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 표현하는 도구로 인기…정부도 시장 활성화 대책 마련

[트렌드] ‘얼굴부터 심장까지’…튜닝족 뜬다
폭스바겐 티구안을 운전하는 이원영(33) 씨는 역삼동에 있는 한 튜닝 업체를 자주 방문한다. 튜닝 업체는 폭스바겐 전문 튜닝 업체인 ‘압트사’가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서스펜션과 배기 장치를 튜닝했다. 서스펜션은 사람의 무릎관절과 같은 것으로, 노면에서 비롯되는 충격을 완화하는 장치를 말한다. 이 씨는 “모두 다 합해 수백만 원 정도 들었지만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수천만 원을 주고 차를 샀는데 튜닝을 해서라도 제대로 된 성능을 느껴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국내 박스카 열풍을 일으킨 BMW 미니쿠퍼를 타는 김범수(32) 씨 역시 차를 튜닝하는 데 아낌없이 투자했다. 먼저 자동차 래핑은 스스로 하고 서스펜션을 튜닝하는 데 200만 원이 들었다. 오디오를 교체하는 데는 45만 원, 드라이빙 램프를 장착하는 데 50만 원을 썼다. 차를 타다 보니 가속도 출력을 조금 높이고 싶어 20만 원을 들여 자동차전자제어장치(ECU)를 추가해 20마력을 높였다. 이렇게 튜닝하는데 든 비용은 3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20~30대에서 60대까지 연령층 다양
남자들 사이에 튜닝 바람이 불고 있다. ‘남들과 다른 차’를 갖고 싶어 하는 이들이 늘며 수백만 원에서 억대에 이르는 값을 들여서라도 튜닝을 하고 있는 것. 더 이상 튜닝은 큰 배기음을 좋아하는 폭주족들의 전유물이 아닌 셈이다.

흔히 자동차 튜닝이라고 하면 부정적 이미지를 떠올리곤 하는데, 튜닝의 범위는 그보다 넓다. 간단히 말해 자동차를 운전자 취향에 맞게 개조하거나 꾸미는 것을 말한다. 자동차 외관을 바꾸는 외부 튜닝과 계기판이나 좌석 등 내부를 바꾸는 내부 튜닝, 엔진이나 머플러 등을 손대는 성능 튜닝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래서 다소 실험적인 튜닝도 있지만 액세서리를 부착하는 정도의 튜닝도 있다. 실제로 잘된 튜닝은 성능·편의성·개성을 모두 충족시켜 준다. 국내에서 이런 튜닝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수입차의 인기가 높아지면서부터다. 특히 BMW의 미니, 폭스바겐 티구안과 골프 등과 같은 소형·준중형차가 20, 30대 남성층에게 인기를 끈 것이 바탕이 됐다.

최근에는 튜닝족이 연령층도 확대됐다. 국내 튜닝 전문 업체인 아승오토모티브그룹의 서지훈 이사는 “40~50대, 심지어 60대까지 차를 튜닝한다”며 “어떤 이는 자녀를 데려와 본인과 딸의 차를 모두 튜닝한 적도 있다. 단순히 빨리 달리고 싶어 하는 젊은층도 있지만 나이가 많은 중·장년층 역시 남들과 다른 차를 갖고 싶어 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트렌드] ‘얼굴부터 심장까지’…튜닝족 뜬다
BMW F32 4시리즈 튜닝 전과 후. 공력 성능을 강화하기 위해 범퍼 디자인과 프런트 그릴(공기 흡입구)을 새롭게 디자인했고 범퍼 하단에 프런트 스포일러를 추가했다. 흡기 튜닝과 함께 배기 튜닝도 함께했다. 많은 공기를 들이마셨다면 내뱉는 날숨도 많아야 하는 이치다. 트렁크 위와 루프에 부착한 리어·루프 스포일러는 차를 더욱 날렵하게 보이게 하는 효과를 냄과 동시에 고속 주행 시 차체의 뒷부분이 뜨는 것을 막아 주는 역할도 한다. 엔진 등 내부 튜닝 가격은 약 400만 원, 배기구 등 외부 튜닝은 약 650만 원이다.


튜닝을 원하는 이들이 몰려든 ‘아이러브미니’ 등의 온라인 튜닝 카페의 회원 수는 카페당 수천 명을 육박한다. 튜닝 열풍에 힘입어 지난해 기준으로 5000억 원 정도였던 국내 자동차 튜닝 시장도 올해엔 6000억 원을 넘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숨죽이고 있던 튜닝 업체들도 속속 기지개를 펴는 중이다. 국내 튜닝 업체인 아승오토모티브그룹은 지난해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튜닝 업체인 ‘브라부스’, 폭스바겐 튜닝 업체인 ‘압트’를 공식적으로 들여왔다. 최근에는 튜닝 수요가 증가하면서 사업 규모를 확장했다. 지난 3월에는 포르쉐 전문 튜닝 업체인 ‘테크아트 코리아’를 출시했고 4월 9일에는 BMW 최대 판매사이자 튜닝 업체인 ‘AC슈니처’와 정식 계약을 체결하고 튜닝 서비스를 시작했다. 아승오토모티브그룹은 튜닝 부품과 함께 튜닝이 끝난 완성차도 판매할 계획이다.

지난 9일 방한한 레이너 포겔 AC슈니처 대표는 “개성 있는 옷과 맛있는 음식을 즐기듯이 한국 고객들도 자기만의 차별화된 튜닝의 재미를 즐기기를 기대한다”며 한국 튜닝 시장의 잠재력을 전망했다.

국산차 업체들도 이 같은 시장 수요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는 커스터마이징 브랜드 ‘튜익스’와 ‘튜온’을 선보이고 있다. 커스터마이징은 고객의 요구 사항에 따라 전문 튜닝 업체가 모델을 개조한 뒤 현대·기아차가 판매하는 사전 제작 방식이다. 튜닝과는 다르지만 다양해지는 고객의 취향을 담으려는 시도다. 예를 들어 ‘아반떼 튜익스’는 포인트 컬러가 들어간 색상이나 좀 더 스포티한 휠 5종, 차량 하단부에 설치해 차체 밑으로 흐르는 공기를 줄이는 프런트·리어스커트 등이 추가됐다. 기아차의 ‘올 뉴 쏘울’은 차체와 지붕 색깔을 달리한 ‘투톤루프’나 휠 커버 교체로 594가지의 색상 조합을 만들 수 있다.


해외 튜닝 전문 업체 국내 대거 상륙
차량용 액세서리 시장도 덩달아 성장하고 있다. BMW·메르세데스-벤츠·폭스바겐 등 일부 수입차 업체들은 차에 구비할 수 있는 액세서리를 직접 디자인해 판다. 차량용 USB·시트·컬러 와이퍼부터 여행용 캐리어까지 종류가 수백 가지에 이른다. 폭스바겐은 지난해 자동차 액세서리 판매 비중이 2007년과 비교해 9.5배 늘었는데, 구매 고객 대부분이 20~40대 남성층으로 집계됐다.

넘어야 할 장애물도 있다. 튜닝은 ‘불법’이라는 인식 앞에 놓인 규제다. 현행법에 따르면 차량의 7개 구조 장치 가운데 2개 구조, 21개 장치 중 13개 장치에 대해서는 승인을 받고 변경해야 한다. 나머지 5개 구조와 8개 장치와 관련된 튜닝은 불가능하다. 차지원 아승오토모티브 사장은 “승인을 받으려고 해도 5단계를 거쳐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워 거의 불법으로 이뤄지고 있는 실정”이라며 “국내보다 안전 관련 규정이 엄격한 유럽 시장에서도 이 정도까지 튜닝을 규제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8월 ‘자동차 튜닝 시장 활성화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자동차를 튜닝할 때 일일이 정부의 허가를 받던 절차를 앞으로 최소화하고 불법·합법 튜닝의 기준을 보다 명확히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한국자동차튜닝산업협회장 관계자는 “산업 발전을 가로막는 규제들이 시급히 개선돼야 선진형 튜닝 제도와 문화가 제대로 정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산업통상자원부는 국내 튜닝 산업 현장 요구에 부응하는 지원책을 약속했다. 배준형 산업통상자원부 자동차항공과 서기관은 “한국 튜닝 산업은 아직 초기 단계지만 완성차 업계의 발전, 포뮬러원(F1) 개최 등에 따른 모터스포츠 시장 활성화, 개성을 추구하는 소비자 인식 변화 등 발전 가능성이 높다”며 “휴대전화가 그랬던 것처럼 국내시장을 테스트 베드로 활용, 많은 튜닝 업체들이 100조 원 규모의 글로벌 튜닝 시장에 진출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