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옥 페럼타워 매각설…재무구조 개선 차원 추진

<YONHAP PHOTO-1326> 동국제강 신사옥 '페럼타워'
   (서울=연합뉴스) 동국제강은 16일 을지로 신사옥 ‘페럼타워(Ferrum Tower)’에 입주, 본사를 이전했다. 사진은‘페럼타워’전경. 2010.8.16 << 동국제강 >>
    photo@yna.co.kr/2010-08-16 14:50:10/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동국제강 신사옥 '페럼타워' (서울=연합뉴스) 동국제강은 16일 을지로 신사옥 ‘페럼타워(Ferrum Tower)’에 입주, 본사를 이전했다. 사진은‘페럼타워’전경. 2010.8.16 << 동국제강 >> photo@yna.co.kr/2010-08-16 14:50:10/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지난 6월 9일 업계와 시장에 동국제강이 재무 개선을 위해 사옥인 페럼타워를 매각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곧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 약정을 체결할 계획으로 이 과정에서 산은이 동국제강의 본사 사옥 매각을 요구했고 동국제강도 파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 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매각 방식은 세일앤드리스백(매각 후 재임대)이라는 구체적인 내용까지 언급됐다.

철강 업계 관계자는 “재무구조 개선에서 필수적인 것 중 하나가 자산 매각”이라며 “산은 측에서 동국제강에 제시한 가장 유력한 카드가 페럼타워 매각이기 때문에 이런 얘기가 흘러나온 것 같다”고 말했다.


38년간 본사로 써 온 유서 깊은 부지
사옥 매각설까지 나온 이유는 최근 동국제강의 자금 사정이 녹록지 않기 때문이다. 동국제강은 업황 불황으로 2012년 2351억 원, 지난해 1184억 원의 당기순손실을 냈다. 부채비율은 올해 3월 말 연결 기준으로 253.6%에 달한다. 동국제강은 올해 1분기 연결 기준 매출도 1조4912억 원으로 전년 동기와 비교해 7.1% 줄었다. 후판 매출과 자회사인 유니온스틸의 강판 매출이 줄어든 때문이다. 조선 경기 침체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현대중공업 계열의 판매량이 급감한 게 직격탄이었다.

동국제강이 재무구조 개선에 나선 직접적인 배경은 지난 5월 금융감독원이 재무 상태가 좋지 않은 14개 기업을 올해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 대상으로 선정한 데 포함됐기 때문이다. 동국제강을 필두로 SPP조선·STX조선해양·한진중공업·대우건설·한라·현대·현대산업개발·대성 등이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조선 업황이 악화 일로에 이르면서 조선 업체와 철강 업체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상황이다.

재무구조 개선 약정은 기업들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부채를 줄이고 수익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을 주채권은행에 약속하는 일종의 이행 계획이다. 동국제강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지난 5월 18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 계획을 발표했다. 1999년 이후 15년 만의 유상증자다. 동국제강은 이번 재무구조 개선을 통해 부채비율을 200% 미만으로 낮출 계획이다.

매각설이 나온 페럼타워는 동국제강의 3대 경영자인 장세주 회장 시대의 성장과 도약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2대 경영자인 고 장상태 동국제강 명예회장으로부터 2001년 9월 경영권을 물려받은 장 회장은 지난 10여 년 이상 가파른 성장을 추구했다. 2000년 1조5442억 원이던 매출을 2010년 8조 원대로 8배 가까이 성장시켰다. 자산 규모도 2000년 3조 원에서 2011년 10조 원까지 늘려 나갔다. 창립 50주년 이듬해인 2006년 국내 최초로 브라질 제철 산업에 진출했고 곧이어 인천·포항 등에 3개의 전용 부두를 준공하는 등 국내외 투자를 늘리면서 신성장 동력을 찾기 위한 인수·합병(M&A)도 활발히 추진했다.

성장 가도를 달리던 장 회장과 동국제강은 2008년 옛 사옥을 철거하고 2010년 28층짜리 페럼타워를 건설했다. 중구 수하동에 자리한 페럼타워는 건설 전 동국제강이 34년간 본사로 사용해 온 유서 깊은 부지다. 장경호 창업주가 사망하기 한 해 전인 1974년 청계초등학교 건물로 쓰였던 ‘ㄷ’자 형태의 3층 건물과 부지 4954㎡(1500평)를 사들인 동국제강은 2008년까지 34년간 한 차례 리모델링만 한 후 기존 건물을 그대로 써 왔다. 한때 재계 10위권에 올랐던 기업의 본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지만 동국제강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는 2대인 장 명예회장의 경영 철학 때문이었다. 장 명예회장은 경영 일선에 있을 때 “화려한 사옥을 갖추는 것보다 아내의 반지를 팔아서라도 최고의 공장을 만드는 데 최우선 투자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낡은 철제 책상에서 업무를 보고 늘 직원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등 검소한 생활을 고집했다. 동국제강은 오너 일가의 실속 경영 문화에 따라 철강 업계의 생명인 설비투자에만 집중할 뿐 불필요한 일에는 비용을 철저하게 아껴 왔다.

하지만 세월의 변화를 더 이상 거스를 수 없었다.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 사업 후 주변 공간에 대한 재개발 정책이 추진되면서 동국제강도 부지를 새로 개발하게 됐다. 장 회장은 2008년 본사를 한시적으로 서울 대치동으로 옮겨 새 사옥 건축을 추진했고 라틴어로 철을 의미하는 ‘페럼(ferrum)’을 따 페럼타워로 이름을 정했다.

총 1400억 원의 공사비가 투입돼 지하 6층, 지상 28층 규모로 지어진 페럼타워에 대해 준공식에서 장 회장은 “새로운 사옥의 건축은 대한민국 철강 종가의 전통과 자부심을 기초로 삼고 오늘의 동국제강을 일궈 온 창업주와 선대 회장님 그리고 수많은 동국제강인들의 혼과 지혜를 뿌리로 해 미래로 웅비하는 동국제강의 자신감과 기상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장 회장은 최근 발간한 장 명예회장의 전기 ‘뜨거운 삶의 한가운데’에서 “아버지가 본사 사옥 짓는 일에는 마음 쓰지 말라고 하셨는데, 준공을 보게 됐다”면서 “여러 가지 사회 환경과 시대적인 요청이므로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썼다.


장세주 회장 “자산 매각, 시기상조”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지어진 페럼타워에는 동국제강과 계열사인 유니온스틸 등이 7~11층을 사용하며 장 회장의 집무실은 최고층인 28층에 자리한다. 나머지 층은 SK텔레콤, 외국계 로펌 등이 입주해 있고 지하 1~2층에는 식당가, 지상 2층에는 크고 작은 회의실이 있는 비즈니스센터, 3층에는 270석 규모의 강당이 있다.

3대에 걸친 ‘철강에 대한 혼’이 담긴 페럼타워에 대해 매각설이 나오자 장 회장은 불편한 심기를 내보였다. 6월 9일 서울 대치동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제15회 철의 날 행사에서 장 회장과 남윤영 사장은 페럼타워 매각이 시기상조라고 입을 모았다. 장 회장은 “1800억 원 규모의 유상증자로 재무 개선이 충분히 이뤄질 것으로 예상돼 페럼타워 매각은 말도 안 되는 일”이라며 “시장에 떠도는 근거 없는 소문이 기업을 옭아매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현재로선 자산 매각이 아닌 유상증자를 통한 경쟁력 강화에 힘쓰겠다”면서도 “다른 방안들이 잘되지 않으면 자산을 파는 것이지만 그런 상황까지 가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매각 자체가 자구책 중 하나의 방안이란 점은 부정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처럼 동국제강 측은 페럼타워 매각을 최대한 피하고 싶다는 입장이지만 금융권으로선 페럼타워 매각이 구미가 당기는 카드라는 것은 분명하다. 오는 7월 7일이면 동국제강이 환갑을 맞는다. 동국제강의 60년 역사 중 38년을 함께했던 터전인 수하동 부지와 페럼타워가 실제 매물로 나올지는 지켜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탄탄한 재무구조로 ‘절대 망하지 않을 회사’로 꼽히던 동국제강이 유동성 위기로 사옥 매각설까지 나오자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철강 담당 한 애널리스트는 “최근 튼실했던 중견기업들이 하나 둘씩 어려움을 겪고 무너진 데 이어 동국제강도 중국산 저가 제품에 밀려 재무 상황이 악화됐고 실적 전망도 아직 밝지 않아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원 기자 zinon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