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투자가’ 짐 로저스 회장의 경고

[COVER STORY] 곡물가 폭등, 재앙은 시작됐다
국제 곡물 시장이 심상치 않다. 밀·옥수수·콩 등 주요 곡물 가격이 올 들어 급등세다. 세계적인 곡창지대에서 터진 우크라이나 사태, 미국·브라질의 대가뭄으로 공급 차질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역사상 최악의 ‘슈퍼 엘니뇨’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61개 신흥국에서 시위와 폭동 사태가 빚어졌던 2008년 글로벌 식량 위기를 다시 떠올리는 이유다. 농산물 가격 강세를 그 누구보다 일찍 예견하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여 온 세계적인 투자 전문가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을 독점 인터뷰해 곡물가 상승의 원인과 향후 전망 등을 물었다.



“세계는 이미 큰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식량 가격이 계속 치솟을 것이고 폭동이 일어나고 사회불안이 빚어질 겁니다.”

수화기를 울리는 짐 로저스(72) 로저스홀딩스 회장의 목소리에선 긴박감이 느껴졌다. 로저스 회장은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급등)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며 “많은 정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레스토랑이나 슈퍼마켓에만 가도 진실을 알 수 있다”며 “곡물 가격은 계속해 뛰고 있으며 앞으로 더 오를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지 소로스와 퀀텀펀드를 공동 창업해 10년간 4200%의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로저스 회장은 경제의 밑바닥과 역사를 꿰뚫는 철학적 투자자로 유명하다. 지난해 5월 한경비즈니스 초청으로 방한한 그는 제주포럼 강연에서 “농부가 람보르기니를 타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경영전문석사(MBA) 대신 트랙터 모는 법을 배우라”고 말해 큰 주목을 받은 바 있다. 4월 23일 청두·상하이·톈진·베이징으로 이어지는 중국 강연 투어 중이던 로저스 회장을 어렵게 전화로 인터뷰했다.


최근 밀·옥수수 등 곡물 가격 급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향후 수년간 곡물 가격이 계속 오를 겁니다. 우리는 10년 동안 생산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소비해 왔어요. 곡물 재고가 역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죠. 더 좋지 않은 것은 농부가 없다는 겁니다. 농업의 수익성이 과거 30년 동안 끔찍했거든요. 아무도 농부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어요. 미국 농부의 평균 나이는 58세예요. 일본은 66세죠. 영국에서 자살률이 가장 높은 집단이 바로 농부예요. 인도에선 수백 만 명의 농부들이 자살하고 있고요. 이제 세계는 농업 부문에서 큰 위기에 봉착해 있어요. 곡물을 생산할 농부가 없는 한 가격은 계속 오를 겁니다.


최근 현상이 그동안 농업을 외면해 온 결과라는 말씀인가요.
그래요. 농업을 소홀히 한 대가죠. 미국에선 농업을 공부하는 사람보다 MBA를 공부하는 사람이 더 많아요. 이제 곡물 가격 상승으로 농업이 점점 수익성 있는 사업으로 변하고 있죠. 수익성이 더 높아져 농부들이 람보르기니 자동차를 몰고 다니게 되지 않는 한 농부 부족 현상은 계속될 겁니다.


올 들어 곡물 가격을 끌어올린 단기적 요인은 무엇입니까.
우선 재고가 바닥나고 있다는 거죠. 우크라이나의 생산 문제도 있고요. 우크라이나는 농업 비중이 매우 큰 나라거든요. 날씨도 문제예요. 기상이변이 일어나면 앞서 말한 요인들과 결합해 더 심각한 문제가 생길 거예요.


올해 곡물 수급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습니다.
그런 전망에 동의하지 않아요. 전문가들이 문제가 없다고 말해 기쁘지만 바로 그 때문에 문제라고 봐요. 사람들이 문제가 없다고 여길 때가 바로 진짜 문제거든요.


글로벌 애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애그플레이션이 일어나고 있어요. 많은 정부가 이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죠. 레스토랑이나 슈퍼마켓에만 가도 알 수 있어요. 애그플레이션은 이미 진행 중입니다. 곡물 가격이 크게 오른 캘리포니아는 지금도 폭동 때문에 심각한 문제를 겪고 있어요.


2008년 같은 식량 폭동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있습니까.
재고가 없고 농부가 없다면 식량을 어디서 얻을 겁니까. 더 많은 실패 정부가 나타나고 더 많은 실패 국가가 생길 겁니다. 향후 10년 내에 큰 위기를 맞게 될 거예요.


농부가 적다는 것이 왜 그렇게 문제가 됩니까.
누군가는 밭에 나가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식량을 어떻게 구할 건가요. 식량이 하늘에서 그냥 뚝 떨어지지는 않아요. 누군가 생산해야 하는데 아무도 농사를 짓지 않으면 방법이 없죠. 정부나 정치인이 식량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까.


투기 자본 유입이 가격 상승을 가져왔다는 비판도 있는 데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다른 사람, 다른 투자자들도 알고 있어요. 뭔가 부족한 것을 알게 되면 사람들은 그곳에 투자하기 시작하죠. 이들이 투기를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은 투자자예요. 비행기든 컴퓨터든 식량이든 기름이든 무엇인가 부족하면 사람들은 거기에 투자합니다. 앞으로 더 많은 투자자들이 나타날 것이고 나타나길 바라죠. 투자하지 않으면 어디서 식량이 옵니까. 노동·자본·관리를 끌어들이려면 식량 가격이 상승해야만 해요. 식량 가격이 오르지 않으면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려고 하지 않겠지요.


가격 상승이 불가피하고 어떤 면에서는 바람직하다는 뜻입니까.
그래요.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높은 가격 문제는 높은 가격이 해결한다’는 말이 있죠. 가격이 올라가면 더 많이 생산하게 되고 사람들이 더 적게 소비하게 돼 다시 가격이 낮아진다는 거예요.


당신이 강조하는 수요 공급의 법칙을 말하는 겁니까.
수만 년 동안 일어난 일이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도 곡물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낮다고 생각합니까.
설탕은 가격이 가장 비쌌을 때와 비교해 현재 75%나 떨어진 상태죠. 무려 75%나요. 지난 수십 년 동안 최고 수준에 비해 75%나 가격이 떨어진 게 또 있는지 모르겠어요.


가격이 가장 많이 오를 것으로 예상하는 곡물은 무엇입니까.
시장 타이밍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단기 매매 전략도 그렇고요. 세계적으로 소비가 늘고 있는 쌀? 채소와 과일?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전반적으로 모두 다 오를 것이라고 봐요.


올해 최악의 엘니뇨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는 데요.
나는 기상예보관이 아닙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전문가들도 그렇게 기상을 잘 관측한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현재 세계는 위기에 직면해 있어요. 엘니뇨가 발생할 수도 있죠. 그러면 상황은 더욱더 악화될 겁니다. 과거에도 기상으로 인한 위기가 있었죠. 기상이변은 앞으로도 계속 심해질 거예요.


중국 수요의 영향은 없습니까.
수요는 어느 나라나 많아요. 꼭 중국 때문이라고 할 수는 없죠. 한국도 쌀 소비를 많이 하지 않나요. 곡물 수요는 여러 곳에서 증가하고 있습니다. 쌀·보리·콩 등 모든 것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요.


하지만 중국이 곡물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이 거대한 나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미국·유럽·일본은 중국에 비해 경제 규모가 10배나 큽니다. 수요는 도처에 있어요. 중국 역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요. 농업도 수요와 공급으로 이뤄져요. 다시 말하지만 수요는 어디에나 있어요. 공급이 없는 게 문제죠.


자원민족주의가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있습니까.
상황이 나빠지면 정치인들이 가격 통제 조치를 다시 취할 겁니다. 과거에도 수없이 벌어진 일이죠. 가격통제는 상황을 절대로 개선할 수 없어요.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죠. 수년전 필리핀에서 쌀값을 통제했어요. 쌀값이 다른 곡물에 비해 매우 낮아 소비자들이 더 많은 쌀을 소비했죠. 쌀이 돈이 되지 않자 농부들은 쌀 생산을 멈췄어요. 쌀이 부족해진 거죠. 정치인들이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통제 조치를 풀었어요.


최근 곡물 가격 상승에 우크라이나가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우크라이나는 수 백 년 동안 농업 생산 국가였습니다. 아직 4월이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어요. 만약 불안정성이 더 커진다면 농산물 생산도 차질을 빚을 거예요.


당신은 저서에서 구소련 연방이 100개 이상의 작은 나라로 쪼개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그 연장성에 있습니까.
당연합니다. 그건 우크라이나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에요. 스코틀랜드도 영국에서 분리되기 바라고 스페인 일부 지역들도 분리를 원하고 있죠.


그 동인은 무엇입니까.
그 나라들이 타당한 방법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1884년 베를린 의회에서 아프리카에 대해 전혀 모르고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아프리카를 분할하는 선을 그었어요. 현재 많은 나라들이 언어·민족·종교를 무시하고 인위적으로 여러 지역을 합쳐 만들어졌죠. 유고슬라비아도 마구잡이로 만들어진 국가였어요. 체코슬로바키아도 논리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진 국가가 아니죠. 이제 사람들이 소통을 통해 세상이 매우 크고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 자신들이 더 잘 통제할 수 있는 것을 향해 손을 뻗고 있어요.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아 가고 있는 거죠.


우크라이나가 두 개의 나라로 나눠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우크라이나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나라죠. 크림반도가 러시아에 속한 지 벌써 수백 년이 됐는데 우발적으로 우크라이나 땅이 됐어요. 니키타 흐루쇼프가 어느 날 술에 취해 러시아령인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에 넘겼거든요. 우크라이나 사람들이 러시아어를 쓰고 러시아에 통합되고 싶어 하는데 그들을 막을 이유가 있습니까. 그들이 러시아로 통합되고 싶어 투표를 한다면 그걸 왜 못하게 막아야 하죠.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분리를 원해 투표를 하는데 우리가 왜 막아야 합니까.


구소련 연방 지역의 혼란이 국제 곡물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여러 나라로 쪼개지면서 폭동이 일어날 수 있어요. 곡물 자급력도 떨어지고요. 농부들이 길거리에서 폭동을 일으키고 정치적·사회적 혼란이 벌어지면 농산물 생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예요.


애그플레이션 시대에 대한 준비가 잘돼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뇨. 역사상 처음으로 미국·일본·영국 등 주요 중앙은행들이 많은 화폐를 찍어내고 있어요. 거대한 유동성의 바다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거죠. 그 덕분에 미국이나 일본에선 주가가 오르고 있어요. 하지만 이 모두가 인위적인 것일 뿐이죠. 유동성의 바다 때문에 세계가 점점 더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어요. 부채로 경제의 밑바탕을 이루는 것들은 악화되고 있는데 화폐를 계속 찍어내 화폐가 넘쳐나죠. 부채 때문에 향후 2~3년 내에 더 많은 문제가 생길 텐데 유동성의 바다가 이를 가리고 있어요. 조심하고, 걱정하고, 대비해야 합니다.


장승규·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