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짜는 헬스 케어 투자 지도

최근 헬스 케어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을 실감한다. 2년 전만 해도 헬스 케어 산업에 특화된 운용을 해보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우려와 만류가 많았다. 한국적 현실에서 특정 섹터 펀드가 성공하기 어렵다는 논지였다. 상당 부분이 맞는 지적일 수 있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 경기에 민감한 정보기술(IT)·자동차·조선·화학·철강 등의 산업이기 때문에 어느 섹터에 의존해 투자하다 보면 2~3년 주기로 찾아오는 경기순환 사이클을 견뎌내기 어려운 학습 효과가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도 이 지적에 대해 많이 고심한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보다 헬스 케어 산업에서 앞서 있는 선진국의 사례를 점검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얻은 결론은 헬스 케어 산업은 경기 민감 산업이 아니고 결코 일시적인 테마나 유행도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도도한 물결이자 대세라는 사실에 안도하게 됐다. 물론 주식시장의 출렁임과 불안 심리에 따른 변동성은 있을 수 있지만 그래도 마음 놓고 5~10년 투자할 수 있는 섹터는 헬스 케어 산업 밖에서 찾기도 어려웠다. 이러한 판단의 근거는 전 세계적인 고령화와 이에 따른 막대한 의료비용의 증가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곧 헬스 케어 산업에 대한 수요로 고스란히 연결될 것이기 때문이다.
[헬스케어 산업] 시대 관통하는 물결…예방·바이오 ‘대세’
고령화로 의료비용 크게 증가
헬스 케어 산업의 성장성에는 공감하지만 막상 “언제, 어느 기업에 어떻게 투자해야 하나?”의 문제에 봉착하면 난감해진다. 따라서 헬스 케어 산업의 트렌드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거기에 부합하는 기업 발굴이 중요하다. 글로벌 헬스 케어 산업을 관통하고 있는 트렌드는 첫째, 치료(cure) 위주에서 관리(care)로 의학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둘째. 합성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셋째, 제휴, 기술이전, 인수·합병(M&A)을 통한 시너지 추구다. 마지막으로 연구·개발, 판매 경로의 국제화(globalization) 경향이다.

소득수준의 향상과 웰빙 바람, 의료 기술의 발달로 의학적 관리(MediCare)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데다 금융 위기 이후 각국의 건강보험 재정이 부실해지면서 자연히 사전적 검진, 진단을 통한 질병의 조기 발견, 조기 치료를 통해 의료비를 줄이는 것이 급선무가 됐다. 검진과 관련된 의료 장비, 진단 시약 및 진단 서비스 수요가 크게 증가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치과용 의료 기기를 만드는 바텍, 안과용 광학 기기 생산 업체인 휴비츠, 디지털 엑스레이 영상 장비 분야에서 기술력을 인정받은 뷰웍스 등 강소기업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몸의 타액·체액·혈액 등을 추출해 몸 밖에서 질병 유전자를 분석해 내는 체외 진단 시장이 최근 급속히 커지고 있는데 한국의 벤처기업 씨젠이 이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실시간·다중·정량 분석이 가능한 분자 진단 기술을 상용화함으로써 단 3분 만에 20~30가지의 질병 유전자를 찾아낼 수 있게 돼 이 분야의 절대 강자인 로슈를 5~10년 앞섰다.

씨젠이 진단 분야에서 소프트웨어를 담당한다면 바이오니아는 진단 시약과 진단 기술, 자체적으로 진단 장비를 생산하는 놀라운 회사다.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아우르는 토털 솔루션을 제공하는 진단 업체로, 미래의 다크호스가 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암 등 난치병의 원인이 되는 유해 단백질의 합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유전자 간섭 치료(RNA Interference)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개발해 다국적 제약 회사들의 집중적인 러브콜을 받고 있다. 국내 바이오 벤처 1호 기업인 이 회사가 향후 써 나갈 성공 스토리를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

또 하나의 커다란 변화는 의약품에 대한 수요가 기존 합성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을 선호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이다. 바이오 의약품 가운데 동물의 세포 단백질에서 추출한 바이오 항체 의약품이 특히 주목받고 있는데 몸에 부작용이 적고 흡수가 빠르며 질병의 원인이 되는 항원만을 찾아 공격하기 때문에 효과도 탁월하다. 단지 연간 약제비가 수천만 원에 달해 경제적 부담이 커 ‘부자들의 약’으로 불리기도 한다. 최근 말기 암 환자나 난치병 환자에 대해 선별적으로 보험이 적용되면서 사용범위가 넓어지고 있지만 이에 따라 각국의 건강보험 재정에 큰 부담 요인이 되고 있다.

이 문제점을 돌파할 수 있는 대안이 바이오 시밀러(바이오 복제약)다. 지난 6월 한국의 셀트리온이 세계 최초로 류머티즘 관절염 치료제인 레미케이드를 복제한 바이오 시밀러(램시마)를 개발, 유럽식약청으부터 판매 승인을 받았다. 한국 제약 역사상 큰 획을 긋는 쾌거가 아닐 수 없다. 선진국에 비해 한참 늦게 시작한 한국의 바이오산업이 세계를 석권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줬다. 현재의 계획대로라면 향후 5년 내에 연 1조 원 이상 팔리고 있는 바이오 의약품 8개를 전부 복제하게 돼 한국이 세계적 항체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게 된다. 2020년 연 100조 원 규모로 커지는 바이오 시밀러 시장을 한국이 최소 5년 앞서 선점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또 이 회사는 신종플루를 치료할 수 있는 있는 바이오 신약을 개발 중이며 올가을쯤 유럽에서 임상 1상을 마무리하고 2임상에 진입한다. 바이오 시밀러를 기반으로 바이오 신약 회사로 발돋움하고 있는 것이다. 2020년 글로벌 톱 10 제약사가 한국에서 나온다면 셀트리온이 될 가능성이 크다.
[헬스케어 산업] 시대 관통하는 물결…예방·바이오 ‘대세’
M&A 가치가 투자 판단의 핵심
줄기세포 분야에서 한국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늦게 출발했지만 2년 전 파미셀이 세계 최초로 심근경색 치료제를, 메디포스트가 무릎 연골 재생 치료제를 출시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한국은 정부의 지원과 육성책에 힘입어 2020년 1조 달러에 육박할 줄기세포 시장에 야심찬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황반변성에 의한 실명, 뇌성마비, 뇌졸중, 알츠하이머 치매, 백혈병, 림프종에 이르기까지 20여 개의 줄기세포 임상 파이프라인을 구축하고 있고 국내외에 병원 체인을 갖춰 안정적 현금 흐름을 가진 차바이오앤의 성장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웰빙 부문에서는 보톡스 시밀러인 메디톡신을 자체 개발했고 미용에서 치료용으로 용도가 확장되면서 성장하고 있는 메디톡스가 있다. 지난해 임상 2상을 종료하고 라이선싱 아웃이 임박한 차세대 메디톡신에 대한 기대가 높아 성장 스토리를 이어 나갈 전망이다.

임상 대행 업체(CRO)로는 유일하게 상장했고 방대한 설비 인프라와 풍부한 경험, 300여 곳에 달하는 고객 라인업을 구축한 바이오톡스텍이 있다. 올해 발효됐고 2015년 본격 시행될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의 최대 수혜 업체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제약 업계에 불고 있는 변화의 바람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이라는 비좁은 시장에서 복제약(제네릭)에만 의존해 많은 회사들이 무한경쟁을 벌여 왔고 이 과정에서 돈이 많이 들고 시간이 걸리는 R&D 투자보다 손쉽고 효과가 빠른 리베이트 영업이 공공연한 관행이 돼 왔다. 정부의 강력한 리베이트 규제, 약가 인하, 혁신형 신약 개발 지원 프로그램으로 제약 업계에 지각변동이 시작됐다. R&D 역량에서 뒤처지는 한계 기업의 퇴출과 상호 보완적인 M&A, 내 회사보다 탁월한 기술과 인력을 지닌 외부 회사와의 제휴를 통한 ‘열린 혁신(open innovation)’, 임상 단계에서 기술을 사고파는 라이선싱(licensing in & out) 전략이 부쩍 활발해지고 있다.

그리고 복제약에서 개량 신약으로, 개량 신약에서 신약 개발로 진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 또 화합물 위주의 합성 의약품에서 바이오 의약품으로 진화하지 못하면 성장의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는 구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제한된 자국 시장보다 해외시장에서 기회를 찾으려는 세계화 전략이 점차 중요성을 더하고 있다. 적자생존의 법칙에 맞게 이 변화의 흐름을 적극 수용하고 활용할 줄 아는 기업들에 주목해야 한다. 다국적 제약 회사 가운데 적극적 M&A를 통해 성장 동력을 확충한 회사들로는 로슈·애보트·길리어드가 있고 지속적인 R&D 투자를 통해 줄기차게 신약을 출시해 온 회사로는 노바티스가 있다. 이 회사들이 지금도 연평균 10%가 넘는 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비결이 여기에 있다. 한편 열린 혁신을 통해 성장 동력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있는 회사는 사노피아벤티스다. 반면 화이자·머크·GSK 등은 블록버스터급 신약의 특허 만료와 함께 복제약의 도전에 직면해 있고 새로운 성장 동력,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의 먹을거리 창출에 실기하면서 저성장 국면에 직면하고 있는 케이스다. 이들 빅 파머들의 행보는 통해 국내 제약 회사들에도 큰 교훈이 될 수 있다.
[헬스케어 산업] 시대 관통하는 물결…예방·바이오 ‘대세’
국내 제약 회사 가운데는 우수한 개량 신약 개발 능력과 다양한 제품 파이프라인을 보유하고 중국·동남아 시장에 수출 교두보를 선점한 한미약품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와 함께 국내 1위의 제네릭 전문 업체이면서 개량 신약과 제네릭 개발 능력이 탁월하고 신약 파이프라인도 갖춘 종근당, 제약 회사 가운데 R&D 투자 비중이 높고 바이오 의약품을 주력으로 하는 LG생명과학을 눈여겨보고 있다.


너무 늦은 투자는 ‘들러리’ 될 뿐
헬스 케어 기업에 투자할 때 제일 중요하게 여기는 포인트는 산업의 시대적 흐름에 맞아야 하고 독보적이고 독창적인 시장 영역을 구축할 수 있는 기업이어야 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 스토리를 써 나갈 기업을 선호한다. 큰 그림을 그려 나갈 스케일을 갖추고 있느냐가 제일 중요한 관심 사항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품에 대한 시장이 커야 하고 다국적 제약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기술력이 탁월해야 하고 기술을 돈으로 연결하는 마케팅 능력이 수반돼야 한다. 태생이 열악한 벤처기업이라면 자기의 아성을 고집하기보다 남들과의 제휴와 파트너십을 통해 부족한 R&D 역량과 자금의 한계를 극복할 줄 아는 열린 경영의 마인드를 갖춘 기업을 선호한다. 그럴듯한 기술을 가지고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기업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기술 개발에만 몰두해 온 엔지니어적 편협과 아집, 독선은 극히 위험해 투자 기피 제1순위다. 필자가 신발굽이 닳도록 기업을 방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기술 못지않게 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영진과 핵심 연구 인력의 유기적인 융화, 확고한 공동 비전의 공유, 경영진의 전문성, 합리적 마인드, 도덕성 등을 파악하려면 수시로 부딪치는 방법 외에 대안이 없다.
[헬스케어 산업] 시대 관통하는 물결…예방·바이오 ‘대세’
헬스 케어, 특히 바이오 기업에 대한 투자는 실적과 재무제표 분석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필자가 중시하는 가치 평가의 기준은 M&A 가치다. 보유 특허, 연구 논문의 수와 질, 연구·개발 경험과 역량, 핵심 인력(keymen)의 시장가치, 상용화 진척도 등을 따져 기업의 가치를 매겨 보고 시가총액과 비교해 충분히 싸다고 평가되는 기업에 투자한다.

헬스 케어 기업에 대한 투자는 종목 발굴 못지않게 투자 시기가 중요하다. 필자는 헬스 케어 투자를 인삼 농사에 비유하곤 한다. 인삼 밭에는 1년근부터 6년근이 같이 자라고 있다. 상품 가치를 인정받으려면 6년근이 되어야 하지만 그때가 되면 가격이 비싸진다. 그래서 4~5년근을 선호한다. 1~2년만 기다리면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는데 시장에서는 그 시간 비용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주가가 높지 않아 매집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헬스 케어 투자에서 범하기 쉬운 실수는 실적과 가치를 눈으로 확인하고 투자하면 실패한다는 사실이다. 글로벌 빅 바이오텍 기업들을 분석해 보면 초기 단계(기술 개발-상용화)에서의 주가 상승률이 성숙 단계보다 월등히 높았다. 성숙 단계에서 투자하는 게 안전해 보여도 자칫 다 끝나가는 잔치에 들러리를 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헬스 케어 투자 시 또 다른 애로 사항은 여간 확신을 갖지 않고는 시장의 편견과 주가의 변동성을 이겨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치 야생마 길들이기와 흡사하다. 헬스 케어상품의 운용 초기에 심한 변동성에 놀라 이탈한 투자자들도 있지만 2년이 지난 시점에서 되돌아 보면 지수 대비 우수한 성과와 안정성이 입증되고 있다. 야생마도 길들이고 나면 준마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의 핵심 가치와 성장성에 대한 심지 굳은 믿음이 중요하다. 변동성을 줄이는 방법으로는 철저히 조정의 바닥 국면에서 진입하고 과열 국면에서 일정 부분 차익을 실현하는 파도타기 전략도 필요하다. 또 헬스 케어 외에 가치가 안정된 비헬스 케어 기업의 편입으로 변동성을 줄이는 방법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



최남철 삼호SH투자자문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