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기부왕을 만나다

2010만214원. 지난 2월 여행그룹 BT&I의 송경애(49) 대표가 자선단체에 기부한 금액이다. 왜 2010만214원일까. 송 대표 본인의 생일인 2010년 2월 14일을 기념해 2010만214원을 기부한 것이다.

그녀는 첫째 아들 생일(6월 23일)에 2010만623원을, 남편 생일(8월 28일)에는 2010만828원을 기부했다. 지난 11월 17일인 결혼기념일에는 2010만1117원을 내놓았고, 오는 12월 20일인 둘째아들 생일에도 2010만1220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할 예정이다.

그녀는 올 초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1억 원이 넘는 금액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하면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 소사이어티’의 첫 여성 회원으로 등록했다.

그녀가 기념일을 기부로 기념하는 이유는 뭘까. 그녀는 “오늘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축복받은 날의 소중한 의미를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물론 “나눔의 기쁨이 워낙 크다”는 점도 그녀가 기부에 적극적인 이유다. 그녀는 기부하면 “살아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을뿐더러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힘까지 얻는다”고 고백했다.

[창간 15주년 기획특집 1] “단돈 1000원이라도 기부 연습 자꾸 해야”
“모든 기념일을 나눔으로 기념”

사실 그녀에게 기부란 특별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저 생활일 뿐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몸에 익힌 습관 같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미국에서 부모님과 함께 기부 행사에 참석할 기회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기부 문화를 몸에 익혔다는 것이다. 그녀의 기부 DNA는 자녀들에게도 대물림되고 있다. 이제까지 자녀들에게 별도의 생일 선물을 해 준 적이 없다고 했다.

태어난 것 자체가 하늘의 선물이라는 것이다. 대신 자녀 이름으로 기부를 통해 나눔을 실천해 왔다.

아이들에게도 늘 “받은 만큼 나눠야 한다”고 가르친다. 실제로 미국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들은 매년 기숙사에서 컵라면을 팔아 모은 돈을 어린이재단에 기부하고 있다.

그녀는 기부금이 어린이에게 쓰이기를 원한다. 기부를 시작할 때부터 소년소녀 가장에 관심이 많았다. “꿈과 희망을 가져야 할 나이에 굶주림과 고난 속에서 움츠리고 있는 아이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받았던 사랑을 다른 이에게도 나눠준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나눔이자 축복이 아닐까요.”

그녀에게 물었다. “기업인의 기부는 의무인가, 선택인가.” 우문현답이다. “주위의 도움 없이 성공하는 사람을 보지 못했어요. 사회에 보답하고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의무죠.” 한국 부자들은 기부에 인색한 편이다.

하지만 그녀는 “인색하기보다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운 시대를 헤쳐 나오다 보니 기부 문화가 제대로 형성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기부도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단돈 1000원이라도 기부하는 연습을 자꾸만 해야 해요. 그 과정에서 즐거움과 살아가는 이유를 느끼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부 습관이 생길 겁니다.”

나중에 돈 벌면 기부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녀는 “얼마를 벌면 기부하겠다는 것은 영원히 기부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기부는 인생의 마지막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금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시작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에게 ‘기부의 기쁨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고 했다. “내가 도와준 어린 친구들이 바르고 곧게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 벅찬 감동을 느낌니다. 한번 해보세요. 해 본 사람만이 압니다.”

송경애 BT&I 대표

약력
: 1961년생. 84년 이화여대 경영학과 졸업. 87년 BT&I 설립 대표이사(현). 2008년 어린이재단 이사(현). 서울상공회의소 관광산업위원회 위원(현).


권오준 기자 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