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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워킹맘 애들은 꼭 그렇더라”는 말에 퇴사를 고민한다면…[어쩌다 워킹맘]

    새학기의 시작을 알리는 3월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워킹맘에겐 퇴사, 휴직이라는 큰 고민에 빠지게 되는 시기다. 동네 지인은 초등입학에도 휴직하지 않는 나에게 ‘야수의 심장’이라고 했다. 이미 이전에 3년이 넘는 경력단절이 있었고, 육아휴직은 다 써버렸으며, 회사 내 업무 담당자가 1인인 환경이었기에 휴직을 하지 않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으나 나 역시 걱정과 두려움이 앞섰다. 휴직이나 퇴사를 해야 할지 말지 기준은 아이의 성향 부모가 얼마나 양육을 잘했는지와 무관하게 아이에겐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기질이 있다. 개인적으론 아이의 기질을 잘 알고 고민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 낯선 환경과 사람에 적응이 유독 힘들고 오래 걸리는 아이라면 혹은 다른 양육자보다 엄마에 대한 집착이 강한 아이라면 한학기나 초반 몇 개월만이라도 휴직하는 것이 아이의 학교 적응을 돕는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아들이 어린이집부터 유치원까지 모든 기관의 적응이 수월했고 비교적 환경 순응적인 아이다 보니 휴직없이 버텨 보기로 했다. 만약 휴직이 어렵다 해도 퇴사는 어지간하면 말리고 싶다. 이 시기가 지나고 나면 소수의 케이스를 제외하고는 결국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고 경제적 소득을 얻기 위한 고민이 또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돌봄교실과 이모님, 남편과의 파트너십,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동네엄마 네트워킹 생각보다 놀랐던 건 학교 내 돌봄교실이 잘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종이접기 등 간단하지만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 프로그램과 친구들과 자유롭게 놀 기회가 현저히 적던 아이에겐 마치

    2024.02.14 10:41:49

    “워킹맘 애들은 꼭 그렇더라”는 말에 퇴사를 고민한다면…[어쩌다 워킹맘]
  • 농익은 40대가 된 후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다 워킹맘]

    해가 바뀌며 이제 완연한(?) 40대가 되었다. 늘어가는 주름과 흰머리는 슬프지만 20대보다는 30대가 좋았고 30대보다 40대의 인생이 훨씬 충만해졌다. 인생의 정점이라는 40대에, 그리고 엄마이자 아내로, 딸이자 며느리로, 또 경단녀를 거쳐 워킹맘으로 살며 느낀 것들을 공유하고자 한다. 결이 맞는 사람과 가까이하자 과거의 나는 타인의 평가에 지나치게 연연했다. 모든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길 바랐고 좋은 평가를 해주길 바랐다. 마치 인기투표 하듯이 많은 친구들이 옆에 있고 나를 찾아주는 것이 존재가치를 확인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변에 사람은 많았지만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끌려 다닌 적도 많았고, 거절하지 못해 곤란하다고 느끼는 상황도 많았다. 맞지 않는 사람과의 불편한 자리를 감수하며 있거나 무례한 사람에게도 대응을 하지 못해 끙끙 앓기도 했다. 점차 나이가 들고 가정이 생기며 유한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쓸 수밖에 없어지며 인간관계는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가치-나의 가족과 가정, 그리고 나와 잘 맞는 그 자체로 참 괜찮은 사람들에 에너지를 쓰고 나머지 관계는 거리를 두면서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지금도 나는 거절이 어렵다. 하지만 심호흡을 하고 필요한 거절을 정중하게 잘 하려고 한다. 타인이 잘되는 것을 깎아내림으로 자기의 존재감을 확인하고자 하거나 남의 약점을 본인의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는 사람을 멀리한다. 그 안에서 깨달은 건 ‘내 인생을 타인의 기준에 맞추거나 비교하지 말자’다. 중요한 사람과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괜찮은 사람에게 에너지를 쏟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다. 행복의

    2024.01.12 09:40:46

    농익은 40대가 된 후 세상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어쩌다 워킹맘]
  • 오늘도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들에게 [어쩌다 워킹맘]

    가족이 함께 한 여행이었다. 미리 잡힌 남편의 일정에 맞춰 제주로 갔고, 남편의 일정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이미 밖은 어두워졌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아들과 둘이서 리조트에 머물던 시간도 꽤 괜찮았다. 그럼에도 연락한 번 없던 남편에게 화가 났고 따져 묻는 내게 본인 또한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예정된 ‘일’을 하고 있었던 남편 역시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좋았어야 할 여행에서 사소한 일로 싸움이 벌어지고 부부는 냉랭했다. 아이가 매우 어릴 때 우리는 종종 치열하게 싸우곤 했다. 아이가 커가며 감정적인 갈등이나 빈도는 줄었지만 오히려 어쩌다 한 번씩 부딪힐 때면 더욱 치열해졌다. 둘 다 물러섬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이가 어리고 행동이 제한되던 어릴 때와 지금의 갈등의 원인은 다른데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부부가 둘 다 사회생활과 일, 가정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었고 육아에도 최선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에서 오는 갈등은 이렇다. 아이는 여태껏 유치원이나 학교에 지각을 한 적이 없었고 아침을 거르고 간 적도 없다. 등원이나 등교를 해본 사람이라면 이 이면에 아이를 준비시키는 부모는 얼마나 아이를 다그칠 수밖에 없는지 짐작이 갈 테다. 지각을 하면 정말 대단히 큰일이라도 나는 마냥 아침 등교준비에 아이를 몰아붙인 결과였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매일의 루틴을 약속대로 해내는 연습을 제대로 시켰지만 한편으로는 조금만 지체되거나 시간을 넘기면 어김없이 불호령이 떨어지는 너그럽지 못한 엄마였다. 어쩌다 가끔이 아닌 매일을 하다 보면 참아줄 수 있는 역치는 점점 낮아져 아이의 행동이 조금만 지체 되도 행동에 대

    2023.12.04 10:33:50

    오늘도 치열하게 싸우는 부부들에게 [어쩌다 워킹맘]
  • “강남은 대부분 영유 출신이라는데…” 영어유치원, 꼭 보내야 할까? [어쩌다 워킹맘]

    미취학 아동들의 사교육 중 끝판왕은 단연 영어유치원이다. 커뮤니티나 맘카페에서 ‘영어유치원’은 늘 핫한 이슈다. 영유아 사교육비의 원흉으로 꼽히며 정부가 칼을 뽑아 들기도 했을 정도니 말이다. 올해 초등학교 1학년이자 대치동의 적당한(?) 학습식 영어유치원을 졸업한 아들을 키우는 우리 집의 경우, 영어유치원을 보내기로 한 것은 남편의 의지가 컸다. 영어로 논문을 쓰거나 학회에 참석을 하다 보니 언어의 장벽을 많이 느꼈고, 어렸을 때 시작해야 학습이 아닌 언어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남편의 의견이었다. 아이가 기관과 규율, 제도의 적응력이 빠르고 인지나 발달도 빠른 아이여서 내심 보낼만하다 싶었다. 주변에서 처음 영유를 갔을 때 거부감을 보인 여러 사례의 얘기를 들었고(매우 낮은 확률이라 생각했지만), 아이가 심각한 거부 반응을 보인다면 일반 유치원으로 옮기겠다는 각오로 6세였던 4월, 중간에 비어 있는 유치원을 운 좋게 입소했다. 부모의 통제 아래 ‘페퍼피그’, ‘옥토넛’ 같은 영어 만화와 간단한 영어책으로 영어 노출을 시작했던 아이는 다행히 거부감이 없이 적응했다. 오히려 과학실험이나 미술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꽉 차 있는 일정을 재밌어 했다.(7세가 되며 라이팅이 늘어나며 약간 힘겨워한 부분은 있었다) 자유로운 학습 분위기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던 친구들과 함께 6세가 끝날 때 0.5년차를 월반하고, 반에서 가장 좋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당연히 만족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경우, 내 아이에게 과연 영어유치원이 잘 맞을 것인가에 대한 ‘부모의 판단’이 적중했던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만약 영어 사교육이나 영어유

    2023.08.09 09:49:01

    “강남은 대부분 영유 출신이라는데…” 영어유치원, 꼭 보내야 할까? [어쩌다 워킹맘]
  • “엄마가 일을 안했더라면, 넌 좀 더 행복했을까” [어쩌다 워킹맘]

    [한경잡앤조이=박소현 블랭크코퍼레이션 PRO] 저녁 약속이 많은 요즘이었다. 퇴근이 늦은 어느 날, 아이를 재운 남편이 아이가 반에서 왕따인 것 같다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했다. 내용은 이랬다. 남자아이들은 화요일마다 (아이 제외) 축구를 하러 가고, 여자 친구들은 금요일마다 키즈카페를 간다며 자기도 키즈카페를 같이 가고 싶다고 했다. 부랴부랴 지난 번 받아 놓은 반 아이 학부모 번호를 떠올렸다. 연락해야지 하며 한달을 미루던 같은 반 아이 엄마에게 그제야 연락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학부모 단톡방에 초대됐다. 단톡방에 들어가 보니 키즈카페, 축구, 숲체험 등 이미 정기적으로 많은 외부활동들을 함께 하고 있었다. 월반을 한 아이입장에서는 이미 1년을 함께 보낸데다 다양한 과외활동을 함께 한 반 친구들 사이를 파고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아차 싶었다. ‘내가 너무 무심했구나’ 단톡방에 있는 워킹맘의 감정은 이중적이다. 여기에 속해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심지어 따돌리지 않아 감사한 마음까지 들 지경이다.) 그들만큼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없다는, 그래도 적극성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함께 있다. 7세라는 나이는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위한 준비와 친구들과의 관계를 살펴야만 하는 시기다. 결국, 말못하는 영유아 시절을 지나 이제는 혼자서 기본적인 활동들을 할 수는 있는 나이임에도 엄마의 고민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는 뜻이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은 올 가을에 있을 학원 레벨테스트의 ‘아웃풋’을 위해 숙제가 많고 어려워졌다. 미국의 초등학교 2,3학년이나 할 법한 지문을 읽고 쓰는 것을 아이에게 강요하는 건 과하다고

    2022.05.19 09:39:34

    “엄마가 일을 안했더라면, 넌 좀 더 행복했을까” [어쩌다 워킹맘]
  • 프로일잘러가 좋은 엄마가 되기 힘든 이유 [어쩌다 워킹맘]

    [한경잡앤조이=박소현 블랭크코퍼레이션 PRO]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친구들과 갈등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 와중에 아들이 다른 친구를 밀었던 모양이다. 심장이 내려앉았다. 누구보다 친구를 좋아하고 잘 지내던, 기관에 적응이 빠르고 과격하지 않아 여자아이들과 잘 어울리던 아들이었기에 충격은 더욱 컸다. 일에 몰입하는 자들의 숙명그쯤이었다. 긴 휴일을 보내면 얼른 유치원에 가고 싶다던 아이, 유치원에서 너무너무 좋아하는 이성(?) 친구에 몰입하기도 하고 기관생활을 즐거워하던 아이가 등원 셔틀을 탈 때마다 엄마 등뒤로 숨어 가지 않으려고 했던 때 말이다. 나는 1남2녀의 막내였다. 나이 차이가 꽤 나는 막내에게 부모님이 기대하는 것은 언니, 오빠와 같은 수재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집안의 분위기 메이커이자 사랑받는 것이 너무 당연한 막내의 운명에 유일한 결핍은 ‘뛰어남에 대한 인정’ 이었다. 이미 공부를 잘하는 언니, 오빠를 거쳐간 부모님에게 어지간한 학업성취나, 재능은 감흥이 없었을 테니 말이다.이러한 성장 배경 때문인지, 타고난 성향이었는지 나는 ‘스스로 일을 만드는’ 사람이었고 어떤 집단에 속하든 목표를 정한 후, 성과를 내지 못하면 그 또한 스스로 불안했다. 이러한 성향이 스타트업을 만나면 증폭이 되는데, 대개의 스타트업이 그러하듯 업무와 솔루션을 본인이 찾아서 해야 하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그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사람에게 회사는 판을 깔아주는 무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 시기 회사는 중요한 신규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전사회의를 다시 시작하며 내외부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시점이 되었다. 외부적으로는

    2022.03.11 09:02:50

    프로일잘러가 좋은 엄마가 되기 힘든 이유 [어쩌다 워킹맘]
  • 한때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는 왜 워킹맘이 되었나 [어쩌다 워킹맘]

    [한경잡앤조이=박소현 블랭크코퍼레이션 PRO] 육아에 있어 가장 어려운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단연코 '자유의 박탈'과, 매일 반복되는 육체노동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가지와 연동되면서 가장 크리티컬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감정 문제다.'나의 바닥을 마주하는 일'영아일 때, 그리고 어린이집 또는 유치원을 다니기 전까진 자유의 박탈, 루틴 되는 육체노동과 의지로는 전혀 조절이 되지 않고 어떤 타협이나 대화가 불가능한 대상과 씨름하면서 가장 힘든 정신적인 문제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밑바닥과 마주하는 일이었다.예를 들면 이런 거다.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가 기저귀를 떼면서 변기에서 소변을 누는 법을 가르치고, 아이는 하루에도 몇 번씩 바지가 젖는 실수를 한다. 우리는 다그치거나 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무엇보다 이건 당연한 것이고, 아이가 잘못한 일이 아니다.이런 범주에서 보면, 아이가 저지레 하거나 끊임없이 집을 어지럽히는 것도 모두가 당연함의 범주이며 '탐색'의 과정이다.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이의 이런 행동들을 야단치거나 화를 내선 안된다고 알고 있다. (그저 함께 정리하면서 아이에게 하나씩 생활 규칙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니다)그래서 참았다. 나 또한 꾹꾹 누르며, 내 한계가 올 때까지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임계치에 다다르면 폭발을 하곤 했다. 이렇게까지 화를 낼 일이 아니었음에도 이미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에 터지고 만다.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해 폭발하고 나면 다시금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내 밑바닥을 경험한 그 느낌.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다고 믿었고, 그래도

    2022.02.21 11:51:32

    한때 현모양처를 꿈꿨던 나는 왜 워킹맘이 되었나 [어쩌다 워킹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