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짜 계열사 매각…발전소로 재기 안간힘

동양그룹이 위기설에 진통을 겪고 있다. 수년째 지속되는 건설 경기 부진으로 지난해 12월 한 차례 구조조정안을 내놓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위기설이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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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말 동양그룹 계열사들의 신용 등급과 신용 등급 전망이 무더기 강등되면서다. 동양그룹은 지난 8월 말 한국기업평가·NICE신용평가·한국신용평가 등 국내 신용 평가 3사로부터 동양시멘트를 비롯한 주요 계열사들의 신용 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비교적 그룹의 안전판으로 여겨졌던 동양증권과 동양시멘트의 신용 등급에 변화가 일자 시장이 동요한 것이다.

NICE신용평가 관계자는 “차입금 의존도와 부채비율이 높은 상태에서 차입금 규모 대비 유동성 부분이 미진하다고 평가해 등급 하향 조정 혹은 하향 검토 대상으로 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장의 우려는 ‘돈맥경화’다. 10월 23일부터 금융투자업 규정 개정안이 시행되면 증권사는 계열사가 발행한 투자 부적격 등급의 회사채나 기업어음(CP)에 대해 판매를 권유할 수 없다. 그동안 동양그룹이 낮은 신용 등급에도 회사채 발행에 번번이 성공해 온 것은 동양증권이라는 뒷배가 든든했기 때문이다. 높은 회사채 금리와 동양증권의 적극적인 리테일 채권 영업력에 힘입어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개정안 시행 이후 동양증권은 이미 ‘정크본드’ 수준이 된 동양그룹 회사채를 팔 수 없고 그룹은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다. 한 증권사 채권 담당 애널리스트는 “동양증권이 아닌 이상 리스크를 떠안고 팔 곳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충당금 손실 부담이 쌓이는 부분도 크다”고 말했다.

게다가 동양증권은 증권업 침체라는 업황 부진까지 겪고 있는 상황이다. 동양증권이 동양그룹 내 차지하는 역할은 절대적이다. 지난해 기준 매출의 75%가 증권을 포함한 금융 부문에서 나왔다. 부채비율이 1200%가 넘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에 빠져 있는 그룹사가 대규모 차입금을 떠안은 상태에서 향후 회사채 발행이 요원해질 것으로 예상돼 시장의 불안이 커진 것이다. 투자자들은 동양그룹이 제2의 ‘웅진 사태’로 커져갈지 염려하는 상황에서 오뚝이 정신으로 다시 일어서 줄 것을 기대하는 모습이다.

동양그룹이 한 번 위기를 맞았던 건 1998년 외환 위기 때다. 당시에도 존립 위기에 놓였었다. 그룹 주력이었던 종합금융사(동양종금)을 비롯한 금융 계열사들이 부실 악화로 퇴출 직전 상태에 몰렸었다.


동양증권 통한 회사채 발행 막혀
동양그룹은 수천억 원에 달하는 자체 자금을 금융 계열사에 쏟아부었고 가까스로 위기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최근 위기의 시작은 2000년대 중반 이후 건설 경기가 부진에 빠지면서다. 동양그룹의 핵심은 레미콘·가전·건설·섬유·플랜트 등 5개 사업부로 이뤄진 (주)동양이다. 하지만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동양그룹의 주력 계열사이자 경기 민감 업종이 시멘트·레미콘이 건설 경기 침체로 그룹은 직격탄을 맞았다.

동양그룹이 최근까지 시장에 쏟아낸 회사채는 2조 원 규모다. (주)동양은 올해 말까지 상환해야 하는 회사채 물량 1347억 원을 비롯해 동양시멘트 등 내년 상반기까지 3770억 원의 회사채를 상환해야 한다. 자금줄이 막힐 위기에 처한 동양그룹의 타개책은 고강도 구조조정에 있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구조조정 계획을 차근차근 진행함과 동시에 성장 동력인 화력발전소 지분 매각을 통해 가능한 한 빠르게 유동성을 확보한다는 복안이다.

경영 개선 로드맵 발표 이후 동양그룹은 매달 계열사를 팔거나 지분을 매각하는 등의 구조조정을 추진해 왔다. 동양그룹은 총 23개 계열사를 가지고 있는데, 골자는 ‘시멘트·화력·금융 등 세 개를 제외하고 모두 구조조정 대상에 올려 놓는다’는 것이다. 계열사를 통째로 팔거나 미수익 자산을 매각하거나 일부 지분을 넘기는 형식 등으로 자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크게 4가지 부문에서 총 1조 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총 44개에 달하는 레미콘 공장 중 21개를 매각하고 남은 레미콘 공장 또한 매각을 추진 중이다. 레미콘 공장 한 개당 300억~500억 원에 매각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라면 총 1200억 원 정도의 자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즈니스 포커스] 구조조정 고삐 죄는 동양그룹
현재 가장 큰 관심은 그룹 내 알짜로 꼽히는 생활 가전 계열사인 동양매직의 매각 작업이다. 교원그룹과의 매각 협상이 무산되며 ‘매각 지연’ 우려를 샀으나 최근 다시 KTB컨소시엄을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하고 구체적인 매각 작업을 진행 중이다. 금융 투자 업계에 따르면 현재 매각 작업은 9부 능선을 넘은 상태로 본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업계에서는 약 2500억 원 규모로 매각이 체결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한 섬유 사업 부문 매각을 통해 800억 원 정도를 마련할 계획이다. 지난 7월 초 동양그룹은 (주)동양의 섬유 사업 부문(옛 한일합섬) 매각 대상자를 기존 ‘갑을합섬’에서 인수 의사를 표명한 여타 2개 기업으로 변경해 인수·합병(M&A)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화력발전소 지분 매각 “순조롭다”
최근 시장에서 가장 기대하고 있는 부분은 그룹의 성장 동력에 해당하는 화력발전소 지분 매각이다. 앞서 9월 2일 그룹은 강원도 삼척시에 있는 동양시멘트의 폐열발전소를 삼척에너지에 매각했다. 매각에 따라 그룹으로 유입되는 자금은 400억 원이다. 시멘트 공장 안에 2004년 준공된 폐열발전소는 그동안 적지 않은 성과를 냈다. 연간 10만MWh의 전력을 생산해 왔고 2009년 230억 원의 투자비를 전액 회수하며 그룹의 효자 역할을 했다. 삼척에너지는 앞으로 폐열발전소를 상용화해 전력거래소에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동양시멘트는 시멘트 소성로 등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지속 공급해 삼척에너지에 매각한 후에도 매년 수억 원의 수익을 챙기게 된다. 현재 화력발전의 지분 매각 또한 협의가 진행 중으로 발전 사업을 영위하는 대기업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동양그룹은 경영권을 유지하는 선에서 지분 매각을 가능한 한 많이 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미래 주력 사업의 지분 일부까지 내놓으면서 마련하는 자금은 약 1조 원 정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면 1년 내 단기 유동성을 해결하는 데는 무리가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김민정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4가지 구조조정안이 정상적으로 수행되면 1년 안에 돌아오는 차관 물량이 어느 정도 소화돼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건은 매각 시기로 보인다. 10월 위기설 등 시장의 관심이 10월 23일에 쏠려 있는 만큼 그전에 굵직한 매각을 성공시켜 유동성의 숨통을 틔워 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안영복 NICE신용평가 실장은 “동양매직과 화력발전소 지분 매각 두 건이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인데, 문제는 관찰 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이다. 한 달 사이 의미 있는 가격에 계약이 체결되면 시장 불안이 어느 정도 잠재워지고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시나리오가 성공한다면 동양그룹은 미래 비전인 ‘종합 에너지 발전 기업’으로의 변모를 꿈꿀 수 있다. 동양그룹은 삼척 시멘트 부지에 화력발전소를 짓고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계속되는 전력난 속에 화력발전 사업성이 높게 평가되고 동양그룹의 경우 시멘트와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되는 만큼 도약을 기대해볼 수도 있다. 다만 화력발전소가 본격적인 매출을 내는 것은 2019년 이후로, 최소 6년간은 ‘현상 유지’만 해도 선방하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편 이러한 위기 상황 속에서 오너 일가를 포함한 임원의 보수를 지난해 3배 가까이 올렸다는 소식에 시장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증권 애널리스트는 “구조조정 차원에서 오너 일가가 사재를 출연하면 시장 신뢰가 생길 수 있지만 선례를 봤을 때 법정 관리가 닥치기 전에 내놓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