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기업의 새로운 상장 전략

작년 4월 24일 네프로아이티라는 일본 정보기술(IT) 기업이 코스닥에 상장됐다. 당시 코스닥에 상장된 외국 기업은 중국 회사 4개뿐이어서 금융 선진국인 일본 기업의 코스닥 상장이 큰 화제가 됐었다. 이는 향후 한국 주식시장의 새로운 경향을 예고하는 사건이기도 했다.

일본 기업의 해외 상장은 1970년대부터 이뤄져 1999년 이후 본격화됐는데 대부분 미국 시장에 집중됐다. 그 이유는 엔고 현상에 따른 기업 경쟁력 제고, 일본 기업의 최대 시장인 미국 공략, 현지 생산을 통한 미일 무역마찰 회피 등을 배경으로 한 현지 자금 조달 목적 때문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해외 상장=미국 상장’이라는 흐름에 중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아시아 각국 일본 기업 상장 유치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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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국 주식시장에 커다란 상황 변화가 발생했는데 바로 상장 기업의 분식회계에 따른 규제 강화다. 엔론과 월드콤의 분식회계 사건을 계기로 제정된 샤베인-옥슬리법(Sarbains-Oxley Act : 기업투명화법)에 따라 신규 상장하려는 기업에 대한 심사 규제가 강화되면서 상장 심사 및 상장 유지에 시간과 비용이 더 들게 됐다.

이에 따라 1990년대 후반 이후 매년 1, 2개의 일본 기업이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됐지만 2002년의 코나미 상장 이후 주춤해졌다.

또 2006년 상장된 미즈호파이낸셜그룹처럼 일본 기업의 미국 상장은 상장 유지에 막대한 비용이 드는데 비해 해외 상장이라는 선전 효과만 기대할 수 있을 뿐이라는 비판적인 시각이 나왔다.

더욱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진원지인 미국의 자본시장 퇴조로 상장을 통한 유동성 확보라는 기본적인 상장 목적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있다.

한편 일본 벤처·IT 주식시장 역시 2006년을 기점으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2000년 전후 도쿄증권거래소 1부, 2부와 별도로 자스닥·마더스·헤라클레스 등 6개의 새로운 주식시장이 설립될 정도로 벤처·IT의 전성시대를 맞았던 일본은 2006년의 라이브도어 사건을 시작으로 10여 개의 벤처기업들이 분식회계, 유가증권신고서 허위 기재 등으로 상장폐지됐다.

또한 2009년 11월에는 상장된 지 7개월밖에 되지 않은 FOI라는 반도체 제조 회사가 약 100억 엔의 분식회계 사건을 일으켜 상장폐지되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 주식시장 침체의 또 다른 이유로는 투자자의 신뢰 상실과 이와 맞물린 투자 환경의 경색과 기업 실적 저하를 들 수 있다. 2008년의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기업 실적 저하와 경색된 금융 환경에 따라 주식시장에 대한 투자 역시 급감했다. 2009년 자스닥 시가총액은 약 8조3000억 엔으로 최고점이었던 2005년과 비교해 57%나 감소했다.

같은 시기에 마더스는 79%, 헤라클레스는 84%나 줄어들었다. 이런 환경은 자연스럽게 신규 상장사의 급감으로 이어져 2009년에 상장한 회사 수는 도쿄증시에 19개사, 자스닥·마더스·헤라클레스에 총 13개사로 2008년 대비 약 70% 감소했다. 전체 자금 조달 총액 역시 약 540억 엔에 지나지 않아 과거 최고였던 2000년과 비교해 약 30분의 1 수준으로 하락했다.

일본 주식시장의 이런 침체 상황은 상장을 추진하려는 일본 기업들에 새로운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한편 종래의 미국 상장 일변도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증권거래소로 눈을 돌리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수요를 반영하듯 일본 기업을 유치하려는 아시아 각국 증권거래소의 유치 활동도 활발해졌다. 홍콩·싱가포르·대만·한국의 거래소 등이 대규모 유치 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활발하게 유치 활동을 펼치고 있다.

싱가포르는 도쿄에 주재원 사무소를 설립해 기업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홍콩증권거래소는 지난 3월 도쿄에서 벤처기업 경영자 등 수백 명을 초청해 상장 유치 설명회를 개최했다.

대만증권거래소도 2009년 상장 유치 세미나를 개최했다. 한국거래소는 올해에만 6, 7, 9월 세 차례에 걸쳐 증권회사들과 공동으로 도쿄와 후쿠오카에서 상장 유치 설명회를 개최했는데 한국 상장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수백 명의 기업 경영자와 캐피털 관계자가 참가해 성황을 이뤘다.

코스닥 상장 추진 日 기업 10여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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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아시아 시장 상장, 특히 한국 증시 상장을 추진하는 일본 기업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 먼저 홍콩 시장에는 2007년에 시게미쓰산업의 중국 합병 회사인 아지센이 상장했다. 또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 9월 현재 네프로아이티 외에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인 일본 기업이 10여 개에 이른다.

그렇다면 일본 기업이 아시아의 다른 시장보다 코스닥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심사 과정과 상장 유지비용 측면의 장점을 들 수 있다. 예를 들어 네프로아이티와 같은 모자 회사의 동시 상장은 일본에서는 인정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그런 제약이 없다.

그리고 일본에선 연간 3000만 엔 이상이 상장 유지비용으로 필요하고 2008년 4월의 일본판 샤베인-옥슬리법 실시 이후 상장 유지비용은 지속적으로 증가 추세에 있는데 비해 한국거래소의 상장 유지비용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이다.

이 밖에 코스닥이 가지는 실질적인 장점으로 높은 공모가, 풍부한 유동성, 높은 성장률 등 한국 증권시장 자체의 상대적 호황을 들 수 있다.

기업공개(IPO)에 따른 자금 조달 총액에서도 한국에서의 자금 조달 총액이 훨씬 높다. 일본은 자금 조달 총액이 매년 급감하고 있는데, 그 최고점이었던 2000년 약 1조4600억 엔이었지만 2008년 약 913억 엔, 2009년 약 540억 엔으로 급감했다. 반면 2009년도 한국 시장에서의 자금 조달 총액은 약 2690억 엔으로 일본 시장의 약 5배에 이른다.

블룸버그통신재팬의 데이터에 따르면 일일 시점의 한국거래소 시가총액은 7846억 달러로 일본의 약 4분의 1 수준이지만 시가총액에서 점하는 매매가 비율인 매매 회전율은 코스닥이 243%를 기록, 도쿄증권거래소의 129%를 크게 웃돌아 높은 유동성을 자랑한다. 그리고 2009년 1년간의 일본 도쿄종합주가지수(TOPIX) 상승률은 5.6%에 지나지 않았지만 한국의 코스피지수는 약 50% 상승했다.

이와 같은 상대적인 한국거래소의 호황에 따라 일본의 투자자들은 한국 주식시장에 대한 조사 및 한국거래소에 일본 기업 상장을 면밀하게 준비하고 있다. 기업공개 관련 일본 내 2대 벤처캐피털인 미즈호캐피털은 향후 일본 기업의 한국 상장이 활발해질 것을 염두에 두고 올해 5월 10일 코스닥시장을 파악하기 위한 모임을 일본 현지에서 개최해 코스닥시장의 현재 상황, 외국 기업 상장과 관련된 다양한 쟁점, 한국 시장의 특성 등을 파악했다.

한편 한국 기업 투자에 대한 일본의 관심 역시 커져 작년 9월에는 노무라자산운용이 한국 등에 투자하는 노무라 아시아 펀드를 출시했고 일본 2위의 자산운용사인 다이와자산운용 역시 한국의 주식시장에만 투자하는 주식형 공모 펀드를 조만간 선보일 예정이다.

미국의 경제 회복에 여전히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일본의 벤처 주식시장 역시 활로를 잃어버려 상장을 희망하는 일본 기업과 일본 투자자들을 한국 시장에 불러들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보인다.

보다 많은 우량 일본 기업들의 한국 상장 유치를 위해서는 다각도의 노력이 필요하다. 동시에 투자자를 보호하기 위해 상장 준비 과정에서 기업 가치에 대한 분석과 객관적 평가가 선행돼야 하고 해당 기업의 리스크 요소들이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제공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글= 법무법인 지평지성 일본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