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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좋아요’의 노예가 됐다 그리고 서사를 잃었다 [EDITOR's LETTER]

    [EDITOR's LETTER]“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농업혁명이 인류를 번성시켰다는 상식에 대한 도발이었습니다. 신선했습니다.그는 “수렵채집인보다 농부들이 훨씬 더 힘들게 일했고, 잘 먹지도 못했고, (가축화로 인해) 질병도 더 많이 얻었다”고 했습니다. 혁명의 역습이었습니다.요즘 직장인들의 삶을 돌아보면 새삼 그의 통찰이 대단했음을 느낍니다. 인류는 IT혁명에 흥분했습니다. 우리를 편한 길로 안내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인터넷과 각종 소프트웨어, 스마트폰 앱, 인공지능(AI)까지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기대만큼은 아닌 것 같습니다.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은 사무실 책상 앞에서 하루 종일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의미 있는 일을 한 기억은 많지 않습니다. 업무 효율에 1도 보탬이 안 되는 파워포인트는 또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짧은 쉬는 시간, 핸드폰을 꺼내 유튜브 짧은 영상을 봅니다. 아니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통해 남의 삶을 엿보다 시간을 흘려보냅니다. 잠자리도 핸드폰과 함께합니다. 농업혁명이 인류에게 사기였다면, IT혁명은 직장인들에게 무엇일까요.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소비자들과 접촉할 수 있는 수많은 미디어 채널이 생겼지만 소비자에게 접근하는 것은 더욱 어려워진 아이러니한 현실.기술의 진보가 우리로부터 앗아간 것은 또 있습니다. 생각과 서사입니다. 과거에는 출근길에 가사 없는 음악(클래식)을 들으며 무언가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담배를 피울 때도 생각이란 걸 했지요. 잠들기 전에도 상상이란 걸 머리맡에 있는 수첩에 뭔가를 끄적이기도 했습니다

    2024.01.15 06:32:01

    ‘좋아요’의 노예가 됐다 그리고 서사를 잃었다 [EDITOR's LETTER]
  • [EDITOR's LETTER]사람과 시간이 만나 서사가 된 서울의 길

    [EDITOR's LETTER] 종로 뒷골목에 좋아하는 음식점 하나가 있습니다. 오래전 명절 때 집에 가지 못하면 찾던 곳입니다. 동그랑땡을 파는 그 집. 지금도 가끔 그곳에 갑니다. 얼마 전 그 음식점 인근 아는 카페 앞을 후배와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말했습니다. “아 저 여기 알아요. 엄마 아빠가 데이트하던 곳이라고 들었어요.” 순간 흠칫했습니다. 항상 젊은 후배들과 정서를 공유하며 살고 있다는 되지도 않을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난 후배들의 부모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구나….’  하긴 그전에 깨달아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영화 ‘1987’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더니 한 후배가 “우리 아버지도 눈물 흘리셨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몇학번이냐고 물었더니 후배는 답했습니다. “87학번이요.” 친구네 쩝.1980년대 종로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서점·영화관·영어학원·음식점·카페·지하철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 있었습니다. 당시 또 다른 거점은 신촌(이화여대앞 포함)이었습니다. 이랜드그룹의 출발이 이대앞 ‘잉글랜드’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옷가게였고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 앞에 문을 연 것도 상징적입니다. 한 군데 더 있었습니다. ‘강남스타일’의 발원지 강남역입니다. 당시 뉴욕제과 앞은 종로서적만큼이나 붐볐습니다. 나이트클럽은 꽉찼습니다. 종로에 있던 어학원들은 근처에 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소득 증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1986년 2000달러대였던 국민소득은 이후 8년간 매년 1000달러씩 늘어납니다.

    2022.06.04 06:00:01

    [EDITOR's LETTER]사람과 시간이 만나 서사가 된 서울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