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제2의 인생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몇 년 전 ‘올레길’로 시작된 제주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소위 ‘제주 이민’으로 옮겨 붙고 있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제주도 순유입 인구는 2010년부터 3년째 증가 추세다. 올해도 4월까지 작년 같은 기간보다 90%나 늘어난 2600여 명이 제주로 둥지를 옮겼다.

우근민(71)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최근 젊은 문화 이주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라며 “자연 속에서 안정감을 찾고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어 선호한다”고 말했다. 우 지사는 이들을 제주 마을 공동체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일 구상을 하고 있다. 읍면 지역의 버려진 폐가를 도에서 매입해 제공한다는 것이다. 그는 “문화 이주자들이 마을로 들어오면 새로운 ‘문화 예술의 올레길’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23일 도청 집무실에서 우 지사를 만났다.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시골 폐가 매입해 문화 예술 올레길 조성” 세계 최고 섬 관광지 이끌어
문화 예술 올레길은 무엇입니까.

제주 관광객이 늘고 있지만 한두 번 와 보고 싫증 내는 사람이 많아요. 올레길도 한 번 갔다 온 사람은 금방 다시 안 오죠. 그래서 새로운 올레길을 만들려고 합니다. 문화와 예술이 있는 길을 만들어 그걸 올레길화한다는 거죠. 읍면 지역의 폐가를 찾아내 도에서 확보하고 제주 문화 이주자들이 와서 살도록 하려고 해요.

주민과 연계가 생기고 공동체도 활력을 얻을 겁니다. 그동안 올레길을 찾는 사람이 많이 왔지만 ‘거기서 제주도 사람들이 얻는 게 뭐냐’는 불만도 있는 게 사실이에요. 요즘 올레길에서 물건을 파는 사람도 생기는데 저는 그걸 못하게 합니다. 사색을 즐기고 자연을 느끼고 싶어 제주에 오는 것 아닙니까. 그냥 가만히 놓아두는 게 오히려 더 좋아요. 문화 예술 올레길은 이들을 마을 안으로 끌어들이는 통로가 될 겁니다.

제주에 새로운 박물관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세계적 화가인 김창렬 화백의 박물관을 지을 겁니다. 물방울 그림으로 유명한 분이죠. 제주와는 6·25전쟁 때 피란 와서 1년 반 동안 산 특별한 인연이 있어요. 이분이 자신의 작품 200점을 무상으로 기증했죠. 아직 건립 시기나 장소, 규모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주민들이 원하면 가파도 같은 곳에 만들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일본 나오시마 섬은 베네세그룹이 세계적인 박물관들을 만들면서 매년 50만 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어요.

골목상권 활성화 정책으로 유권자 대상을 받으셨는데요.

제주도는 육지 지역과 다른 점이 있어요. 이를테면 서울 인근에 신도시를 만들면 전국에서 사람들이 다 몰려옵니다. 하지만 제주도는 신시가지가 생길 때마다 전국에서 오는 게 아니라 기존 시가지에서 다 빠져나가죠. 원도심 공동화 현상이 심각한 이유예요. 어제도 제주 시내 산지천 주변을 돌아봤는데 상권이 죽어 두 집 걸러 한 집이 문을 닫았어요.

전국에서 처음 골목상권 추진단을 만들어 점포 설계나 레이아웃, 동선 관리, 시설 같은 부분을 꾸준히 지원해 왔죠. 판매가 10%, 고객은 24% 늘었어요. 하지만 장사를 하려고 해도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도에서 200억 원을 조성해 지금까지 1200명에게 자금을 지원해 줬어요. 서귀포 매일올레시장에 꼭 가보세요. 주말에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요. 옛날에는 주차장에 차가 10대도 없었는데 지금은 300대 규모로 늘렸는 데도 빈자리가 없어요.

지사님께서 추진하는 탐라문화광장도 흥미로운 데요.

제주항으로 매년 300만 명이 페리를 타고 들어옵니다. 이뿐만이 아니에요. 올해 국제 크루즈선을 타고 35만 명이 제주외항으로 들어오죠. 이들에게 보고 즐길 수 있는 걸 만들어 주자는 겁니다. 보통 크루즈를 타고 오는 선원만 해도 50개가 넘는 다양한 국적을 갖고 있어요.

각 나라의 음식을 먹고 제주 문화도 접할 수 있게 할 거예요. 미국 라스베이거스 프리몬트 스트리트는 LG전자 발광다이오드(LED) 패널로 거리를 덮고 거기서 매일 밤 화려한 영상 쇼를 해요. 탐라문화광장에서도 해질녘 그런 걸 해볼 수 있어요. 주변에 있는 동문시장, 지하상가 등 7개 상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죠.

‘7대 자연경관’ 선정 효과는 어느 정도입니까.

한마디로 작년에 제주도가 이룰 수 없는 일을 이룬 겁니다. 여러 가지 의견이 나오지만 우리 도민이 1000년을 먹고살 브랜드 가치를 확보했다고 생각해요. 이집트 피라미드가 세계 7대 불가사의로 선정되면서 세계인들이 지금도 다 무너진 스핑크스를 찾아가지 않습니까.

관광객은 어느 정도 늘어났습니까.

작년 관광객 수를 보면 발리가 895만 명, 하와이가 799만 명, 오키나와가 584만 명이었어요. 그런데 제주는 969만 명이 찾았어요. 섬 관광지로는 세계 최고가 된 겁니다. 2009년 63만 명이던 외국인 관광객이 작년 168만 명을 기록했어요. 국제 크루즈 직항 노선은 36회 3만7000명에서 80회 14만 명으로, 국제항공 노선은 15개 노선에서 38개 노선으로 증가했고요.
우근민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시골 폐가 매입해 문화 예술 올레길 조성” 세계 최고 섬 관광지 이끌어
올해 관광객 추이는 어떻습니까.

여러 가지 불리한 환경이에요. 북한의 위협적 행동이 잦아지면서 특히 동남아 지역에서 문의가 많아졌어요. 안전하냐는 거죠. 예약을 해약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고요. 중국도 지금 살얼음판이에요. 시진핑 주석이 취임하면서 공무원들에 대해 대대적인 사정을 벌이고 있어요. 호텔에서 음식도 못 먹게 하고 해외여행도 제한하고 있죠.

다행히 아직 제주도는 관광객이 증가 추세를 유지하고 있어요. 9월에는 중국 네트워크 판매 업체인 즈밍더그룹에서 인센티브 관광으로 5000명이 옵니다. 내년에는 증국·대만 암웨이에서 2만5000명이 오고요. 제주도 때문에 여수와 부산도 덕을 볼 거예요. 전국 모임에 다녀온 제주 상공회의소 회장이 다들 경제가 어렵다고 하소연하더라고 해요. 그런데 제주공항에 도착하니까 제주도는 별천지라는 거죠. 밖은 그렇게 썰렁한데 제주도는 아니거든요.

중국 관광객과 중국인 투자가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옵니다.

중국에 가면 한국은 몰라도 제주도는 다 알아요. 거리도 가깝고 바다와 산을 한꺼번에 볼 수 있어 제주도를 선호하거든요. 이걸 좀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해요. 중국인들이 많이 오고 투자도 하니까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어요. 중국인들이 호텔을 싹쓸이해 제주 사람들은 다 쫓겨날 것이라고 해요.

실제로 싹쓸이하는 것도 없지만 관련 법규가 다 있기 때문에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미국의 상징인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만 해도 미국이 어렵고 일본이 잘나갈 때 소니가 사들였다가 버블 경기가 깨지면서 다시 미국 회사에서 사들이고 하거든요. 투자한다고 그걸 가져가지는 못하는 거죠.

제주공항 포화 현상이 심각한 데요.

국책 연구원인 국토연구원에 의뢰해 1년 넘게 대안을 마련했어요. 제주공항을 늘려달라고 도민들의 서명을 받는 식으로는 객관성도 없고 중앙 정부를 설득할 수도 없거든요. 용역 연구 결과 현재 공항을 확장하는 4개 안과 새로운 장소로 옮기는 4개 안 등 8개 대안이 나왔어요. 6월부터 국토교통부에서 이걸 놓고 용역 연구를 시작해요. 그 결과가 나와야 가닥이 잡히겠죠. 공항은 수십조 원이 투입되고 고도의 기술과 장기간의 기상 체크 등이 필요해 국가 차원에서 해야지 지방이 추진하기 어려워요. 제주도가 나서 신공항 이야기를 하는 건 혼란만 부추길 수 있죠.

강정 민·군 복합형 관광 미항 개발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민·군 복합항은 애초 정부에서 약속한 거예요. 약속한 것 이상을 요구할 생각도 없고 그 이하를 받아들일 생각도 없어요. 15만 톤 크루즈 2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지 총리실과 해군, 제주도 전문가가 참여해 검증해 왔어요. 그 결과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죠. 이제는 국가 안보와 제주도 발전을 위해 공사가 원만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삼다수에 이어 프리미엄급 생수 한라수를 내놓았는데 반응이 어떻습니까.

자동차로 보면 쏘나타만 팔다가 에쿠스를 개발한 것과 마찬가지죠. 물의 가치를 높이고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한 전략입니다. 그동안 페트병에만 담아 판매했는데 유리병 제품을 추가해 중국이나 일본의 오성급 호텔에 들어갈 수 있게 됐어요. 며칠 전 중국에 다녀왔는데 호텔 방에 에비앙 유리병 제품이 있더군요. 그 병을 챙겨와 제주특별자치도개발공사에 갖다 줬어요. 서울에 갈 때도 전 세계 자연수 병을 보면 열 병, 스무 병씩 사서 연구해 보라고 갖다 줍니다.
우근민 제주지사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우근민 제주지사 /서범세 기자 joycine@hankyung.com
해외 수출은 어떻습니까.

일본 수출 유통업체를 새로 선정했는데 그에 대한 오해가 좀 있는 것 같아요. 원래 일본에 삼다수를 유통하는 업체가 2개였어요. 그러다 보니 한 백화점에 삼다수 가격이 두 개인 경우가 생겼어요. 일본에서 파는 생수가 별것 아닌 것도 100엔인데 한국에서 제일 좋은 제주 삼다수는 왜 88엔밖에 못 받느냐는 재일 동포들의 항의도 많이 받았죠.

새로 계약한 회사는 원래 물을 팔던 곳이 아니에요. 이걸 의아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회사가 산토리와 손잡겠다는 조건을 제시했죠. ‘한류’ 스타들을 활용해 1년에 4만 톤을 팔겠다는 거예요. 그동안은 고작 46톤, 5억~6억 원어치가 전부였죠. 게다가 30억 원을 개런티로 예치했고요. 제가 남해화학 사장도 해봤지만 물건을 팔 때는 가능한 방법을 다 써서 최선을 다해야 해요. 개발공사 사장한테 기죽지 말라고 했어요.

5월 29일부터 제8회 제주포럼이 열립니다. 올해 특징은 무엇입니까.

동아시아 주요국의 리더가 모두 바뀌었어요. 북한은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이어가고 있고요. 중일 간 센카쿠열도 분쟁을 비롯해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에 영토와 역사를 둘러싼 갈등도 심화되고 있죠. 동아시아와 한반도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에 대한 평화롭고 지혜로운 해법이 절실한 시점에 대규모 포럼이 열리는 겁니다. 그만큼 풍성하고 심도 있는 토론의 장이 될 거예요. 특히 세계적 투자가인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이 특별 세션에 참가해 위기 이후 세계경제와 성공 투자법에 대해 직접 들려줄 예정입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창업해 경이적인 수익률을 기록한 인물이죠.

포럼 개최가 연례화된 지 2년째를 맞았는데요.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아직은 나비의 날갯짓 정도의 미풍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거대한 태풍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조급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요. 벌써 8회째를 맞는데, 과거에는 격년제로 2년에 한 번 열리다 보니 관심이 계속 이어지지 않았죠. 많은 사람이 제주포럼을 다보스포럼이나 보아오포럼과 비교해요. 다보스포럼은 쉽게 말해 잘난 사람들이 잘난 척하는 포럼 아닙니까.(웃음) 보아오포럼은 중국이 G2로서 위상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고요. 하지만 제주포럼은 독립적으로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해 키워 나가는 포럼입니다. 서로 비교하기가 어렵죠.



약력 : 1942년 제주 북제주 출생. 1971년 명지대 행정학과 졸업. 1973년 경희대 행정학 석사. 1974년 총무처장관 비서관. 1988년 총무처 인사국장, 기획관리실장. 1991년 제27, 28대 제주도지사. 1996년 남해화학 사장. 1997년 총무처 차관. 1998년 제32, 33대 제주도지사. 2010년 36대 제주특별자치도지사(현).

대담 김상헌 편집장 ksh1231@hankyung.com | 정리 장승규 기자 sk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