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해외투자 급증

지난 9월 3일 중국 상하이시 롱즈몽 호텔에서 지식경제부와 KOTRA가 주관한 한국 투자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한국 투자 환경, 한국 지역 개발 투자, 금융 투자 및 한국 투자 관련 법률 제도 등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저장상회·원저우은행과 유력한 투자 기업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의 한국 투자를 주제로 중국 땅에서 투자 설명회를 개최하는 것은 몇 년 전만 해도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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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난 2008년 말에 닥친 세계 금융 위기는 전 세계 모든 국가에 같은 강도의 위기감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중국은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터널을 지나오면서 전 세계에서 차지하는 정치적·경제적 위상을 높였다. 중국에는 위기가 곧 기회였던 셈이다.

선진 기술 취득·시장 진출 목적

중국 정부는 4조 위안의 정부 재정을 투입, 개혁개방 과정에서 소외된 지역과 계층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중국 정부의 적극적 재정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된 고속철도 등의 사회 인프라 확충, 서부 대개발 지역의 투자 확대, 저소득층의 소비 지원 등은 세계적 금융 위기 속에서 중국 내수시장 활성화의 버팀목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국이 내수 진작을 위해 적극적으로 재정 정책을 펼치는 과정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지만 의미 있는 행보를 보인 부분이 있는데 바로 ‘해외투자 확대’다. 세계 금융 위기에서 미국과 일본 등 대부분의 국가가 해외투자를 축소했지만 중국은 2008년도 해외투자(금융업 제외)가 전년 대비 63.66% 증가했다.

2009년 해외투자액은 170여 국가에 약 565억 달러(금융업 포함)로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세계 금융 위기 속에서 중국의 해외투자액이 증가한 것은 중국이 세계 1위의 달러 보유국(2008년 말 기준 약 2조 달러)이어서 유동자금이 풍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 시각이다. 그런데 단지 그뿐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지난 2000년 중국 공산당은 제15기 5중전회에서 ‘쩌우추취(走出去)’를 슬로건으로 내세웠다. ‘쩌우추취’를 직역하면 ‘밖으로 걸어 나간다’는 뜻이다. 과거 20여 년은 외국인 투자 유치를 통해 개혁 개방을 추진했다면 앞으로는 중국 기업이 뚜벅뚜벅 걸어서 해외에 나가 투자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중국의 해외투자 추세를 보면 걸어간 것이 아니라 뛰어가다시피 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중국의 해외투자는 아시아·남미·아프리카 순으로 비교적 저개발 국가에 집중됐다. 유럽과 북미 등 선진 국가에 투자한 금액도 적지 않았다. 중국의 해외투자 정책을 살펴보면, 해외투자 지역과 산업에 대해 ‘발전 국가’와 ‘발전 중 국가’로 크게 나눠 분석하는 경향이 있다. ‘발전 국가’는 주로 미국·캐나다·독일·영국 등 선진국이다. ‘발전 중 국가’는 나이지리아·수단·가봉 등 저개발 국가다.

중국의 해외투자 지역별 현황과 그 투자 산업을 보면 중국의 해외투자 목적과 동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발전 국가’는 그린 필드(green field)형보다 기존 기업의 지분을 인수하는 인수·합병(M&A)형 위주다. 2009년 기준으로 70% 정도가 제조업에 투자됐는데 이는 선진 기술을 취득하거나 시장 진출을 도모하려는 목적이다.

베이징자동차가 스웨덴 사브(SAAB)에 2억 달러를 투자하고, 지리(GEELY)자동차가 스웨덴 볼보(VOLVO)에 18억 달러를 투자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반면 ‘발전 중 국가’에는 석유와 철광석 등 자원 개발 사업 또는 도로 등 사회간접시설 등의 건설업에 투자가 집중됐다.

중국 정부가 개발원조로 차관을 제공해 개발 사업을 일으키고 중국의 건설 회사가 이를 시공하는 형태다. 중국으로서는 자기 돈을 들여 사업하고 그 투자 수익을 챙기는 구조다.

자본이 가는 곳에는 정치가 뒤따르기 마련이어서 중국이 투자한 아프리카 국가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정치 영역에까지 미친다고 봐야 한다.

이면에 숨은 정치 논리 파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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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세계 각지에 투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미 시장경제로 들어선 지 오래돼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인데도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국가라는 기치를 내세우며 강력한 국가주의 색채를 띠고 있다.

그래서 중국의 해외투자는 ‘이윤이 있는 곳에 투자한다는 시장 논리’와 ‘중국의 대외적 영향력을 강화한다는 국가주의 논리’라는 2가지 관점에서 조망해야 한다. 즉 겉으로 보기에는 자원 개발, 기술 습득, 시장 개발이라는 목적으로 해외에 진출하지만 이면에는 정치적 논리가 숨어 있다.

더욱이 중국 기업이 해외투자를 진행할 때 중국 정부는 발전개혁위원회와 상무부가 이중적으로 심사, 비준하는 절차를 볼 때 경제적 논리 외에 정치적 논리를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측면에서의 시사적인 사건은 지난 2006년 11월에 베이징에서 개최된 중국·아프리카 정상회의다. 당시 아프리카 53개 국가에서 48개 국가(그중 41개국은 국가원수)가 참석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중국의 아프리카 국가 투자는 양적·질적으로 발전했는데 중국이 투자한 아프리카 국가들이 친중국적인 외교정책을 보이고 있다.

이야기를 한국으로 돌려보자. 지식경제부와 KOTRA는 지난 5월 6일 서울에서 차이나 데스크 출범식을 갖고 중국 자본의 투자 유치를 전담할 차이나 데스크(China Desk)를 설치했다. 차이나 데스크는 중국 상하이의 KOTRA 사무소와 서울의 인베스트 코리아(Invest Korea)에 설치됐다.

주 업무는 중국 자본의 투자 유치를 위해 양국 기업, 투자 중개 기관, 지방정부 간 네트워크 구축과 투자 정보 공유, 개별 투자 프로젝트 소개, 투자 유치를 위한 중국 현지 상담회 개최 등이다.

지난 9월 3일 열린 투자 설명회도 차이나 데스크가 실무를 맡아 개최한 것이다. ‘외국자본을 유치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는 원론적 논의를 접는다면 세계 5위의 해외투자국인 중국으로부터 자본을 유치하는 것은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더욱이 개발도상국인 중국의 해외투자 자본은 금융자본보다 산업자본 중심이라는 점에서 중국 자본이 유치되면 한국의 산업 발전과 고용 창출에 긍정적일 수 있다.

한국에 진출한 중국 기업들은 만일 중국 정부가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주려고 할 때 우리에게 방어와 협상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가 중국 자본을 실질적으로 유치하려면 우리의 눈높이를 중국에 맞춰야 한다. 중국 쪽에서는 한국은 ‘발전 중 국가’가 아니라 ‘발전 국가’다. 따라서 한국에 진출한다면 그 경제적 목적은 자원 개발이 아니라 기술 습득과 시장 진출이 될 것이다. 최근 중국의 한국 투자액은 영국·이탈리아와 비슷한 수준이며 투자 산업도 발전 국가 유형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면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한국도 중국에 기술이전이나 시장을 개방하는데 인색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비록 상하이자동차가 투자했던 쌍용자동차가 남긴 국민적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모든 거래는 상호간 이익이 있어야 지속될 수 있는 것이지 어느 일방에게만 이익이 된다면 오래갈 수 없다는 단순한 상식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 중국의 해외투자에는 경제적 논리와 정치적 논리가 함께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경제적 논리만으로 중국 자본을 유치해서는 중요한 점을 놓칠 위험이 있다.


[트렌드] 저개발국 ‘집중’…정치 영향력도 ‘쑥쑥’
법무법인 지평지성 상하이대표처 수석대표 최정식 변호사

서울대 사회과학대 졸업. 화동정법대학 법률진수생과정 이수. 사법연수원 제31기 수료. 대한민국 주상해총영사관 고문변호사, 상해한국상회 및 차이나 데스크 자문위원(현). 지평지성 파트너 변호사(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