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고도성장기의 추억은 잊어라…은퇴 후에도 공부 필요

[이제는 ‘넥스트 잡’ 시대] 30세부터 시작하는 ‘명함이 있는 노후’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수명에 20년의 시간이 새로 생겼다면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 또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실제 한국은 1970년 평균수명 60세에서 2010년 80세로 40년 만에 수명이 20년 늘어났다.

2000년 7%로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이후 2026년에는 20%인 초고령사회 진입이 예상된다. 단지 26년 만에 초고령사회가 되는 것이다. 초고령사회가 되는 기간이 프랑스는 154년, 미국은 86년, 이탈리아는 74년, 일본은 36년 걸렸다. 소요 기간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수명 연장에 따른 초고령사회 진입을 준비하고 대비하는 기간이 한국의 경우 절대적으로 짧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흔히 얘기하는 장수 리스크의 핵심 원인은 ‘대한민국 국민들의 평균수명이 짧은 시간에 급격히 증가한 것’이다.

압축 수명 연장은 지금 중년과 노년들의 경우 당대에 생각지도 못한 20년의 시간을 추가로 대비해야 하는 과제를 숙제로 던져 준 것이다. 노후·노년을 맞이하는 세대에게는 은퇴 자산의 준비 미흡, 은퇴 이후 삶에 대한 준비 부족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한다. 국가적으로도 공적 연금 재정과 노인 복지 개선 등의 과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경제적으로 넉넉해도 시간 보낼 일 있어야
은퇴란 직업·직장·현역 등 일체의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것, 소비 위주로 생활하며 삶을 즐기는 것에 치중하는 것이다. 은퇴란 개념은 독일에서 비스마르크가 보불전쟁(1870~1871년)후 연금의 수급 연령으로 65세를 정한 것에서 비롯됐다. 당시 평균 수명이 49세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은퇴의 개념이 적용될 수 있는 국민이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칼럼니스트 에비게일 트래포드는 ‘나이 듦의 기쁨’에서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평균수명이 65세에 이르렀을 때 2분의 1의 국민들이 65세까지 일했다고 한다. 이때 사람들 사이에서 ‘죽을 때까지 일하는 것은 인생에서 보면 너무 과하다. 열심히 일했는데 은퇴 후 5~10년은 쉬고 놀고 즐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즉, 은퇴를 레저 생활의 일부로 보고 은퇴 여부를 성공과 연결해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55~60세 전후로 은퇴하는 분위기가 사회적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런데 2000년 이후 평균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상태에서 보니 55~60세 전후의 은퇴는 은퇴 후 기간이 25~30년 이상이 된 것이다. 은퇴 후 5~10년은 준비됐다고 할 수 있지만 30년을 준비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은퇴 이후 남은 수명이 5~10년 정도면 여명(餘命) 또는 여생(餘生), 즉 ‘인생의 남은 기간’이라고 할 수 있지만 30년 이상을 그렇게 표현할 수는 없다.

결국 은퇴라는 용어는 평균수명 60~65세 시대에 태어나 50년 정도 유행했는데 100세 시대의 도래와 함께 사라져야 하는 운명에 처해진 것이다. 그런데 100세 시대가 된 지금에도 사람들의 은퇴 연령은 과거와 비슷해 55~60세다. 은퇴 후 삶은 5~10년이 아니라 30~40년이나 되지만 구체적 계획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면 은퇴를 대체할 용어가 있어야 한다. 필자가 권하고 싶은 용어는 ‘명함이 있는 노후’다. 노후에 몰입할 수 있는 일을 만들고 그 일을 의미 있게 표현해 명함을 만드는 것이다. 2014년 2월 10일 베이비부머 정책 토론회에 참석했을 때 참석자들은 “일하고 싶은 시니어가 88%다. 경제적으로 은퇴가 준비된 경우에도 일이 필요하다”고 이구동성 얘기했다.

그렇다면 명함이 있는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흔히 생각하는 명함을 직장과 직책 그리고 소득이 있는 회사 생활로 정의한다고 하더라도 시니어로서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것은 과거 고등학교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하던 때와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1986년 아시안 게임, 1988년 서울 올림픽 등 고도성장기여서 취업이 가능했고 기업이 인재를 모셔가는 분위기였다. 지금은 스스로 일자리를 찾아 나서야 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보통 고등학교·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생활을 30~40년 정도 하고 은퇴한다. 30~40년의 사회생활을 하기 위해 9년의 의무교육을 포함해 12~16년의 교육을 받는다. 은퇴 후 생활도 30~40년이다. 그러면 은퇴 후에도 공부해야 할 것이 있고 최소한의 공부 기간도 필요하다.

인생의 중년을 넘어가는 50세에서 보면 그동안 중요하게 여겼던 직업·직책·연봉·승진·프로젝트 그리고 합리적·논리적·이성적·이기적·현실적인 것은 가벼워지고 소홀히 생각했었던 느낌·공유·시간·행복·가정·사랑·배려·용서·화해·관계·죽음 그리고 감성적·정서적·영적·종교적·이타적인 것들이 무겁게 다가선다. 비로소 인생의 무게를 좌우하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노년 노후 은퇴를 준비하고 대비하고 공부해야 한다. 50세 전후로 3~4년 정도가 은퇴 공부의 적기다. 사실 학교처럼 매일 공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일을 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단기 과정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배워야 한다.


50세 전후로 3~4년이 은퇴 공부 적기
그런데 사람들은 공부라면 손사래를 친다. 배움은 공부를 즐거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지만 공부를 ‘가르치면 배운다’, ‘시험과 체벌’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시니어 일자리는 사회 공헌, 자원봉사, 비영리단체(NPO)·비정부기구(NGO)·협동조합·마을공동체·공유경제 등과도 연결돼 있기 때문에 이를 어떻게 이해하고 배울지도 매우 소중하다.

필자가 제안하는 은퇴를 공부하는 방법은 노년 노후 은퇴 시니어 관련 세미나·심포지엄·포럼·아카데미 등 각종 교육 프로그램과 행사에 참여해 보는 것이다.

2013년에 필자가 참석한 행사는 서울 노년학 국제 심포지엄, 액티브 에이징(Active Ageing) 코리아, 은퇴 전략 포럼, 서울 시니어 국제 엑스포, 시니어 비즈니스 국제 콘퍼런스, 디지털 에이징(Digital Ageing) 심포지엄 등이 있다. 2014년에는 ‘베이비부머 청책(聽策) 토론회’, ‘응답하라 5060’, ‘세상을 바꾸는 시니어 줄여서 세바시’, ‘농업의 치유 기능 활성화에 관한 심포지엄’, ‘일본의 경험을 통해 본 시니어 사회참여 활동의 경험과 가능성’ 등 행사에도 참여해 봤다. 이 밖에 서울 인생 이모작지원센터에서 실시하고 있는 ‘사회 공헌 아카데미’에도 참여했다.

국민들은 노년·노후·은퇴·퇴직 등을 공부하면 건강·주거·재무·관계·일·버킷리스트·리스크관리·웰다잉(Well-dying) 등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결론을 생각한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지만 그 과정에서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들이 살아가야 할 100년을 어떻게 도와 줄 것인지, 배움을 어떻게 인식하고 실천할 것인지, 100세까지 지속 가능한 넘치는 호기심을 갖는 방법 등을 고민해야 한다.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할 것인지, 죽음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지, 마음 내려놓기와 가족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이 노후 설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내용을 풀어보면 그것은 “배움은 어렵고 힘든 고통이 아니라 즐겁고 행복한 과정이므로 중년 이후 배움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넘치는 호기심으로 가득한 인생이 가장 열정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준다. 외로움은 사람의 인생과 함께하는 동반자 관계 중심의 삶을 추구하되 고독력을 길러 두면 좋다. 한국에서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인 돈·죽음·성(sex)이 노후에 더욱 중요하게 부각되는데 이를 양지로 끌어내 공론화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은퇴를 꿈꾸지만 돈 있고 능력 있는 분들이 은퇴했다는 얘기를 들어 보지 못했으므로 우리도 우선 은퇴라는 찬란한 유혹을 뿌리쳐야 한다. 노후 설계가 잘 돼 있어도 마음 내려놓기와 가족 관리를 잘해야 한다. 100세 인생은 충분한 시간이 있어 내가 한 모든 것들은 다 복기(復記)되는데, 특히 잠복됐던 문제가 모습을 보인 후의 시간이 길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김현기 신한NEO50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