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늙어가는 속도는 제어 불능인 듯하다. 당초 예측을 비웃는(?) 광범위·급속도의 고령화는 국제 공통의 골칫덩이 이슈다. 선두 주자는 역시 ‘장수 대국’ 일본이다. 일본의 고령화는 가히 거침없다. 매년 기록 경신이다.

지난 9월 노인 인구(65세 이상)가 3000만 명(3074만 명)을 넘겼다(후생성). 전년(2972만 명, 23.3%)보다 102만 명이 늘었다. 비율은 24.1%. 사상 최고치다. 1차 베이비부머(단카이 세대) 맏형 격인 1947년생이 올해 65세를 맞아 고령 그룹에 붙은 결과다.

결국 4명 중 1명이 노인인 셈이다. 그중에선 70세를 넘긴 이들(2256만 명)이 절반을 웃돈다. 총인구의 17.7%다. 확연한 늙음이다. 여성(1759만 명)이 남성(1315만 명)보다 훨씬 많다. 여성 4명 중 1명(26.9%)이 할머니라는 얘기다. 노인 인구가 1000만 명(1979년), 2000만 명(1998년), 3000만 명(2012년)으로 느는데 소요 기간은 각각 19년, 14년이다. 시간 단축이다. 이래서 고령화가 무서운 법이다.
일본 통계로 살펴본 ‘일본 노인의 평균 생활’ , 노인 취업 개선 중…배움 열기 ‘후끈’
그렇다면 이들 일본 노인의 평균적인 인생 2막은 어떨까. 먼저 취업 상황부터 보자. ‘60세→65세’로 사실상 정년을 늘린 일본답게 고령 근로는 한국보다 낫다. 평생 고용 채택 압력이 높아지면서 노인 취업은 꾸준히 개선 중이다.

고령 취업자는 모두 544만 명이다(2011년). 남성(333만 명)이 대다수이며 여성(211만 명)이 뒤를 떠받친다. 취업률(고령취업자÷고령인구)은 남녀 각각 27.6%, 13.1%다.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증거다. 전기 고령자(65~69세) 취업률은 각각 46.2%, 26.9%로 그나마 높다.

취업 내용은 확실히 변방 일자리다. 농림업(93만 명)과 도소매업(92만 명)이 압도적이다. 성별로 나누면 남성 노인은 농림업(54만 명), 도소매업(51만 명), 제조업(42만 명) 순서로 많다. 여성 노인은 도소매업(42만 명), 농림업(38만 명), 숙박·음식서비스업(23만 명) 등이다.

취업 상태는 불안하다. 피고용자(317만 명) 중 절반가량이 비정규직이다. 그중엔 임원이 적지 않지만 대부분은 비정규직(163만 명, 51.4%)이다. 임원을 빼면 69.7%로 뛴다. 임원을 제외한 피고용자(234만 명) 중 파트타임·아르바이트는 남녀 각각 34.3%, 55.7%다. 반면 정규직은 31.4%, 28.9%에 불과하다. 남성 고령자 중 22.6%는 정년퇴직 이후 재계약을 통해 근무 연장이 이뤄진 계약·촉탁직원이다.

관심사는 노인 가계부다. 고령 가구주의 대부분은 무직 가구로, 평균 1개월 가계 수지는 적자 상태다(2011년). 세후 평균 18만5000엔이 전체 수입이다. 세금·소비지출의 실제 지출은 22만1000엔이다.

그나마 최근 지진 영향, 차량 보조금(친환경), 포인트제도(가전) 등으로 소비가 줄어든 것을 반영한 결과다. 즉 월 3만6000엔 적자다. 그렇다면 부족분은 어떻게 벌충할까. 대부분은 금융자산을 인출, 활용한다. 다행스러운 건 부자 노인의 정황 증거다. 고령 가구주의 저축액은 1가구 평균 2257만 엔이다(현역 가구=1358만 엔). 줄어든 게 이 정도다. 이는 4년 연속 감소(2007년 2481만 엔)다.

평균 함정을 피하기 위해 저축액이 낮은 가구부터 높은 가구까지 줄을 세운 중간도 1464만 엔(중앙치)이다. 역시 감소세지만 ‘노인=빈곤’의 한국으로선 부러운 대목이다.

저축 내용(2인 이상 가구)을 보면 고령 가구주는 정기 예·적금(47.7%), 통화 예·적금(17.4%) 등 현금성 위주다. 보험(19.2%)과 유가증권(14.9%)은 일부다. 반면 현역 가구는 정기 예·적금 39.0%, 통화 예·적금 20.5%, 보험 26.6%, 유가증권 10.6%로 구성된다. 이들의 실수입 중 90%는 사회보장급부비(공적연금)다.

현역 수입(46만9000엔)의 80%가 근로소득인 것과 구분된다. 은퇴 이후 지출 감소 차원의 도심 탈출은 미약하나마 목격된다. 노인의 지역별 전출입을 보면 도쿄 탈출 노인 인구가 연 4000~5000명 정도다. 취업·진학을 위한 청년 가구의 도쿄 집중 트렌드와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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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 사정을 뺀 이들 일본 노인의 삶은 어떨까. 홀몸노인·고독사망·무연사회란 유행어대로라면 궁극의 절대 소외가 예상되지만 생각보다 외롭지는 않다. 고령의 단신 거주가 늘고 인연·네트워크가 붕괴돼 힘든 노후가 불가피한 사례가 적지 않지만 아직 대세는 아니다.

‘현수교 효과’처럼 대형 재난 이후 가족 부활의 움직임도 고무적이다. 무엇보다 장수 추세로 노인 부부가 증가세다. 고령 가구의 유배우자 비율 증가다. 다만 고령자 중 부부 동거, 독거 비율은 성별로 뚜렷이 갈린다.

할아버지 대부분(81.8%)은 아내와 함께 사는 반면 할머니 2명 중 1명(49.6%)은 독거 신세다(2010년). 당연하지만 동거 비율은 연령 증가와 반비례한다. 70세까지는 대부분 함께 살지만 이후부터 독거 할머니가 급증한다.

85세를 넘긴 여성은 80%가 남편 사별로 홀로 살아간다. 고령 가구 중 단신 가구는 1995년 12.1%에서 2010년 16.4%로 늘었다. 시설 입소(노인홈)도 각각 4.2%에서 5.7%로 증가했다. 단신 가구는 남녀(11.1%, 20.3%)로 갈린다. 평균 수명의 남녀 격차 반영 결과다.

일상생활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당장 뭔가를 ‘배우려는 노인’이 증가세다. 2011년 ‘학습·자기계발·훈련’ 등을 받은 고령자(718만 명)는 동일 그룹 중 26.0%에 달했다. 70세 초·중반 연령대의 학습 열의가 높다. 학습 내용은 ‘인문·사회·자연과학’과 ‘간병 관련’을 빼면 전체 항목에서 늘었다. 컴퓨터 등 정보 처리를 배우려는 열기가 뜨겁다. 운동 관심도 높다.
일본 통계로 살펴본 ‘일본 노인의 평균 생활’ , 노인 취업 개선 중…배움 열기 ‘후끈’
어떤 내용이든 스포츠를 즐긴다는 노인(1420만 명)이 동일 연령대의 51.4%에 달한다. 2006년 조사보다 4.8% 포인트 늘었다. 역시 70대 초반이 활기차다. 종류별로는 ‘워킹과 가벼운 체조’가 인기인 가운데 등산·골프·자전거 등은 횡보 상태다.

취미·오락을 즐기는 노인 인구(1991만 명)는 72.1%로 나왔다. 2006년보다 3.4% 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취미 영역은 75세 이상 후기 고령자에게 특히 유력 관심사다. 이 중에선 영화 감상이 최근 인기다.

2004년부터 시작된 ‘부부 할인(부부 중 한 명이 50세 이상이면 할인)’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10명 중 6명이 즐긴다는 노인 취미의 선두 주자가 원예(Gardening)다. 독서·음악·노래방·미술·견학(야유) 등도 상위권이다. 대개 10~30%의 인구가 이런 고전 취미를 즐긴다.

가택(주변)에 머무르는 인구도 많다. 가령 TV 시청자의 압도 그룹은 고령 가구다. 20대의 일평균 TV 시청 시간은 2시간 정도인데 60대는 4시간이 넘는다(NHK방송문화연구소). TV에서 라디오로 옮겨가는 고령 인구도 만만치 않다.

소비 품목이 많은 것은 에어컨·스토브 등 냉난방용 기구로 조사됐다. 직장 생활의 현역 가구와 달리 집 안에 장시간 있어 그만큼 냉난방 관련 지출이 필요해서다. 생활 불편을 없앤 거주 환경을 위한 설비 수선·유지의 주택 개조도 돋보인다. 식비 지출은 전반적인 감소세다.

다만 신선 과일 등 친환경·건강 지향을 위한 먹을거리는 부각된다. 반찬 중에선 육류 부진 속에 어류 호조가 대조적이다. 쌀과 빵 중 고르라면 빵이 유리하다. 학교 급식에서 빵을 먹어본 가구가 최근 고령 인구에 합류한 덕분이다. 휴대전화·인터넷 요금 등은 확연히 증가세다. 현역 가구엔 못 미쳐도 노인 가구도 정보 수집과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높아서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겸임교수(전 게이오대 방문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