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경영’ 전도사로 나선 전성철 IGM 회장

“창조적 경영이 어렵다? 아주 간단하다. 구태의연하지 않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 그게 바로 창조다.”

‘최고경영자(CEO)들의 선생님’으로 통하는 전성철(65) IGM 세계경영연구원 회장은 최근 대기업·중소기업 할 것 없이 다양한 기업들로부터 ‘창조적 경영’에 관한 강연 요청을 자주 받는다. 그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 이채욱 CJ그룹 부회장, 이재경 두산그룹 부회장 등 국내 굴지 기업의 CEO와 임원들을 가르치는 경영 전문 교육 기관인 IGM의 창립자이자 현역 명강사다.

CEO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강연의 주제는 현재 국내 기업들의 고민과 화두를 엿볼 수 있는 가늠자가 된다는 점에 미뤄볼 때 요즘 경영 현장에선 창조에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최근 경영자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창조적 경영’의 해답을 보다 많은 이들과 나누기 위해 본지와의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4월 7일 서울 중구 장충단로 IGM 사무실에서 만난 전 회장은 “21세기엔 끊임없이 창조하는 기업만이 살아남는다”며 “창조에 대해 반드시 알아야만 한다”고 단호히 말했다.


디자인 기업 아이데오에서 배운 창조성의 비밀
전 회장은 “지금까지 창조성은 개인의 DNA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똑똑하고 기발한 재능을 가진 소수의 인재들은 모두 연봉을 많이 주는 대기업으로 가다 보니 중소기업들은 창조에 대해 사실상 자포자기했다”며 “하지만 미국의 디자인 회사인 아이데오의 사례를 통해 창조의 새로운 해답을 얻게 됐다”며 운을 뗐다.

그에 따르면 세계 최고의 디자인 컨설팅 회사이자 1000여 개 이상의 특허를 보유한 아이데오의 CEO 톰 브라운은 “창조는 재능의 문제가 아니라 프로세스의 문제”라고 했다고 한다. 브라운은 “우리 회사엔 천재나 스타가 없다. 그런 직원이 있는지 관심도 없다”며 “다만 우리에겐 창조를 위한 프로세스만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전 회장은 1999년 미국 ABC 방송에도 방영된 바 있는 아이데오의 창조 과정을 기자에게 상세히 소개했다. ABC가 ‘인재 대신 프로세스’라는 브라운의 말을 확인하기 위해 5일 내에 쇼핑 카트를 만들라는 미션을 던져주고 이 회사의 업무 방식을 모조리 기록하기로 한 것. 아이데오는 우선 생물학·언어학 등 다양한 전공을 가진 직원들을 모아 팀을 꾸렸다. 이들은 ‘스티브 잡스’형 천재라기보다 평범하고 성실한 직원들이라고 했다.

이 팀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쇼핑몰에 가서 하루 종일 쇼핑객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직원들은 ‘테이크아웃 커피 잔을 들고 온 손님들은 쇼핑하기에 불편하군’, ‘아이를 데려 온 엄마들은 아이가 사라질까봐 걱정이 많군’ 등 각자 발견한 사항들을 세세하게 메모했다. 아이데오는 ‘창조는 눈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날엔 함께 모여 토론했다. 바로 이때 아이데오만의 브레인스토밍 원칙이 적용된다. 이를테면 ‘판단은 뒤로 미룬다’, ‘엉뚱한 아이디어를 격려한다’, ‘아이디어에 번호를 매긴다’ 등이 그것이다.

토론 후 프로토타입(시제품)을 제작했다. 토론만 요란하게 하고 끝냄으로써 계속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단 5일 만에 만들어 낸 쇼핑카트는 당시 세계 디자인 대회에 출품돼 은상을 수상했다. 천재 대신 프로세스만으로도 창조가 가능하다는 것을 아이데오가 입증해 보인 것이다. 브라운은 종종 직원들에게 ‘빨리 실패하고 자주 실패하라’, ‘아이디어가 있을때 망설이지 말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라’라고 말한다고 했다.

전 회장은 “관찰을 통해 아이디어가 촉발되고 그룹 토론을 통해 남과 아이디어가 합쳐지면 창조력이 생긴다”며 “아이데오의 사례를 통해 우수한 인재가 없는 중소기업이라도 지식 투입과 집단지성이라는 프로세스를 구축하면 얼마든지 창조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이를 ‘창조의 민주화’라고 명명했다.

전 회장은 아이디어를 촉발하기 위해 마중물을 넣는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독서·토론·교육 등이 이에 해당한다.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의 저자인 스티븐 존슨도 뇌 안에 새로운 지식이 투입이 될 때 뇌 세포들 간의 새로운 네트워크가 형성되면서 창조적인 아이디어가 나온다는 게 실제 실험으로 증명됐다며 ‘지식의 투입이 창조의 필요 조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마중물 투입은 경영자로선 인내심이 필요한 과정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중소기업들은 지식 투입의 시간을 사치로 생각한다. 당장 매출이 떨어지는 게 걱정인 상황에서 직원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시키고 공연 관람을 시킨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며 “가장 쉽고 효과가 좋은 방법은 독서”라고 했다.

전 회장은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 책을 멀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며 “업계에 막강한 경쟁자가 나타났다면 경쟁론에 관한 책을 읽고 직원들의 이직률이 걱정이라면 인사관리에 대한 책을 읽으면 된다. 책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발생시키는 훌륭한 도구”라며 인터뷰 내내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 수차례 강조했다.

그 역시 회사 경영의 노하우를 책을 통해 배웠다고 했다. 그는 국제변호사와 대통령 정책기획비서관, 세종대 부총장 등을 거쳐 2003년 55세의 나이에 IGM을 설립했다. 그때까지 경영 경험이 전혀 없었던 전 회장은 ‘2주에 한 권씩 책을 정독하자’는 목표를 정하고 독서에 매달렸다. 전 직원을 대상으로 매주 토요일마다 독서리뷰의 시간도 진행했다. 전 회장은 IGM이 매년 40%의 성장률을 기록하며 지난 11년간 1만 명 이상의 CEO와 임원을 교육하고 현재 등록된 재학생만 3000여 명에 이르는 세계적인 규모와 수준의 경영 교육 기관으로 성장한 데는 책의 힘이 결정적이었다고 말했다.


직원들의 엉뚱한 발상도 용납해야
그는 경직된 조직 문화가 창조를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에선 직원들의 엉뚱한 발상을 용납해 주지 않는다”며 “상하 수직적인 문화 때문에 회사 내에서 자유로운 소통을 하기 힘들다. 창조를 할 수 있는 프로세스도 갖추지 않은 채 무조건 ‘아이디어를 내라’, ‘더 열심히 일하라’라고 말하는 건 지나친 욕심”이라고 했다.

한편 전 회장이 2009년부터 CEO들을 가르치면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던 ‘가치관 경영’도 최근 ‘창조적 경영’과 더불어 다시금 주목 받고 있다. 전 회장은 “사람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돈이 아니라 의미”라며 “가치관 경영은 직원들을 계약적인 존재에서 이념적인 존재로 바꿔 주는 경영의 마법”이라고 말했다.

전 회장은 중국의 한 발마지숍의 이야기를 예로 들었다. 그곳 사장은 직원들에게 “당신은 발 마사지사가 아니라 지구상에 에너지를 창출하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한다는 것. 전 회장은 “일을 대하는 생각의 차이가 엄청나게 다른 결과를 낳는다”며 “가치관 경영은 직원들에게 열정과 고민을 갖고 일하게 만든다. 창조란 바로 이런 데서 탄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가 가치관 경영이 창조적 경영의 인프라라고 말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

“기업의 경영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왜 원가가 절감되지 않는지, 매출이 늘지 않는지 등등. 기업 내에 창조성이 이식되면 이전과 다른 방법으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 회사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 창조 프로세스를 당장 시작해야 한다.”



‘창조적 경영’을 고민하는 CEO를 위한 전성철 회장의 추천 도서

죽은 CEO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스페셜 인터뷰] “창조요? 재능이 아니라 프로세스에 답 있죠”
토드 부크홀츠 지음, 김영사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10명의 경영 철학 소개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스페셜 인터뷰] “창조요? 재능이 아니라 프로세스에 답 있죠”
류시화 엮음, 오래된미래

치유의 시를 주제로 엮은 시집



사내기업가정신
[스페셜 인터뷰] “창조요? 재능이 아니라 프로세스에 답 있죠”
케빈 데소자 지음, IGM북스

조직 내 아이디어와 창조를 극대화하기 위한 사내 기업가정신 활용법



이야기 중국사
[스페셜 인터뷰] “창조요? 재능이 아니라 프로세스에 답 있죠”
김희영 지음, 청아출판사

고대부터 현대까지 중국의 역사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함께 이야기 식으로 풀어낸 책


김민주 기자 vitam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