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건 재테크 레슨

세상에는 다양한 직업이 있다. 투자의 관점에서 직업을 보면 조금 억지스럽지만 주식형과 채권형으로 나눠볼 수 있다. 공무원은 대표적인 채권형 직업이다. 급여를 국가에서 정년 시점까지 지급한다. 만기가 정해져 있고 정부가 지급보증하는 월지급 쿠폰이 있는 채권과 같은 셈이다.

안정성에서도 가장 뛰어나다. 정부가 망하지 않는 한 원리금을 받을 수 있는 채권과 같다. 게다가 퇴직 후에는 사망 시점까지 연금을 받을 수 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근무 연수를 충족하는 사람은 사망 시점까지 지급액이 보장된다. 정부 지급보증의 채권을 갖는 셈이다. 이런 연금은 연금 수령자로선 자신의 수명 리스크를 완벽하게 헤지할 수 있다.

노후의 자산 운용에서 가장 힘든 변수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릴 수 없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죽을지 사망 시점을 예측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무원들은 퇴직 이후에 언제 죽을지 모르는 수명 리스크를 100% 정부가 책임지도록 할 수 있다.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자산을 늘리기는 어렵지만 매월 일정액의 예측 가능한 연금을 받기 때문에 계획적인 삶도 가능하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시장가치가 젊은 시절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높아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외환은행 본점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12.28
외환은행 본점 /강은구기자 egkang@hankyung.com 2012.12.28
반면 증권회사 직원은 대표적인 주식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일단 시장 상황에 따라 부침이 심하다. 증권시장이 활황이면 다른 업종에선 받기 어려운 많은 성과급을 받는다. 미혼인 증권맨들이 결혼 시장에서 큰 인기를 얻는 것도 이때다. 증권업계 직원들이 1등 신랑감 혹은 1등 신붓감 소리를 듣는 시기는 대부분 증권시장 호황기다. 그러나 산이 높으면 골도 깊다는 격언처럼 시장이 어려워지면 미혼 증권맨들의 인기는 호황 시절에 비해 반감된다.

문제는 자신의 수입을 결정하는 시장 상황을 자기 마음대로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종사하는 산업 자체가 변동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자신의 경제적 형편도 시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주식형 직업은 성공만 하면 채권형 직업에 비할 수 없을 정도의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주식형 직업의 결정적인 단점은 심리적 측면과 맞닿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비성향이다. 돈을 많이 벌 때를 기준으로 자신의 소비 눈높이가 고정돼 있는 게 문제다. 이런 사람들은 증권시장에 한파가 불 때 적지 않은 고생을 겪는다. 소비는 일종의 습관이기 때문에 줄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채권형 직업의 소유자들은 급여가 크게 오를 가능성이 낮기 때문에 소비 눈높이가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

여기서 주식형 직업과 채권형 직업으로 구분한 것은 어느 쪽이 좋다는 편을 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인생 설계와 재무 설계를 할 때, 특히 노후 준비를 할 때 자신의 직업적 특성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공무원처럼 노후에도 연금을 받을 수 있거나 정년 시점이 다른 직업군에 비해 늦은 경우라면 은퇴 자산을 준비할 때 연금이나 퇴직연금을 보완하는 전략을 짜야 할 것이다.

흔히 투자의 기본을 분산투자에 있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공무원은 직장이 안정적이고 연금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다른 금융 상품을 이용할 때는 리스크가 있는 투자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안정적인 직업일수록 자금을 보수적으로 운용하는 이가 많고, 증권맨과 같은 변동성이 높은 직업군의 사람들이 리스크 자산에 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다. 인적 자본과 투자 자본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생겨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분명한 사실은 분산투자의 대상에 자신의 인적 자본을 고려한 전략을 어느 정도 감안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이다.

분산투자는 대박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손실을 최소화하고 위험을 낮추기 위한 것이 목표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큰 소득원인 인적 자본의 가치를 높이는 것과 함께 자신의 인적 자본을 고려한 분산투자는 인생 설계와 재무 설계에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전략 중 하나다.


이상건 미래에셋 투자교육연구소 상무 sg.lee@miraeasse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