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100세 시대를 한 마디로 정의하면, 일하는 기간보다 돈 쓰는 기간이 더 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시대인 것이다. 그런 만큼 100세 시대에 대비하는 우리의 자세도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은퇴 자산 지형 속에 숨은 뜻
우리나라는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과 평균수명의 급속한 연장으로 인구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인생 100세 시대를 목전에 두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상황과 달리 우리의 대비책은 여전히 이전 시대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OECD 평균에 훨씬 못 미치는 은퇴 자산

이런 차에 최근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에서 내놓은 2020년까지 우리나라 은퇴 자산의 지형이 어떻게 전개될지를 전망한 보고서는 큰 의미가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의 은퇴 자산을 2012년 843조 원에서 2015년에는 1170조 원, 2020년에는 192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얼핏 보면 매우 큰 금액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전혀 딴판이다.

우선 전통적인 은퇴 자산인 연금의 현재 상황이 만만치 않다. 가장 중요한 공적 연금과 퇴직연금을 합친 자산액이 2009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에도 훨씬 못 미치고 있다. OECD 34개 가맹국 평균은 87.2%인 반면에 우리나라는 28.3%에 머물러 있다. 각각 85.5%와 51.0%인 미국과 일본에도 한참 뒤진다. 우리나라의 연금 자산이 아무리 빠른 속도로 증가한다 하더라도 2020년까지 이들 국가를 따라잡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뿐만 아니다. 공적 연금과 퇴직연금의 비중을 보면 차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퇴직연금 자산의 비중은 OECD 평균이 67.6%인 반면에 공적연금은 19.6%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공적 연금의 비중(26.1%)이 2.2%에 불과한 퇴직연금의 비중보다 무려 13배 정도나 높다. 34개 OECD 가맹국 중 공적 연금의 비중이 더 높은 국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벨기에, 프랑스, 일본, 스웨덴 등 5개국인데, 이 중 공적 연금과 퇴직연금의 차이가 우리나라처럼 큰 나라는 전무하다. 차이가 가장 적은 일본의 경우는 0.6%포인트이며, 차이가 가장 큰 스웨덴의 경우에도 공적 연금의 비중은 퇴직연금에 비해 3.7배 정도 수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인연금을 포함해도 국민연금 하나를 따라잡지 못한다. 2010년 말 현재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합친 금액은 약 187조 원인데, 이는 약 324조 원에 달하는 국민연금의 57.5% 수준에 머물러 있다. 제도 도입 시기에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경우 은퇴 자산에서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비중이 지나치게 높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국민연금의 문제라기보다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성장이 기대만큼 높지 않았던 점에 더 큰 원인이 있다고 봐야 한다.

2020년까지의 추계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자산은 2010년 대비 각각 8배와 2.7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에 국민연금 대비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비중은 70.7%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2020년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의 은퇴 대비 자산은 국민연금 중심으로 구성돼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연금만으로는 은퇴 후 생활비의 반도 충당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적 연금이 국민연금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국민의 노후는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은퇴 자산 지형 속에 숨은 뜻
최빈 사망 연령이 90세가 넘으면 100세 시대라고 칭하는데, 우리나라는 2020년에서 2025년 사이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대한 근본적 혁신 필요

물론 국민연금도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는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하는 커다란 과제를 안고 있다. 결국은 사적 연금의 비중을 국민연금 이상으로 높이는 길이 인생 100세 시대에 대처하는 현명한 전략이지 않을까.

그러기 위해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에 대한 근본적인 혁신이 필요하다.

퇴직연금에서는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규모를 보이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퇴직금의 존재라는 점을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퇴직금도 노후 생활 자금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중간 정산이나 이직을 하면서 생활 자금으로 소진되는 경우가 태반이 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퇴직금과 퇴직연금으로 이원화돼 있는 퇴직급여제도를 퇴직연금으로 단일화하는 방법만이 유일하고도 가장 적합한 길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개인연금의 경우 비록 국민연금 다음으로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고는 있지만, 지금과는 또 다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가교연금(bridge pension)으로서의 역할이 그것이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정년 연령은 55세 전후로 변화가 없는 데 반해, 국민연금의 수령 연령은 점차 늦춰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 정년 연령인 55세에서 국민연금 수령 시기까지 길게는 10년에 달하는 소득공백기가 생길 수 있다. 이 소득공백기를 슬기롭게 극복하지 못하면 40년 정도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은퇴 생활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개인연금에 소득공백기를 극복할 수 있는 역할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현재 10년으로 돼 있는 세제혜택 조건을 유연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지금 베이비붐 세대들이 준비 없이 은퇴 대열에 합류하면서 노후 스트레스가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베이비붐 세대들이 은퇴 대열 합류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에게 남아 있는 일할 수 있는 기간은 채 10년도 안 된다. 이런 이들이 개인연금에 가입했다간 자칫 10년이라는 조건에 매여 손실을 볼 것이 뻔하다. 이들에게도 노후를 준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연금에 적용되고 있는 10년이라는 족쇄를 한시적으로라도 5년으로 단축해주는 배려가 필요한 지금이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을 주력 사업으로 영위하는 금융회사 역시 고령화시대에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다. 국민에게 희망과 비전을 심어주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북돋아 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상품과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추계에서 본 것처럼 사적 연금 시장의 성장은 필연적이다. 성장의 과실만 바라지 말고, 진정으로 고객을 위하는 사업수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지금 일부 권역에 대해서는 수수료만 챙기고 연금 관리는 뒷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이런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수수료 이상의 가치를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는 배전의 노력이 금융회사에 요구되고 있다.

인생 100세 시대는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그 양상이 많이 달라질 수 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100세 시대까지 아직 10년 정도의 여유가 있기 때문이다. 사적 연금 활성화를 위해 정부와 금융회사의 전향적인 모습을 기대해보는 이유다.


사적 연금이 국민연금을 따라잡지 못한다면 국민의 노후는 커다란 어려움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혁신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손성동 미래에셋 퇴직연금연구소 연구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