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으로 시작된 걸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 9·11 테러와 이라크 전쟁, IS의 급부상에 이어 2026년 미국의 이란 공습으로 이어지고 있다. ◆ 걸프전이란 걸프전의 시작은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발발한 전쟁이다. 미국이 자국군을 파병했으며 영국·프랑스·독일 등 전 세계 30여 개국이 다국적 연합군으로 참전하면서 국제전으로 확대됐다. 미국·유럽 등 주요 언론사들이 중립적인 명칭을 사용한다며 관련 지역을 걸프만(The Gulf)이라고 칭했고 전쟁 명칭도 ‘걸프전’으로 불렀다. ◆ 1990년대, 쿠웨이트 해방전첫 걸프전은 1990년 8월이다. 원유 생산량을 놓고 쿠웨이트에 대한 불만이 쌓인 게 그 시발점이다.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은 쿠웨이트 정부가 할당량에 대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판했으며 군사적 행동을 취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이라크는 1980년대 벌인 이란과의 전쟁으로 막대한 부채가 쌓였다. 석유 자원을 갖춘 쿠웨이트는 재정난을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로 여겨졌다. 결국 이라크는 8월 2일 새벽 30만 명의 병사를 동원해 쿠웨이트를 침공, 6시간 만에 수도 쿠웨이트시티를 점령했다. 이라크의 군사적 움직임은 국제적 비난을 받았고 미국 주도의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 제재를 시작했다. 1991년 1월까지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지 않을 경우 개입하겠다고 통보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자국군을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했고 다국적군을 구성했다. 한국군도 비전투요원으로 참여했다. 미국 주도의 군사작전은 빠르게 진행됐다. 지상전 개시 4일 만에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몰아내는 성과를 냈다. 이때 이라크군 사상자는 10만~20만 명 수준으로 추산된다. 이라크는 유엔 12개 결의안을 수락했고 1991년 2월 28일 부시 대통령이 종전을 선언했다. ◆ 역사적 인물 1. 사담 후세인와 아버지 부시첫 걸프전의 주요 인물은 사담 후세인과 조지 부시다. 후세인은 1937년 4월 28일에 티그리트에서 태어났으며 이라크 제5대 대통령으로 1979년부터 2003년까지 재임했다. 후세인은 부통령 시절(1968~1979년) 석유 국유화 등을 통해 이라크의 근대화와 경제 발전을 이끌었으나 대통령이 되면서 독재자로 돌변하며 24년간 권력을 쥐었다. 후세인은 아흐마드 하산 알바크르 대통령이 1979년에 병환으로 사임하자 그해 7월 16일 대통령에 올랐다. 이란 팔레비 독재국가가 시민혁명으로 무너지자 이란을 침공했고 석유에 대한 욕심으로 쿠웨이트와의 전쟁에도 나섰다. 후세인은 훗날 2006년 미군 공격으로 축출된 뒤 붙잡혀 사형이 집행됐다.후세인을 저지한 것은 미국 제41대 대통령 조지 부시다. 아버지 부시로도 불린다. 텍사스의 석유 재벌인 부시 가문의 첫 번째 대통령이며 걸프전 직후 미국 역대 최고 수준의 지지율(89%)을 기록하기도 했다. 경기침체 등의 문제를 외부로 돌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경기침체 등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지지율이 급격히 떨어지며 재선에는 실패했다. ◆ 2000년대, 후세인 정권의 몰락두 번째 걸프전은 2003년 촉발한 이라크 전쟁이다. 2003년 미국은 이라크를 선제 침공했다. 이라크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게 이유다. 첫 걸프전이 끝나고 유엔 안보리는 이라크에 모든 대량살상무기(WMD)를 파괴할 것을 명령하는 결의안 687호를 통과시켰다. 1998년 이라크는 돌연 유엔 무기 사찰단과의 협력을 중단했다. 또 2001년 9월 11일 알카에다(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공격하자 미국은 이라크 침공을 본격적으로 계획했다. 2002년 10월 미 의회는 이라크가 WMD를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라크에 대한 군사력 사용을 승인했다.이때 나온 단어가 ‘악의 축(Axis of evil)’이다. 2002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연두교서(State of Union address)에서 이라크, 이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지칭했다. 후세인 정권을 제거하고 친미 성향의 정부를 수립하려던 미국의 예상과 달리 전쟁은 2011년까지 지속됐다. 알카에다, IS 등의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이 확대되면서 2004년 내전이 발생했고 미국이 주장해온 WMD는 발견되지 않았다.결국 미국은 WMD 허위 정보, 장기화된 종파 갈등 등으로 최소 2조4000억 달러(약 3500조원)의 막대한 비용을 소모했고 급진 무장단체가 등장할 빌미를 줬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라크 전쟁은 미국의 실패한 전쟁으로도 불린다. 2008년 대통령 선거 당시 버락 오바마는 이라크전 종전을 약속하며 대선에서 승리했다. ◆ 역사적 인물 2. 오사마 빈 라덴과 아들 부시 오사마 빈 라덴은 1957년 3월 10일 사우디아라비아 라덴 가문에서 태어나 수니파 이슬람 극단주의 성향 테러조직 알카에다를 만든 인물로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다. 빈 라덴의 정치 성향은 대학 시절 결정됐다. 사우디의 킹 압둘아지즈 대학에 다니면서 무슬림형제단(이슬람주의자 조직)을 알게 된 게 시작이다. 미국의 표적으로 올라선 것은 1998년이다. 1998년 8월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미국 대사관 폭탄 테러를 주도해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빈 라덴은 테러 배후로 지목됐고 그해 미국 연방수사국(FBI)의 수배자 명단에 올랐다. 빈 라덴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국제 테러리즘 지휘통제센터를 마련하면서 테러 조직 규모를 키웠다. 빈 라덴은 2011년 5월 파키스탄 아보타바드 은신처에서 미군 특수부대(네이비실 데브그루) 넵튠 스피어 작전을 통해 사살됐다. 빈 라덴 죽음 전후로 전 세계 공항의 보안 체계도 강화됐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공항에서는 소총을 든 경찰 배치, 입국 심사 강화, 철저한 수화물 검색 등 초비상 보안 조치가 시행됐다. 빈 라덴에 맞선 것은 미국 제43대 대통령 조지 W 부시(아들 부시)다. 9·11 테러 직후 90%의 지지율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 영향으로 지지율이 25%까지 폭락했다. 아버지 부시와 달리 전쟁을 성공적으로 끝내지 못해 미국 위상을 약화시켰다는 비판도 받았다. ◆ 2010년대 IS의 급부상과 2026년 2014년 들어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급부상했다.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과하게 압박하는 과정에서 수니파 군인과 관료들이 대거 실업자가 됐다. 이들은 미국에 대립하는 저항 세력으로 커졌고 국가를 자처하는 IS로 성장했다.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IS를 ‘죽음의 네트워크(network of death)’로 규정했다. 같은 해 IS는 세력을 확장, 이라크 제2의 도시 모술을 점령하고 3년간 통치했으며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는 스스로를 무슬림 지도자 ‘칼리프’로 칭했다. 미국은 국제연합군을 구성해 공습을 재개하고 2017년 모술 탈환에 성공했고 IS 영향력은 약화했다. 2019년에는 최후 점령지인 시리아 바구즈까지 내줬다. 근거지를 잃은 IS는 지하화와 분산화돼 여전히 유지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IS 지도부는 비밀리에 운영돼 전체 규모를 파악하기 어렵다. 전체 규모는 1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IS 세력 약화 이후 걸프전은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2026년 들어 긴장은 고조됐다. 결국 미국과 이스라엘이 2월 28일 이란을 공습하면서 중동 정세는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이란 내 반정부 시위 세력 지원과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차단하겠다는 게 이유다. 미국은 핵·미사일 시설, 군사 인프라, 지휘통제 시설 등을 타격했고 이 과정에서 이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8일 공습 발표 대국민 영상 연설에서 “우리의 목표는 이란 정권의 ‘임박한 위협’을 제거해 미국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역사적 인물 3. 알리 하메네이알리 하메네이는 1939년 이란 북동부 호라산라자비주 마슈하드에서에서 태어나 제3대 대통령(1981~89년)을 거쳐 제2대 라흐바르(1989~2026년)를 지냈다. 약 40년간 이란 인사권을 독점한 사실상 독재자다. 하메네이 이름 앞에는 고위 성직자를 의미하는 ‘아야톨라’와 이슬람 전지자 무함마드의 직계 후손임을 가리키는 ‘세예드’ 등이 함께 붙는다. 1958년 이란 최대 규모 신학교 호자티예에 입학해 루홀라 호메이니로부터 윤리학을 배웠다. 호메이니는 하메네이의 정치적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고 1963년 호메이니가 주도한 팔레비 왕조 반왕정 운동을 기점으로 하메네이는 본격적인 혁명 운동가가 됐다. 지역 주민들과의 소통을 강화하면서 신임을 얻은 뒤 1981∼89년 제3·4대 대통령을 역임했고 1989년 호메이니 사망 후 제2대 최고지도자에 올랐다. 최고지도자에 오른 하메네이는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기 위해 측근을 대통령에 앉히고 반정부 시위를 제압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또 여성, 동성애자,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는 것으로도 문제가 됐다. 특히 2025년 경제 불황이 촉발한 반정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최소 3117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국은 이를 명분으로 삼아 무력 개입을 예고했다. 결국 미국은 이란과 3차 회담이 열린 지 이틀 만인 2월 28일 공습했다. 하메네이는 만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최수진 기자 jinny0618@hankyung.com
문재인 전 대통령이 오는 4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이 한반도 평화의 모멘텀(전환 국면)이 될 수 있다며 미국과 북한에 대화를 촉구했다.문 전 대통령은 6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산타모니카 랜드연구소에서 열린 좌담회에서 기조연설을 통해 "오는 4월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이 예정돼 있다. 이번 방중이 멈춰 선 한반도 평화의 시계를 다시 돌릴 수 있는 소중한 모멘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트럼프 대통령을 향해서는 "다시 한번 결단을 기대한다. 특유의 '통 큰 결단'이 지금의 교착 상황을 푸는 유일한 열쇠가 될 수 있다"며 "한반도 평화의 새 길을 연다면 '피스메이커'로서 세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향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만나기 힘든 최상의 대화 파트너"라며 "대화 의지를 밝힌 트럼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의 손을 잡길 바란다"고 밝혔다.그러면서 "고립과 대결은 결코 북한의 미래를 보장할 수 없다"며 "하루속히 대화에 나서는 용기를 선택해 평화와 번영의 새로운 길로 나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과거 '노딜'(합의없음)로 끝난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제2차)의 기억도 되짚었다.문 전 대통령은 "당시 단계적·동시적·실용적 해법으로 서로가 윈-윈(Win-win)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었다"며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이념적 접근이 앞서면서 끝내 타결에 실패하고 말았다"고 아쉬움을 표했다.문 전 대통령은 전날에는 배우자 김정숙 여사와 LA를 찾았으며 태평양세기연구소(PCI) 만찬에 이어 이날은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를 찾았다.이날 좌담회에서는 낸시 스타우트 랜드연구소 부소장 겸 공공정책대학원 학장 등 정책 전문가들과 급변하는 국제질서 및 남북관계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김정우 기자 enyou@hankyung.com
일본은행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심의위원에 ‘비둘기파’ 두 명이 가세했다. 이에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론이 후퇴하면서 엔화값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미 엔화 실질 가치는 30년 전의 3분의 1로 급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이어서 다카이치 사나에 내각의 대응이 주목된다. 금리인상 난색 표한 다카이치일본 정부는 지난 2월 25일 일본은행 심의위원에 ‘비둘기파’인 아사다 도이치로 주오대 명예교수와 사토 아야노 아오야마가쿠인대 교수를 기용하는 인사안을 의회에 제출했다. 아사다 교수는 3월 31일, 사토 교수는 6월 29일 임기가 끝나는 전임 심의위원 후임으로 선임될 예정이다.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찬성 다수로 동의를 얻으면 정식으로 임명된다. 임기는 5년이다. 심의위원은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 참석하는 9명의 정책위원 중 총재, 부총재 2명을 제외한 6명으로 구성된다. 금리는 9명 다수결로 결정한다.일본에서 ‘리플레이션파’(금융 완화로 인플레이션을 유도하는 정책을 지지)로 평가받는 아사다 교수는 그동안 적극적인 금융 완화를 주장했다. 사토 교수도 리플레이션파 내에서 줄곧 심의위원 후보로 거론됐다. 두 사람의 인선에는 금융 완화를 지향하는 다카이치 총리의 뜻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다카이치 총리는 지난 2월 16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회담에서 추가 금리인상에 난색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니치신문은 “일본은행은 ‘금융 정상화’와 엔저 대응을 위해 추가 금리인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지만 중의원 선거 압승으로 정권 기반을 굳힌 다카이치 총리와 관계상 어려운 대응을 강요받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일본은행은 작년 12월 11개월 만에 금리를 연 0.75%로 올렸다. 현재 금리는 30년 만의 최고 수준이지만 일본은행은 금리인상을 계속할 방침을 시사하고 있다. 이번 인사안이 의회를 통과해도 당장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지속 방침 자체가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추가 인상에 신중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3월에는 미·일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그동안 엔저에 불만을 드러냈다. 1월 엔화값이 급락했을 때는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이 주도해 환율 개입 전 단계인 ‘레이트 체크’에 나서 엔화값을 끌어올리기도 했다. 다시 엔화값이 떨어지고 미국의 불만이 커지면 다카이치 총리도 금리인상을 수용할 가능성이 있다. 엔화 실질 가치 30년 전의 3분의 1엔저 탓에 일본의 대외 구매력은 계속해서 하락하고 있다. 엔화의 ‘실력’을 나타내는 실질실효환율은 정점을 찍은 31년 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잃어버린 3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와 저금리가 배경이다. 엔화 가치 회복을 위해서는 경제 성장력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엔화의 실질실효환율(2020년=100)은 67.73이다. 1973년 변동환율제 도입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엔화의 실질실효환율이 가장 높았던 1995년 4월(193.95)과 비교하면 약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됐다.실질실효환율은 다양한 통화에 대한 엔화의 실질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일본인이 해외에서 물건 등을 구매하는 힘을 반영한다. 달러와 유로 외에도 중국 위안화 등 다양한 통화에 대해 엔저가 진행됐다. 수출에는 도움이 됐지만 해외에서 상품·서비스를 구매할 때 부담이 늘었다.1990년대 버블 붕괴 뒤 장기화한 일본 경제의 침체가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1995년 1% 전후였던 잠재성장률은 2010년대 후반 0%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떨어지는 성장력이 초저물가, 초저금리로 이어져 실질실효환율의 장기 하락을 초래했다. 日 환율관찰국 지정에도…다카이치, 엔저 옹호그럼에도 다카이치 총리는 엔저의 장점을 강조했다. 그는 지난 1월 31일 가두연설에서 “엔저니까 나쁘다고 말하지만 수출산업에는 큰 기회”라며 “엔고라면 수출해도 경쟁력이 없다”고 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외국환자금특별회계 운용도 싱글벙글하는 상태”라고 강조했다. 그는 엔저에 따른 수입 물가 상승 등 단점은 언급하지 않았다.외국환자금특별회계는 일본 재무성이 환율 개입을 위한 자금을 관리하는 회계다. 엔화 강세 국면에서 개입할 때는 정부가 단기증권을 발행해 조달한 엔을 팔아 달러를 산다. 개입으로 얻은 외화는 미 국채 등으로 보유한다. 엔저 국면에서는 미 국채 등을 팔아 조달한 달러로 엔을 산다. 개입으로 얻은 엔은 정부 단기증권 상환에 충당하는 구조다.외국환자금특별회계에서는 외화자산에서 얻은 이자가 세입이 되고, 정부 단기증권 이자 지급비가 세출이 된다. 일본이 해외보다 금리가 낮은 상태가 지속되면서 금리 차이에 따른 이익이 발생한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해외에서 받는 이자 수입이 엔화 기준으로 커진다. 다카이치 총리가 ‘싱글벙글’이란 표현을 사용한 이유다.앞서 미국 정부는 지난 1월 29일 일본을 환율 관찰 대상국으로 재차 지정했다. 미 재무부는 ‘주요 교역 상대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 정책’ 반기 보고서에서 통화 관행과 거시정책에 신중한 주의가 필요하다며 한국과 중국, 일본 등 10개국을 관찰 대상국 명단에 올렸다.이번 보고서에는 일본은행에 금융 긴축을 요구하던 문구가 삭제됐다. 그 대신 일본의 엔저 요인으로 “새 정부의 확장적 재정정책”을 새롭게 들었다. 요미우리신문은 “일본은행이 금리를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가운데 다카이치 정부 출범 후 엔저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자 미국 정부가 일본의 금융정책보다 재정정책에 주목하는 모양새”라고 짚었다. 일본은행 긴축 ‘마지막 스텝’…보유 ETF 매각 개시이런 가운데 일본은행은 보유 중인 장부가 37조 엔 상당의 상장지수펀드(ETF) 매각을 시작했다. 금리인상 기조를 유지한 가운데 국채 매입을 줄이는 ‘양적 긴축’에 나선데 이어 ETF 매각이라는 ‘질적 긴축’까지 시작한 것이다.일본은행은 ETF 매각을 지난 1월 개시했다. 1월 매각액은 장부가 기준 53억 엔이었다. 1월 말 일본은행이 보유한 ETF는 장부가 기준 37조1808억 엔, 시가 기준으로는 작년 9월 말 현재 83조2000억 엔어치를 보유하고 있다.일본은행은 작년 9월 장부가 기준 ETF를 연간 3300억 엔씩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주가 급락 같은 시장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시장 전체 매매대금에서 차지하는 ETF 매각대금 비중을 0.05% 정도로 잡았다. 우에다 총재는 “전부 처분하는 데 단순 계산으로 100년 이상 걸린다”며 “조금씩 진행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2012년 말 재집권한 아베 신조 총리는 2013년 디플레이션 탈출을 위해 일본은행을 통해 이른바 ‘바주카포 머니’를 쐈다. 무제한으로 국채를 매입해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을 억제(YCC)하고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으며 ETF 매입까지 동원했다.꿈쩍 않던 일본의 물가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일본은행은 금융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2024년 3월 17년 만에 금리를 인상하며 2016년부터 이어온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폐기했다. 2024년 8월부터는 국채 매입 시 분기 단위로 월 매입액을 4000억 엔씩 줄이는 양적 긴축을 시작했다. 이제 ETF 매각까지 시작하며 질적 긴축에 나섰다.그동안 일본은행이 ETF 매각에 쉽게 나설 수 없었던 것은 주가 하락 우려 때문이다. 그러나 닛케이지수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자 ‘ETF를 팔아도 되겠다’는 판단이 섰다는 관측이 제기된다.도쿄=김일규 한국경제 특파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