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다스의 손.’ 데뷔작인 ‘범죄의 재구성’을 비롯해 최근 ‘도둑들’까지 4연타를 날린 최동훈 감독을 지칭하는 데 손색없는 표현이다. 이 정도 되면 이제 ‘최감독 믿고 영화 본다’는 말까지 나온다. 그러나 전작들의 기록(‘범죄의 재구성’ 212만 명, ‘타짜’ 568만 명, ‘전우치’ 613만 명)은 ‘도둑들’에 비하면 ‘약소한’ 수준이 됐다. 영화 흥행 기록의 ‘고지’인 1000만 관객을 가뿐히 넘고 8월 21일 현재 누적 관객 1137만4792명으로 역대 한국 영화 흥행 기록 5위로 올라섰다.
[스페셜 인터뷰]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도둑들’ 최동훈 감독 “난 농부처럼 일하는 사람, 인생 목표는 과정을 즐기는 것”
지난 7월 25일 개봉한 영화 ‘도둑들’의 흥행 속도는 ‘LTE 급’이었다. 개봉 첫날 43만 명을 동원하며 오프닝 스코어 신기록을 세우더니 개봉 3일 만에 100만 명을 넘어섰고 4일 만에 200만, 8일 만에 400만을 넘더니, 16일 만에 800만, 그리고 드디어 22일 만인 지난 8월 16일 1000만 명 고지에 올라섰다. ‘해운대’ 이후 3년 만, 한국 영화사상 6번째 1000만 관객 돌파다. 역대 가장 빠른 속도였던 ‘괴물’보다 하루가 늦은 기록이지만 ‘해운대’보다 무려 11일이나 빠르고 국내 개봉 영화사상 최대 관객을 불러 모은 ‘아바타’가 38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것과 비교해도 놀라운 속도다.

수익 면에서도 ‘괴물’의 누적 매출 785억 원과 ‘해운대’의 819억 원을 앞지를 기세다. ‘도둑들’은 1000만 관객 동원으로 729억 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반적으로 관객이 지불한 영화 관람료는 배급사와 극장이 5 대 5로 나누는데, 극장 몫 365억 원과 총제작비 145억 원, 배급 수수료 40억 원, 부대비용 등을 뺀 순익이 120억 원 정도.

이 중 배급사인 쇼박스를 포함한 투자사와 제작사 케이퍼필름이 6 대 4 정도로 나눈다. 즉 투자사는 70억 원, 제작사 측은 약 50억 원 정도를 벌어들일 것으로 추정된다. 최동훈 감독은 1000만 관객 돌파와 함께 인센티브를 받고 러닝개런티 얘기도 들리지만 케이퍼필름이 아내 안수현 프로듀서가 대표로 있는 회사니 사실상 의미 없는 ‘배분’인 셈이다.
[스페셜 인터뷰]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도둑들’ 최동훈 감독 “난 농부처럼 일하는 사람, 인생 목표는 과정을 즐기는 것”
‘도둑들’의 흥행 요인은 복합적이다. 김윤석·김혜수·이정재·전지현·김수현·임달화·김해숙·오달수 등 한중을 넘나드는 초호화 캐스팅도 분명 흥행에 중대한 몫을 했겠지만, 캐릭터를 만들고 시나리오를 쓰고 연출을 한 최동훈 감독의 공을 가장 먼저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1000만 관객 돌파와 함께 최 감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 것도 그런 이유다. 사실 1000만 관객이란 수치는 최 감독 스스로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그는 ‘혹시 영화진흥위원회 통합 전산망의 오류가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고 했다. 하루 이틀 내에 1000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던 지난 8월 14일 쏟아지는 축하 인사 속에 파묻힌 최 감독을 대학로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1000만 관객 돌파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을 텐데, 이제 좀 무뎌졌겠어요.

그래도 여전히 기분 좋은 질문이죠. 한편으로는 부담도 되고요. 배우들·스태프들과 함께 이 영화를 했다는 것에 대해 좋은 기억을 공유하게 됐다는 게 가장 기뻐요.

전작을 넘어서야 한다고 치면 다음 작품을 하는 데 굉장한 부담이 되겠어요.

그런 생각은 없어요. 전작과의 비교는 고사하고 다음 영화 흥행 자체에 대한 부담을 갖고 일하지 않아요. 다만, 보통 한 작품에 2년 반 정도 시간이 소요되니 내 스스로 그 정도의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을까 고민하죠.

‘도둑들’은 어느 정도 예상했나요. 일각에선 ‘도둑들’이 순수 오락 영화로서 1000만 관객을 넘겼다는 데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하기도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순수문학이 더 세고 리얼리즘이 굉장히 강한 나라예요. 영화도 그런 영화가 더 좋은 영화라고 생각하죠. 그런데 전 다른 생각이에요. 재밌는 영화를 찍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 일인데, 사람들은 그걸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죠. 제가 장르 영화를 계속 찍고 싶은 이유는 무궁무진한 상상력을 펼치게 하기 때문이에요.
[스페셜 인터뷰]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도둑들’ 최동훈 감독 “난 농부처럼 일하는 사람, 인생 목표는 과정을 즐기는 것”
그 상상력의 근원은 어딘가요. ‘도둑들’도 상상력의 산물이라고 들었는데.

음, 글쎄요. 인터넷?(웃음). 감독은 기본적으로 이야기꾼이 되어야겠지만, 미술 영화를 찍을 땐 감독이 건축가가 되어야 해요. 모든 것이 상상인 거죠. 저한테는 상상하는 것이 재미예요. 어렸을 때부터 상상이나 공상을 정말 많이 했어요. 혼자 논둑을 걸으며 중얼중얼하고, 만화 영화 스토리도 만들어 보고 그랬죠. 책도 평균적인 사람보다 많이 읽었어요. 추리소설 보는 걸 굉장히 좋아했죠. 학교 성적은 형편없었고요(웃음).

이번이 네 번째 작품이죠. 데뷔한 지 8년 됐는데, 그때와 지금 달라진 게 있나요.

많은 게 변했죠. 관심사도 변했고. 특히 데뷔하고 나서는 내가 부족한 게 정말 많구나, 운이 좋아 영화감독이 된 거지, 능력이 뛰어나 된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오히려 더 많이 공부하게 됐어요. 열심히 책 보도 영화 보고 음악도 듣고, 그 안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게 습관이 됐어요. 영화 작업하는 건 더 어려워졌어요.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고, 정복도 안 되고, 언제나 미완성이죠. 가끔씩 좋은 영화를 보면 집에서 머리박고 그래요(웃음). ‘저렇게 훌륭한 영화도 만드는데’ 하면서 말이에요. 영화 일을 하면서 인생이 좀 더 재밌어 진 건 사실이에요. 그전엔 비참했어요. 경제적으로 돈도 없고, 희망도 없고.

수익에 관한 얘기도 화제예요. 경제적으로 상당히 풍요로워졌다는 것도 변화 아닌가요.

그렇죠. 경제적인 여유가 생기면서 누릴 수 있는 건 많아졌는데, 막상 사는 건 똑같아요. 가장 즐거운 쇼핑은 DVD 쇼핑이고요(웃음). 사실 전작들이 성공했을 때는 제작자들이 돈을 벌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도둑들’이 벌어들이는 수익은 남다른 의미가 있죠. 얼마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데 쓸 예정입니다.

최동훈 감독은 손만 대면 흥행한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그게, 아주 근면하지 않으면 절대 불가능한 겁니다. 영감이 반짝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만큼 얻어지는 거죠. 저는 농부처럼 성실하게 일하려고 애써요. 내면을 들여다보면 비참한 삶이라니까요. 집에 박혀서 일만 하고…. 여가라고 해봐야 아내와 데이트하는 건데, 그때도 영화 이야기만 하니 일과 사생활이 전혀 분리되지 않죠(웃음). 성실함과 더불어 좋은 파트너, 좋은 스태프, 좋은 배우를 만나는 것, 감독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자극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도 중요해요. 아내도 그렇고 저와 작업을 많이 해본 사람들은 저를 끊임없이 괴롭혀요.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일하는 게 좋아요.

감독에겐 ‘소통’의 능력이 필요하겠군요.

그렇죠. 모든 게 소통이에요. 그래서인지 예전엔 안 그랬는데 점점 ‘구라’가 늘어요(웃음). 하지만 대화를 하는 게 곧 영화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20대에는 마초였는데, 30대 이후엔 수다 능력 탁월한 아줌마가 되는 것 같아요(웃음).

안 대표는 ‘도둑들’ 탄생에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나요.

아내는 이 영화의 시작과 끝, 모든 것을 알아요. ‘아내에게 칭찬받고 싶다’, ‘존경받고 싶다’하는 절대 목표로 열심히 썼어요(웃음).

감독님 작품은 대부분 출연 배우가 많은 편이긴 하지만, ‘도둑들’은 정말 많죠. 캐릭터가 많으면 힘들지 않나요.

시나리오를 쓸 때 캐릭터를 많이 만들어야지 생각하고 쓰는 건 아니에요. 캐릭터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쉽게 찍는 영화는 없어요. 감독은 누구나가 다 한 발은 지옥에, 한 발은 천당에 걸치고 사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그렇다고 두 발 다 천당에 가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어요(웃음). 그 고통을 즐겨야 돼요. ‘스트레스는 내 친구’가 제 인생의 모토입니다. ‘스트레스 이즈 마인(stress is mine)’ 그걸 바꿔 예니콜(전지현) 발등에 ‘해피 엔딩 이즈 마인(happy ending is mine)’이라고 써놓은 거죠. 그런데 갈수록 친구가 많아지고 있네요(웃음).
[스페셜 인터뷰] 천만 관객 돌파 영화 ‘도둑들’ 최동훈 감독 “난 농부처럼 일하는 사람, 인생 목표는 과정을 즐기는 것”
직업병이 있나요.

세상 어디를 가도 여기서 영화를 찍을 수 있을지 없을지를 봐요(웃음). 조명은 설치할 수 있는지, 길거리에 발전차를 댈 수 있는지까지 따져봐요. 그런데 영화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병을 갖고 있죠. 영화 촬영할 때 그 직업병의 혜택을 많이 받아요.

감독님 작품에는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요. 감독님 가치관과 상관있나요.

결혼하고 바뀐 것 같아요. 사랑이 이뤄지건 이뤄지지 않건 인간에게 중요하다, 사랑 때문에 무언가를 버릴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 것들을 넣으려고 영화를 하는 거예요.

감독은 기업으로 치면 CEO잖아요. 경영 철학이 중요할 것 같아요.

‘우리는 열심히 일했다’라고 느껴야 된다는 겁니다. ‘최선의 선택을 하면서 찍었다’라고 느껴야 되는 거죠. 성적과는 아무 상관없어요.

2년 반 동안 한 작품의 수장 역할을 하려면 자기 관리도 잘해야 할 텐데요.

아프면 안 되고, 나태해지면 안 되고, 촉을 계속 유지하고 있어야죠. 그건 ‘비법’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다만, 영화가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해요. 감을 놓치거나 집중하지 않으면 영화는 정말 무서운 거예요. 저는 영화를 정말 좋아하지만 영화가 무섭다고 느껴져요.

40대 초반 이른 나이에 성공한 감독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데요.

아직까지는 그런데 영화라는 게 투자와 캐스팅이 아주 복잡하게 얽혀 있어요. 가령 제가 유명해지고 영화가 잘 돼서 캐스팅이 쉬울 것 같죠? 절대 그렇지 않아요. 시나리오가 좋지 않으면 아무도 안 해요. 재미가 없는데 누가 하겠어요. 작품을 할 때 ‘훌륭한 시나리오를 어떻게 하면 쓸 수 있나’가 첫 번째 목표이고, ‘그 시나리오에 훌륭한 배우를 어떻게 끌어들이느냐’가 두 번째 목표입니다.

감독님 스스로는 지금 성공의 어느 지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나요.

이제 수영하는 방법을 배웠다는 정도? 제가 요즘 실제로 수영을 배우기 시작했거든요(웃음). ‘성공의 달콤한 향기’라는 영화가 있는데 사실 성공의 향기는 오래가지 않는 겁니다. 영화의 결과는 엄청난 현실이기 때문에 현실에 집중해야죠. 그런데 영화하는 동안의 그 과정을 사랑하지 않으면 영화를 오래할 수 없어요. 인생의 목표는 과정을 즐겨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해요.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영역이니까요. 과정의 즐거움을 깨닫는 건 영화를 하든 하지 않든 누구에게나 필요하지 않을까요.


박진영 기자 bluepjy@hankyung.com | 사진 김기남 기자 kn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