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를 예측하는 능력이 인생의 성공을 결정한다.”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의 메시지는 ‘변화’였다. 그는 오래된 기관과 전통, 정당, 국가들이 무너지는 대전환을 우리 생애에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세계를 짓누르는 막대한 부채가 가장 뚜렷한 징후다. 역사상 모든 제국이 빚더미 속에서 종말을 맞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가리키는 곳은 중국과 아시아다. 한경비즈니스 초청으로 5월 30일 방한한 로저스 회장은 제8회 제주포럼에 참석해 ‘위기 이후 성공 투자법’을 공개하고 고려대에서 학생들을 만나 인생과 투자에 대한 자신만의 통찰을 들려줬다.
[‘전설적 투자가’ 짐 로저스 2박3일 동행 취재] 인생과 투자 13가지 레슨
짐 로저스(71)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조지 소로스와 함께 헤지 펀드인 ‘퀀텀펀드’를 창업해 10년 동안 4200%의 수익률을 기록한 월스트리트의 전설적인 투자자다. 두 차례 세계를 일주한 여행기를 각각 책으로 써서 베스트셀러에 올린 저자이기도 하다. ‘상품 투자의 귀재’, ‘금융계의 인디아나 존스’라는 별명이 따라 붙는다.

2007년 뉴욕 맨해튼의 저택을 팔고 싱가포르로 이주한 그는 ‘아시아의 시대’를 예견한 선구자이도 하다. 뒤늦게 얻은 10세와 5세 딸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70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계 금융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다. 그의 투자 결정,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이 출렁인다.

지난 4월 로저스 회장이 중국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중국 디지털 문화 산업이 향후 새로운 투자 핫 포인트가 될 것”이라고 언급하자 중국 증시의 문화·디지털·미디어 관련주들이 일제히 상승한 게 좋은 사례다. 이에 앞서 3월에는 싱가포르 국제 동전 전시회에 나온 북한 주화를 싹쓸이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로저스 회장은 상품 투자 예찬론자이지만 금에 대해서만은 유보적인 태도를 보여 왔다. 최근 세계적으로 금값 폭락세가 이어지면서 그의 예측이 또 한 번 맞아떨어졌다. 그는 일본과 러시아 증시를 밝게 보고 투자를 늘리고 있다고 공개하기도 했다. 젊은이들에게는 MBA 대신 농업이나 광업 전문가가가 되라는 충고를 빼놓지 않는다.



MBA 대신 농업에 투자하라

로저스 회장은 1942년생으로 미국 앨라배마의 데모폴리스라는 시골 마을에서 성장했다. 다섯 살 때 야구장에서 빈병을 주워 팔며 첫 ‘사업’을 시작했다. 아버지는 “돈이 나무에서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4년 장학생으로 예일대 역사학과에 입학했지만 부족한 생활비를 벌기 위해 수많은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졸업 후 하버드대 경영대학원과 로스쿨, 예일대 로스쿨에서 모두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더 넓은 세계를 보기 위해 영국 옥스퍼드대 베일리얼칼리지로의 유학을 선택했다. 옥스퍼드로 떠나기 전 잠시 서머 인턴으로 월스트리트의 투자회사에서 일했다. 주식과 채권도 구분하지 못하는 문외한이었지만 그곳에서 자신의 미래를 발견했다.

옥스퍼드에서 돌아온 로저스 회장은 애널리스트로 월스트리트에 입성했다. 3개 투자회사를 거쳐 1970년 안홀드 앤드 에스 블라이흐뢰더에서 부사장이던 12세 연상의 조지 소로스를 만났다. 소로스는 탁월한 감각을 지닌 트레이더였다. 반면 로저스 회장은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분석하고 예측하는 리서치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두 사람은 1973년 유명한 헤지 펀드 ‘퀀텀펀드’를 공동 창업했다.

성공의 정점에 있던 1980년 37세에 은퇴를 선언한 뒤 오토바이 한 대를 가지고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1990년 52개국 6만5000마일, 1999년 116개국 15만2000마일을 여행해 기네스북에 올랐다.

로저스 회장은 ‘상품시장의 귀재’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1990년대 상품시장의 랠리를 예측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 그는 “어느 나라에 가든 술집 여주인이나 매춘부, 암시장의 중개인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는 게 그 나라의 장관을 만나는 것보다 그 나라에 대해 훨씬 더 많이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취재=장승규·이진원·김민주 기자·하정연 객원 기자
사진=서범세·김기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