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물살을 가르는 사계절 레포츠

동면하는 개구리처럼 오랜 시간 봄을 기다린 이들이 있으니 바로 카약커(kayaker)들이다. 얼음이 녹은 강과 바다, 그리고 주변의 푸릇한 봄의 풍광은 카약킹을 떠올릴 때 빼놓을 수 없는 장면이다. 현재 추산되는 우리나라의 카약 인구는 약 1만5000여 명 이상이다. 카약의 입문에서부터 빠질 수밖에 없는 카약킹의 매력까지 모든 것을 알아봤다.
[Kayak Special] 카약, 그리고 카약커
Part 1 | Kayak Trend

흔히 카약(kayak)은 생긴 모양과 타는 방식 때문에 카누(canoe)와 혼동되는 레포츠다. 카누는 북미 인디언들이 사용했던 배 모양에서 비롯된 것으로 일명 ‘캐너디언 카누’라고도 불리는데, 덮개가 없고 외날 노(single-blade paddle)를 사용한다. 강이나 호수에서 즐기기에 적합한 레포츠랄 수 있다. 이에 비해 카약은 북극해 연안 그린란드와 알래스카, 알류샨(Aleutian) 열도지역에 거주하던 에스키모인들이 사용하던 보트가 그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에스키모인들이 수렵 등의 목적으로 고안해 낸 카약은 16세기 무렵 북극 주변을 탐험하던 영국인들이 최초로 발견했다. 19세기에 영국에서 처음으로 카약을 제작, 일반인들에게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수상 스포츠로 발전했다고 전해진다. 양쪽 끝에 날이 달린 양날 노(double-blade paddle)를 사용하는 것이 카누와 다른 점으로, 카약은 바다에서도 안정적인 운행이 가능하다. 따라서 카약킹은 보다 역동적이고 스피디한 레포츠랄 수 있다.

19세기에는 영국과 미국, 카약과 카누의 자존심 대결이 치열했는데, 영국에서 카약 레이싱 경주가 활성화된 반면, 미국에서는 카누클럽이 속속 결성되면서 개인의 카누 소유가 증가하면서 대중화에 가속도가 붙었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카누와 카약이 올림픽 경기 종목으로 채택됐는데, 카약은 유럽에서, 카누는 북미 대륙에서 관심을 모았다. 카약의 경우 현재 캐나다,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시장에 보급돼 있으며, 각 나라마다 파워를 자랑하는 동호회가 존재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카약은 대중화된 레포츠로 인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동호회 멤버로 활동하는 카약 인구는 대략 1만 명 정도(2012년 3월 현재 더키 타는 사람들 4700여 명, 후지타 카약 동호회 2900여 명, 투어링 카약 동호회 2300여 명 등)로 파악된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동호회 멤버로 활동하는 카약 인구는 대략 1만 명 정도(2012년 3월 현재 더키 타는 사람들 4700여 명, 후지타 카약 동호회 2900여 명, 투어링 카약 동호회 2300여 명 등)로 파악된다.
2009년 첫 동호회 발족, 카약 인구 1만5000여 명 이상 추산

우리나라에서 카약 인구가 본격적으로 증가한 것은 2009년 즈음. 카약커의 증가는 캠핑 인구의 증가와 궤를 같이 하는데, 단순한 볼거리, 먹거리 위주의 캠핑 문화가 온 가족이 함께 레저를 접목해 즐기는 쪽으로 변하면서 카약도 가족 단위 캠핑족들에게 러브콜을 받게 된 것.

국내 최초이자 최대의 카약 동호회인‘더키 타는 사람들’의 신은열 매니저는 “카약은 카약을 타고 낚시를 즐기는 카약 피셔나 내린천, 한탄강 같은 급류 지역에서 즐기는 화이트워터(급류) 카약, 바다 등 장거리를 투어링하는 투어링 카약 등의 형태로 즐기다가 오토캠핑이 주말 아웃도어 라이프로 각광을 받으면서 오토캠핑을 즐기는 오토캠퍼들이 2009년 ‘더키 타는 사람들’이라는 카약 동호회를 개설한 것이 카약커 증가의 발판이 됐다”고 설명했다.

신 매니저의 설명에 따르면 종전 카약은 가족과 함께 하기엔 어려운 급류 카약 또는 안정성이 비교적 떨어지는 투어링 카약 중심이었으나, 바람을 불어 넣은 인플레이터블(inflatable·더키) 카약이 국내에 수입되면서 카약 인구가 급속도로 증가했다는 것. 인플레이터블 카약은 높은 안정성과 차량에 수납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갖춘 카약으로 초보자들에게 적합한 카약이다.
[Kayak Special] 카약, 그리고 카약커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동호회 멤버로 활동하는 카약 인구는 대략 1만 명 정도(2012년 3월 현재 더키 타는 사람들 4700여 명, 후지타 카약 동호회 2900여 명, 투어링 카약 동호회 2300여 명 등)로 파악된다. 동호회에 가입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즐기는 사람까지 모두 합친다면 대략 1만5000여 명에서 2만 명 사이인 것으로 추산된다. 카약장비 판매업체인 카약가이(에프앤에스레져)의 박기서 이사는 “한국레저협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캠핑 인구가 10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데, 해를 거듭할수록 카약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미뤄 본다면 올해는 가족 단위의 레크리에이션 카약과 중장거리 투어링 카약 수요가 크게 증가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했다.

현재로서는 초기 도입 단계랄 수 있는 한국 카약 시장규모는 통상 카약커 1명당 장비 구입 금액을 200만~ 300만 원 선으로 계산한다면 대략 450억 원 규모로 업계 관계자들은 내다봤다. 국내에서 장비를 구입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대중화되지 않은 레포츠라서 해외에서 직접 주문해 개인적으로 수입하는 장비 비중이 높은 편이다.
고형 카약은 크게 투어링 카약과 급류 카약으로 나뉜다. 영국 브랜드 P&H 고형 카약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고형 카약은 크게 투어링 카약과 급류 카약으로 나뉜다. 영국 브랜드 P&H 고형 카약은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고형 카약 중 투어링 카약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 포인트 65로 카약킹을 시작하는 모습
고형 카약 중 투어링 카약으로 잘 알려진 스웨덴 포인트 65로 카약킹을 시작하는 모습
고형 카약은 스피드, 인플레이터블은 안전성이 강점

카약은 형태나 소재, 사용 목적, 타는 장소에 따라 선택하는데, 종류도 그만큼 다양하다. 보통 입문자나 초보자라면 좌우의 폭이 넓어 안정성이 높은 카약이 적합하다. 어떤 야외 활동이든 안전사고의 위험은 존재하지만 안전수칙을 숙지하고 구명조끼 등 최소의 안전장비를 착용하는 것이 필요한데, 초보자일 경우 선단을 이뤄 자신의 기량에 맞는 곳에서 타는 것이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

최근에 카약이 아웃도어족들에게 각광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특정한 체력적인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카약은 빠른 스피드를 추구하는 속도지향형 수상 레포츠가 아닌, 자연과 동화되면서 천천히 그 속으로 빠져드는 친환경 슬로 레저이기 때문. 사실 카약은 노를 젓는 간단한 반복 동작인 패들링과 기본 안전수칙을 익힌 뒤 타는 장소의 물살과 진행 방향에 따라 페이스만 조절한다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다. 따라서 가족 단위로 카약킹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여성, 어린이들도 흔히 볼 수 있을 정도다. 성별이나 체력에 크게 제약받지 않고 자신의 체력에 맞게 즐기는 것이 키포인트랄 수 있다.

카약의 종류는 일반적으로 카약을 즐기는 장소와 목적에 따라 구별하는데, 급류 지역에서 하얗게 부서지는 물살을 즐기면서 타는 ‘화이트워터 카약’, 계곡 등에서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래프팅 카약’, 강이나 바다 등 장거리를 이동하며 즐기는 ‘투어링 카약’, 낚시를 위한 ‘피싱 카약’ 등으로 구별한다. 이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카약은 투어링 카약과 피싱 카약이다. 승선 방식에 따라서는 사람이 올라타는 형태(sit-on-top)와 들어가는 형태(sit-inside)로, 승선 인원수로는 1, 2인용으로 나뉜다.
[Kayak Special] 카약, 그리고 카약커
카약을 선택할 때는 장소와 용도도 중요하지만 이동 수단, 사용 빈도, 보관 장소, 가격 등 전반적인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데, 고형 카약(접거나 형태를 변형시킬 수 없는 카약으로 길이가 4~6m에 이른다)은 빠르고 직진성이 좋다는 장점이 있다.

요즘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공기주입형 인플레이터블 카약은 뛰어난 안정성과 수납 및 이동의 용이함, 저렴한 가격이 장점으로, 고형 카약에 비해 비교적 넓은 선체가 안정성을 보장하므로 입문자들에게 인기가 높다(카약의 속도는 카약 선체에 비례하고 카약 선폭에 반비례한다. 카약의 안정성은 카약 선폭에 비례한다). 인플레이터블 카약은 바람을 빼고 접어서 가방에 수납할 수 있는 형태로, 아파트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은 우리나라는 5m나 되는 고형 카약을 보관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도 인플레이터블 카약의 선호도를 높인 배경이다. 실제 ‘더키 타는 사람들’ 동호회원들의 80% 정도가 인플레이터블 카약 소유자이기도 하다.

인플레이터블 카약 다음으로 인기가 높은 형태는 폴딩 카약으로, 카약을 목재 또는 두랄루민 등 구조물로 조립한 뒤 카약 스킨을 씌우기 때문에 인플레이터블 카약처럼 접어서 수납이 가능하다. 폴딩 카약의 경우 우리나라와 주거 형태가 비슷한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는 형태다.
안정성이 높고 보관이 용이한 인플레이터블 카약은 입문자들에게 적합한 카약으로 고형 카약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안정성이 높고 보관이 용이한 인플레이터블 카약은 입문자들에게 적합한 카약으로 고형 카약에 비해 가격이 저렴하다.
인플레이터블 50만~120만 원 선, 3개월이면 기본기 익혀

우리나라 카약 동호회는 1000명 이상 회원을 확보한 동호회 5곳을 중심으로 수십 개가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카약 전문판매업체는 3~5곳에 불과한데 카약가이, 보레알스포츠, 에어웨이브 등이 규모가 있는 판매업체들. 최근에는 캠핑 장비 매장과 낚시 전문점 등을 중심으로 카약 취급점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미국 브랜드 어드밴스트 엘리먼츠 피싱 카약. 가방 하나에 수납될 수 있어 보관이 용이한 것이 장점이다.
미국 브랜드 어드밴스트 엘리먼츠 피싱 카약. 가방 하나에 수납될 수 있어 보관이 용이한 것이 장점이다.
[Kayak Special] 카약, 그리고 카약커
입문자들이 선호하는 인플레이터블 카약으로는 미국 브랜드인 ‘어드밴스트 엘리먼츠(Advanced Elements)’가 인기가 높은데, 다양한 라인업과 안정성, 내구성을 인정받고 있다. 고형 카약은 크게 투어링 카약과 급류 카약으로 나뉘는데, 투어링 카약은 영국의 P&H와 스웨덴의 포인트 65(POINT 65)가 선호도가 높은 편. 급류 카약은 미국의 잭슨 카약(Jackson Kayak)과 세계적 급류 카약 톱 메이커로 알려진 영국의 피라냐(Pyranha)가 대중적인 브랜드로, 특히 피라냐는 올해 국내에 론칭돼 급류 카약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패들은 무게가 가벼울수록 비싸다. 특히 2~3시간 동안 노를 저어야 하는 투어링 카약에서는 가벼운 패들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패들은 무게가 가벼울수록 비싸다. 특히 2~3시간 동안 노를 저어야 하는 투어링 카약에서는 가벼운 패들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카약 장비를 갖추는 데 드는 예산은 카약 종류와 계절에 따라 차이가 있다. 카약 가격은 인플레이터블의 경우 50만~120만 원 선, 고형 카약은 150만~1000만 원 선이다. 구명조끼는 카약용일 경우 15만~30만 원 선, 패들(노)은 소재에 따라 10만~70만 원 선. 투어링 카약의 경우 2~3시간 동안 패들을 저어야 하는 점을 감안한다면 가벼운 것을 선택하는 게 체력적 무리를 줄일 수 있는데, 패들은 무게가 가벼울수록 비싸다. 겨울철에는 카약 슈트 등 추가 장비가 필요하다.
카약용 라이프 재킷
카약용 라이프 재킷
카약 입문은 동호회를 통하는 것이 접근성이 높으나 카약 판매회사가 운영하는 클럽에 가입하면서 시작할 수도 있다. 카약 선택에 자신이 없다면 동호회에 가입해 기존 회원들이 소유한 카약을 실제로 체험해 보고 비교한 뒤 구입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카약 전문 판매업체에서 실시하는 시승이나 체험 프로모션을 이용하는 것도 기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이점과 함께 장비 선택에 있어 어드바이스도 얻을 수 있다. 업계 관계자들은 활성화된 커뮤니티의 일원으로 함께 카약킹을 배우고 소양을 쌓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고 입을 모아 귀띔했다.
[Kayak Special] 카약, 그리고 카약커
전문가들에 따르면 카약의 기본기는 3개월 정도면 충분히 익힐 수 있다. 신은열 매니저는 “카약의 종류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인플레이터블 카약의 경우 아주 기초적인 패들링 방법과 선체 전복 시 다시 승선하기 위한 기술(셀프 레스큐)만 익히면 곧바로 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고형 카약의 경우는 기본적인 셀프 레스큐 이외에 카약이 전복됐을 경우 다시 카약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기술(에스키모 룰) 등을 습득해야 한다.
카약킹에 필요한 필수 장비인 구명 줄
카약킹에 필요한 필수 장비인 구명 줄
전문직·CEO 등 마니아층 확산

카약킹은 카약을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급류 카약을 제외하고는 별도의 체력 단련이 필요한 경우는 거의 없다고 전문가들은 전했다. 수년간 꾸준히 카약을 타면서 다양한 기술을 익힐 경우 카약 경기에 참가도 가능한데 대부분의 경우 급류에서 여러 기술을 선보이는 프리스타일 카약이다.

국내에는 카약대회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으나 ‘남도보물섬 카약대회’는 지난 2007년 국제슬로시티연맹으로부터 인증을 받은 후 매년 경기 규모가 커지고 있다. 현재로서는 정식 대회보다는 가족들이 함께 참가해 즐기는 카약 스프린트 대회나 카약 줄다리기 등 순위를 떠나 카약킹을 즐기는 형태가 더 일반적이다.

카약 클럽과 오프라인 판매점을 동시에 운영 중인 엑스트립투어의 이상호 대표는 “카약은 직장인들이 가족과 함께 즐기는 경우도 많지만, 일상에서 여유 없이 빠듯하게 사는 전문직 종사자나 최고경영자(CEO)들이 더욱 빠르게 빠져드는 레포츠”라고 전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일수록 자연 속으로 오롯이 빠져드는 카약킹의 매력에 보다 쉽게 매료된다는 것. 이 대표는 “금융계, 자영업자, 교수 등 다양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클럽을 찾는 고객들”이라고 귀띔했다. 엑스트립투어는 현재 보관이 어려운 고형 카약 소유자들을 위해 고형 카약 보관 서비스 사업을 준비 중이다.
우리나라 카약 인구 증가는 캠핑 인구 증가와 궤를 같이 한다. 최근에는 가족과 함께 동행하며 카약과 캠핑을 동시에 즐기는 카약 캠핑이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
우리나라 카약 인구 증가는 캠핑 인구 증가와 궤를 같이 한다. 최근에는 가족과 함께 동행하며 카약과 캠핑을 동시에 즐기는 카약 캠핑이 트렌드의 중심에 있다.
카약 동호회원들에게 인기가 있는 카약킹 장소는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데, 먼저 바다로는 서해안과 남해안 통영이 인기가 높다. 특히 남해 통영은 바닷물이 맑고 가까운 거리에 여러 섬이 있어 섬 카약 캠핑지로 각광을 받고 있는데, 비진도, 오곡도, 추도 등이 그 예다. 강의 경우엔 금강 상류인 용담댐부터 금산의 적벽강 오토캠핑장까지 금강을 따라 카약킹하는 코스와 괴산의 박대천 코스, 여름철 경북 봉화의 이나리강 코스, 동강이 인기가 높다.

앞서 설명한 장소가 따뜻한 계절에 주로 찾는 곳들이라면 가을에는 카약을 타고 충주호(청풍호)를 투어링하는 단풍 코스가 단연 백미다. 충주호는 인근 단양 소선암캠핑장 등에서 캠핑을 함께 할 수 있어 가족을 동반할 때 유용한 장소다. 캠핑을 겸한다면 송호리나 자라섬도 추천할 만한 지역이다.

카약을 타는 사람들 중 30~40%는 낚시를 하는 카약 피싱족들일 만큼 카약은 ‘강태공’들에게 더없이 좋은 레포츠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포인트에서 낚시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모든 낚시꾼들의 로망이다.
[Kayak Special] 카약, 그리고 카약커
박기서 이사는 “고무보트에 비해 가볍고 관리가 편한 장점 때문에 지난해부터 낚시를 목적으로 한 카약 구매가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외국에서는 이미 피싱 카약이 보편화돼 낚시 전용 모델이 시판될 정도”라고 덧붙였다.

여행과 모험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자연 속에서의 무한 자유와 예측하지 못한 난관을 이겨내며 느끼는 성취감은 모든 카약커가 입을 모으는 카약킹의 매력이다. 바람과 물을 가르며 사계절의 자연을 송두리째 만끽할 수 있는 카약은 일상의 ‘익스트림한’ 일탈로 점차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Part 2 | Kayaker Interview
“2인용 카약 앞자리, 기꺼이 내드립니다”

어머니의 품 같은 ‘물’을 느끼게 해준다는 카약.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어린 아이를 다루듯 잔잔하게 카약커를 껴안는다는 물의 마력에 사로잡힌 남자가 있다. 입문한 지 1년도 채 안됐다지만 그에게는 카약이 뒤집어질 파도와 그렇지 않을 파도를 가려내는 묘한 재주가 있다고 한다. 카약에 푹 빠진 예술가 김태곤 국민대 미술학부 교수를 만났다.
조각·회화·설치미술의 하이브리드를 추구하는 김태곤 국민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는 입문한 지 1년도 채 안된 카약의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조각·회화·설치미술의 하이브리드를 추구하는 김태곤 국민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는 입문한 지 1년도 채 안된 카약의 재미에 흠뻑 빠져있다.
전시회를 코앞에 둔 작가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을 내렸다. 4월에 있을 개인전 작품 준비로 한창 바쁜 때, 일면식도 없는 기자의 방문에 김태곤 국민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는 흔쾌히 연구실 방문을 열어 주었다. 전시회와 관련한 인터뷰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카약 이야기를 들으려는 것이 기자의 방문 목적. 예술가를 엄한 인터뷰로 모시는 것이 미안해 준비한 약소한 주전부리에 따뜻한 카페라테 한 잔이 답례로 나왔다.

“사실 지난해 8월부터 타기 시작했으니 정말 얼마 안됐어요. 제가 가입한 카약 클럽 운영자께서 인터뷰 얘기를 하기에 제가 인터뷰를 해도 되는 사람인가 고민스러웠어요. 그런데 카약의 대중화를 위해 꼭 나서줘야 한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조각·회화·설치미술의 조합을 추구하는 작가

현재 국민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학부장으로 재직 중인 김 교수는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를 추구하는 미술작가다. 한 가지 원천적인 소재로 다양한 표현을 한다는 의미로 조각과 회화, 설치미술의 하이브리드를 시도해 왔다. 서울대 86학번으로 같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는 영국 첼시 칼리지에서 설치미술과 사진을 공부했다. 일차원적인 회화와 레이저빔을 이용한 삼차원적인 설치미술이 결합된, 하이브리드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그의 다양한 학문적 배경에 기인한다.

실제로 그의 연구실에는 조소 작품을 비롯해 그림, 사진에 이르는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그 가운데 10여 년 전 작품이 실린 전시회 도록에서 삼차원 예술에 시간(역사)적 의미가 더해진 사차원적인 작품 하나를 발견했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발표했던 작품인데, 2000년 광주 비엔날레 본 전시에 출품한 작품이에요. 제목이 <불타버린 교실>인데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유치원생들이 수련회에 갔다가 화재로 참사를 당했던 씨랜드청소년수련원 참사를 표현했어요. 수련원 건물을 레이저 빔의 선을 이용해 표현했는데, 지붕 아래는 붉은색 빔이 주를 이루죠? 회화와 설치미술을 조합한 형태예요. 당시로서는 국내에 처음 선보인 작품 형태로 이 작품이 많은 관심을 모으면서 이후에 매우 바빠졌어요.(웃음) 서른넷에 비교적 일찍 국민대 교수로 오게 됐는데, 그러고 보니 벌써 11년째네요.”

‘교수님’ 특유의 진지하고 철학적인 내용에, 유머러스하고 위트 있는 재담을 적절히 섞을 줄 아는 김 교수와의 대화에는 지루함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조소를 전공하신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미술은 물론 음악에도 재능을 보였다는 그는, 미술대 교수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지금도 음악을 통한 삶의 엔터테인먼트를 놓치지 않고 있다. 예능은 물론 운동에도 원초적인(?) 감각이 있었다는데, 이 정도 되면 타고난 ‘예체능 신동’이었다고 할 수밖에. 미술도 모자라 사진까지 손을 뻗친 것을 보면 욕심의 그릇도 만만찮음이 분명한데, 카약에는 무엇 때문에 또 욕심을 냈던 것일까.

“지난해 7월, 여름방학을 이용해 학교 교수님 세 분과 몽골로 여행을 갔어요. 몽골 최대의 호수인 ‘홈스골(Hovsgol)’호수가 행선지였는데, 공항에 내려서 3박 4일간 평원을 달려서야 도달할 수 있었죠. 그런데 호수에 다다라 호수를 보는 순간 길었던 여정과 고생이 일순간 사라지며 가슴이 벅차오르는 겁니다. 호수가 워낙 크다 보니 바람이 좀 세게 불면 바다의 파도 같은 물결이 일더라고요. 물이 얼마나 찬 지 15분만 발을 담가도 얼얼해질 정도였죠. 1급수 맑은 물 바닥은 자갈이 훤히 보일 정도였고요. 현지에서 어부를 섭외해 고기 잡는 것을 봤는데, 삼지창으로 물고기를 바로 찍어 낚아 올리더라고요. 1m짜리 메기가 물에서 올라오는데, 그 생명력이 어찌나 강하던지 감동적이기까지 했어요.”



영혼을 흔드는 공포와 치유가 공존하는 바다

돌아와서도 도저히 잊히지 않는 홈스골에서의 생생한 영상은 그를 무작정 ‘물’로 이끌었다. 물에서 할 수 있는 활동을 떠올리자 카누와 카약이 생각났고, 이후 관련 홈페이지 서핑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현재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카약클럽을 알게 됐고, 내친 김에 덥석 인플레이터블(공기 주입형) 카약을 구입했다. 수영으로 단련된 중심 잡기 노하우는 초보 카약커에게 가장 어려운 카약 위에서의 중심 잡기를 그리 어렵지 않게 해줬다. 카약을 구입하고 간단히 기본기를 익힌 뒤 바로 카약을 타는 바람에 ‘전생에 카약커’라는 얘기를 듣기도 했다.
[Kayak Special] 카약, 그리고 카약커
“좀 급했어요.(웃음) 한 달 만에 고형 카약을 타고 바다로 나갔으니까요. 주말마다 카약을 타니 좋아하는 술자리도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피하게 되더군요. 수영을 꾸준히 해서 그런지 패들링(노 젓기)과 중심 잡는 것이 비교적 쉬웠어요. 앞에 보이는 파도에 배가 뒤집어질지 안 뒤집어질지 감이 오더라고요. 안 뒤집어진다는 확신이 서면 무작정 가는 거죠.”

하지만 클럽에서 ‘용감한’ 회원으로 한창 회자되던 즈음, 바다에 호되게 야단을 맞은 일이 발생한다. 설치미술 작품을 구상할 때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빛의 방향을 계산하듯 자연의 파도를 ‘머리’로 계산했던 나약한 인간에 대한 자연의 경고였다.

“지난해 11월이었어요. 클럽장과 함께 현지에 계신 카약커 한 분과 화성 쪽에 있는 궁평항에서 도리도까지 다녀오기로 했죠. 그때 풍랑주의보가 내렸는데, 현지 카약커가 ‘까짓것 2~4m 파도는 걱정할 것 없다’고 하는 거예요. 풍랑주의보가 내리면 15톤 이하 선박은 출항이 금지되는데, 카약은 겨우 24kg에 불과하거든요. 셋이서 무작정 나갔죠. 그런데 궁평항에서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저만 모래사장으로 다시 밀려왔어요. 파도가 세니까 직진이 어렵더라고요. 죽을 힘을 다해 도리도까지는 갔는데 돌아올 때가 문제였어요. 파도가 더 심해지더군요. 오후 2시경이었는데 도리도에서 어떻게든 하루를 묵고 나오자고 했지만 현지 카약커가 또 강행군을 하는 겁니다. 결국 50m 타고 카약이 전복됐어요. 다행히 다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라 섬으로 돌아와 다시 카약을 타고 궁평항까지 2km를 가는데 생(生)과 사(死)가 오가는 경험을 했어요.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족 이름을 모두 부를 정도였어요. 하하하….”

그는 ‘아찔한’ 그때의 기억을 ‘영혼이 흔들렸던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무너져 내린 자존심과 체력에 한동안 바다를 어려워하기도 했다고. 혹독한 신고식을 치른 셈. 하지만 그리 오래가진 않았다. 바다가 준 공포스런 경고에 비해 그는 바다가 주는 ‘어머니의 그것’ 같은 따뜻한 치유의 수혜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치유적 기능처럼 카약이 주는 치유가 있어요. 일종의 ‘물 치료’라고 할까요.(웃음) 물결이 잔잔할 때 카약 위에서 눈을 감아보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요. 지구 전체를 느끼는 기분이랄까요. 저한테 전달되는 물의 생명력과 에너지가 곧 치유죠.”

김 교수는 요즘 길에서 보는 유모차에 ‘꽂혀’ 있다. 무거운 카약을 차 대신 이동시킬 카약카터 연구라고나 할까. 카약도 아기처럼 곱게 다뤄야 하는 물건인 만큼 아기를 위해 디자인된 유모차를 활용해 미니멀하면서도 유용한 카약카터를 만들 작정이다. 카약을 두려워하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에게 카약의 힐링 효과를 경험하도록 한 자리를 내어주고자 얼마 전엔 2인용 카약도 주문해뒀다. 열심히 하는 자 위에 즐기는 자가 있다 했던가.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그는, 가히 ‘마니아’라 할 것이다. 시간이 될 때 2인용 카약 앞좌석을 예약해볼까 한다.
“예술의 치유적 기능처럼 카약이 주는 치유가 있어요. 일종의 ‘물 치료’라고 할까요.(웃음) 물결이 잔잔할 때 카약 위에서 눈을 감아보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요. 지구 전체를 느끼는 기분이랄까요. 저한테 전달되는 물의 생명력과 에너지가 곧 치유죠.”
“예술의 치유적 기능처럼 카약이 주는 치유가 있어요. 일종의 ‘물 치료’라고 할까요.(웃음) 물결이 잔잔할 때 카약 위에서 눈을 감아보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껴요. 지구 전체를 느끼는 기분이랄까요. 저한테 전달되는 물의 생명력과 에너지가 곧 치유죠.”
김태곤 국민대 예술대학 미술학부 교수
사진 이승재 기자
글 장헌주 기자 chj@hankyung.com 도움말·사진 제공 더키 타는 사람들(http://cafe.naver.com/dukies), 카약가이(www.kayakguy.co.kr), 엑스트립투어(http://www.xtri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