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 투자’와 ‘위기관리’의 원조


2007년 ‘화폐전쟁’이란 제목의 책이 큰 화제를 모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저자인 중국의 경제학자 쑹훙빙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를 예견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책의 주된 내용은 글로벌 경제를 주무르는 커튼 뒤의 금융 재벌들에 관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로스차일드 가문이다.

프랑크푸르트 출신의 금융 환전상이었던 암셸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자신의 다섯 아들을 각각 프랑크푸르트·빈·런던·나폴리·파리에 보내 독립채산제로 지점을 운영하게 한다. 유럽의 전략 거점에 자리 잡은 이들이 금융 산업에서 번성하며 세계의 금융 대통령으로 군림하게 되고 지금도 이들의 영향력이 곳곳에 미치고 있다는 내용이다.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더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 로스차일드 가문은 이미 예전부터 명성이 자자한 금융 재벌이자 명망가였다. 로스차일드라는 이름은 독일풍 이름인 로트실트를 영어식으로 바꾼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게르만족이 아니라 독일계 유태인들이었다.

흔히 부자 하면 떠오르는 민족이 바로 유태인이다. 로스차일드 가문뿐만 아니라 투자의 대부로 통하는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도 유태인이다. ‘석유왕’ 록펠러도 유태인이고 워너 브러더스 같은 세계 5대 메이저 영화사의 창립자, 미국 3대 공중파 방송의 설립자와 경영자, 월스트리트 같은 언론 창립자도 모두 유태인이다.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까지 유태인인 것을 보면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세계의 요직을 두루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의 위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YONHAP PHOTO-0608> Khasids, ultra orthodox Jewish, pray in the small Ukrainian city of Uman, some 200 km (120 miles) south of Kiev on September 9, 2010. About 24,000 of followers of Rabbi Nachman from around the world flocked to the Uman to pay homage to their spiritual leader and celebrate the start of the New Year at his grave.    AFP PHOTO/ SERGEI SUPINSKY
/2010-09-10 06:13:45/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Khasids, ultra orthodox Jewish, pray in the small Ukrainian city of Uman, some 200 km (120 miles) south of Kiev on September 9, 2010. About 24,000 of followers of Rabbi Nachman from around the world flocked to the Uman to pay homage to their spiritual leader and celebrate the start of the New Year at his grave. AFP PHOTO/ SERGEI SUPINSKY /2010-09-10 06:13:45/ <저작권자 ⓒ 1980-2010 ㈜연합뉴스.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조그마한 동네 가게에서 거대 재벌에 이르기까지 세계경제를 주무르고 있는 ‘부자 유태인’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일본 교토 출신으로 국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이시즈미 간지는 마이클 잭슨의 일본 지역 담당 변호사로도 유명하다. 2007년 유태교로 개종해 유태인이 된 그는 ‘유태인들만 알고 있는 부의 법칙’이란 책을 통해 유태인들이 부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밝혔다. 피상적인 관찰이 아니라 5년간의 혹독한 교육과 시험 끝에 유태인이 된 저자의 설명이라 구체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이 눈길을 끈다.

우선 유태인은 돈을 가벼이 여기거나 무시하지 않는다. ‘돈은 돌고 도는 것이다’는 속담은 ‘지금은 가난해도 언젠가는 내게 돈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감을 표현한 예다. 반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문화에선 ‘진정한 친구와는 돈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돈을 경멸의 대상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실에선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다. 한마디로 현실과 이상이 따로 논다는 뜻이다.

반면 ‘탈무드’에는 직접적으로 “유태인은 돈을 경멸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나온다. 유태인은 어려서부터 돈의 소중함과 돈이 만들어 내는 힘을 배운다. 그렇다고 무조건 수전노가 되라는 뜻은 아니다. 번 돈의 10분의 1을 기부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탐욕이 아니라 정직과 근면에 바탕을 둔 돈벌이를 생활화하고 있다.

돈에 대한 건강한 철학을 기반으로 유태인은 부를 축적해 간다. 구체적인 방법론을 살펴보자. 유태인은 비즈니스를 할 때 우선 사물의 근원을 장악한다. 경제에서 말하는 ‘플랫폼’, 즉 다른 산업에 대한 파급효과가 큰 부분을 손아귀에 넣는다는 뜻이다.

은행이나 증권 같은 금융업은 돈의 흐름을 장악하는 근원이다. 19세기에는 광산을 장악한 유태계 금융자본이 많았는데, 지금도 광물 비즈니스 업계에서 많은 유태인들이 활약하고 있다. 미국의 전설적 석유왕 록펠러도 미국 전체 석유 생산량의 95%를 장악하며 산업의 왕으로 떠올랐다.

분산 투자, 요즘 유행하는 ‘포트폴리오’ 구성도 유태인이 원조다. 암셸 로스차일드가 아들들을 5개의 거점에 보내 유럽 전역으로 비즈니스를 분산한 게 좋은 예다. 실제로 런던과 파리를 제외한 지역에선 그리 빛을 보지 못했다.

부동산·주식·채권 등 투자 상품을 나누는 ‘재산 삼분법’도 고대 유대가 효시다. 유태인들은 예부터 현금과 부동산, 귀금속 등 다른 종류의 자산에 투자함으로써 자산 가치 변동의 위험성을 줄였다.

유태인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위험을 줄이기 위해 둘 이상의 수입원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종교 지도자인 랍비들도 일부는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지면서 시간제 봉사직으로 랍비 일을 수행할 정도다. 국적·전공·직업·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유연성이야말로 많은 유태인이 비즈니스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빠르고 명확한 정보를 통해 남들과는 다른 역발상 투자를 잘하는 것도 유태인의 특징이다. 이와 관련해 암셸 로스차일드의 삼남 나탄의 이야기가 유명하다.

나폴레옹이 영국과 마지막 결투를 벌였던 워털루 전투가 막바지일 때 런던 증권거래소에 나타난 나탄은 장이 열리자마 영국 국채와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 이에 동요한 투자자들이 영국의 패배를 예상하고 투매에 나서 모든 증권이 폭락했다. 그런데 오후가 되자 영국의 승전 소식이 들려왔다. 나탄은 다른 브로커를 통해 폭락한 가격에 영국 국채와 주식을 다시 사들였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영국 금융을 지배하게 된 배경이다.
[부자 되는 전략] 세계를 움직이는 부자, 유태인 탐구
앞선 정보가 돈을 만든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을 비즈니스의 도구로 활용하는 것도 유태인들의 장기다. 유태인들은 예로부터 ‘형태가 없는’ 영화·연극 분야에 대거 진출했다. 형태가 없는 일은 경쟁자가 적어 비교적 쉽게 비즈니스를 확립할 수 있다. 실제로 ‘탈무드’에는 음악과 미술 그리고 지적 활동을 금전보다 더 가치 있다고 전하는 이야기가 많다. 전형적인 예가 영화 비즈니스다.

미국 5대 영화사의 창업자들은 모두 동유럽에서 온 유태인 이민 1~2세대다. 이민 온 후 본토인들에게 차별받던 유태인들은 19세기 들어 신흥 산업인 영화계에 대거 뛰어들었다. 영사기 특허를 취득한 에디슨의 박해를 피해 미국 동해안에서 규제가 느슨한 서해안으로 이주한 것이 바로 할리우드의 시초다. 새로운 환경을 개척한 도전 정신, 문화를 돈으로 바꾸려는 발상은 유태인들로 하여금 영화 산업의 근원을 장악하게 만들었다.

‘위기를 예측해 한 발 앞서 준비’하는 것도 유태인의 장기다. 퀀텀펀드로 유명한 조지 소로스는 “사물은 늘 변한다. 하지만 인간은 그 이유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익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클린턴 정부의 재무 장관으로 잘 알려진 로버트 루빈도 자신의 회상록에서 “세상에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개연성에 둘러싸인 채 살아가고 있다”는 말을 남겼다. 사물의 변화를 받아들이고 냉정함을 유지하는 태도도 유태인의 장점 가운데 하나다.

돈을 중시하며 투자의 귀재로 꼽히는 유태인들이지만 반대로 기부에 관한 전통 또한 깊다. 유태교는 율법에 의해 ‘수입의 10분의 1’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내놓아야 한다. 유태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돈을 주며 “구걸하는 사람에게 주고 오너라”라든지 “모금함에 넣고 오너라”는 식의 교육을 한다. 자신의 돈을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기부를 뜻하는 ‘체다카’에는 ‘정의’라는 뜻도 있다. 부유한 사람이 그 부를 얻을 때 신세를 진 사람에게 은혜를 갚는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것은 ‘국가나 조직에 얽매이지 않는 도전 정신’이다. 20세기까지는 재능 이외에 국적·자금·인종·학력·연령·성별 등이 성공의 큰 장애물로 작용했다. 하지만 오늘날은 개인이 유능하기만 하면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유태인은 바로 이런 변화를 강점으로 살아온 사람들이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국가에 집착하기보다 세계적인 관점으로 비즈니스와 자신의 인생을 고민해 왔다. 20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으며 온갖 박해와 고난을 뚫고 꿋꿋하게 살아남아 이스라엘을 건국한 유태인의 힘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참조 ‘유태인들만 알고 있는 부의 법칙(랜덤하우스)’
장진원 기자 jj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