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래피티 작가가 A 카페를 빌려 자신의 B 작품을 일정 기간 동안 전시했다. 이 전시 기간 중 방송사가 A 카페를 대관해 출연자들이 댄스그룹을 결성하는 과정을 담은 C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춤을 추는 과정에서 무대의 배경으로 B 작품이 화면에 비춰졌다.
방송사는 C 방송프로그램을 방영했고 홈페이지 등을 통해 영상 다시보기 서비스도 제공했다. 이에 작가는 방송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B 작품을 이용했으므로 복제권, 공중송신권을 침해했다고 주장하면서 소를 제기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방송사는 “B 작품이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에 항시 전시돼 있는 미술저작물이므로 저작권법 제35조 제2항에 따라 어떤 방법으로든지 복제해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의 생각은 달랐다. ‘공중에게 개방된 장소’라 함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보려고만 하면 자유로이 볼 수 있는 개방된 장소를 가리키는데 B 작품은 카페 안에 설치돼 있어서 개방성이 제한적이라고 봤다. 또 B 작품의 전시 기간이 약 5개월 정도였다는 점, 카페의 영업시간 동안에만 전시되는 것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항시’ 전시됐다고 보기도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방송사는 출연자들의 모습과 행동을 촬영하는 과정에서 B 작품이 부수적으로 포함됐을 뿐이므로 저작권법 제35조의 3에 따라 저작권 침해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했다.
실제로 저작권법 제35조의 3은 “사진 촬영, 녹음 또는 녹화(이하 촬영 등)를 하는 과정에서 보이거나 들리는 저작물이 촬영 등의 주된 대상에 부수적으로 포함되는 경우에는 이를 복제·배포·공연·전시 또는 공중송신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이 주장도 배척했다. ‘부수적 복제’는 양적·질적으로 그 비중이나 중요성이 경미한 경우에 한해 인정될 수 있는 것인데 C 방송프로그램에서 B 작품은 그 전체의 모습이 온전히 인식될 수 있도록 방송됐다는 점, 댄스그룹을 결성한다는 C 방송프로그램 내용상 출연자들이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장면이 포함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무대의 배경으로 쓰인 B 작품의 중요도가 낮다고 볼 수 없다는 점, B 작품이 C 방송프로그램에 노출된 분량도 적지 않다는 점 등을 감안하면 B 작품의 양적·질적 비중 및 중요성이 경미하다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방송사는 저작권법 제35조의 5 소정의 ‘공정 이용’ 주장도 했다. ‘공정 이용’에 해당하기 위해서는 저작물 이용행위의 목적과 성격, 저작물의 종류 및 용도, 이용된 부분이 저작물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중요성, 저작물의 이용이 그 저작물의 시장 또는 가치에 미치는 영향 등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
그런데 법원은 이 주장도 배척했다. C 방송프로그램은 광고료 수입, 판매 수입의 대상이 되므로 이용의 목적 및 성격이 영리적·상업적이고, 영상에 고정하는 방법으로 복제돼 불특정 다수인에게 지속적으로 제공된다는 점에서 매우 큰 파급력을 가지고 있으며, B 작품이 C 방송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양적·질적 비중 및 중요성도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위 사건에서 방송사는 결국 C 방송프로그램에서 B 작품이 등장하는 부분을 삭제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작가는 방송사가 C 방송프로그램에 B 작품의 작가가 누구인지 표시를 하지 않았으므로 성명표시권도 침해했다고 주장했는데 법원은 이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작가는 당초 B 작품에 자신의 실명 또는 이명을 표시하지 않았는데 법원은 저작자가 저작물에 자신의 성명 등을 표시하지 않고 공표한 무기명 저작물의 경우에는 그 저작자가 성명을 표시하지 않는 방법으로 성명표시권을 행사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를 이용하는 사람도 저작자의 뜻에 따라 무기명의 저작물로서 이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김우균 법무법인(유) 세종 변호사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