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판매·가족 나들이 공간형 매장 등으로 메가 히트

[인더스트리 포커스] 패스트 패션의 원조, 이케아의 성공 비결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인테리어에 대한 관심 또한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호황기에 혜택을 보는 대표적인 업종이 가구업이다. 하지만 불황기에 오히려 더 돋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케아(IKEA)가 바로 그 예다. 1943년 스웨덴의 한 시골에서 시작했던 가구점 이케아가 반세기 만에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던 비결은 독특한 판매 방식과 함께 시장을 앞서가는 통찰력과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투지였다.

이케아는 1943년 잉그바르 캄프라드가 17세의 나이로 창업해 현재 전 세계 13만50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300여 개 대형 판매장에 매년 7억 명의 고객이 방문하고 있고 연간 40조 원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거대 기업으로 성장했다. 매년 2억 부를 발행하는 이케아의 제품 카탈로그는 성경책 다음으로 많이 발간되고 읽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본래 유럽에서 가구는 대를 물려 사용하는 비싼 물건으로, 신문의 부고란을 가장 열심히 보는 사람이 장례업자와 가구 상인이었다. 가구 상인은 장례가 끝난 후 상가의 가구를 일괄 구매해 팔았는데, 유서 깊은 가문에서 사용하던 중고 가구는 스토리까지 덧붙여져 인기가 있었다.

이케아 창업자는 제대로 만든 가구는 너무 비싸고 그렇지 않으면 싸구려 저급품만 있었던 시장의 ‘공백’에 주목하고 통신판매 방법으로 중급 가구를 팔기 시작했다. 매장 수를 최소화해 비용을 줄이고 카탈로그로 주문 받아 배송하는 통신판매는 당시로서는 유통 혁명이었다.

순조롭게 사업이 확장되던 중 이케아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1970년 9월 5일 스톡홀름 외곽의 창고를 겸한 대형 가구 전시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큰 피해를 봤다. 이케아는 몇 푼이라도 건지기 위해 화재로 부분 손상된 가구를 정상 가격의 90% 할인된 가격에 판매한다는 광고를 냈다. 화재 뒤처리 정도로 생각하고 별 기대도 하지 않았던 할인 판매장에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몰려와 북새통을 벌였다. 이를 본 경영진은 고객이 매장으로 찾아와 가구를 구입해 직접 가져가는 대신 가격을 파격적으로 낮추는 일종의 ‘가구 슈퍼마켓’으로 사업 모델을 바꾸게 됐는데,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이케아 성공의 기반이 됐다.


‘가구 슈퍼마켓’으로 유통 혁명
나아가 이케아는 유통 매장의 새로운 혁신도 시작했다. 1970년대 초에 매장 안에 레스토랑과 아이들을 위한 놀이 공간을 마련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동안 어른들은 저렴한 가격의 좋은 요리를 즐기면서 여유롭게 쇼핑을 즐기도록 함으로써 이케아를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자리매김시켰다. 오늘날 대형 소매점에서 일반화된 식당과 어린이를 위한 공간의 배치는 이케아가 최초로 시도한 것이다.

또한 요즘 표현으로 ‘솔루션 마케팅’ 개념을 도입했다. 용도별로 단품을 단순 배열하는 개념에서 탈피해 대형 매장 안에 주방·침실·거실 등 실제 공간처럼 가구를 배치해 전체 생활 공간의 개념을 제안함으로써 가구를 패키지로 판매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킨다.

그동안 한국 시장을 관망해 오던 이케아의 하반기 한국 정식 판매장 오픈이 결정되면서 가구 업계는 긴장하고 있다. 시장 충격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관련 업계의 우려도 크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해외 기업들의 국내 진출을 적극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1990년대 후반 가전 시장이 개방될 때 소니의 TV, 제너럴일렉트릭(GE)의 냉장고·세탁기가 들어오면 국내 가전 업계가 모두 망할 것이라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삼성·LG 등이 국내 경쟁을 이겨내면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보약이 됐다.


김종호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마켓 및 산업총괄본부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