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비욘드 미트, 네스트…. 기후기술 1세대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한 대표주자들이다. 전 세계적인 온실가스 감축이 기후기술을 필연적으로 동반하면서 투자 업계가 ‘제2의 테슬라’ 찾기에 나섰다. 탄소 감축이라는 큰 도전을 통해 큰 기회를 잡는 기후기술 투자 흐름을 짚어봤다
[스페셜] 기후기술에서 노다지 찾기 기후기술(climate tech)에 돈이 몰리고 있다. 기후기술은 기후위기에서 시작된 새로운 성장 기회로 통한다. 온실가스 순배출량 제로를 뜻하는 넷제로(Net-Zero)는 전 세계가 동참하는 거대한 변혁이다. 그리고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전례 없는 수준의 혁신이 필요하다.기후기술은 기후 문제에 솔루션을 제시하는 혁신 기술을 의미한다.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정의에 따르면 온실가스 감축(mitigation)과 기후변화 적응(adaptation)에 기여하는 모든 범위의 기술이다. 국내에서는 크게 클린테크(에너지), 카본테크(탄소 포집 등), 에코테크(자원순환), 푸드테크(농식품), 지오테크(탄소 관측 및 기후 적응) 등 5개 분야로 구분하기도 한다. 기후기술 없는 넷제로는 불가능
기후변화의 심각성이 갈수록 심화되면서, ‘기후기술 없이는 넷제로가 불가능’해지고 있다. 유엔 기후변화에 따른 정부 간 협의체(IPCC) 보고서의 핵심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산업화 이전 수준인 섭씨 1.5도 이하로 제한하자는 것이지만, 이미 ‘1.5도 마지노선’을 넘어섰다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1.5도 방어 실패는 기정사실화됐으며, 2도 이하 억제도 도전적인 과제다.
기후기술 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가파르게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32년 예상되는 기후기술 산업 규모는 1480억 달러(약 204조 원)다. 2016년 169억 달러에서 9배가량 높은 수치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2050년까지 평균 1.5도 목표를 달성하려면 총 150조 달러, 연평균 5조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 온실가스를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혁명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혁신가들은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재단을 설립하고 펀드를 조성하면서 기후기술을 글로벌 어젠다로 이끌고 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가 이끄는 ‘브레이크스루에너지그룹’은 약 150억 달러 규모의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캐털리스트(BEC)’ 펀드를 조성하고 직접 공기 포집(DAC), 그린수소, 지속 가능한 항공유, 에너지 저장 기술 등 네 가지 중점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또한 빌 게이츠는 기후기술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VC)인 ‘브레이크스루 에너지 벤처스(BEV)’를 통해 현재까지 약 23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해 140곳 이상의 기후기술 기업에 투자해 왔다.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 회장도 2020년 약 1300억 달러 규모의 기후위기 대응 기금 ‘베조스 어스 기금(Bezos Earth Fund)’을 조성하고, 2030년까지 100억 달러 투자를 약속했다.
재단 출연기금의 조성을 기점으로 기후기술에서 ‘금맥’ 찾는 투자자들도 증가하는 추세다.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 이후 각 국가와 기업에서 온실가스 감축 어젠다 선점에 나섰다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기술 솔루션을 누가 갖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자본시장은 기후기술 투자로 답하고 있다. 특히 기후기술은 VC를 중심으로 투자가 진행 중이다.
기후기술 투자를 리딩하는 투자사로는 브레이크스루에너지벤처스가 대표적이며, 세계 10위 국부펀드인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도 큰손에 해당한다. 테마섹은 자회사로 탈탄소화 투자 플랫폼 회사 젠제로를 설립, 36억 달러 규모로 기후기술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2023년 가장 활발히 활동한 기후기술 투자사 1, 2위로 꼽힌 미국의 클라이밋 캐피털, SOSV도 있다. 시장조사 업체 피치북에 따르면 클라이밋 캐피털은 지난해 총 89건을 투자했다. 이 밖에 미국의 대표적인 임팩트투자사인 컬래버레이티브 펀드는 약 2억 달러 규모로 기후 중점 펀드(SFF·SOS 펀드)를 운용 중이다.
거품 논란 vs 재조정 후 안정기
기후기술 투자는 전반적으로 VC 업계가 위축된 상황에서도 활기를 띠는 모양새다. 지난해 거시경제 영향으로 기후기술 투자도 타격을 받았으나 전체 시장 대비 그 영향이 덜했다는 평가다. 2022년 상반기까지 기후기술 투자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은 거품 논란으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거품이 걷히고 안정기에 접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기후기술 전문 매체 클라이밋 테크 VC(CTVC)는 2023년 상반기 기후 스타트업에 유입된 자금은 전년 대비 40% 줄었지만, 초기 투자인 시드펀딩(seed funding) 규모는 오히려 증가했다며 시장이 건전한 재조정을 거쳐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CTVC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기후테크 스타트업 투자 금액은 321억 달러(약 44조 원) 수준으로, 이는 전년 대비 30% 감소한 수치다. 그러나 전반적인 벤처 시장이 39% 감소한 것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강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 투자의 연평균성장률(CAGR)은 23%로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의 기후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지정학적 혼란과 인플레이션, 금리 상승, 가치평가 하락 등으로 전반적으로 시장이 쇠퇴했으나 전체 스타트업 투자 대비 기후기술 분야 투자는 증가했다. 전체 투자 대비 기후기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10년간 꾸준한 상승 기조를 유지하며 2023년 3분기 기준 11.4%를 차지한 것으로 보고된다. PwC는 기술 개발에 대한 기대심리, 정부 차원의 대규모 지원 등으로 향후 낙관적인 시장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후기술 분야의 우상향은 기존에 없던 새 시장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기후기술 투자는 과거 2000년도 초반의 ‘클린테크’ 붐을 지나 현재 1.5~2세대에 진입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후기술 분야가 계속 다변화하면서 최근 몇 년 사이 전통적인 투자 영역에서 벗어나 탄소회계 분야에서도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기업)이 탄생했다.
미국의 탄소 배출 데이터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페르세포니(Persefoni)는 2021년 TPG 라이즈 펀드, 프렐류드벤처스 등으로부터 1억 달러 이상의 투자금을 유치하고 탄소회계 분야의 가능성을 알렸다. 또한 실리콘밸리의 테크 기업을 주요 고객군으로 확보하고 있는 워터셰드(Watershed)는 기업들의 탄소배출량을 추적하는 서비스인 탄소회계 소프트웨어를 제공한다. 2022년 2월 세쿼이아캐피털로부터 7000만 달러 규모로 투자를 받으면서 유니콘 반열에 올라섰다.
PwC에 따르면 신규 투자 영역에 해당하는 순환 경제, 탄소 시장, 건축 환경은 2022년 전년 대비 각 195%, 500%, 1533% 증가했다. 친환경·고효율 에너지 주택 및 건물을 위한 히트펌프 , 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CCUS) 등 탄소 시장 분야의 VC 투자 금액이 크게 증가했다.
또한 소형모듈원전(SMR), 지속 가능한 농업, 청정수소도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분야다. “유니콘 1000개, 기후기술에서 탄생”
기후 투자가 증가하면서 기후기술 글로벌 유니콘 기업은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은 “앞으로 탄생할 유니콘 1000개사는 그린수소, 그린농업, 그린스틸, 그린시멘트 등 기후기술 기업일 것이다”고 발표한 바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향후 10년은 기후기술 유니콘 기업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글로벌 데이터 연구 기업 홀론아이큐(Holin IQ)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1월 기준 전 세계적으로 80개의 기후기술 유니콘이 있으며, 총 가치는 1800억 달러 이상으로 집계된다. 유니콘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55%)을 차지하는 건 모빌리티·수송 분야다. 식품·농업·토지 이용(17%), 공업 제조업 자원 관리(13%), 에너지 관련(12%), 기타(3%)로 구분할 수 있다. 특히 모빌리티 분야에 편중돼 있는 이유는 전기차라는 상용화된 무대가 있어서다. 모빌리티 편중 구조에서 탄소 감축의 핵심인 에너지 전환을 위한 대대적인 인프라 전환과 새로운 방식의 에너지 솔루션 투자 확대가 과제로 꼽힌다.
기후기술 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하나가 정부의 정책 자금 투입이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통해 2022년부터 20년간 약 3690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며, 유럽은 리파워 EU(REPower EU) 예산으로 약 5년간 약 2100억 유로를 투입할 예정이다. 중국의 경우 2022년 한 해 청정에너지 투자액이 약 5460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 정부도 지난 3월 19일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금융 지원 확대 방안’을 수립하고, 2030년까지 452조 원의 금융 지원에 나서기로 발표했다. 특히 기후기술 투자 부문에서는 6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산은)이 2030년까지 9조 원을 출자해 미래에너지펀드를 신규 조성하기로 하는 등 정책적 지원을 할 예정이다. 이와 같은 정책 자금을 마중물 삼아, 기후기술 투자가 출자자(LP)와 VC 중심의 투자를 넘어, 향후 운용사(GP)와 공모 시장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기후기술 유니콘 기업이 탄생하지 않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정수종 서울대 기후테크센터 교수는 “최근 기후 리스크를 진단하고 예측하는 사업이 해외에선 커지고 있는 반면 국내에선 활발한 기업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지오테크’와 ‘카본테크’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선진국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전기차, 태양광, 배터리 등 대기업 중심으로 기후기술 경쟁력을 갖춰 가고 있다”며 “스타트업 육성을 통해 더 빠르고 과감한 기술 혁신을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국내 기후기술 투자 주도하는 임팩트 투자사들]
국내 기후기술 투자는 임팩트 투자사들이 이끌고 있다.
인비저닝 파트너스는 2021년 순수 민간자본으로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후기술에 특화된 ‘인비저닝 클라이밋 솔루션 펀드’를 768억 원 규모로 결성한 바 있다. 2024년 1월 말, 440억 규모의 신규 펀드(인비저닝 임팩트 솔루션 펀드)를 결성하고,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 올해 3월 기준, 인비저닝의 누적 투자 총액 1225억 중 64%인 779억 원이 기후 솔루션에 투자됐다.
인비저닝 파트너스는 특히 배터리 밸류체인 내 다양한 요소 기술, 장주기 에너지저장장치, 수소 등 에너지 전환 솔루션, 그리고 탄소 포집 및 자원화 분야, 저탄소 소재 및 자원 순환 솔루션을 유망 분야로 꼽고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에이치투(장주기·대용량 ESS), 에바(국내 완속충전기 시장 점유율 1위 기록), 테라클(플라스틱 및 의류 폐기물을 화학적 재활용해 재생원료 제조), 미국 피닉스테일링스(폐광에 버려진 광물 찌꺼기로부터 희소광물 자원을 회수), 앤츠(탄소관리회계의 통합 솔루션을 국내 최초로 선보인 스타트업), 미국 애브노스(DAC의 차세대 기술 기업) 등에 투자했다.
소풍은 최근 250억 원 규모의 ‘임팩트 피크닉 투자 조합 2호’ 펀드를 1차 결성했다. 2022년 4월 국내 최초로 초기 단계 기후기술 투자에 집중하는 ‘임팩트 피크닉 투자조합 1호’를 결성한 이후 약 2년 만이다. 2호 펀드는 1호 펀드 결성 규모인 103억 대비 2배 이상인 250억 원을 목표로 연내 멀티 클로징을 할 예정이다.
1호 펀드를 통해서는 하이리움산업(수소), 이온어스(ESS), 에이트테크(폐기물 선별 로봇), 메타텍스쳐(대체계란) 등 각 분야를 선도하는 기후기술 스타트업 25개사에 투자했다.
또한 디쓰리쥬빌리파트너스는 2021년 285억 규모 미래 환경 ECO 벤처투자조합을 결성했으며, 스마일게이트인베스트먼트는 2020년 200억, 2022년 415억 규모의 환경 펀드를 조성했다. 이외에도 임팩트스퀘어 등이 기후기술 투자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기후기술 분야 펀드 수익률은?]
국내 기후기술 상장지수펀드(ETF)는 ‘KoAct 글로벌기후테크인프라액티브 ETF’가 대표적이다. 지난 1월 18일 상장된 삼성자산운용 KoAct글로벌기후테크인프라 액티브 ETF는 상장 이후 18.8%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이 상품은 풍력, 태양광, 원자력 등 저탄소 에너지와 핵심 전력 인프라 기업에 투자한다.
최근 글로벌 기후기술 ETF 수익률은 다소 주춤한 상태다. 기후기술 ETF들은 퍼스트솔라(FSLR), 베스타스(VWS) 등과 같은 신재생에너지 기업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조수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관전 포인트는 연말에 있을 미국 대선이다”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바이든 정부의 탈탄소 보조금을 축소하거나 아예 없앨 공산이 크기 때문에 이 경우 신재생 테마는 차익실현 압력에 노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대선 불확실성을 선반영해 기후기술 ETF들이 연초 대비 부진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현주 기자 charis@hankyung.com
© 매거진한경,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