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값 재매각 후 경영진 교체,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 혁명으로 BMW 제2 전성기

“로버그룹 인수로 우리 회사가 막대한 손실을 봤습니다.”

1999년 2월 5일 긴급 감독이사회가 소집된 독일 뮌헨 BMW 본사의 공기는 차가웠다. 참석자들에게는 1994년 인수한 영국의 로버(Rover)그룹이 엄청난 적자를 기록, 5년 동안 총 70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기록했다는 보고서가 전달됐다. 이 회의를 소집한 BMW의 지분 48%를 보유한 대주주 주자네 크반트와 슈테판 크반트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BMW는 회사 경영을 맡은 경영이사회와 이들을 견제하는 감독이사회로 이원화돼 있다. 그리고 이 회의는 감독위원회가 회사에 큰 손해를 입힌 경영이사회의 책임을 묻는 자리였다. 이와 동시에 로버에 대한 구조조정 방안도 논의됐다.

회의가 열린 지 7시간 뒤 회의실 문이 열렸다. 베른트 피셰츠리더 회장이 걸어 나왔다. 30분 뒤에는 볼프강 라이츨레 사장도 모습을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사임 의사를 밝혔다. 그들 스스로 물러난 것이지만 사실상 경질이었다. 이사회는 제조 부문의 최고책임자인 요하임 밀베르크를 새 회장으로 추대했다.


재규어·랜드로버 브랜드 소유한 영국 로버그룹
두 최고경영자(CEO)에게 최악의 인수·합병(M&A)에 대한 책임을 물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입은 손실이 보전되는 것은 아니었다. 70억 달러의 적자와 골칫덩이 로버는 남아 있었다. 주자네와 슈테판은 두 번째 결단을 내렸다. 로버그룹을 헐값에 팔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이듬해인 2000년 로버그룹은 피닉스 컨소시엄에 단돈 10파운드에 매각됐다. BMW는 1994년 이 회사를 13억5000만 달러에 샀었다. BMW의 장막 뒤에서 회사를 지켜보고 있는 군주(君主) 크반트가(家) 3세만이 내릴 수 있는 결정이었다. 부실덩어리를 내친 BMW에 추가적인 손실은 없었다. BMW 특유의 엔진 제조 기술과 차량의 역동적인 성능은 회사를 다시 정상 궤도에 올려놓았다. 이후 BMW의 운명을 바꾼 남자,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이 전 세계 자동차 업계를 강타하며 회사의 입지를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로버와의 화학반응에는 실패했지만 영국의 국민차 미니와 세계 최고급차 롤스로이스는 BMW의 기술과 마케팅 지원에 힘입어 그룹에 돈을 벌어 주는 효자로 변신했다. BMW의 전성기가 다시 시작된 것이다.

로버그룹은 1999년 감독이사회에서 매각이 결정된 뒤 이듬해인 2000년 실제로 거래가 성사되기 전까지 BMW에 10억 달러의 손실을 추가로 입혔다. BMW는 한 번의 판단 착오로 6년간 총 80억 달러의 돈을 허공에 날린 것이다.

로버그룹은 양산 브랜드인 로버와 프리미엄 세단인 재규어, ‘사막 위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리는 랜드로버 등 총 세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었다. 이 중 로버는 전륜(앞바퀴) 굴림 모델로 후륜(뒷바퀴) 굴림 모델인 BMW와 맞지 않았다. 재규어와 랜드로버도 투입된 자금에 비해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 비싼 수업료를 치르면서 BMW가 한 가지 얻은 게 있다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대한 기술 노하우였다. 특히 랜드로버의 사륜구동 기술은 1990년대 말 중형 SUV X5가 등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SUV는 BMW 판매 증가에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차량이 미국 시장에서 잘 팔렸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BMW는 2003년 연간 판매량 100만 대 고지를 넘어섰다.

BMW가 로버그룹을 인수한 4년 후 다시 한 번 M&A를 했다. 영국의 최고급 세단 롤스로이스를 3억4000만 파운드에 사들인 것이다. 폭스바겐그룹을 이끄는 페르디난트 피에히 의장과의 경쟁 끝에 얻은 결과였다. 롤스로이스의 상표권만 매수한 BMW는 영국 웨스트서식스 주의 굿우드에 롤스로이스 전용 공장을 세웠다(롤스로이스 공장은 폭스바겐이 인수했다). 이곳에선 2013년 3575대의 차량을 수제로 생산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연간 판매량이 1000대 정도에 불과한 회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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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스로이스는 1884년 헨리 로이스가 자동차 관련 사업에 뛰어든 게 시작이었다. 이후 그는 1904년 맨체스터 공장에서 2기통 엔진을 단 ‘로이스 10’을 제작했다. 그리고 같은 해 런던의 귀족 출신으로 자동차 레이서이기도 한 찰스 롤스를 만났다. 두 사람은 2년 뒤인 1906년 3월 롤스로이스를 출범하고 고급 세단 ‘실버고스트’를 출시했다. 실버고스트는 차량이 시속 130km로 달려도 차 안에선 시계 소리만 들리고 찻잔 위의 커피 잔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고스트라는 이름도 정숙성이 뛰어나 소리 없이 다가온다고 해서 붙여졌다. 당시 언론들이 차량에 붙인 일종의 별명이었는데, 이것이 오늘날까지 모델명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니, 골칫덩이에서 재간둥이로
롤스로이스는 BMW그룹에 편입되면서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았다. ‘회장님의 차’인 팬텀과 오너 드라이버를 위한 고스트, 보다 젊은 고객을 겨냥한 레이스까지 차종을 늘리며 판매량도 차곡차곡 높여 갔다. 특히 구매자의 취향과 요구 사항을 철저하게 반영해 차량을 제작하는 ‘비스포크(bespoke)’ 시스템은 브랜드의 위상을 높이는 동시에 수익도 향상시키는 효과를 냈다.

2000년 로버그룹을 털어낸 BMW그룹은 이에 대한 보상을 얻으려는 듯 영국의 또 다른 브랜드 하나를 인수했다. 바로 미니(MINI)다. ‘가격이 저렴하고 실용적인 차’로 1959년 출시 후 국민적인 사랑을 받으며 영국의 국민차로 불렸다. 영국의 코미디 프로그램인 ‘미스터 빈’의 주인공도 이 차를 타고 다녔다. BMW는 이 브랜드의 품질을 향상시키면서 브랜드 위상도 높였다. 미니만의 팬덤 문화를 형성해 전 세계에서 미니 마니아 층을 확보했다. 오늘날 미니가 ‘소형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식되는 것도 BMW그룹의 탁월한 마케팅 전략이 시장에서 통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차종 다양화를 꼽을 수 있다. 현재 미니는 총 7개 라인업으로 구성돼 있다. 문 두 개짜리 미니 쿠페와 길이가 긴 미니 클럽맨, 덩치가 큰 미니 컨트리맨, 고성능 미니 JCW 등이다. 엔진도 3기통부터 4기통 터보, 사륜구동 시스템 ‘올4(ALL4)’까지 있어 세부 모델까지 합하면 30개가 넘는 선택지로 구성돼 있다. 미니라는 브랜드는 하나이지만 그 안에 다양한 제품을 마련해 많은 소비자들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전략이 시장에서 통하면서 미니의 판매량은 2013년 연간 30만 대를 넘어섰다.

역사적인 배경도 무시할 수 없다. 미니가 전 세계 자동차 마니아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은 이유로 몬테카를로 랠리를 빼놓을 수 없다. 미니는 차체가 작고 가벼운 게 특징이다. 여기에 핸들링까지 날카로웠다. 이에 주목한 영국인 존 쿠퍼가 미니를 개조해 세계적 자동차 경주 대회인 몬테카를로 랠리에 출전했고 우승하면서 명성을 높였다. 존 쿠퍼가 튜닝 작업을 한 미니는 양산차로도 이어졌다. 이것이 미니의 고성능 모델인 JCW(John Cooper Works)다.

1999년 볼프강 라이츨레 회장의 퇴진은 BMW 전체의 운명을 바꾼 ‘나비효과’라고 불러도 될 것이다. 좀 더 과장해 말하면 1994년 라이츨레 회장의 로버그룹 인수 결정이 7년 뒤 BMW가 전성기를 맞게 된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떠난 뒤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던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 혁신이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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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뱅글, BMW를 혁신하다
크리스 뱅글은 BMW의 첫 미국인 디자인 총괄책임자다. 2001년 ‘자동차 디자인계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BMW 7시리즈를 디자인했다. 처음 7시리즈가 등장했을 때 시장의 반응은 냉랭했다. 유럽 언론은 ‘가장 못생긴 자동차 중 하나’라는 평가와 함께 볼록하게 솟은 차량 트렁크 라인이 마치 엉덩이를 연상시킨다며 ‘뱅글 부트(Bangle butt)’라고 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초기 반응과 달리 그의 디자인은 세계 자동차 디자인 업계의 흐름을 바꿔 버렸다. 50년간 큰 변화가 없었던 BMW의 색깔을 바꾼 크리스 뱅글의 디자인은 그의 이런 성향을 탐탁하지 않게 여겼던 라이츨레 회장 아래에선 빛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교체된 경영진의 지원을 받은 크리스 뱅글은 5시리즈와 3시리즈, 스포츠카인 Z4와 SUV X3, 1시리즈 등 BMW 대부분의 차종을 빚어내며 BMW만의 디자인 체계를 확립했다.

미국 오하이오 주에서 태어난 크리스 뱅글은 위스콘신대를 졸업하고 패서디나 디자인 아트센터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제너럴모터스(GM)에 입사해 독일 오펠(OPEL) 디자인 스튜디오와 피아트(FIAT) 디자인센터를 거쳐 1992년 BMW로 자리를 옮겼다.

그의 자동차 디자인 경력은 BMW에서 멈췄다. 2009년 가전과 가구를 디자인하고 싶다며 BMW를 떠났다. 이후 이탈리아 토리노에 디자인 컨설팅 업체인 ‘크리스 뱅글 어소시에이츠 SRL’을 설립했다. 그는 이후 삼성전자의 생활 가전을 디자인하기도 했다.

현재 BMW그룹은 노르베르트 라이트호퍼 회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롤스로이스와 미니를 흑자 전환시키고 BMW의 판매량을 늘리는 등 전성기를 구가한 주역으로 평가받고 있다.

BMW는 2005년 연간 113만 대(미니·롤스로이스 제외)를 판매하며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를 제치고 고급차 부문 1위 자리에 올랐다. 2013년 판매량은 166만 대로 벤츠(146만 대)와 아우디(158만 대)를 따돌렸다. BMW그룹은 미니와 롤스로이스까지 합쳐 총 196만3798대를 판매했다. 전년 대비 6.4% 늘었다. 유럽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성장했다.

독일의 고급차 3인방 중 1위인 BMW의 자리는 편하지 않다.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가 1위 탈환을 노리며 거세게 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라이트호퍼 회장만큼이나 탁월한 경영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다임러그룹의 디터 제체 회장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2020년까지 고급차 시장 1위를 되찾아오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벤츠의 디자인 혁신을 동반한 신차 개발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아우디도 피에히 의장의 든든한 지원을 받고 있는 루퍼트 슈타들러 최고경영자(CEO)가 버티고 있다. 강자들끼리의 경쟁이기에 다툼은 더 치열하다. BMW의 1위는 그래서 더 위태롭고, 그렇기에 더욱 값지다.


최진석 한국경제 산업부 기자·최중혁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