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부터 여성 인구가 절반 넘어서, 소프트 경제 도래 예고

남녀 성비 대역전…주력 산업이 바뀐다
# 지역마다 경로당은 이미 ‘할머니 세상’이 됐다. 숫자에서 절대적으로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양천노인종합복지관 경로당에서 90% 정도가 여성이다. 우리 사회 여초의 단면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곳이 경로당이다. 이영화(73) 할머니는 “할머니 숫자가 부쩍 늘었다”며 “할아버지가 귀해져 모셔 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출산을 앞두고 있는 김지현(35) 씨는 산달을 손꼽아 기다린다. 임신 전부터 딸을 희망했던 김 씨는 초음파 사진으로 성별을 알게 된 이후 웃음꽃이 피었다. “현재 계획으로는 한 명만 낳을 것 같은데 이왕이면 딸이었으면 했어요. 요즘 세상에 자녀한테 노후를 책임지라고 말할 수 없고 나중에 나이 들면 딸과 친구처럼 지낼 생각이에요.”

# 초등학교, 홍보 대행사 등 전통적으로 ‘여초’였던 직업군 이외에 금녀의 구역에서도 여성이 약진한다. 군대가 대표적이다. 각급 부대 지휘관·참모, 전투기 조종사, 고속정 지휘관까지 여성이 진출했다. 마지막 금녀 지대였던 잠수함에도 여성이 승선한다. 50년 만에 군가에서 ‘사나이’ 단어가 빠지게 됐다.

2015년부터 한국이 ‘여초 사회’로 접어든다. 곳곳에서 단면적으로 나타나던 여초가 이제는 인구구조로 뒷받침된다. 남녀 성비가 역전되며 바야흐로 여초 시대가 열렸다. 여성가족부·통계청의 ‘2014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여성 인구는 2531만5000명으로 남성 2530만3000명을 앞지른다. 이는 1960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이다. 여초 현상은 더욱 심화돼 2020년에는 여성 100명당 남성이 99.4명, 2030년에는 98.6명까지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여성 장수 영향
여초의 요인은 남아 선호 사상이 옅어진 한편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성보다 긴 데 있다. 이지연 통계청 서기관은 “자연스러운 출생 성비가 유지되면 여성이 오래 살기 때문에 전체 성비에서 여자가 많은 게 당연한데 한국은 남아 선호 사상이 강해 그동안 다소 비정상적인 성비를 유지해 왔다”고 말했다. 미국·캐나다·호주·유럽 등 선진국은 이미 1950년부터 여성 인구가 남성보다 많았다. 이제 한국도 성비 불균형에서 벗어나 ‘선진국형’ 성비를 유지하게 됐다.

출생 성비에서 통상 103~107 사이를 ‘정상 범위’라고 말한다. 여아 100명당 남아 비율은 자연발생적으로 남아 출생이 좀 더 많다. 한국은 1980년대 초반 107 안팎을 유지하다가 1986년 111.7로 올라섰다. 태아 성감별이 가능해지면서 남아 성비가 높아졌다. 1990년에 116.5로 역대 최고를 기록하고 2000년까지 대체로 110대를 맴돌았다. 1990년대 남초 현상은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운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아들이 집안을 잇는다는 인식이 강한 상태에서 산아제한을 하자 남아에 대한 선호가 커졌다. 이후 2000년대 들어 2001년 109.1, 2003년 108.7, 2005년 107.8로 점차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 2007년 106.2로 처음 ‘정상 범위’에 진입했다. 2013년 현재 출생 성비는 105.3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한다.
남녀 성비 대역전…주력 산업이 바뀐다
이러한 흐름에는 ‘가치관 변화’가 자리한다. 성별 구분 없이 자녀 한 명만 낳는 가정이 늘어난 데다 2000년대 들어 ‘딸 선호’ 현상이 짙어졌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개선되고 부양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게 배경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2년 전국 결혼 및 출산 동향 조사에 따르면 기혼 여성 77.9%가 성별 구분 없이 ‘이상 자녀 수’를 제시했고 성별을 구분할 때 남아 1.14명, 여아 1.33명으로 성비가 86으로 나타났다. 옅어가는 ‘남아 선호 사상’에 한 발 나아가 ‘짙어가는 여아 선호 가치관’을 엿볼 수 있다. 김지현 씨는 “남편도 벌써부터 ‘딸바보’가 됐다”며 “‘슈퍼맨이 온다’ TV에서 ‘사랑이’와 ‘하루’를 보며 감성적으로 교감을 잘하는 아빠와 딸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성비 역전은 인구구조의 고령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고령화가 낮은 출산율을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출산율이 줄어들면서 고령 인구 비중이 빠르게 늘어가는 추세다. 여초가 나타났다는 것은 본격적으로 고령화에 접어들었다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학과 교수는 “고령화가 진전된 나라일수록 여성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여초는 고령화와 맞물려 가는 것으로 전체 인구에서 50% 이상이 여성이라는 것은 고령화로 들어갔다는 표시이고 앞으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녀 평균 기대 수명은 2012년 기준 여성 85세, 남성 78세로 여성이 남성보다 7년 더 오래 산다.


여초 도시 1위 ‘서울’
그러면 실제 어느 연령대에서 성비 역전이 이뤄질까. 통계청 장래 인구 추계에서 연령별 성비를 분석한 결과 2015년 기준 53세를 기점으로 여초 현상이 나타난다. 20년 뒤인 2035년 기준으로 보면 54세로 연령 차이는 거의 없었다. 인구 피라미드에서 학령인구(6~21세), 생산 가능 인구(15~64세), 고령 인구(65세 이상)로 구분해 성비 변화를 살펴보면 어떠할까. 생산 가능 인구 성비는 2015년 104.6, 2025년 104.6, 2060년 106.5 등으로 남녀가 거의 비슷한 수준이다. 앞서 얘기한 ‘정상 성비’를 유지한다. 고령 인구 성비는 남녀 간 사망률 격차가 감소하면서 점차 높아지는 형태다. 여성이 장수하는 것은 동일하지만 건강관리에 힘쓰는 노인 남성이 늘면서 고령 인구 성비는 2010년 69.1에서 2060년 87로 다소 상승할 전망이다. 학령인구는 2010년 111.4에서 2060년 104.8로 낮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해 보면 2060년까지 성비 형태는 중간 연령층에서는 정상 범위를 유지하다가 고령층에서 성비 역전이 이뤄지는 형태를 띠는 전형적인 ‘선진국형’ 모델을 지속할 예정이다.
남녀 성비 대역전…주력 산업이 바뀐다
지역별로는 어떠할까. 장래 인구 추계 시·도편에 따르면 전국 성비는 2013년 100.2에서 꾸준히 감소해 2040년 97.8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2013년 전국에서 성비가 가장 낮은 곳은 서울로 96.5를 기록한다. 여초가 가장 심화된 도시가 서울이라는 뜻이다. 2040년 97.8로 시간이 갈수록 여성이 더 득세할 것으로 보인다. 허문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은 서비스업 비중이 가장 높고 젊은 여성이 많아 여초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일자리를 찾아 대도시로 이동한 여성이 많고 일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는 산업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을 비롯해 여초 현상을 보이는 지역은 부산(96.8)·대구(98.7)·광주(98.7)·전북(97.4)·전남(97.6) 등 총 6개 도시다. 성비가 가장 높은 시도는 세종(110.9)·울산(108.5) 등 11개 시·도로 나타났다. 허문구 연구위원은 “인구 유출이 많은 도시에서는 타 지역으로 유출하는 인구가 늘면서 고령화가 나타나 여초 현상을 보이고 있고 울산은 서비스업이 광역시 중 가장 낮고 제조업 비중이 높아 남성이 많은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울산은 2040년에도 성비(106.9)가 가장 높은 도시로 전망됐다. 2040년이 되면 서울(93.0)·부산(93.7)·대구(94.9)·인천(97.7)·광주(97.9)·대전(98.8)·경기(99.3)·강원(98.8)·전북(97.3)·전남(99.9)·경북(99.8)·제주(97.8) 등 16개 시·도 중 12개 시·도에서 전반적인 여초 현상을 보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역별 여초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상림 보건사회연구원 인구연구센터장은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곳에서 여성 노인 인구가 많아 여초가 되는 곳은 농촌 공동화 가능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여성 대학 진학률 남성 앞질러
여초 현상은 보이는 수치 이면에 더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점진적으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향상되고 여성의 약진이 돋보이며 ‘여성 상위 시대’ 얘기가 나오는 요즘이다. 조영태 교수는 “곳곳에서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제 숫자에서도 여성 성비가 높아지고 출산에서도 더 이상 남아 선호 사상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가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미 여성의 약진 현상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여초 시대를 맞아 ‘여풍’은 더욱 거센 바람을 탈 것으로 보인다. 교육 부문에서는 이미 여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2009년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처음으로 남학생을 앞질렀다. 이후 격차가 계속 벌어져 2013년 진학률(74.5%)이 남학생(67.4%)보다 7.1% 포인트나 높았다.
남녀 성비 대역전…주력 산업이 바뀐다
여성 노동력의 증가로 경제구조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학력 수준이 높은 여성들이 노동시장에 진입·재진입하며 새 바람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서비스·정보 중심 산업의 부상이 예상된다. 또한 북유럽 사례를 볼 때 기존 남성이 많이 진출해 있는 영역과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에서 맹활약하는 여성들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의 주력 산업이 바뀔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허문구 연구위원은 “경제구조에서 주력 산업이 소프트 경제로 변화될 가능성이 있다. 소프트 경제는 결국 현 정부에서 말하는 창조 산업과 맥을 같이한다”며 “여초 시대 창조 산업이 활성화됨으로써 국가 전체 생산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철강·자동차·조선 등 제조업 수출 경제에서는 힘이 센 남성의 노동력을 필요로 했지만 여성 노동력이 증가하면 그에 맞는 새로운 산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허 연구위원은 “소프트 경제는 국내 수요자 맞춤형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며 “주력 산업의 수출과 환율에 의해 민감하게 움직이는 현 경제체제에서 벗어나 국내 내수 시장을 진작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이때 관건은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한국은 제조업 비중이 높은 반면 서비스업 비중이 낮은 특징을 갖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서비스업 비중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이 때문에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대다수 선진국은 서비스 비중이 높다는 점을 들어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서비스업을 강화할 필요성이 매우 크다고 강조한다. 서비스업은 제조업에 비해 두 배 이상의 고용 창출력을 가지고 있는 반면 부가가치가 낮은 편이다. 서비스업 비중이 확대되는 데 여성 노동력이 상당 부분 기여할 것으로 전망되는 시점에서 고부가가치화를 모색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부가가치와 생산성이 높은 업종 중심으로 산업구조 고도화를 이뤄가는 것이 여초 시대에 걸맞은 방향성으로 제시된다.


인구구조 대변혁 일어난다
소비 부문에서도 여초 현상은 새로운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김천구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원은 “주거비나 건강·보건 분야 소비가 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학령인구가 감소하면서 교육비 지출은 상대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여성 소비가 더 늘어나며 여성이 선호하는 문화·서비스 소비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기업 문화도 여성 친화적인 쪽으로 더 변화될 전망이다. 남성 사회의 ‘군대 문화’는 점차 옅어지고 기업에서도 여성을 배려하는 조직 문화가 제도적으로 자리 잡을 것이다. 능력 있는 여성이 ‘짝 찾기’에 부심하며 결혼 문화도 크게 바뀔 것으로 전망된다.

여초 시대는 인구구조 변화와 떼어 놓고 볼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지금 ‘인구 대변혁’이라고 할 만큼 인구 패러다임 전환을 겪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요약되는 이 변화에서 ‘인구 감소’는 곧 한국 경제를 위협할 ‘인구 폭탄’으로 지적된다. 인구 고령화로 노동 투입이 감소되고 잠재성장률이 낮아지는 게 원인이다. 미래 준비가 부족한 고령층 부상으로 평균 소비 성향도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반면 정부의 재정 부담은 높아진다는 시나리오다.

한국은 지금 세계적으로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국가다. 2017년에는 ‘고령사회’에 진입하게 된다.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열네 살 이하 유소년 전체 인구보다 많아져 고령 인구 비중이 14%를 넘는다. 2000년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지 불과 17년 만이며 2040년이 되면 일본에 이어 고령화 속도가 세계 2위 수준으로 높아질 전망이다. 반면 생산 가능 인구는 2016년 3704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뒤 2017년부터 빠르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생산 가능 인구의 주력인 25~49세 인구는 2014년 1958만 명, 2015년 1940만 명으로 이미 줄어들고 있다. 2030년도엔 전체 인구수가 감소하는 ‘인구 역전’이 예상된다. 무역협회 산하 국제무역연구원은 2020년쯤을 기점으로 한국은 소비 둔화와 함께 경제가 하강하는 ‘인구 절벽’에 도달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인구 역전, 생산 가능 인구 감소, 고령사회 진입 등 굵직한 인구 변화 이슈가 줄줄이 예고돼 있다. 저하되는 노동 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가 한국 경제를 살리는 주요 과제로 꼽힌다. 또한 근본 원인인 저출산을 탈출하는 것과 감소하는 생산 가능 인구를 대체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여성의 경제 참여와 여성 인력 활용이 한국 경제의 주요 과제로 부상하는 배경이다.

인구문제와 노동력 부족 현상을 일거양득으로 해결하기 위한 키는 결국 여성이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재 대안으로 언급되는 것들에는 은퇴 인력 활용, 외국인 인력 투입, 정년 연장 및 정년 제도 철폐, 여성 인력 활용 등이 있다. 이 중 가장 ‘효과적인 대안’으로 꼽히는 게 여성 인력 활용이다. 이소영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출산정책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노인과 여성 인력 활용 주장이 설득력이 있는데 노인은 건강의 우려가 있어 여성 고용률을 높이는 게 가장 현실성 있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은 OECD 국가 중 여성의 경제활동이 낮은 수준”이라며 “다른 국가에 비해 여성이 덜 일하고 있다는 출발점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는 점을 볼 때 여초 시대라는 인구구조 속에서 여러 가지가 맞물려 가장 확실한 답으로 여성이 부각되고 있고 실제 정부도 이러한 배경에서 저출산·고령화 기본 계획의 중점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 연구위원은 “여성 인력을 활용하는 게 선택의 폭이 넓고 파급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결국 인구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꼽히는 출산율의 키를 쥐고 있는 쪽도 여성이다. 가임 여성이 얼마나 분포돼 있는지가 국가의 전망과 맞물려 있다. 이소영 연구위원은 “아이를 더 낳으라고 강제할 수 없고 더 낳고 싶도록, 적어도 출산이 두렵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게 핵심”이라며 “고령화에 따른 부양비 부담을 낮추는 동시에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는 두 가지 역할을 감당하는 데 여성이 ‘답’으로 부상한다”고 말했다. 이미 정부가 여러 정책을 투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탈출에서 실패한 이유를 찾는데서 갈 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