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통해 보는 IT의 미래

칼 마르크스는 자신의 저서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처음은 비극으로, 두 번째는 희극으로’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책을 통해 시간은 다르지만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과 사건이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말하고 있다.

동서를 막론하고 이렇게 반복되는 역사를 우리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런 반복이 정보기술(IT) 역사에서도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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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록스가 MS·인텔에 무릎 꿇은 이유

1980년대 기업용 컴퓨터 시장이 개인용 컴퓨터로 바뀌면서 벌어졌던 일들이, 2010년 현재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모바일 시장으로 바뀌면서 비슷하게 발생하고 있다. 물론 해당 업체들은 달라졌다.

1980년대 주역이었던 업체 중에 2010년이 된 지금 조연이나 단역으로 바뀐 업체도 있고, 사라진 업체도 있다. 기업 상황이 많이 바뀌었지만 각 업체의 역할이 비슷하기 때문에 이들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면 향후 IT 업계에서 벌어질 일들을 유추해 볼 수 있다.

1980년대 IT 부문 거인인 제록스와 IBM은 환경의 변화를 인지하지 못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와 인텔에 IT 업계 주도권을 내주고 말았다. 당시 제록스와 IBM은 개인용 PC 시장의 성장세를 간과하고 ‘MS-DOS’라는 운영체제와 ‘×86’ CPU 부문에서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컴퓨터는 회사에 있는 것이지 집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었던 제록스와 IBM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의 잠재력을 간과하고 자신의 주력 분야에만 신경을 썼다.

반면 MS는 개인용 컴퓨터 수가 많아짐에 따라 운영체제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인텔도 CPU가 PC 시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고 유망했던 반도체 사업을 접고 CPU에 총력을 기울여 이 시장의 주도권을 얻었다.

현재도 IBM과 제록스는 건재하지만 PC 시장을 대표하는 기업을 떠올리면 이 두 기업보다 MS나 인텔이 연상될 만큼 상황은 반전됐다.

2010년에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모바일 기기 시장으로 변하는 이 시점에서는 어떤가. 우선 인텔과 MS는 모바일 시장에서 이전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구글과 애플, 저전력 CPU를 만드는 ARM이 그 중심에 있다. MS와 인텔은 PC 부문에서 여전히 지배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모바일 시장에서는 PC 시장만큼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하고 있다.

MS가 새로운 스마트폰 운영체제 ‘윈도 모바일 7’을 내놓고 인텔이 전력 소모를 기존 CPU에 비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인 ‘무어스 타운’ 플랫폼을 준비 중이지만 애플·구글·ARM과 경쟁하기에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모바일 부문으로 전환되면서 가장 크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업체는 애플이다. 5세대에 걸쳐 진화시킨 아이팟과 단 3가지 모델 ‘아이폰’으로 스마트폰 시장 주도권을 잡은 애플의 행보에 다른 업체들이 주목하고 있다.

애플은 1977년 회사 창립 후 가장 풍요로운 제국으로 성장하고 있다. 일부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과거와 달리 남녀노소 아이폰으로 전화를 하고, 아이팟으로 음악을 듣는다. 무엇보다 주목할 만한 점은 애플 제품을 사용해 본 사람들은 대부분의 애플 제품에 대한 열렬한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 업체가 봤을 때 애플의 성공은 너무 쉬워 보였을 수도 있다. 자신들이 수년간 만들어 놓은 모바일 시장을 3년 만에 바꿔버린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애플이 있기에는 수많은 실패가 있어 왔다. 과거 PDA(Personal Digital Assistant: 현재 스마트폰과 비슷한 개인용 정보 단말기) 시장을 생각하면 ‘팜’이나 ‘스프링스’, ‘컴팩’ 등 업체들이 생각하겠지만 정작 세계 최초 PDA를 만든 업체는 ‘애플’이다.

애플은 1993년 세계 최초로 ‘뉴튼’이라는 PDA를 내놓은 바 있다. 휴대가 어려운 크기, 비싼 가격 때문에 애플은 많은 손실을 기록하고 PDA 시장에서 철수했지만 현재 아이폰에서 할 수 있는 기능의 기본은 이미 뉴튼에서 구현됐다.

애플은 교묘하게 고객들이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연결고리를 만들어 놓았다. 맥북 사용 고객들은 새로운 맥북을 구입하면 단 한 번의 케이블 연결로 이전 맥북에 있던 데이터와 프로그램을 모두 백업 받을 수 있다.

아이튠즈로 MP3 음악 파일을 정리해 놓은 사람들은 다음 세대 아이팟을 구입하면 이전에 설정해 놓은 데이터를 바로 옮길 수 있다. 이전 애플 제품을 사용했던 사람이라면 다음 세대 제품을 구입할 때 다시 애플 제품을 사야 하는 연결고리가 있는 것이다. 그 반면 경쟁 업체들은 새로운 제품에 기능이나 디자인에 변화를 줄 뿐 세대가 다른 제품 간 연결고리가 없다.

예를 들면 지금 삼성전자 TV를 쓰는 사람들은 다음 TV를 살 때, 삼성 TV는 다른 TV들과 같이 구매 대상 중에 하나로 포함될 뿐이지 꼭 삼성 제품을 사야 하는 이유는 크지 않다. 이는 휴대전화나 PC와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애플의 각 제품 간 가치 사슬을 깰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여기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과거 IT 업계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유추할 수 있다.

폐쇄정책 고수하던 소니는 결국 도태돼
IT 역사에 영원한 1등은 없었다
1980년대 기업용 컴퓨터 시장에서 개인용 컴퓨터 시장으로 전환될 때 애플은 현재와 같은 전략을 사용했다.

디자인이나 운영체제 면에서 경쟁 제품인 IBM 호환 제품보다 기술적으로 10년은 앞서 있었다. MS가 1990년 윈도3.0에서 도입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를 애플은 이미 1983년에 차세대 컴퓨터 프로젝트 ‘리사’에 사용했다. 하지만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IBM 호환 PC보다 강력했던 애플은 소비자 컴퓨터 시장에서 참담하게 패배한다.

애플은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잘나가는 듯했지만 오합지졸로 표현됐던 IBM과 MS 진영에 개인용 컴퓨터 주인공 자리를 넘겨줬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애플은 자사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고집해 ‘폐쇄적’이었던 반면 경쟁 업체들은 개방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폐쇄성과 관련한 사업 실패는 다른 모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워크맨으로 휴대용 오디오 기기의 아성을 쌓은 소니가 자신들만의 포맷과 하드웨어를 고집해 그 안에 고립돼 버린 사례가 대표적이다.

소니는 비디오테이프 규격인 ‘베타’, 디지털 음악 포맷인 ‘미니디스크’, 메모리카드 포맷 ‘메모리스틱’, 그리고 애플 아이튠즈와 같은 멀티미디어 관리 프로그램 ‘소닉스테이지’ 등을 내놓았지만 결국 실패했다. 소니가 내놓은 방식은 경쟁 방식에 비해 기술적으로 우수했지만 시장에서 외면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을 보면 애플의 성공이 앞으로 계속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애플의 고객들은 얼리어답터에서 일반 소비자들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폐쇄적이라는 점에서는 변함이 없다.

애플 아이팟의 성공을 아이튠즈로 꼽는 사람이 많지만 음악을 자주 바꾸는 사람이나 PC를 여러 대 사용하는 사람이라면 아이튠즈를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아이튠즈는 PC 한 대에 아이팟 한 대만 동기화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애플이 과거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처럼 ‘개방성’과 애플의 ‘혁신성’을 적절히 조합한 업체에 시장의 주도권을 빼앗길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경쟁자로 꼽히는 구글은 이전 MS와 달리 엄청난 영향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하드웨어 제조 능력을 갖춘 삼성전자도 모바일 시장에서 무언가 변화를 주고 싶다면 기존 시장과 현재 시장에서 필요한 부분을 참고해야 할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개인용 컴퓨터 시장에서 모바일로 변하는 이 시점에서도 역사는 반복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반복되는 역사를 비극, 또는 희극으로 만드는 것은 각 업체들의 몫이다.

이형근 디지털타임스 기자 brupr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