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부품·장비 사상 최대 호황

이완근 신성홀딩스 회장은 최근 1분기 수주 실적 보고서를 받아본 뒤 눈을 의심했다. 작년 12월까지 일감이 없어 전전긍긍했던 반도체·액정표시장치(LCD) 클린룸을 만드는 신성이엔지와 LCD 이송장비를 생산하는 신성FA 등 두 자회사가 1분기 만에 1년 치 주문을 받아놓은 것. 이 회장은 “이미 1분기에 지난해 총매출을 뛰어넘는 수주 실적을 올렸다”며 “2000년 반도체 호황 때보다 지금이 더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LCD 증착 장비와 태양광 제조 장비를 만드는 주성엔지니어링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49% 늘어난 501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1년 치 일감을 벌써 다 확보했다”며 “올해 사상 최고 실적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1분기 만에 1년 치 주문’ 싱글벙글
국내 정보기술(IT) 부품·장비 업체가 사상 최대의 호황을 맞고 있다.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하이닉스반도체 등 대기업들이 반도체와 LCD 증설 투자에 나서면서 수주 물량이 급격히 늘어나는 적하(滴下) 현상인 ‘트리클 다운(Trickle Down:대기업의 성장을 촉진하면 중소기업과 소비자에게도 혜택이 돌아가 총체적으로 경기를 활성화시키게 된다는 경제 이론)’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대만과 일본 등 해외 기업들의 발주 물량도 줄을 잇고 있어 주요 부품·장비 업체마다 실적 목표치를 상향 조정하는 분위기다.

신성이엔지는 올해 1분기에만 지난해 연간 매출(745억 원)을 뛰어넘는 물량을 수주했다. 이에 따라 올해 연간 매출 목표도 지난해보다 70% 이상 늘려 잡았다. LCD 이송 장비를 만드는 신성FA도 지난해 총매출(749억 원)을 뛰어넘는 물량을 이미 확보했다. 최묵돈 신성FA 상무는 “3억~5억 원짜리 고가 LCD 장비가 하루에 한 대꼴로 팔려나가고 있다”며 “밀려드는 주문량을 다 받지 못할 정도로 초호황”이라고 설명했다.

주성엔지니어링도 당초 계획한 연간 수주 목표를 다 채웠다. 이 회사의 지난 1분기 수주 잔량은 2829억 원. 지난해 총매출(1701억 원)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반도체·LCD 장비 업체인 탑엔지니어링도 올해 1분기에 전년 동기보다 6~10% 늘어난 175억~200억 원가량의 매출을 올릴 전망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LG디스플레이의 증설 투자와 관련한 추가 수주를 받을 예정이어서 2분기 실적은 더 좋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장비주들의 신고가 행진

전자제품의 ‘감초’로 불리는 인쇄회로기판(PCB) 제조 업계도 호황을 누리고 있다. 지난해 12조 원이었던 국내 PCB 시장 규모는 올해 12조5000억 원으로 5%가량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전자·IT 대기업들이 TV·휴대전화 물량을 쏟아낸 덕분이다.

임상국 현대증권 연구위원은 “지난해까지 투자를 거의 하지 않았던 삼성전자·LG디스플레이·하이닉스 등이 연초부터 대대적인 설비 투자를 하거나 계획하고 있다”며 “장비 및 부품 업체들은 하반기로 갈수록 더 좋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국내 증시가 혼조 양상을 보이는 가운데서도 정보기술 장비주들은 신고가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장비주의 선전 덕에 코스닥시장은 유가증권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

4월 29일 코스닥시장에서 주성엔지니어링은 6.36% 오른 2만900원으로 1년 신고가를 경신하며 22개월 만에 2만 원대 주가에 복귀했다. 삼성전자에 반도체 장비를 납품하는 아토 역시 11.06% 급등(7830원), 전날에 이어 이틀 연속 1년 신고가를 새로 썼다. 반도체 미세화 공정 장비 업체 유진테크(6.67%), LCD 제조 장비 업체인 아이피에스(2.85%)와 LIG에이디피(0.72%)도 이틀 연속 신고가를 기록했다.

반도체와 LCD 업황이 동시에 호황으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장비주들의 신고가 행진은 당분간 지속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 IT 시장조사 기관 가트너에 따르면 전 세계 반도체 업체들의 설비 투자 규모는 올해 367억2800만 달러로 작년보다 45.3%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설비 투자 규모는 내년 478억2600만 달러, 2012년 569억5900만 달러로 당분간 증가세를 지속할 것으로 전망됐다.

최성제 KTB투자증권 연구원은 “한 번 호황이 오면 4~5년간 지속되는 반도체 업황의 특성상 반도체 설비 투자는 작년 바닥을 찍고 2014년까지 상승세를 이어갈 것”이라며 “작년까지 불황으로 장비 업계의 구조조정이 상당 부분 진행됐기 때문에 살아남은 업체들의 수혜는 더욱 클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현주 기자 charis@kbizwee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