순수함·심플함으로 명성을 얻었다.지방시는 발렌시아가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발렌시아가는 지방시에게 스승과 같은 존재였다. 지방시는 발렌시아가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오랜 친구이기도 했다. 두 사람이 1953년 미국 뉴욕의 한 파티에서 만났을 때 지방시는 젊은 디자이너에 불과했고 발렌시아가는 지방시에게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지방시는 발렌시아가의 디자인을 연구하기도 했고 발렌시아가의 컬렉션 피팅에 조수로 참여해 가르침을 받기도 했다. 스페인 출신의 발렌시아가는 당시 이미 오트 쿠튀르의 유능한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렸다. 발렌시아가는 커팅 기술과 색채 감각이 뛰어났고 그의 패션 작품에는 늘 창의성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디올이 장식을 배제한 소재의 특성을 살려 다트·턱·주름으로 신체의 자연미를 살린 기능적인 조형미와 낭만에 대한 여성의 도피적 갈망을 표현했다면 발렌시아가의 의상은 모던한 매력을 풍겼다. 발렌시아가는 자신이 추구한 심플한 라인의 의복으로 장인으로서 높이 평가받았다. 또한 그

    2022.10.04 14:14:23

    프랑스식 우아함·순수함·심플함으로 명성 얻어[류서영의 명품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