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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번엔 진짜 나인 줄 알았는데…" 그 녀석이 쏜 빗나간 화살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한경잡앤조이=강홍민 기자] 해가 어슴푸레 지고 있는 초여름 저녁이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바람이 양 볼을 스쳤다. 우리는 테라스에 앉아 맥주잔을 부딪쳤다. “복치야, 여자친구랑 계속 만나야 하는걸까? 이젠 그만하고 싶다. 정말” 근 2년 만에 만난 A였다. “으응.. 글쎄. ” 내가 말끝을 흐리자, A는 고개를 갸우뚱하다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옅은 미소에도 오른쪽 뺨에 핀 보조개가 도드라졌다. A는 체육관에서 만난 친구였다. 처음엔 비슷한 시간에 가끔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지만, 나는 A를 처음 본 순간부터 기억하고 있었다. 반달 눈매에 말할 때마다 씰룩이는 보조개, A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를 잊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다 뒤풀이 때 동갑내기인 걸 확인한 후 저 멀리서부터 손을 흔들며 아는 척을 하곤 했는데 언젠가는 사람과 마주치는 게 이토록 반가울 일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상 때문에 체육관을 그만뒀을 때도, A와 완전히 소식이 끊기진 않았다. SNS 친구였던 우리는 언제든 서로의 일상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게시물에 가끔 ‘좋아요’를 주고받기도 했다. 같은 체육관 친구에게 A의 근황을 들을 때도 있었다. 따로 연락하며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예 생경한 존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의 카톡은 갑작스러웠다. A는 여자친구 심리를 모르겠다며, 나랑 비슷한 업무를 하고 있으니 내 의견을 듣고 싶다고 했다. A와 여자친구 반씩 편을 들며 적당한 선에서 대답을 해줬을 때 A가 먼저 말을 꺼냈다. “복치야, 우리 그냥 만나서 얘기하는 건 어때? 맥주 한잔하자.”그날 이후 우리는 퇴근 후 종종 술잔을 기울였다.

    2022.05.13 08:06:43

    “이번엔 진짜 나인 줄 알았는데…" 그 녀석이 쏜 빗나간 화살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 “날 누나라 부르던 너, 잘 지내니?”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한경잡앤조이=유복치] “지금 신도림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한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지하철을 다섯 번이나 그냥 보낼 동안 녀석은 아무 말도 없었다. 앙다문 입술이 열릴락 말랑하다 이내 굳게 닫혔다. 갈 길 잃은 시선이 바닥에 꽂혔다. 하필이면 흰 바지를 입은 날이었다. 정강이 쪽에 떨어진 쌈장 자국이 도드라졌다. 여섯 번째 지하철이 막 선로로 들어올 때 녀석이 입을 뗐다. “누나, 근데 우리는 때를 놓친 것 같아요. 누나도 알고 있죠?녀석을 만난 건 어느 학원에서였다. 서술형 답안지를 작성하고 다 같이 돌려보는 수업이었다. 어느날은 답안지를 쓰는데 앞자리에 자꾸만 눈이 갔다. 누군가 검은색 유광 단화에 새하얀 양말을 신고 왔는데, 발모가지가 댕강 드러나는 바지를 입었다. 고개를 들어 신발 주인을 봤는데, 그 녀석이었다. 새끼손가락 치켜 올린 채 옆머리를 귀에 꽂는 모습이 고독한 히피 예술가스러웠다. 답안지는 그 녀석만큼이나 눈길을 끌었다. 글의 행간에는 한 사람이 살아온 궤적과 가치관과 취향이 오롯이 녹아들어 있어 섣불리 가타부타를 판단하기 어려웠지만 그 녀석의 것은 누가 봐도 무릎을 탁 칠 만큼 돋보이는 구석이 있었다. 나는 강의실 뒷자리에서 매주 한 칸씩 옮겨왔다. 그 녀석 등에 자석이라도 있는 것처럼 바로 뒷자리까지 이끌려 온 날, 그가 뒤를 돌아봤다. “누나, 오늘 답안지 좋던데요. 오늘 뒤풀이 갈 거죠?”그 녀석과 친해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던 나였다. 당연히 참석이었다. 하지만 그날따라 취기가 빠르게 올랐고, 친해질 겨를도 없이 뒤풀이장을 몰래 빠져나와야 했다. 갈 지(之)자를 그리며

    2022.04.12 09:16:26

    “날 누나라 부르던 너, 잘 지내니?”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 ‘코로나 시대 소개팅’, 셋, 둘, 하나 마스크를 벗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난다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

    [한경잡앤조이=유복치] 막판 오르막길을 질주하느라 숨이 턱 끝까지 차 올랐다. 마스크 안은 이미 습기로 가득 찼다. 약속 시간 1분 전, 아슬아슬하게 식당 앞에 도착했다. 바로 문 손잡이를 잡으려다 잠시 멈칫했다. 예전 같으면 별 생각 없이 덥석 잡았겠지만, 지금이 어느 시절인가. 역병이 창궐하는 때다. 사람들 손이 가장 많이 탄 것처럼 보이는 반들반들한 윗부분 대신 가장 손이 덜 닿았을 것만 같은 아래쪽을 주먹으로 밀고 식당에 들어섰다. 누가 봐도 이곳은 소개팅 성지. 꽃병과 식전 빵, 파스타가 놓인 테이블에 청춘 남녀가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다. 내가 이곳을 찾은 것도 같은 이유다. 바로 소개팅. 솔로 탈출을 위한 근 1년 만의 발걸음이었다. 우리는 서로의 모습을 알지 못한 상태로 한 공간에서 만나기로 했다. 으레 주선자가 서로의 사진을 전달하고 소개팅 성사 여부를 알려주곤 하지만, 이번에는 기본 신상 정도만 알고 만남을 수락했다. 주선자에 대한 믿음도 있었지만, 코로나19가 막 확산하던 시기라 영업 제한이 생기고, 사람 간의 접촉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만남 자체가 귀했던 탓도 있다. 함께 모여 있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상황에서 자연스러운 만남 추구, 일명 ‘자만추’는 빠르게 멸종 위기에 처했다. 이럴 때 ‘사진을 요청한 후 소개팅 가부를 결정한다?’는 거의 지리산 주막에서 트러플 오일 관자 파스타를 주문하는 격이다. 시대와 처한 상황에 맞지 않는 일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서로의 얼굴을 모르는 블라인드 소개팅은 어쩐지 낭만적이기까지 했다. 소개팅 상대와 나는 그 흔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조차 없었다. 카카오톡에서 서로 주고받은

    2022.03.23 09:24:17

    ‘코로나 시대 소개팅’, 셋, 둘, 하나 마스크를 벗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난다 [유복치의 솔로탈출 연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