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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의 거리에서 미래를 만나다

    [스페셜 리포트]대학생부터 예술가까지 젊은이들이 모여들자 특색 있는 가게가 하나둘 생겨났다. 입소문(지금은 SNS)을 타고 소문이 퍼졌다. 사람들이 붐비자 상업 시설들이 밀려 들어왔다. 건물주들은 하나둘씩 월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결국 애초 이 거리를 만든 주인공인 작은 가게들은 골목으로 숨어들거나 자취를 감춘다. 서울의 길들은 모두 이런 과정을 거쳤거나 거치고 있는 중이다.서정렬 영산대 부동산금융학과 교수는 서울 거리의 변천사를 이렇게 설명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소비력을 지니자 명동과 종로가 붐볐다. 1990년대 아파트 값이 급등하고 ‘강남 시대’가 열리면서 압구정 로데오거리에 오렌지족이 출몰했다. 2000년대부터 ‘홍대 전성시대’가 열렸다. 2010년 들어서는 크고 작은 이벤트가 열리는 성수동과 골목 곳곳으로 이동이 시작됐다.”위치만 달라졌을 뿐이다. 붐비는 거리에는 그 시대 트렌드의 맨 앞에 선 사람들이 몰렸고 문화와 자본은 이들을 쫓았다. 길의 흥망성쇠는 문화와 젊음 그리고 자본의 함수 관계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K-컬처의 산파 역할을 한 서울의 길을 따라가 봤다.‘젊은 거리’의 시작은 통금 해제외국인들은 서울을 “24시간 축제가 벌어지는 곳”이라고 표현한다. 코로나19 사태 이전까지 서울 곳곳은 잠들 시간조차 없었다. 그 시작은 정확히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서울의 거리가 뜨거워진 첫 장면에는 1982년 야간 통행 금지의 해제가 있었다. 밤 12시 통금이 해제되자 서울의 번화가는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연세대와 이화여대 등 대학이 몰려 있는 신촌과

    2022.06.04 06:00:07

    서울의 거리에서 미래를 만나다
  • [EDITOR's LETTER]사람과 시간이 만나 서사가 된 서울의 길

    [EDITOR's LETTER] 종로 뒷골목에 좋아하는 음식점 하나가 있습니다. 오래전 명절 때 집에 가지 못하면 찾던 곳입니다. 동그랑땡을 파는 그 집. 지금도 가끔 그곳에 갑니다. 얼마 전 그 음식점 인근 아는 카페 앞을 후배와 지나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배는 말했습니다. “아 저 여기 알아요. 엄마 아빠가 데이트하던 곳이라고 들었어요.” 순간 흠칫했습니다. 항상 젊은 후배들과 정서를 공유하며 살고 있다는 되지도 않을 자부심이 한순간에 무너졌습니다. ‘난 후배들의 부모들과 정서를 공유하고 있구나….’  하긴 그전에 깨달아야 했습니다. 몇 년 전 영화 ‘1987’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고 했더니 한 후배가 “우리 아버지도 눈물 흘리셨습니다”라고 하더라고요. 아버지가 몇학번이냐고 물었더니 후배는 답했습니다. “87학번이요.” 친구네 쩝.1980년대 종로는 젊음의 상징과도 같았습니다. 서점·영화관·영어학원·음식점·카페·지하철 등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다 있었습니다. 당시 또 다른 거점은 신촌(이화여대앞 포함)이었습니다. 이랜드그룹의 출발이 이대앞 ‘잉글랜드’라는 촌스러운 이름의 옷가게였고 스타벅스 1호점이 이대 앞에 문을 연 것도 상징적입니다. 한 군데 더 있었습니다. ‘강남스타일’의 발원지 강남역입니다. 당시 뉴욕제과 앞은 종로서적만큼이나 붐볐습니다. 나이트클럽은 꽉찼습니다. 종로에 있던 어학원들은 근처에 터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소득 증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 냈습니다. 1986년 2000달러대였던 국민소득은 이후 8년간 매년 1000달러씩 늘어납니다.

    2022.06.04 06:00:01

    [EDITOR's LETTER]사람과 시간이 만나 서사가 된 서울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