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훈 KAIST 경영대 교수의 ‘기업과 사회’

KAIST 경영대의 ‘기업과 사회’ 수업은 기업의 사회책임(CSR) 경영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다. CSR 활동은 홍보뿐만 아니라 반기업 정서를 무마하고 진출한 지역의 주민과 정부의 기업 활동에 대한 반대를 막기 위한 리스크 관리 등 여러 목적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더 나아가 전략적 사회 공헌은 장기적으로 기업에 수익을 가져올 수도 있고 업계와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 최근 주목받고 있다. 이 개념이 바로 공유 가치 창출(CSV)이다.
[MBA 명강의 지상 중계] 그라민은행은 사회적 기업의 롤모델인가
2013년 12월 6일 수업은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사회적 기업’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다. 사회적 기업은 일반 기업과 달리 ‘사회적 혁신을 통한 사회적 가치 창출의 극대화’가 기본 목표로,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태생부터 차이가 있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사회적 기업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고 특히 사회문제와 사회적 가치에 ‘기업 논리’를 접목한다는 차원에서 기업 경영인들의 역할과 관심이 늘고 있다.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의는 아직 다양하다. 사회적 기업은 법적인 용어가 아니라 각 나라마다 태생의 배경이 달라 정의에 차이가 있다. 미국은 자선단체가 기부금 조달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기업 논리와 접목해 스스로 재원을 창출하는 측면이 강하고 유럽에서는 지역사회와의 연계성이 강해 협동조합의 형태가 많다. 한국은 이탈리아의 모델과 유사하다. 주로 취약 계층의 일자리 제공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서비스 등 소위 ‘포용형 기업(Inclusive Business)’에 인증 받아 주로 정부의 서비스를 대행하는 측면이 강하다.

이 때문에 사회적 기업을 인증하는 과정에서 소외 계층 및 취약 계층에 대한 일자리 창출과 이들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 지역사회에 대한 공헌을 사업 영업으로 요구하고 있다. 정부 주도의 사업으로 인건비 등을 사회적 기업에 지원하기 위해서는 정부 서비스 대행 차원의 사업 영역을 우선적으로 시행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이에 대해 안병훈 KAIST 경영대학 교수는 “이러한 제한된 사업 영역 위주의 인증 제도는 보다 혁신적이고 파급력이 큰 사회적 기업 모델이나 사회적 기업가의 출현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의 인증을 받지 못한 기업이 ‘사회적 기업’을 자칭하면 벌금을 내기도 한다.

안 교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정의를 내리자면 일반 영리기업과 같이 재무적 가치를 추구하지만 비금전적 가치를 창출해 그 기반을 갖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가치, 사회적 목적, 사회적 문제를 그 조직의 목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회적 기업도 일종의 기업으로서 시장에서 영리기업들과 경쟁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적 협동조합, 소비자 협동조합 등 경쟁이 없는 것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사회적 기업도 생산자·소비자·유통업체 사이에서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서 기업 논리가 필요하고 조직 관리, 지배 구조, 포지셔닝 등 전략 경영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적 기업의 지속 가능성과 이윤 확보도 무시할 수 없다.


사회적 기업도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 필요
본질적으로 사회문제의 해결은 정부가 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적 기업이 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바로 정부보다 더 효율성을 내세울 수 있고 규모를 확대해 정부 대신 앞장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죠. 즉 시장 기반의 기업 논리가 사회적 혁신에 동원되는 형태입니다. 이에 따라 사회적 기업은 시장에서 경쟁하기도 하고 중·장기적으로 재무적으로 독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대행하는 측면에서 지원 받는 것이 당연할 수 있지만 초기 자립 준비 기간을 넘어 그 이후까지 계속되면 기업의 자생 의지와 기회를 잃게 됩니다. 지속적인 기부나 지원을 받아야 하는 사회적 기업이라면 ‘기업’이라기보다 비영리단체나 시민단체와 다를 바 없겠지요.”

‘사회적 가치 추구’와 ‘이윤, 효율성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 만큼 사회적 기업에 대한 딜레마 상황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사회적 기업의 대명사처럼 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에 대한 학생의 발표와 토의가 이어졌다. 안 교수는 ‘착한 기업’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라민은행을 설계한 무함마드 유누스 전 총재의 매우 정교한 비즈니스 모델에 주목할 것을 주문했다. 그라민은행이 98%란 높은 대출 회수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살펴봤다. 하지만 그라민은행이란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적인가라는 ?瓷塚?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MBA 명강의 지상 중계] 그라민은행은 사회적 기업의 롤모델인가
그라민은행은 무담보 소액 대출(마이크로 크레디트)을 통한 빈곤 퇴치가 목표다. 그라민은행은 150달러 미만의 돈을 담보와 신원 보증 없이 하위 25%의 사람에게만 대출 해 준다는 조건을 걸었다.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준 뒤 조금씩 오랜 기간에 걸쳐 갚아 나가도록 하는 소액 장기 저리 신용 대출 은행이었다. 돈을 갚지 않아도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환율은 설립 이후 연평균 90% 이상이다. 한 지점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신용이 나쁘면 다른 대출자 역시 대출 한도 등에서 불이익을 받는 시스템으로, 서로가 서로의 신용을 담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돈을 갚기 힘들면 연대했던 다른 사람도 돈을 빌리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연대적으로 대출 상환에 같이 노력하는 시스템이다. 유누스 전 총재는 그라민은행에 대한 공로로 2006년 노벨 평화상을 타기도 했다.

하지만 1998년 방글라데시에 대홍수가 나면서 그라민은행의 연대보증 시스템이 작동을 멈추게 됐다. 수해를 입어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이 주 단위의 대출 상환을 맞추지 못하게 된 것이다. 연대책임이란 시스템에서 돈을 갚지 못하는 자는 죄책감으로 더욱 그라민은행을 찾지 못하게 됐다. 유누스 전 총재는 빚을 탕감해 주거나 상환 기간을 더 늘리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 대신 자본을 확보하기 위해 저축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그라민은행은 대홍수를 계기로 비즈니스 모델을 수정했고 2001년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장기간에 걸쳐 대출금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라민은행이 효율성을 높이는 구조조정 때문에 일반 시중은행과 이제는 차이가 없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누스 전 총재가 기존 모델을 대폭 수정한 그라민은행2는 일반 예금을 취급하고 이를 대출 자금으로 활용하는 일반 은행과 유사한 모습으로 방향 전환했다. 현재는 예금이 대출을 초과하고 있는 추세고 또 그룹별 연대 채무 방식의 대출 의존도를 낮추고 있다. 일반 은행과 유사해지면서 사회적 기업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가 생겨났고 탈세 혐의와 부작용에 대한 지적도 나오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의 롤모델이 된 그라민?뵉敾?다른 나라에서 그 시스템을 수용하면서 생각지 못한 부작용도 있었다. 인도에서는 연대보증 때문에 돈을 갚지 못하면 죄책감 때문에 자살자가 크게 늘기도 했었다.


그라민은행 모델, 평가 엇갈려
현재 그라민은행은 현재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지 관심이 모아져 있다. 만일 그라민은행이 실패하면 자칫 마이크로 크레디트 산업 전체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국에서 비슷한 포맷이지만 상황에 맞게 변형된 형태의 마이크로 크레디트 은행들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다음 살펴본 사례는 멕시코의 콤파타모은행이다. 콤파타모은행도 마이크로 크레디트 형태를 띠고 있었지만 과도한 이자 부과에 대한 찬반 논란이 있었다. 투자자들의 자금을 끌어와 영세한 자금 수요자들에게 엄청난 수준의 이자를 부과했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은 큰 자본 투자 이득을 보기도 했다. 하지만 콤파타모은행은 투자자들의 자금으로 저소득층에게 자금을 빌려 주기 때문에 스스로 사회적 기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라민은행의 유누스 전 총재도 “약자를 이용한 돈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라민은행2도 같은 성격의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최근 글로벌 대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BOP(피라미드의 밑바닥, 최하 소득 계층) 시장도 논란이 있다. 연간 3000달러 미만으로 사는 BOP 계층은 세계 인구의 70%를 차지하며 소비 시장 크기가 5조 달러에 이를 정도로 잠재력이 풍부하다. 저소득층에게 생필품의 작은 단위를 싸게 보급해 이들을 돕고 기업도 새로운 시장을 발굴한다는 취지다. 하지만 저소득층 소비자를 돕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소비 조장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저소득층 농가에 사용하기 적합한 적정 기술형 난방기를 개발 보급해 이들의 열악한 주거 생활에 도움을 주는 사회적 가치를 기업은 강조하지만 취지에 대한 진정성이 지적되고 있다. 안 교수는 “그래서 BOP 시장을 신시장 개척 활동으로 봐야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며 “BOP 시장은 사회 가치 창출의 좋은 예지만 저소득층을 소비자로만 대할 게 아니라 자립을 돕고 그들의 소비 수준을 넘지 않고 필수품만 보충해 주는 게 쉽지만은 않다”고 설명했다.

많은 사회적 기업이 시장으로부터의 투자나 재원이 없어 성장이 제한적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일부 사회적 기업 모델에서는 외부 자금을 받아들이는 모델로 전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때 외부 재원에 대한 돈벌이를 해줘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고 일반 영리기업의 모습과 단점을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비판도 많아질 수 있다. 안 교수는 “사회적 기업에 대한 유형에 대해 여러 논란과 혼란이 있다”며 “어떤 기업이 바로 사회적 기업이고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지 그라민은행의 사례는 많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외부 자금을 통해 사회적 기업이 보다 빠르게 성장해 더 많은 저소득층에게 서비스가 가능하다면 결과적으로 더 큰 사회적 가치가 창출될 수도 있다는 논리도 틀리지 않다”며 “이러한 논란은 앞으로 많은 사회적 기업에 지속적으로 등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자립성이 결여된 구멍가게식 사회적 기업을 양산하는 것은 또 다른 사회문제로 연결될 수 있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돋보기 |‘기업과 사회’ 수업은
최근 수년간 화두가 된 “기업의 사회 책임 경영(CSR)은 이제 “왜 필요하냐? 그게 도대체 무엇이냐?”의 단계를 지나 투자 의사결정 또는 기업의 일상 경영과 전략에 어떻게 접목하느냐 등의 현실적 과제에 신경을 쓰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이 수업에서는 사회 책임 경영에 대한 바른 이해와 성공적인 사회 책임 경영의 실행을 위한 선행 조건이 무엇인지 검토한다. 나아가 주요 이해관계인들과 관련된 이슈들(환경 문제, 갑을 관계 문제, 인권 문제 등)에 대한 분석과 대응 전략을 알아봄 으로써 새로운 시각과 틀에서 기업 경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MBA 명강의 지상 중계] 그라민은행은 사회적 기업의 롤모델인가
안병훈 교수는…
서울대 공과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경영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을 역임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에너지·환경 경제학 및 CSR, 사회적 기업 등으로, 기업과 사회 분야의 혁신 교수상(Aspen Faculty Pioneer Award)을 수상하기도 했다. 현재 카이스트 경영대학에서 ‘기업과 사회’, ‘전략경제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