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 관세동맹 시행

지난 10월 15일 러시아 연방정부 관보인 ‘로시스카야 가제타(러시아신문)’는 현재 톤당 266.5달러인 러시아산 석유 수출관세가 11월 1일부터 9% 인상돼 톤당 289~292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8년 7월 배럴당 147달러까지 치솟았던 우랄산 석유 가격이 2009년 3월 배럴당 30달러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러시아 우랄산 원유에 부과되는 석유 수출관세가 톤당 100달러까지 인하됐던 것과 비교하면 1년 7개월 만에 무려 3배 가까이 인상된 것이다.

동시베리아 13개 주요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에 대한 수출관세도 톤당 90~100달러로 인상됐다. 동시베리아 13개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에 대한 수출관세 면제 조치는 2009년 12월 동시베리아·태평양 송유관(ESPO) 1단계 완공과 때를 맞춰 이뤄지면서 아시아 각국의 관심을 모았지만 예상과 달리 지난 7월부터 수출관세 부과가 재개됐다.
[트렌드] 러, 수출품에 관세 부과…3국 간은 면세
글로벌 금융 위기로 유예됐던 원목에 대한 수출관세 인상 조치도 2011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러시아는 2009년 1월부터 원목에 부과되는 수출관세를 현행 25%에서 80%까지 인상할 예정이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로 세계경제가 위축된 상황을 고려해 그 시행 시기를 2년간 연기했었다.

또 러시아 연방정부는 최근 구리 및 니켈에 대한 수출관세 면세 조치를 폐지하고 2010년 12월부터 수출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정부가 제안한 구리의 수출관세율은 10%(경제발전부는 시장 가격에 따라 5~30%의 변동관세율을 제안했으며, 재정부는 10% 고정관세율을 제안했다) 안팎이고 니켈의 수출관세율은 시장가격에 따라 0~30%에 달할 전망이다.

러, WTO 가입 대신 관세동맹 외연 확대

수출관세는 우리나라 사업자에게는 다소 생소한 개념으로 러시아에서 외국으로 상품을 수출할 때 부과되는 관세를 말한다. 수출관세율은 러시아에서 사업 또는 투자하고 있거나 러시아와 거래하는 모든 외국 기업이 사업성 및 수익성 측면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수출관세는 농업 보조금, 국영 무역 기업에 관한 규정과 함께 러시아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을 지연시킨 주요 현안이기도 하다. 1993년 WTO 가입을 신청한 러시아는 2008년 중반까지 151개국과 양자 협상을 완료하고 농업 보조금, 수출관세, 국영 무역 기업에 관한 다자간 협상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그루지야와의 분쟁으로 WTO 가입에 관한 최종 협상을 중단했다.

러시아는 2005년에 WTO 가입 조건으로 최혜국(MFN) 관세를 평균 8%까지 인하(현행 러시아의 수입관세율은 평균 14%)하고 수출관세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고 확약했었다.
[트렌드] 러, 수출품에 관세 부과…3국 간은 면세
러시아가 WTO에 가입하면 우리나라 기업에는 현재보다 훨씬 유리한 환경이 조성될 것이 분명하다. 러시아 연방정부는 수출관세의 인상 조치가 해외 투자자 유치 및 WTO 가입에 부정적인 영향을 초래할 것을 알면서도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시기에 입게 된 막대한 재정 적자 손실을 보전할 목적으로 세수 확보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한편 2010년 7월 1일(벨라루스는 7월 6일)부터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 관세동맹의 개정 관세법이 시행됐다. 러시아는 벨라루스 및 카자흐스탄과 2007년 10월 6일 두산베에서 3국 간 통합관세지역 조성과 관세동맹 조성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2009년 11월 27일 단일 관세법 및 비관세 규정의 채택에 합의했다.

단일 관세법의 주요 내용은 역외 국가로부터 수입되는 물품에 부과되는 수입관세율을 일치시키고 3국 간 거래 물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지 않고 통합세관을 설치하는 것이다.

각국의 사정과 수출입 현황에 따라 일부 품목(가장 핵심적인 것이 러시아와 벨라루스 간 자동차 및 그 부품에 관한 수입관세율 조정)에 대한 수입관세율과 수출관세율은 일치되지 않았다. 3국 정상은 2012년까지 통합관세율 및 통합 세관 절차, 비관세 규정에 관한 협상을 완료할 계획이다.
[트렌드] 러, 수출품에 관세 부과…3국 간은 면세
관세 동맹국 진출 기업 유리

러시아는 단일 관세법 시행에 따라 총 1만1500개의 품목 중 1500개 품목의 수입관세를 인상했고 400개 품목의 수입관세를 내렸다. 카자흐스탄은 5000개 품목의 수입관세를 올렸으며, 벨라루스는 470개 품목의 수입관세를 인상했고 2000개 품목의 수입관세를 인하했다.

2010년 상반기 관세동맹 국가 간의 교역 규모는 2009년 상반기 대비 다른 국가 및 독립국가연합(CIS) 국가와의 교역 규모에 비해 훨씬 증가된 것으로 조사됐다.

단일 관세법 시행이 본격화되는 올해 하반기 이후부터는 관세동맹 가입국 간의 교역 규모가 더욱 확대될 것이다. 일부 조사 결과에 따르면 관세동맹에 따른 재정적 이익은 러시아가 미화 4000억 달러, 카자흐스탄과 벨라루스가 각각 16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관세동맹 협정이 본격적으로 시행됨에 따라 러시아의 수출관세 정책은 벨라루스나 카자흐스탄과 거래하는 외국 기업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게 됐다. 예컨대 러시아는 카자흐스탄에 수출하는 원유 및 석유 제품에 대해서는 수출관세를 면제하고 있다(벨라루스에는 내수용에 대해서만 원유 및 석유 제품에 부과되는 수출관세를 면제하기로 했다).

관세동맹의 출범은 유라시아경제공동체(EurAsEC)의 경제적 통합을 촉진하는 신호탄으로 이해되고 있다. 유라시아경제공동체는 옛 소비에트연방 경제권에 위치한 국가들의 경제 통합을 위해 2001년 5월 31일 발족한 국가 간 협의체다.

러시아·벨라루스·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이 정회원국으로, 몰도바·아르메니아·우크라이나가 준회원국으로 가입해 있다. 이미 키르기스스탄은 관세동맹에 참여할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고 타지키스탄도 관세동맹 참여를 적극 검토하고 있다.

또한 관세동맹 출범으로 러시아·벨라루스·카자흐스탄의 WTO 가입이 더 지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러시아의 WTO 가입이 지연되면 우리나라와 러시아 간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러시아는 당분간 WTO 가입 협상보다 관세동맹의 외연을 확대하고 브릭스(BRICs) 정상회담 등 독자적인 방법으로 국제사회에 대한 발언권을 강화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투자를 고려하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도 이런 상황 인식에 기반해 투자 일정과 계획을 신중하게 조정할 필요가 있다.

관세동맹의 출범은 무엇보다 러시아·카자흐스탄·벨라루스에 제조 기반을 두고 있는 우리나라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관세동맹 가입국에 제조 기반을 두고 있으면 다른 가입국에 제품을 수출할 때 역외에서 수입되는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관세동맹 가입국으로부터 단일 제품(대표적으로 원자재)을 수입하는 업체는 중·장기적으로 해당 제품의 가격 경쟁력 저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관세동맹을 주도하는 러시아는 WTO 가입이 성사되지 않는 한 국내의 가공 산업 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원자재의 수출을 제한하거나 규제하는 조치를 지속할 뜻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트렌드] 러, 수출품에 관세 부과…3국 간은 면세
법무법인 지평지성 류혜정 변호사


서울대 사회과학대학 졸업.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 정치학 박사. 사법연수원 제34기 수료. 법무법인 지평지성 변호사(현).