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벌써 12월이다. 매년 이맘때면 모든 경제주체는 내년도 경제 전망을 토대로 사업계획을 짠다. 금융위기 발생 10년째를 맞는 내년에는 추세적인 변곡점과 새로운 변화가 예상돼 그 어느 해보다 고려해야 할 변수가 많다. 그런 만큼 선제적인 대응 여부에 따라 경제주체별로 명암이 엇갈릴 가능성이 높다.
가장 큰 변화는 세계 경제가 10년 만에 ‘디플레이션 갭’에서 ‘인플레이션 갭’으로 전환될 첫 해가 될 것이라는 점이다. 디플레 갭은 실제 성장률에서 잠재 성장률을 뺀 것이 마이너스일 때, 인플레 갭은 플러스일 때를 말한다. 디플레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즉 리플레이션은 증시에 호재가 되지만 인플레 국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인플레이션은 악재로 작용한다.
절대오차(전망치-실적치)로 평가한 전망기관별 예측력에서 가장 높은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은 내년 세계 경제 성장률은 3.7%다. 기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세계 경제 잠재 성장률은 3.6% 내외로 국내총생산(GDP) 갭을 구하면 +0.1%포인트로 나온다. 10년 만에 디플레 갭에서 벗어나는 것으로 나온다.
물가나 경제가 증시 등 자산시장에 부담이 된다면 출구전략(통화정책의 정상화)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중앙은행(Fed)은 2014년 10월 양적완화(QE) 중단, 2015년 12월 금리 인상에 이어 올해 11월부터 보유자산을 매각하기 시작한다. 유럽중앙은행(ECB)도 내년 1월부터 매월 국채 매입 한도를 300억 유로로 축소할 계획이다.
각국 중앙은행 수장도 교체된다. 위기 극복의 적임자 역할이 끝나가기 때문이다. Fed 의장은 ‘재닛 옐런’에서 ‘제롬 파월’로 넘어간다. 중국 인민은행 총재도 저우샤오촨에서 궈수칭으로 교체된다. 내년 4월에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JOB) 총재와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임기를 마친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임기는 2019년이다.
반면 독일 앙겔라 메르켈과 일본 아베 신조 총리,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장기 집권 체제가 마련됐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2년째를 맞는다. 따라서 경기 대책의 우선순위도 통화정책에서 재정정책으로 확실하게 넘어간다.
금리, 환율 등 금융 변수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Fed의 금리 인상에도 달러 가치는 ‘강세’보다 ‘약세’를 나타냈다. 정책금리 인상에도 시장금리가 오히려 하락하는 ‘그린스펀 수수께끼’ 현상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산 매각을 추진한다면 시장금리가 올라(자산 매각→채권 공급 증가→채권값 하락→채권금리 상승) 달러 가치가 회복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달러 가치가 회복하더라도 달러 투자를 할 만큼 큰 폭으로 오르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는 국익 우선의 보호주의를 추진해 무역적자를 축소하는 데 최우선순위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 강세로 무역적자가 다시 확대된다면 트럼프 정부의 대외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된다.
내년에는 ‘제4차 산업혁명’이란 용어가 나온 지 3년째가 된다. 지난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창시자는 기존 산업분류(콜린 클라이크 방식)에서 정의되지 않는 모든 산업이 가져올 세계 경제 변화를 제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렀다. 1990년대 말 제3차 산업혁명 시기에 세계 경제를 ‘골디락스’ 국면이라 불렀다.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도됨에 따라 성장률이 올라가더라도 물가가 오히려 떨어졌기 때문이다. 제4차 산업혁명이 정착되는 시기에 ‘유토피아(utopia=ou(없는)+topos(세계))’ 국면이 나타날지 관심사다.
각종 의사결정과 자산관리에 종전의 ‘히포(HIPPO)’에서 ‘긱(geek)’ 방식이 빠르게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 히포란 보수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의 의견(Highest Paid Person’s Opinion)을 줄인 말로 최고경영자(CEO)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을 뜻한다. 반면 긱이란 인공지능(AI)와 알고리즘에 기반을 둔 의사결정 방식을 말한다.
내년에는 화폐 개혁 논의도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비제도화, 가격의 불안정성 등의 이유로 외면만 하던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가 이제는 법정화(legal tender) 문제가 검토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각국 중앙은행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크리스틴 라가르도 IMF 총재도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언급했다.
◆내년 세계 주요국의 경제 변수는
국가별로는 미국 경제는 ‘트럼프노믹스(트럼프 정부의 경제정책)’가 제대로 정착되느냐 여부에 좌우될 가능성이 높다. 대외적으로 국익 우선의 보호주의 정책은 국제적인 비난에도 미국의 실리를 챙기는 데는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 재확충, 세제개혁안 등과 같은 대내 정책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특히 내년 11월에는 중간선거가 예정돼 있어 의외로 큰 복병이 될 가능성이 높다. 대부분 예측기관이 내년 미국 경제 성장률을 크게 올려 잡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IMF(올해 10월)의 경우 내년 성장률을 2.3%로 내다봐 올해에 비해 0.1%포인트 올라가는 수준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 6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EU 탈퇴)로 분열 조짐을 보였던 유럽 경제는 올해 3월 네덜란드 총선, 5월 프랑스 대선, 9월 독일의 총선을 거치면서 ‘통합’을 강화하는 쪽으로 선거 결과가 나왔다. 테러, 난민, 회원국 내 독립운동 등과 같은 변수가 있긴 하지만 내년에는 봉합된 유럽통합 효과가 가시화되면서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6월 도쿄 선거 참패로 위기에 몰렸던 아베 정부가 ‘중의원 해산’이라는 초강수로 일본 국민의 신뢰를 다시 얻는 데 성공했지만 내년 일본 경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견해가 지배적이다. 아베노믹스가 1단계(하마다 고이치, 금융 완화)에서 2단계(혼다 에쓰로, 재정 지출)로 이행되면서 가뜩이나 많은 국가 채무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IMF는 올해 성장률은 1.5%까지 회복하다가 내년에는 0.7%로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경제는 올해는 특별한 해다. 6년간 내리막길을 걸었던 성장률이 회복되고 있다. 상하이 지수도 크게 올랐다. 위안화 가치도 최소한 미국 달러화에 대해서는 평가 절상됐다. ‘트리플 강세’다. 경제 외적으로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 10월에 열렸던 제19차 당 대회를 통해 덩샤오핑과 같은 반열에 올랐다.
내년에는 ‘신창타이’ 성장률(6.5∼7%)을 달성하는 가운데 위안화 국제화 과제가 가시적인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위안화 국제화란 국제 교역과 각국 외화 보유에서 위안화 비중을 높이는 전략이다. 위안화 국제화 과제가 내부적인 결함을 보완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이 자리 잡을 경우 7%대에 재진입할 수 있다는 기대도 고개를 들고 있다.
모디노믹스(모디 정부의 경제정책) 성공으로 지난 3년간 눈부신 성장세를 보였던 인도 경제는 화폐 개혁, 상품·서비스세(GST) 도입 등 제2의 도약을 위한 양대 현안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다소 부진했다. 하지만 인구가 많은 데다 4차 산업에 적합한 인구구조를 갖고 있어 내년부터는 성장률이 다시 7%대로 복귀할 것으로 예측기관은 내다보고 있다.
브라질 경제는 내년에 치러질 대선 변수가 최대 이슈다. 여건(fundamentals)은 괜찮다. 원유, 커피, 철광석, 석탄 등 최대 성장 동인인 4대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경기 회복세를 꺾지는 않겠지만 내년 선거 과정에서 후보가 난립하고 부패로 자유롭지 않아 성장률이 크게 높아지기는 힘들어 보인다.
중국의 성장 경로가 ‘외연적 단계’에서 ‘내연적 단계’로 이행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성장통(growth pains)으로 대체 투자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베트남 경제는 내년에도 성장세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간 많은 외국 기업과 자본의 유입으로 부동산을 중심으로 과열 징후를 어떻게 극복해 나가느냐가 제2의 도약 여부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경제 비관론’ 우려 씻을 과제는
올 한 해 가장 격변을 치른 국가가 한국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우리 경제가 수출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고 있으나 앞날과 관련해 비관론이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경제개발 시작 이후 주력 산업이었던 제조업의 생산 여건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낮은 출산율과 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 특히 청년층들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요인이다.
노동력에 이어 생산에 필요한 자본도 저축률 하락 등으로 갈수록 성장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저축률이 하락하는 요인으로 정치권의 포퓰리즘적인 사회보장 지출 확대, 가계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따른 예비적 동기의 저축 필요성 감소와 소비 여건 개선 등이 지적되고 있다. 기업의 현금 보유는 사상 최대 규모다.
정책당국이나 정책에 대한 신뢰도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이 그렇다. 당리당략에 국민과 우리 경제 앞날은 뒷전이다. 신뢰 회복의 ‘골든타임’까지 놓쳐 이제는 우리도 일본처럼 아무리 좋은 정책 신호를 준다 하더라도 정책수용층은 정작 반응하지 않는 ‘좀비 국면’에 빠져 들고 있다.
통화승수, 통화유통속도, 예금회전율 등 각종 경제활력지표가 눈에 띄게 회복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한번 해보자(can do)’ 하는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상황에서 경기 부양 대책을 추진한다 하더라도 경기 회복에 별다른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사례에서 그대로 보여준다.
대외적으로는 우리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높아진 국제 위상에 맞게 내수시장이 발전되지 않음에 따라 통상마찰도 잦아지고 있다. 특히 기업 간 불균형이 심화된 상황에서 특정 기업의 경우 세계 최고의 반열에 올라간 것에 따른 착시현상까지 겹치면서 주요 교역국으로부터 통상마찰의 표적이 되고 있는 점도 우리 경제 앞날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나라 안팎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재평가 작업이 한창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중에서 우리 경제에 대해 비교적 밝은 IMF와 같은 해외 기관일수록 ‘한국 경제가 질적인 면에서는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평가를 과연 문재인 정부가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주목하고 있다.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재인 정부도 경제 우선 정책을 예산 조기 집행과 같은 단기 처방에 의존할 경우 고질병인 ‘고비용-저효율’ 문제를 개선하는 일은 요원해진다. 오히려 구조조정 노력을 지연시킴으로써 후손이 부담해야 할 사회적 비용은 엄청나게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기업에도 우리 경제 내에서 안정된 경영활동을 보장하고, 해외 진출한 기업도 국적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그것이 개혁 정치이든 산업 정책이든 간에 정책의 일관성과 명확한 기준이 전제돼 시행해야 한다. 규제 완화를 추진하면서 기득권 때문에 핵심 규제 사항을 풀지 못하거나, 특정 기업에 막대한 이권이 보장되는 신규 사업을 허가해주면서 뒷거래가 오가는 식의 뒷맛이 가시지 않는 정책이 계속될 경우 위기감만 키울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우리 기업의 ‘무국적화’를 촉진하고 산업 공동화와 실업 증대 등의 엄청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기업도 경기가 좋을 때에는 한탕하고 경기가 나쁠 때에는 정부의 지원을 바라는 ‘화전인식 경영’은 지양해야 한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이 실망스럽다 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투자는 의무다.
국민에게 경제 현실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과 안정된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주는 것도 시급하다. 법규이든 사회규범이든 간에 정책당국이 마련하는 대로 쫓아가더라도 고위층에서 뇌물이다 떡값이다 해 부정부패가 발생할 경우 국민은 상대적인 박탈감과 허탈감에 휩싸여 위기감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 정부가 실시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주는 발상의 대전환도 필요하다. 갈수록 국민이 정부의 정책에 대해 무조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정책당국(정치권의 책임이 크다)이 국민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올바르게 국정을 운영하지 못한 측면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당국이 아무리 좋은 정책을 실시한다 하더라도 국민이 부응하지 않을 경우 또다시 정책을 내놓아야 하는 ‘정책의 악순환’만 되풀이될 가능성이 높다. 나 자신을 다소 희생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정책 결정 과정에 있어서는 여론이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동시에, 일단 정책이 추진되면 소기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적극 후원해줘야 한다.
모두 쉽지 않은 과제들이다. 그런 만큼 문재인 정부는 많은 정책을 내놓기보다 정치권과 정책당국의 ‘마라도나 효과(마라도나에 대한 믿음이 강해 수비수가 미리 행동하면 다른 쪽에 공간이 생겨 골 넣기가 쉽다는 의미)’가 절실하다. 이를 바탕으로 정책수용층이 ‘프로보노 퍼블릭코(pro bono publico)’ 정신을 발휘한다면 고질적인 비관론을 해소할 수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과 원칙을 지키면서 정치권과 정책당국은 진심으로 정책수용층의 협조를 구해 나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조금만 뜻대로 안 되면 ‘과거 정부와 언론, 국민 탓’을 하면서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싹이 돋고 있는 ‘한국 경제 위기론’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지 모른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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